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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19화 (219/250)

219화 위험에 빠진 표사들

휘주표국의 표사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대오를 새로이 정비하기 시작했다.

표행을 책임지고 있는 표두 기호철은 눈을 번뜩이며 얼굴에 잔뜩 인상을 썼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감이 휘주표국을 노린단 말린가. 더구나 여긴 휘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그는 산속 관도에 접어든 순간부터 표행을 노리는 자들이 있음을 눈치챘다.

짐승과 새소리가 평소와 달리 잠잠했으며, 비록 약초꾼으로 위장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표행을 몰래 훔쳐보는 자가 여럿 보였기 때문이었다.

‘음. 표물을 신속히 주 상단주님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큰일 났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산적 놈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그나저나 감히 휘주표국의 표물을 노리다니, 마음 같아서는 이놈들 면상을 모조리 짓이겨 주고 싶구나. 제길…….’

휘주 근처에는 요즈음 산적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하필 이때 산적들이 발호하고 있는 거였다.

표두 기호철은 표사들 중 날렵하고 무공이 강한 자들을 표행의 전면에 내세웠다.

‘음, 저들이 과연 통행세를 내겠다고 하면 받아들일까…….’

기호철은 차라리 통행세를 내더라도 싸움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 순간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표사 강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표행의 선두보다 10장 앞에 있었다.

“형님. 오십 장 앞 좌측 숲속에 매복이 있습니다.”

“알았다. 거기서 기다려! 내가 갈 테니까.”

쉬익!

기호철은 빠르게 강연호에게 다가갔다.

‘음, 역시 그렇군.’

“형님, 어쩌시겠습니까?”

“음, 일단은 협상을 해봐야지. 안되면 전속력으로 이 숲을 빠져나가는 것이고.”

“형님, 그러지 말고 후퇴해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기호철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다.

“안 돼. 그러면 열흘이 더 걸린다고. 되도록 빨리 주 상단주님에 전달하라는 지시를 너도 들었잖아!”

“음, 그러면 제가 협상에 나서 보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직접 하지.”

기호철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그는 암습을 대비해 몸을 잔뜩 웅크린 상태였다.

잠시 후, 산적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에 다다른 기호철이 숲속을 바라보았다.

“하하, 안녕들 하시오, 매복하느라 고생이 많소이다. 그러지 말고 통행세를 두둑이 낼 테니 통과시켜 주시구려.”

그 순간 숲속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거, 서쪽에서 해가 뜨겠군, 잘난 휘주표국이 자진해서 통행세를 내겠다니…….”

“이보시오, 통행세를 내겠다는데도 불만이오? 자자, 이 좋은 날, 피차 피를 보지 맙시다. 자, 얼마를 원하시오?”

“이봐, 무슨 표물을 실었기에 그리 급한 거야. 그러지 말고 얌전히 항복하는 건 어때? 하는 것 봐서 목숨을 살려 줄 수도 있으니까.”

기호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다 틀렸다. 한바탕 일전이 불가피하겠어…….’

기호철은 돌연 손을 들더니 소리쳤다.

“가자!”

두두두두……!

기호철의 부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박차를 가했다.

삽시간에 짐마차를 에워싼 말들이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쳐라!”

일시에 숲속에서 산적들이 장창을 들고 튀어나왔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기세가 장마철 터져 나간 방죽으로 물이 쏟아지듯 거셌다.

“이 새끼! 어딜 막고 난리야!”

숲에서 뛰쳐나와 제일 먼저 달려드는 자에게 강연호가 장검을 내리쳤다.

쒜애액!

산적은 순간 당황했다.

강연호의 기세가 대단한 탓이었다.

하여 재빠르게 내지르던 장창을 엉겁결에 들어 올렸지만, 이미 그 정도로는 막을 수 없었다.

“으아악……!”

창 자루와 함께 어깨부터 팔이 떨어져 나간 산적이 구슬프게 비명을 내질렀다.

챙챙챙챙!

“읔……!”

“큭……!”

사방에서 흉흉한 금속의 마찰음과 비명이 난무했다.

그 속에서 점차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산적들이지만 휘주표국의 표사들의 무위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표사들은 모두 말을 탄 상태였고.

삽시간에 기세등등하던 산적들의 기세가 꺾이며 어느 순간 포위망이 뚫리고 말았다.

“이럇!”

두두두두……!

휘주표국이 행렬이 사라지고 난 뒤 간부급으로 보이는 자들이 숲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은 포위망이 뚫렸는데도 여유만만했다.

또한, 그들은 부하들 일부가 죽거나 다쳤는데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있었다.

“부채주님, 놈들의 무공이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수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면 부하들이 더 많이 다쳤을 겁니다.”

“그렇군, 휘주표국이 요즘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인가… 내가 잠시나마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한 게 창피하군…….”

“뭐, 저도 그리 생각했는데요. 헤헤. 어쨌든 휘주표국 놈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부채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당연하지. 내 착각으로 조금 손실이 있었지만, 결국 작전대로 되었어. 놈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라고. 하하.”

“그러고 보니 부채주님! 이 상황이 참 웃깁니다. 우리가 꼭 살인 청부업자가 된 느낌입니다.”

부채주는 피식 웃었다.

“하긴 그래, 뭐 생각해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군. 표물도 빼앗고 청부금도 받아 챙기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하하하.”

“저, 한데 이번 일은 누가 사주한 것입니까?”

부채주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정확히는 나도 몰라. 확실한 건 경쟁 표국에서 사주했다는 거지. 요즘 표국들 끼리 경쟁이 치열하잖아.”

“저, 그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있겠군요.”

“그렇지. 새로 취임한 맹주가 청부업을 겸한다고 선언했으니까 말이야. 자, 그건 그렇고 그만 슬슬 우리도 가 보자고!”

*     *     *

“이런, 젠장… 목책이다!”

전방을 주시하던 표두 기호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를 엇갈리게 연결해 늘어놓는 목책은 높이가 건장한 남자 키에 육박했다.

더구나 목책은 단 한 개만 늘어서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길을 막고 있었다.

‘음, 표물만 없었다면…….’

표사들의 말 다루는 솜씨면 아무리 목책이 있어도 충분히 통과할 만했지만, 문제는 짐 마차였다.

‘어쩐다……?’

기호철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하여 시간을 끌면 처음 그들을 막았던 자들이 쫓아와 앞뒤로 협공을 당할 판이었다.

‘어쩐지 산적 놈들이 쉽게 길을 터주는 것 같더니만, 내가 보름 동안 휴가를 갔다 왔더니 감각이 무뎌졌어…….’

“형님, 어쩔 생각입니까?”

강연호의 물음에 한동안 기호철은 응답하지 않았다.

“음…….”

사실 강연호도 별다른 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목책을 통과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다만 목책을 통과하려면 적지 않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그렇다고 짐마차를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죽더라도 지켜야 하는 게 표물이었다.

그게 표사의 숙명이었다.

그 순간 기호철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짐마차를 포기하는 거야. 표물은 우리가 각자 조금씩 나누어 가지면 되는 거고. 다행스러운 건 쟁자수들 데리고 오지 않았다는 거지.’

빠르게 결심을 굳힌 기호철은 강연호를 바라보았다.

“짐마차에서 표물을 꺼내.”

눈치 빠른 강연호는 기호철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각자 말에다 실으면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그래. 서두르자. 그건 그렇고 희생양이 된 말들에겐 좀 미안하구먼…….”

기호철은 짐마차의 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표국의 표사들에게 말이란 동고동락하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일단 결정이 됐으면 신속한 행동이 필수였다.

빠르게 표물을 꺼낸 뒤, 강연호는 자진해서 마부의 자리에 앉았다.

“조심해라! 위험하면 곧바로 탈출하라고!”

“네. 형님!”

강연호는 사륜마차가 목책에 부딪치는 순간 마차에서 탈주할 생각이었다.

“이럇!”

강연호는 네 필의 말에게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히이잉……!

심한 채찍질에 고통에 찬 울음을 토한 말들이 놀라 입에 거품을 내뿜었다.

그러더니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그 순간 목책 뒤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자가 있었다.

그는 이번 일을 주관한 자로서 바로 산적의 무리를 이끄는 채주였다.

‘저 새끼들이 얄팍한 수를 쓰다니!’

그는 신경적으로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창을 던져! 마차가 목책에 부딪히지 못하게 하라고!”

“네. 채주님!”

산적들은 마차를 끄는 말들에게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쉭쉭……!

강연호는 창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자 더 세게 채찍을 휘둘렀다.

“이럇! 갸, 갸갸…….”

강연호로서는 어떡하던 뒤의 일행들이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목책을 한쪽으로 밀어내야 했다.

히이잉……!

순간 말하나가 구슬픈 비명을 내질렀다.

비록 빗맞았지만, 창이 말의 등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이럇!”

강연호는 더 거칠게 채찍을 휘둘렀다.

히이잉……!

그리고 얼마 후…….

콰과광!

말들이 목책에 부딪혔고 목책들이 밀려나면서 일부는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곧장 들이닥친 짐마차가 목책들을 완전히 밀어내며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세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말들은 목책과 부닥친 충격에 뼈가 부러졌고 산적들이 휘두른 창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쿵, 쿵……!

말들이 하나둘, 쓰러지며 급기야는 마차가 뒤집혀 버렸다.

바로 그 순간 표사들이 마차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모두 죽여 버려라!”

채주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산적들은 창을 꼬나 쥐고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표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와아아!”

표두 기호철은 가로막는 자들에게 가차 없이 죽음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쉬이익!

“죽엇!”

“크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기호철을 가로막는 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비켜라, 머저리 같은 놈들!”

채주는 말을 탄 채 수하들을 헤치고 기호철에 다가왔다.

순간 기호철은 제법 강하게 보이는 체주를 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제길, 시간 없는데, 만일 놈이 언월도를 잘 다룬다면, 음…….’

언월도는 긴 손잡이에 폭이 넓고 긴 초승달 모양의 칼날을 부착한 무기였다.

원래는 말을 베어 버린다는 참마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루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언월도를 잘 다룬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무기였다.

“뒈져 새끼야!”

“너나 뒈져 버려!”

기호철은 지지 않고 응수하며 먼저 선공했다.

쉬이익!

살벌한 검광이 채주의 목 줄기로 번갯불처럼 날아들었다.

‘이런 제길!’

놀란 채주가 쓰러지듯 머리를 젖히며 기호철의 검세를 피해 냈다.

순간 기호철의 검세는 신속히 변화했다.

“받아라!”

횡으로 쓸어가던 검이 어느 순간 우뚝 멈추며 그대로 전면으로 찔러 들어갔다.

검의 수발이 경지에 이른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은 변화였다.

기호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상대의 심장이 뚫리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상대는 산적들의 두목다웠다.

‘어라, 저놈이!’

그는 굴러 떨어지듯 말에서 내려서는 곧바로 하늘을 향해 튀어 올랐다.

기호철의 검이 빠르게 거둬짐과 동시에 언월도를 막아 갔다.

챙……!

검이 언월도의 날에 부딪히는 순간, 기호철의 심중에 아차 하는 탄식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놈이 막판에 힘을 뺐어!’

기호철은 상대가 힘을 뺀 게 자신의 검이 두려워서가 아니라는 걸 그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의 언월도가 자신의 말의 앞발을 노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아악 안 돼!’

자신의 몸은 무게 중심이 앞으로 기운 상태였다.

그 상태로는 도저히 자신의 애마를 지켜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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