246화. 비밀 ― 이게 뭘까요? (2)
“뭐? 자모충?”
백아린이 가져온 정보에 천무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자모충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도, 적련화에게 자신이 조종당하던 그때도 천무진은 자신의 몸 안에 자모충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다.
자모충이라는 벌레 자체가 흑주염으로 만든 몽혼약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사람을 조종할 수 있게 만드는 벌레라 들었다.
그 모든 것이 과거 자신의 삶과 겹쳤으니까.
하지만 적련화에게서 빠져나오고, 그녀가 죽은 이후 천무진은 자모충에 대한 걱정을 지웠었다.
더는 그것의 존재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는 운기조식을 통해 하루에도 수차례 몸 내부를 살피는 무인이다. 그토록 긴 시간 몸 안에 벌레가 있었는데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는 것도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랬기에 자신이 과한 우려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백아린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자면 검산파에서 훔쳤던 그 붉은 보석이 자모충을 죽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 천무진이 느꼈던 그 고통 또한 말이 됐다. 갑자기 찢어질 듯한 복통을 느끼며 스스로를 통제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었다.
그 정체불명의 고통.
그것이 자모충으로 인한 것이었다니…….
그때 백아린이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당신이 십천야의 수장이라는 그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자모충 때문 아닐까요?”
“…….”
기억을 되찾은 이후로는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이었다.
이토록 자신의 의지가 있는데 자모충이라는 벌레 때문에 조종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무림에는 고독(蠱毒)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을 저주하거나, 망가트리는 데 사용되는 지독한 종류의 벌레를 뜻한다. 그리고 개중 일부는 인간의 몸 안에 기생시키며 특별한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일례로 각자의 몸에 한 쌍의 고독을 각각 넣어 놓고, 한 명이 죽으면 다른 반대편을 지닌 이도 죽는 종류의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자모충 또한 그런 종류의 하나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게 만드는 고독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천지광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 모를 자신의 상태를 그저 세뇌 하나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자모충이 가장 유력한 이유 중 하나인데…….
백아린이 재차 물었다.
“혹시 자모충을 먹은 적이 있어요? 아니면 뭔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도요.”
그녀의 말에 천무진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천무진의 기억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천지광과 함께 살았던 시간에 도달했다.
약 일 년여의 기간 동안 천지광의 거처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천무진은 세뇌를 당하며 십천야를 위한 사람으로 키워졌었다.
분명 그곳에서 갖은 일들이 있긴 했지만 자모충이라는 벌레를 먹은 기억은 없었다. 만약 자모충을 직접적으로 먹었다면 그걸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뭔가를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짜내던 천무진의 눈이 번쩍했다.
천지광과 살았던 일 년이라는 시간.
그 기간 중에 대략 보름 가까이 크게 앓았던 적이 있다. 당시엔 어린아이였으니 아픈 일이야 부지기수였고, 별다른 문제 없이 나았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감기처럼 고열에 시달렸고, 밤에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의 복통이 그를 괴롭혔었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이상할 건 없었다.
다소 기간이 길긴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의례 찾아올 수 있는 잔병치레라고 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상한 건 바로 천지광의 태도였다.
그 일 년 동안 천무진은 몇 차례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개중 그 어떠한 때도 천지광이 그에게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유독 그 기간은 달랐다.
수시로 천무진의 몸 상태를 확인했고, 의원을 통해 계속해서 몸에 좋은 약을 먹였었다.
“설마…….”
만약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그때가 맞는다면 천지광이 그 당시 그토록 신경을 쓴 이유 또한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가 건강을 염려했던 건 천무진이 아닌, 그의 몸 안에 들어간 자모충이었을 테니까.
뭔가를 생각해 낸 듯한 천무진의 모습에 백아린이 서둘러 물었다.
“뭐 생각난 거라도 있어요?”
“확실한 건 아닌데 의심스러운 건 하나 있어. 어릴 때 크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그가 평소랑 다르게 나에게 무척이나 신경을 쓰더군.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신경을 써 주는 것이 그자답지 않아서 말이야.”
당시를 특정해서 기억해 내자 어릴 때의 기억이라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의 것들이 연결되어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 하나.
고열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천무진에게 천지광이 내뱉었던 한마디 말.
- 참아라. 어제 먹은 단환으로 인해 신체에 변화가 생겨서 이러는 것뿐이니.
그 말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아프기 직전에 단환 하나를 먹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은 정체를 모를 커다란 단환이었다.
새카맸고, 냄새 또한 퀴퀴했다.
그렇지만 천무진은 천지광이 시키는 대로 그 단환을 먹어야만 했다. 단환을 먹을 때 천지광은 말했다. 결코 씹어서는 안 되고, 통째로 삼켜야만 한다고.
어린 천무진이 삼키기엔 다소 큰 단환이었지만, 그는 시키는 대로 그걸 그대로 삼켰다.
그것까지 기억해 내자 고민할 이유가 사라졌다.
천무진은 의자에 기댄 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때였군.”
그토록 어린 때부터 몸 안에 자모충이라는 벌레를 품어 왔다는 사실이 실로 끔찍했다. 유쾌한 소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문제를 찾았다는 건 곧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과도 같았으니까.
천무진은 스스로의 삶을 살기 위해 천지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허나 지금까지는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모충이라면 해답은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몸 안에 자리 잡은 자모충을 죽이면 되니까.
천무진이 곧장 물었다.
“그럼 검산파의 그 보석으로 내 몸 안에 있는 자모충을 죽일 수 있다는 건가?”
그의 질문에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도요.”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는 천무진을 백아린이 다급히 막아섰다.
의선의 연구실에서 자모충들이 모두 죽었고, 추가적인 실험을 통해 그것이 검산파에서 훔쳐 온 보석 때문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백아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하나 있어요.”
“문제라니?”
“사실 의선 어르신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 봤는데…… 자모충을 없애는 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단순히 그 보석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자모충이 죽고, 그대로 천무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백아린이 의선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자모충에 대해서는 당신도 어느 정도 알 거예요. 어미와 새끼로 나눠진 벌레죠. 의선 어르신은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남아 있는 자모충으로 실험을 하셨대요. 동물에게 자모충을 먹였고,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셨어요.”
천무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백아린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붉은 보석으로 자모충을 죽이는 동안 대부분의 동물들이 마치 목내이(木乃伊: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는군요.”
끔찍한 결과.
그렇지만 천무진은 다른 쪽에 주목했다.
“대부분이라면…… 살아남은 동물도 있다는 의미인가?”
“정확해요. 아주 극소수지만 살아남은 동물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들한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죠.”
“그게 뭐지?”
“자모충 중에서 어미가 아닌 새끼에 속하는 벌레를 먹은 것들이라는 거예요.”
새끼벌레를 먹은 모두가 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동물 모두가 새끼벌레를 먹었다는 것 또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천무진을 그런 동물들과 완전히 똑같이 분류할 순 없었다. 신체적 구조도 달랐고, 결정적으로 천무진은 뛰어난 무인이었다.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을 할 능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백아린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당신의 경우는 조금 더 이상하게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상하다니? 뭐가?”
“당신은 직접적으로 그 보석을 만졌고, 또 꽤나 긴 시간 노출되었었잖아요. 의선 어르신의 연구에 따르자면 그 정도라면 이미 몸 안에 있는 자모충이 죽었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게 제아무리 어미 쪽 벌레라고 해도요. 당신이야 무인이라 버텼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모충까지 살아있는 건 뭔가 의심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시를 버텨 낸 후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던 데다, 계속 조종을 당하는 걸 보아하니 자모충은 여전히 몸 안에 남아 있을 확률이 컸다.
그런데 아직 몇 차례의 실험을 했을 뿐이지만 자모충은 결코 그런 상황을 버텨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이나 자모충 모두 죽지 않은 지금의 상황.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그 모든 것에 대해 알고, 또 정확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으로선 당사자인 천무진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백아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으로선 여러 가지 의문들이 많아 정확한 건 의선 어르신을 만나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백아린은 천무진이 걱정이었다.
붉은 보석을 접했을 당시 고통스러워하던 그를 보았고, 동물들이 죽었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제아무리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실험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방도가 없음을 천무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그런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백아린이 천무진을 올려다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많이 아플 텐데…….”
“그거 알아?”
“뭘요?”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백아린의 뺨을 손으로 감싸 안은 천무진이 허리를 살짝 굽혀 시선을 맞춘 채로 입을 열었다.
“지금 실험을 해야 하는 나보다 당신이 더 울상인 거.”
“치잇, 지금 농담할 때에요?”
불만 어린 말을 토해 내는 백아린을 향해 천무진이 픽 웃어 보이고는 이내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이 그런 표정 짓고 있으면 내 마음이 아프잖아.”
“…….”
말과 함께 천무진은 마치 웃으라는 듯 손가락으로 백아린의 양쪽 입꼬리를 꾹꾹 눌렀다. 그런 그의 행동에 결국 그녀 또한 천무진과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제야 백아린의 입가를 누르던 손가락을 뗀 천무진이 자세를 바꾸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좋아, 그럼 슬슬 가 볼까?”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천무진.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백아린 또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진이 머무는 귀림원과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의선의 연구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의선이 찾아온 천무진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꽤나 오랜만에 만나는 의선에게 천무진이 인사를 건넸다.
함께 온 백아린까지 세 사람은 의선의 방에 있는 탁자에 둘러앉았고, 이내 천무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었습니다. 자모충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내셨다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전에 들은 얘기로 미루어 보아 천 공자의 몸 안에 자모충이 있다고 보이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도 동감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거에 뭔가 미심쩍은 일도 있었더군요.”
“……그렇습니까?”
말을 하는 의선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천무진을 위해 그를 이곳에 부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일도 아닌 그의 몸으로 실험을 하기 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인간을 실험체로 쓴다는 것은 의선으로서도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전에 이 붉은 보석으로 인해 고통받은 전적이 있으니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이 실험이 천무진에게 있어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의선이 물었다.
“꽤나 힘드실 겁니다. 그래도…… 해 보시겠습니까?”
물어오는 의선의 질문.
그러자 천무진이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로 그 대답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고통 정도 감내할 수 없었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곧 자신에게 찾아올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천무진이다. 한번 경험을 해 보았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르지 않았고 그랬기에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겨 내야만 했다.
그래야 소중한 것들을 지켜 낼 수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의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의선이 물었다.
“그럼 언제 시작을…….”
“머뭇거릴 필요 뭐가 있습니까?”
말을 끝낸 천무진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백아린과 의선을 번갈아 바라보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시작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