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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32화 (132/293)

132화. 풍운무정검 ― 찾았습니다 (2)

백아린의 말에 천무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커다란 대검이라는 말이 바로 귓가에 걸렸으니까.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백아린의 등 뒤에 자리하고 있는 대검으로 날아가 박혔다.

천무진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설마……."

"맞아요. 이 대검의 주인, 그가 바로 풍운무정검이었어요. 그리고 그분은 제 사부의 사부였죠."

"당신의 사부가 누구지?"

"검왕 한신이요."

백아린의 대답에 천무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풍운무정검과는 달리 검왕 한신에 대해서는 꽤나 많은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백아린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그녀가 검왕 한신의 제자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검왕의 제자라고? 당신이?"

허나 놀람도 잠시, 천무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이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실력을 선보였던 그녀다.

검왕의 제자라니 이제야 그 모든 것이 납득이 갔다.

백아린이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닌데 원래 비밀로 하던 거라 여태 말할 기회가……."

"이해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모두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오히려 그리 쉽게 내뱉는 비밀이란 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문제를 삼을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처음 보는 이에게 모든 걸 말하는 것이 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백아린의 실력에 대한 의문을 푼 천무진이 이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도 잔마폭멸류를 익혔다는 건가?"

"아뇨, 저는 그 무공을 배우지 못했어요. 오래전에 사라졌거든요. 전 당연히 본 적도 없고, 그건 제 사부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저희 문파의 무공을 완성시키기 위해 평생을 찾았음에도 찾지 못했던 무공이 바로 그 잔마폭멸류예요."

"그럼 잃어버린 그 무공이 그들의 손에 있다 이 말인데……."

중얼거리며 상황을 정리하고는 있었지만 천무진의 머리는 복잡했다.

백아린이 보지도 못했다면 정말 오래전에 그 무공이 실전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잔마폭멸류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시기는 언제일까?

지금부터 이미 그들에게 있을 수도, 아니면 자신이 그 무공을 배우게 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일 수도 있다.

천무진이 물었다.

"잔마폭멸류가 그들에게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알아야 해. 운이 좋다면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준 이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까. 가능하겠어?"

"오랜 시간 찾아봤지만 여태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순 없죠. 제 문파의 무공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

확고한 백아린의 말투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야, 술맛 진짜 좋은데."

새로 시킨 술을 병째로 들이켠 단엽이 기분 좋은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죠? 얼마 전에 와서 마셔 봤다가 감탄을 했다니까요. 그래서 내가 단엽 소협이 좋아할 줄 알고 이리 모시고 온 거 아닙니까."

"하여튼 술 쪽에선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대체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대?"

지금 단엽과 한천이 마주하고 있는 곳은 성도의 변두리에 있는 객잔이었다.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위치도 좋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곳이었다.

허나 이곳에는 유신주(柳晨酒)라는 이름을 지닌 특산주가 있었다.

이 객잔의 주인이 직접 만드는 술로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루에 파는 양도 정해져 있어, 서둘러 오거나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을 보기 힘든 술이기도 했다.

유신주가 맘에 드는지 남은 걸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은 단엽은 이내 빈 병을 흔들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가 투덜거렸다.

"에잇, 이제야 좀 흥이 오르나 했더니만."

순식간에 비워 버린 술,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남은 양이 없었기에 유신주를 더는 마실 수가 없었다. 대신하여 이곳 객잔에서 알아주는 다른 술을 시킨 단엽과 한천은 술자리를 이어 나갔다.

객잔에 들어온 지 대략 한 시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어느덧 둘이 있는 자리에는 몇 동이나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빈 항아리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허나 두 사람 모두 주량이 보통이 아니었던 탓에 딱히 내공을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취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있던 손님들도 모두 사라져 이제는 단둘만이 남은 객잔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엽이 한껏 흥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놈의 팔목을 붙잡고 이렇게 마빡을 그냥……!"

말과 함께 박치기를 하는 시늉을 해 보이는 단엽을 보며 한천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배를 잡고 거의 탁자에 엎어져 있던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어휴, 그만 웃기십쇼. 이러다가 마신 술 다 토하겠습니다."

"이런, 비싼 술 먹고 토하면 안 되지."

재빠르게 다시금 자리에 앉은 단엽이 빈 술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채운 술을 몇 모금 들이켠 단엽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 둘만 이렇게 나와서 놀고 있으니 안에 있는 두 사람이 엄청 씹어 대겠는데."

"평소에 저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 주는데 이 정도야 뭐."

"그치?"

한천의 말에 맞다는 듯 단엽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게 웃던 단엽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무공은 어디서 배운 거야?"

"뭐, 여기저기서 배웠습니다."

"거참 여전히 비밀이 많다니까."

"하하, 그게 제 매력 아니겠습니까."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한천을 보며 단엽은 입맛을 다셨다.

알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은 사내다.

그렇지만 한천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언제나 농담처럼 상황을 넘겼고, 그것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 걸 알기에 더 캐물을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단엽은 질문을 바꿨다.

"그 손은 언제 다친 거야?"

"흐음, 글쎄요. 한 십 몇 년은 넘었죠?"

"슬쩍 보기엔 멀쩡한데……."

처음엔 관심이 없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안다. 멀쩡해 보이는 저 손이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이내 단엽이 다시금 물었다.

"그럼 그 여자랑은 언제부터 안 거야?"

"백 총관님 말 하시는 겁니까?"

"그래, 백아린."

"그것도 뭐…… 한 십 몇 년은 되었군요."

"좀 질문이 그렇긴 한데 뭐 하나만 물어도 돼?"

"무슨 질문이기에 말하기 전부터 그리 분위기를 잡으십니까. 들어 보고 정하죠, 뭐."

말을 끝낸 한천이 아무렇지 않게 술을 들이켰을 때다.

단엽이 말했다.

"대체 왜 백아린을 따르는 거야?"

"우리 대장이 왜요?"

"아니, 백아린이 모자라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야. 사실 놀라워. 그 나이 대에 그런 실력이라니. 명문정파의 알아주는 후기지수라고 해도 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미 올라 있잖아. 사실 어떻게 그런 괴물이 생긴 건가 궁금할 정도긴 한데……."

단엽은 이미 백아린을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겨뤄 보고 싶은 목록에 그녀의 이름을 넣었을 정도로.

그렇게 인정하는 상대니 만큼, 그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백아린이 모자라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닌, 한천의 뛰어남을 알고 있기에 꺼낸 말이다.

단엽이 말을 이었다.

"백아린 대단하지. 그렇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부총관 정도로 있을 사람이 아니니까. 물론 백아린도 적화신루의 총관 정도로 있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후후. 그리 봐 주신다니 감사할 뿐이죠."

말을 하며 한천은 앞에 놓인 술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어루만졌다.

잠시 입을 닫고 있던 한천이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제가 따르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지요? 우선적으로 우리 대장은 단엽 소협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납니다. 아주 많이요."

"무슨 소리야. 내가 백아린을 얼마나 높게 치는데."

"아마 그 이상일 거라 장담하죠."

호언장담을 하는 한천이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던 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대장에게…… 목숨을 빚졌으니까요."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야?"

"그렇게 보면 되겠네요. 그분이 없었다면 살아 있지 못했을 테니까요."

"백아린이랑 십 몇 년 전에 알게 됐다면서? 그럼 엄청 어렸을 거 아냐."

"네, 맞습니다. 그때는 제 허리춤 정도밖에 안 오던 꼬마였죠."

"그런 아이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뭐, 어쩌다 보니."

단엽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정도의 과거라면 제아무리 한천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한들 백아린에게 도움을 받을 정도의 상황이 오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말한 이후 한천은 입을 닫았고, 결국 단엽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입만 쏙 닫으면 그만인가?"

"다 말씀드린 겁니다. 특별히 뭐 별다를 게 있으려고요."

싱글벙글 웃는 한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엽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난 계속해서 반말인데 넌 언제까지 나한테 존댓말 할 거야?"

그의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예전부터 은근슬쩍 말을 놓게 하려 했지만 한천은 언제나 지금처럼 말을 높이며 자신을 대해 왔다.

언젠가 놓겠지 하던 것이 오히려 존댓말로 점점 굳어 가는 느낌이 들어 결국 이렇게 대놓고 말을 꺼낸 것이다. 단엽의 말에 한천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곤란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래도 대홍련의 부련주시고, 높으신 분인데 제가 막말을 하기에는 좀……."

"뭔 핑계가 그리 길어. 난 복잡한 건 딱 질색이고, 간단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도 아무나 나한테 말 놓는 걸 그냥 보고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 그런데 왜 내가 먼저 너한테 말을 놓으라고 하겠어."

"글쎄요……."

"간단하지. 널 인정했으니까. 그리고 네가 마음에 들어서."

전혀 거리낌 없이 속내를 드러내는 단엽을 보며 한천은 이 사내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다.

여인처럼 곱상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누구보다 사내다운 성격을 지닌 사람.

매번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시원시원한 사내다.

그랬기에 한천은 곤란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그대로 까놓고 솔직하게 다가와 버리면…… 장난으로 넘길 수가 없었으니까.

결국 한천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여태 하던 버릇이 있어 말을 놓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해 보도록 하죠. 아니, 하지."

"좋아, 얼마나 듣기 좋냐고."

한천의 반말에 기분 좋다는 듯 단엽이 그의 어깨를 세게 두드렸다.

그런 단엽의 행동에 한천이 아프다는 듯 살짝 표정을 찡그린 채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나이는 내가 더 많은데 왜 말을 놔라 마라, 네가 정하는 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는 반대로 나한테 존댓말을 하는 건……."

말을 하던 한천이 슬그머니 입을 닫았다.

존댓말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눈을 부라리는 단엽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엽은 이내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을 내뱉었다.

"나 단엽이야!"

길길이 날뛰려는 단엽의 모습에 한천이 서둘러 술을 따라 줬고, 덕분에 그가 더 투덜거리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술을 마신 단엽이 금세 웃는 걸 보며 한천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단순하다니까.’

자신의 수가 먹힌 걸 보며 안도를 하고 있던 그때였다.

촤르륵.

객잔의 입구를 가리고 있는 장신구를 옆으로 밀며 두 명의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자들.

얼굴은 험상궂었고, 몸에서는 위험한 기운이 풀풀 풍겼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곧장 단엽과 한천이 있는 탁자로 향했다.

이곳은 사천성 성도.

무림맹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무인들을 보는 일이 꽤나 잦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걸 알아차린 한천은 슬그머니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이 어느덧 검의 손잡이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용무가 있는 것 같은데.’

실력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자신과 단엽을 어찌할 수 있는 수준으론 보이지 않았다.

천무진과 백아린이 쫓는 십천야와 관계된 자로 보기엔 다소 실력이 모자라 보이긴 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두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고, 커다란 술잔을 들어 올린 탓에 얼굴의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는 단엽이 힐끔 위를 올려다봤다.

거리를 좁혀 온 상대들을 향해 막 한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내 부하들이야. 급히 만나야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이곳으로 오라고 했어."

"……그랬어?"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던 한천은 단엽의 말을 듣고서야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어쩐지 겉보기부터 사나워 보인다 했거늘 사파를 대표하는 단체 중 하나인 대홍련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단엽이 예를 갖추려는 두 사내의 귀를 꽉 쥔 채로 비틀었다.

"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둘을 보며 단엽이 말했다.

"우리가 나쁜 놈들인 거 티 내고 다니냐. 그냥 길 가던 사람도 사파 놈들이라는 걸 알겠다, 이 자식들아."

"이,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쩝니까."

한 명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지만 단엽은 험상궂은 사내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일부러 눈에 힘주고 다니는 거 누가 봐도 알겠다."

내천(川)자가 깊게 새겨진 미간을 눌러 대던 단엽이 이내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무슨 일들이야? 갑자기 날 그리도 찾아 대고 말이야."

부련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 언제나 자유롭게 다니던 단엽이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가 없었던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단엽이 질문과 함께 앞에 놓인 잔을 막 입에 가져다 대는 그때였다.

"찾았습니다."

"찾긴 뭘 찾아?"

심드렁하게 물어 오는 질문에 사내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부련주님 얼굴에 상처를 낸 그놈 말입니다."

우뚝.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댄 그 상태로 단엽의 손이 멈췄다.

그 순간…….

챙!

소리와 함께 술잔이 손바닥 안에서 깨어져 나갔고, 이내 손을 타고 술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생각지도 못한 단엽의 행동에 한천이 놀란 듯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손바닥에 묻은 술을 혓바닥으로 가볍게 훑은 그가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 새끼를 찾았다 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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