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나선칠선파 ― 무슨 의미지 (1)
십천야.
뜻을 같이하는 열 명의 인물들을 일컫는 말이다. 십천야의 모두가 무공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건 아니다. 개중엔 분명히 더욱 뛰어난 자가 있고, 반대로 무공보다는 특별한 부분에 있어 커다란 능력을 지닌 인물도 있다.
그리고 주란은 그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섭혼술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화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는 것에 능했고, 무공 또한 뛰어났다.
중원을 대표하는 우내이십일성.
그들 중 절반 이상을 뛰어넘는 실력자이기도 한 것이 그녀였다.
가리개로 가리고 있지만, 슬쩍 보이는 주란의 입가에 맺힌 미묘한 웃음을 확인한 백아린이 마찬가지로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모두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그쪽은 다행히 입이 있는 모양이야. 누구한테 정체를 캐물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당신이면 되겠어."
"자신감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네가 날 이길 수 있다 생각해?"
"그럼 안 돼? 당신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를 다 이길 생각인데."
백아린의 시선에 주란이 이끌고 온 스무 명이 넘는 화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절정 이상의 실력을 지닌 꽤나 위협적인 상대들이거늘…….
주란은 기가 차다는 듯 답했다.
"겨우 내 수하들을 좀 쥐고 흔든 걸로 나까지 어떻게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거야? 날 이런 애들하고 같은 급으로 보면 좀 기분이 나쁜데 말이야."
그녀가 주변에 있는 화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의 수하들이긴 하지만 동급으로 분류된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런 주란을 향해 백아린이 대꾸했다.
"열 수 있는 입이 있다는 것 말고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
연달아 밀려오는 도발에 주란이 꿈틀했다.
묘하게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재주가 있는 상대다. 거기다 저 곱상하다 못해, 저절로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외모까지.
사람을 홀리는 특기를 지닌 그녀로서도 저 외모는 절로 부러움을 일게 만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들지 않았다.
주란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편안하게 보내 주려 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어. 이제 쉽게 죽을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제발 그만 죽여 달라고 손발이 없어질 정도로 싹싹 빌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 예쁜 얼굴 가죽을 벗길 거고, 온몸의 뼈란 뼈는 모조리 가루가 되게 만들 생각이야. 그때 되면 알게 될 거야. 내게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가…… 얼마나 큰지."
살기가 가득 담긴 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아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그 경고를 받아쳤다.
"그럼 나는 그게 어떤 고통인지 평생 모르겠네."
말을 마친 백아린이 대검을 고쳐 잡았다.
자세를 슬쩍 낮춘 채로 정면을 매섭게 응시하며 그녀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지지 않을 테니까."
뿌드득.
가리개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주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부숴 버리고 싶었다.
저 자신감 가득한 얼굴을.
용기 가득한 저 얼굴에 짙은 공포와, 좌절이 잠식해 들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야 말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이 치밀어 오르는 화가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주란이 화접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비켜. 저 겁 없는 풋내기는 내가 손봐 줄 테니까."
"어라? 그래도 되겠어? 혼자선 안 될 텐데."
"……끝까지 까부네."
애써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주란의 목소리에서는 진한 살의가 묻어 나왔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주란과는 달리 한결 여유 있어 보이는 백아린의 모습은 누가 위험한 상황인지를 거꾸로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백아린이 이리 행동하는 건 정말로 여유가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계속된 도발, 그건 모두가 작전이었던 것이다.
‘좋아, 통했어.’
처음 보는 그 순간부터 쉽지 않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거기다가 꽤나 뛰어난 실력의 수하들까지 대동하고 있으니, 설령 자신이 이긴다 해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상황이 그랬기에 백아린은 연달아 상대를 도발하며 속을 긁어 댔다.
자신이 입어야 할 손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였다.
원했던 건 상대방이 자신의 도발에 평정심을 잃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전이 더 먹혔는지, 상대는 수하들을 물리며 자신과 일대일로 대결을 원했다.
이건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나은 결과였다.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낸 백아린은 한결 더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장에야 일대일의 대결 구도가 되었지만, 불리해지면 결국 저들 또한 개입하게 될 터.
그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간단했다.
‘그 전에 승부를 결정지을 정도로 타격을 입히면 돼.’
개입하기 전에 최소한 신체의 일부를 날려 버리거나, 힘을 발휘하기 힘들 정도의 내상을 입힌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이 싸움은 너무도 쉽게 자신의 승리로 결정될 테니까.
질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위험한 적들임은 분명한 지금 백아린은 보다 냉정해지려 애썼다.
누군지 모르는 적들.
하지만 이들이 천무진과 자신이 찾고 있는 그들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한 상황이다.
고작 적화신루의 사총관으로 알려진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 정도의 실력자들을 움직일 만한 건, 그들밖에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알 수 있었다.
‘이젠 나까지 표적이 된 모양이네.’
단엽을 노렸던 적은 있지만, 자신에게 그들이 마수를 뻗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위협적인 상대로 분류되었다는 소리일 게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만큼 앞으로 움직임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는데…….
‘고민은 나중에.’
지금은 고민을 하기보다는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눈앞에 마주한 주란을 바라보며 백아린의 손에 들린 대검이 바닥을 긁으며 옆으로 움직였다.
그르르릉.
마치 맹수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오는 낮은 마찰음.
그런 백아린을 향해 주란 또한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차앙!
뽑혀 나온 검이 섬뜩한 빛을 토해 냈다.
검 끝에 서슬 퍼런 검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퍼져 나가기 시작한 그녀의 기운 때문일까?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고요해졌다.
작은 바람에 부대끼며 떨어 대던 나뭇잎의 소리도, 벌레들의 울음소리조차도.
그 모든 것이 주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에 잠식되어져 갔다.
우내이십일성 중상위권에 위치한 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무공을 지닌 그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의 변화를 감지한 백아린이 일정한 거리 뒤편으로 비켜 있던 개방의 담구에게 짧게 말했다.
"더 뒤로 물러나 있어요. 잘못하면 죽어요."
죽는다는 말에 담구가 식겁하며 백아린과 더욱 거리를 벌렸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그걸 화접들이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괜한 자극을 줬다가는 그들의 표적이 될 걸 알았기에 담구는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돌 뒤에 몸을 감춘 채로 주변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으어, 이게 웬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편안한 잠자리에 있던 자신이 순식간에 생사가 오가는 이런 싸움터에 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누가 봐도 알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
지금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앞을 막아서고 있는 저 여인, 백아린이 모두를 정리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문제는……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지만.
자신의 기운을 아낌없이 뿜어내던 주란이 자신만만하게 입을 비튼 채로 말했다.
"시작해 볼까?"
"얼마든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염두에 두었던 상태였기에 이 정도 기운에 놀랄 이유는 없었다.
허나 그 모습에 주란은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투기를 정면으로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눅 들지 않았으니까.
‘그 표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두고 보자고.’
저 당당한 모습을 당장에라도 부숴 버릴 것처럼 주란이 달려들었다.
탁!
그녀가 땅을 박차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주란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촤르르륵!
검이 마치 부채처럼 펴진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움직임. 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검이 수십 개의 잔영과 함께 밀려들었다.
백아린은 기다렸다는 듯 대검의 손잡이를 최대한 위로 움켜쥐고 휘둘렀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변화.
하지만 그 움직임이 가지는 의미는 무척이나 컸다.
커다란 대검만큼 그 손잡이도 꽤나 긴 편인데, 어디를 잡느냐에 따라 간격이 달라질 수 있었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 들어오며 펼쳐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 백아린 또한 상황에 맞게 반격을 가한 것이다.
카카캉!
대검이 밀려드는 검의 잔영들을 산산조각 내며 곧바로 주란의 머리를 향해 움직였다.
스스슥, 파앙!
몸의 균형을 아래로 낮춘 채로 회전하던 주란은 곧바로 대검을 위로 쳐 냈고, 비어 있는 공간을 향해 빠르게 검을 비집어 넣었다.
동시에 검에서 검기가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콰쾅!
허나 그 검기는 목표했던 백아린에게 닿을 수 없었다. 밀려나는 회전력을 이용해 빠르게 대검을 움직인 그녀가 곧바로 커다란 날로 날아드는 검기를 고스란히 받아 냈기 때문이다.
빠른 공격과 방어.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백아린의 대검이 휘몰아쳤다.
캉캉캉!
커다란 대검을 마치 가벼운 몽둥이처럼 휘둘러 대는 말도 안 될 정도의 공격에 주란은 순간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무식한 공격이 다 있어?’
팔목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 연달아 몰아친다.
문제는 그 공격들이 단순히 파괴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거다. 커다란 무기를 휘두르는 만큼 당연히 한 번 공격을 가함에 따라 빈틈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괴력을 올린 만큼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결과.
헌데 백아린은 달랐다.
공격 하나하나가 크고 강력했지만, 이상하게도 빈틈이 없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공격에 무의미한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행동이 큰 공격을 펼치면서 덩달아 상대방 또한 균형을 잃게 만들거나, 거리를 잡지 못하게 하는 식의 운용.
커다란 움직임으로 인해 드러나는 공간이 있어도 그곳을 공격하려는 순간 이미 빈틈은 사라진다.
하지만 주란 또한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우내이십일성의 고수들과 비견하는 실력자이니만큼 일방적으로 당할 리가 없었다.
스슥.
날아드는 대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그녀가 빠르게 틈을 파고들었다. 검이 재빠르게 백아린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둘 사이의 거리가 순간적으로 벌어진 직후, 주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치잇, 피했어.’
베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백아린의 몸이 옆으로 움직이며 작은 상처마저 내지 못했다.
허나 상실감은 잠시였다.
주란은 곧바로 몸을 비틀며 뒤편에 위치한 백아린을 향해 검기를 쏘아 냈다.
검에 몰려든 수십여 개의 검기가 마치 폭우처럼 백아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쿠쿵!
밀려드는 검기의 다발들을 보며 백아린은 뒤로 물러서기보다는 오히려 달려드는 걸 택했다.
대검을 방패 삼아 앞으로 들이밀며 백아린이 거리를 좁혀 갔다.
부웅!
순식간에 검기들을 옆으로 밀쳐 낸 백아린의 대검이 벼락처럼 밀려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대검에서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의 압력이 느껴졌다.
‘힘 싸움으로 가면 내가 불리해.’
아까 전에 휘두르는 대검을 직접 받아 본 탓에 그 위력을 알고 있는 주란은 이번엔 가볍게 검날을 이용해 그 힘을 옆으로 흘렸다. 동시에 옆구리를 향해 손바닥을 막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부웅!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그녀는 공격을 하려던 손바닥을 황급히 멈추며 고개를 숙였다.
주란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백아린의 손바닥이 훑고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위력적인 일격.
잠시 놀라긴 했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은 주란은 곧바로 비어 있는 백아린의 복부 쪽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파앙!
그렇지만 이번에도 백아린은 대검으로 날아드는 검을 받아쳐 냈다.
검이 뒤편으로 밀려 나가며 덩달아 주란의 균형이 무너지는 그 찰나였다.
백아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동시에 주란이 있는 곳으로 대검이 날아들었다.
퍼엉!
그저 검이 땅에 틀어박혔을 뿐인데 놀랍게도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 주변 일 장가량이 아예 박살이 나며 흙과 돌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태산조차 박살 낼 것만 같은 박력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주란은 그곳에 없었다.
턱.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백아린이 슬쩍 뒤편을 바라봤다.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주란이 땅에 막 발을 내딛는 그때였다.
어깨에 대검을 올린 채로 백아린이 갑자기 팽이처럼 회전했다.
파라라라락!
공기마저 빨려 들어가는 압도적인 회전력과 더불어 그녀의 커다란 대검에 강렬한 힘이 몰려들고 있었다.
땅을 박살 내는 공격을 피해 내며 움찔했던 주란의 안색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건……!’
몸체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빠른 회전, 덩달아 밀려오는 강인한 내공의 움직임까지. 채 무공이 완성되기도 전이었지만 주란은 직감했다.
지금 이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막아야 했다.
주란은 재빠르게 자신의 검에 내력을 집중시켰다. 동시에 하늘을 찌를 듯이 커다란 강기가 검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검강이 키보다 훨씬 높게 치솟았을 그때였다.
회전을 하던 백아린의 몸 주변에서 나선 형태의 일곱 개의 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선칠선파(螺旋七線波).
모든 걸 박살 내는 백아린의 무공 중 하나였다.
그러고는 이내 그 고리들이 폭발하듯 주란을 향해 밀려들었다.
주란은 이를 악물었다.
날아드는 일곱 개의 고리, 그걸 부수기 위해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움직였다.
콰앙!
강기들이 충돌하며 주변으로 바람들이 휘몰아쳤다. 그 충격의 여파 또한 사방으로 퍼져 나갔는데, 근처에서 이 싸움을 관망하고 있던 화접들조차 놀라 뒷걸음질 쳐야 할 정도였다.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어난 파괴적인 격돌.
피어올랐던 자욱한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 그때 그 건너에서는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라지는 흙먼지 너머에서 백아린의 커다란 대검이, 주란의 검과 맞닿은 채로 힘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둘의 모습은 백중세.
주란은 나선칠선파를 보고 황급히 검강을 불러일으켜 힘 싸움을 벌였다.
그녀가 바라던 대로 주란은 검강으로 나선칠선파를 막아 내는 것에 성공했고, 두 개의 힘 모두가 사라진 모양새는 마치 이번 격돌이 무승부라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번 격돌에는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승자가 누구인지는 백아린과 주란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주르르륵.
주란의 입술 사이로 한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뒤틀린 속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렇게 힘 싸움을 벌이며 결국 입으로 피가 터져 나오고야 만 것이다.
일곱 개의 나선 형태의 검강들이 지닌 파괴력은 막아 내기 그리 단순치 않았다. 연달아 몰아치는 폭발에 간신히 버텨 내긴 했지만 그 대가로 속이 뒤틀려 버렸다.
그만큼 백아린이 펼친 무공은 파괴적이었다.
‘뭐야 이 무공은…….’
힘이 실린 대검이 내리누르는 것을 억지로 버티고 있는 주란으로서는 방금 본 그 무공을 떠올리며 참혹한 심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강기는 막대한 내공이 소모되는 무공이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지가 바로 강기의 구현이다. 그 말은 곧 그만큼 엄청난 힘을 요구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강기를 순식간에 일곱 개나 만들어 냈다. 당연히 힘이 어느 정도 분산되는 것이 당연했거늘, 그 모든 걸 회전력과 나선 모양의 독특한 형태로 오히려 파괴력을 증가시켰다.
덕분에 검강으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나선 모양의 강기들을 찢어 내는 것만으로도 몸에 상당한 무리가 가해진 상황이었다.
쉽사리 보기 힘든 상승무공.
그랬기에 더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적화신루의 인물이 지닌 무공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강기라고 해서 모두 같은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응집된 파괴력,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내공의 적절한 분배까지 모두 완벽했다.
이건 보통의 무공이 아니었다.
이 정체불명의 무공에 대해 고민에 잠겼던 주란이 속으로 되뇌었다.
‘나선형의 강기? 일곱 개?’
두 개의 조건.
거기에 직접 느껴 본 그 파괴력까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이름.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주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전히 서로 검을 맞댄 그 상황에서 주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검왕(劍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