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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37화 (236/293)

237화. 전수 ― 용이 되어라 (1)

기억을 찾았구나, 하는 그 한마디의 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천무진은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천운백이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었으니까.

그건 결코 다른 누군가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것이 천운백이라면 더더욱 알아선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당황했던 천무진이지만 이내 그는 서둘러 정신을 추슬렀다.

천운백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는 지금.

당황하여 괜히 일을 꼬이게 만들 순 없었다.

천무진은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는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이내 찻물로 입술을 축이고는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모르는 척하려던 천무진.

하지만…….

“무진아.”

다시금 나지막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천무진은 힘겹게 천운백을 응시했다. 그렇게 시선을 마주한 상황에서 천운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잘 알 게다. 내가 상대를 떠보기 위해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너를 잘 아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 네가…… 얼마나 거짓말을 못 하는지도 너무 잘 알거든.”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만 같은 천운백의 말에 천무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하라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기라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천운백의 말대로였다. 대략 이십여 년을 함께 지내 온 사이다.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았고, 그랬기에 천운백이 지금 내뱉은 그 말이 결코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해 본 말이 아니라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미 천운백은 많은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을.

긴 침묵 끝에 어렵게 꺼낸 천무진의 한마디.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네 기억이 돌아온 것? 아니면 네 정체가 십천야가 보내온 아이라는 것?”

천운백의 대답에서 천무진은 그가 생각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숨겨야 하는 사실인 자신이 십천야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너무도 정확하게 모든 걸 알고 있는 상황에 천무진 또한 더는 감추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둘 다입니다.”

“네 기억이 돌아온 건 직접 만나 보고서야 알았다. 곧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 그리고 십천야가 보내온 아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 언제였더라? 널 제자로 거두고 얼추 일 년 정도 됐을 무렵 같구나.”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건 아니군요.”

“그럼. 설마 그들이 그토록 어린아이의 기억까지 지워서 내게 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대답을 들으며 천무진은 더욱 의아해졌다.

그렇다면 대체 왜일까?

처음부터 정체를 눈치채고도 어딘가에 이용하기 위해 모르는 척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여태까지 자신을 이렇게 키워 준 건지 알고 싶었다.

천무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살려 두신 겁니까?”

천무진의 그 질문에 천운백은 픽 웃었다.

사실 지금 그가 던진 질문은 천운백 스스로가 계속해서 가져 왔던 의문이기도 했으니까.

“……글쎄. 왜일까.”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천운백이 이내 앞에 있는 찻잔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무렴 어떠하냐. 네가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하지.”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제가 누군지 아신다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순순히 키워 주신 게…….”

그 순간이었다.

타악!

잔을 거세게 내려놓으며 천운백이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죽이려 했다.”

“…….”

“죽이려 했단 말이다. 넌 기억 못 하겠지만 분명 난 널 죽이려 했었어.”

천무진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대략 일 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의 정체를 알았고 천운백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천룡성의 제자가 적의 간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고, 결국 천운백은 결단을 내렸다. 천무진을 죽이기로.

그렇게 모든 결심을 끝낸 천운백은 평소처럼 잠자리에 드는 천무진의 인사를 웃으며 받아 줬다. 물론 그 와중에 천운백의 가슴은 찢겨져 나가는 듯이 아팠다.

어린아이다.

거기다가 제자로 거두고 일 년이나 함께 지내며 나름 정이 들어 가던 그런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하다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천룡성의 계승자인 그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있었으니까.

천무진이 깊게 잠들 때까지 기다리던 천운백은 마시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우선은 혈도를 점할 것이고, 그 이후엔 잠에 빠져 있다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죽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라 생각했다.

어린 천무진을 향해 손을 내뻗는 천운백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수천에 달하는 적을 마주했을 때도,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위험한 순간에도 누구보다 당당했던 그다.

그런 천운백이 떨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일이 천운백에게는 그 무엇보다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수천 번을 고민하고 정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운백의 뻗어진 손은 더디기만 했다.

그렇게 막 힘겹게 천무진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던 천운백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건 천무진의 머리맡에 위치한 한 장의 종이였다.

천운백은 그 순간 뭐에 홀린 듯 천무진에게 향했던 손을 종이로 뻗었다.

그렇게 펼쳐 든 종이.

종이 안에는 어린아이가 그릴 법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새카만 먹물로 그려 놓은 형편없는 실력의 그림 하나.

그리고 그 안에는 웃고 있는 천운백과, 어린 천무진이 있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천운백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를 든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렸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털썩.

천운백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어찌 이런 어린아이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토록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아이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있던 천운백의 눈에 자신의 손에 들린 그림이 다시금 박혀 들어왔다.

정말 형편없는 그림 실력이었지만…….

세상 그 어떠한 그림보다 감동으로 다가왔다.

천운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가 보자. 어디 끝까지 가 보자.’

그날 천운백은 결정을 내렸다.

천무진을 데리고 가겠다고. 그 끝이 설령 파멸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던 사부의 일화를 간략하게 전해 들은 천무진은 침묵했다.

“…….”

당시 느꼈을 천운백의 감정이 너무도 절절히 다가왔기에. 그리고 그런 그의 선택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기에.

긴 침묵 끝에 어렵사리 꺼낸 천무진의 한마디.

“계속 모른 척하시더니 왜 이렇게 나서시는 겁니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그게 무슨…….”

이해가 안 가는 천운백의 말에 천무진이 중얼거릴 때였다.

천운백이 자신의 주먹을 쥐며 말했다.

“모르겠느냐? 예전보다 내 힘이 많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말과 함께 천운백은 자신의 기운을 은은하게 흘려보냈다. 분명 그 힘은 강렬했지만…….

막상 쏟아지는 천운백의 기운을 정면에서 받은 천무진은 움찔했다.

강한 것은 분명했지만 예전 천운백의 힘에 비한다면 무척이나 약해져 있었다.

천무진이 놀란 듯 물었다.

“편찮으시기라도 한 겁니까?”

“그럴 리가. 난 어느 때보다 건강하단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어 오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천룡성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네가 환생을 했기 때문이다.”

“제 환생이 사부가 약해지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모두 평등하다. 단 한 번뿐이지.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건 우리의 두 번째 삶은 인간의 것이 아닌 천룡의 삶이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천룡성이 지닌 힘 때문이었고, 그것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존재했다.

그것에 대해 천운백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 힘을 지녔으니 천룡은 한 시대에 단 하나일 수밖에 없는 법. 네가 천룡의 삶을 시작할 때부터 나의 힘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천무진에게서 생을 거슬러 왔다는 말을 듣기 전부터 천운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운행을 나가 있던 당시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한 천룡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알았다.

천무진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천운백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천무진의 이번 생이 과거와는 다를 수 있기를 바라며.

천운백의 설명을 들은 천무진이 당황한 듯 물었다.

“설마…… 곧 돌아가신다는 겁니까?”

놀란 듯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에 천운백이 웃으며 답했다.

“허허, 그걸 바라는 것이 아니었느냐?”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사부는 저한테…….”

천무진이 화를 못 참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스스로 말을 내뱉고도 천무진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룡성을 붕괴시키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 있어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당연히 천운백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든 죽여야 하는 상대.

그렇지만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부가 자신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생각이 그렇게 미치는 그때였다.

천무진이 가슴을 움켜잡으며 짧은 비명을 토해 냈다.

“크윽.”

“괜찮으냐?”

서둘러 물어 오는 천운백의 모습에 천무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상한 소리 마시고 제 질문에나 답해 주시죠. 곧 돌아가시는 겁니까?”

재차 물어 오는 질문에 천운백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하지만 적어도 예전만큼 강한 무인이긴 어렵다는 거다. 천룡의 힘이 사라진 보통의 인간이 되는 것이니까.”

물론 말이 보통의 인간이지 그의 능력이라면 우내이십일성 이상의 힘을 뽐낼 것이 분명했다.

다만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질 것이고, 천룡성의 무공인 천룡비공의 절초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질 뿐.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네가 과거로 돌아오고 점점 힘이 줄어드는 걸 느끼면서 계속 기다렸다. 네 스스로 직접 세상을 느껴 보고, 또 그곳에 섞여 살아가며 답을 찾기를.”

천운백이 계속 몸을 감추고 지내 온 건 그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삶을 살아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천무진의 인생은 단조로웠다. 천룡성의 무인이 되며 그 이후부터는 외부와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생활을 이어 갔다.

그건 천룡성 무인으로서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던 천무진은 과거로 돌아왔고 직접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섞이며 수많은 일들과 대면했다.

그 모든 걸 스스로의 의지로 행한 것이다.

천무진이 나아가는 걸 천운백은 항상 멀리서 지켜봤다. 자신이 나타난다면 천무진을 이용하려는 십천야의 계획 또한 빨라질 걸 알기에 일부러 접촉을 피하면서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물었다.

“네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세상은 어떻더냐. 네가 살아 본 무림은 어떻더냐. 그곳이 네게…… 지옥이었느냐?”

천운백의 그 질문에 천무진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강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간 보아 왔던 건 무엇일까?

처음 얻게 된 동료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잠깐의 인연으로 만난 이들까지…….

그들과 얽히고, 얽히며 생겨난 수많은 감정들.

그 모든 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였던 걸까?

천무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게 바라시는 게 뭡니까?”

“바라는 거라…….”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천운백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 놔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용이 되어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천룡이.”

천룡성이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천무진 또한 그러기를 바랐다.

그런 진심을 담아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무진아, 너의 인생을 살거라.”

자신의 인생을 살라는 천운백의 말에 천무진은 눈을 부릅뜬 채로 그를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인생…….’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그런 말.

천무진이 스스로에게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그때였다.

천운백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네게 미래를 걸어 보기로 정했다. 널 죽이려 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말을 끝낸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자신을 올려다보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따라오너라. 천룡의 남은 힘을 모두 전수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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