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218화 (218/250)

218화 주성진 시험에 들다 (2)

기원의 원주는 주성진이 나타나자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일전에 한번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주성진과 그의 일행이 들고 온 보자기에도 눈길이 갔지만, 노련하게 일절 내색하지 않았다.

“호호. 귀빈이 저희 누추한 기원을 찾아 주셨네요.”

“안녕하십니까. 다름 아니라 오늘은 손님이 아닌 장사꾼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원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젊었을 적의 미색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 그래요. 무척 기대되는데요. 호호.”

“하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주 상단주님이 오셨는데 다른 일이 대수인가요? 호호.”

잠시 후 원주의 집무실에 앉은 주성진이 원주에게 옷을 보여 주며 입을 열었다.

“자, 보십시오, 저희가 이번에 새로 개발한 안료로 만든 옷입니다. 사실 옷은 보시라고 견본으로 만든 거고, 실제 저희가 팔려는 것은 옷감입니다.”

원주는 옷을 만지작거리며 미소 지었다.

“어머, 전체적인 질감과 색감이 너무 좋은데요. 더욱이 은은한 광택으로 인해 옷이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기까지 하고요. 한데 주 상단주님, 이 옷 사려면 무척 비싸겠지요?”

주성진은 그녀의 반응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일단 성공!’

주성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조금 비싸긴 합니다만, 그로 인해 매상이 더 오른다면 그게 훨씬 이득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죠. 손님들이 저희 아이들이 입은 옷을 보고 감탄한다면 더 자주 찾아오겠지요. 다만 그렇긴 한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본격적으로 주성진과 흥정하려는 모양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들고 온 옷들은 그냥 널리 홍보해 주십사고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다만 저의 소망이라면 기원 내뿐만 아니라 외출할 때도 입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하.”

원주는 매우 놀랐다.

“그러니까. 이것 모두를 그냥 주신다고요? 견직물 50인분과 면직물 50인분이면 결코 작은 양이 아닌데요.”

“네, 그렇습니다. 입어 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홍보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

“저, 안료가 물에 잘 빠지는 건 아니겠죠?”

주성진은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요. 다 써보시고 추가로 구매를 원하신다면 특별히 기존 옷감의 5할만 더 받도록 하지요. 원래는 배를 받아야 하지만…….”

“아, 그런가요. 정말로 이 옷들을 공짜를 주시는 것입니까?”

원주는 못 미덥다는 듯이 다시 한번 되묻는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요. 그냥 부담가지지 마시고 공짜로 쓰시면 됩니다.”

“죄송해요. 여태 옷감을 공짜로 주겠다는 상인은 만나지 못해서 말이죠. 호호.”

“그저 손님들에게 널리 홍보를 해주시면 됩니다.”

또다시 열흘이 흘렀다.

주성진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

‘하하, 일이 잘되고 있어…….’

단 열흘 만에 주성진이 북경의 여러 기원을 돌며 건네 준 옷들이 괜찮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한 거였다.

물론 주성진이 노린 건 기원의 기녀에게 더 많은 옷을 파는 게 아니었다.

그들을 매개체로 해서 북경의 상류층에게 옷을 많이 파는 것이었다.

그것도 비싼 가격으로…….

다만 직접 옷을 파는 건 아니고 포목상에 옷감을 팔면 포목상을 거쳐 최종적으로 재단한 옷이 상류층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그가 의도한 것이었다.

한데 그때, 점소이가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여기 손님이 주신 서신이 있으니 보시기 바랍니다. 아, 손님분은 객잔 내 찻집에 계십니다.”

주성진은 서신을 받아 곧바로 읽어 나갔다.

‘음…….’

서신의 내용은 직접 만나서 옷감에 대해 상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밤에 상담을? 그렇게 급한 건가……?’

주성진은 곧장 객실에서 나와 객잔에 딸린 찻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중년 여인 하나가 고운 자태로 주성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 작은 주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약간 들어 보였지만, 그녀의 용모는 쉽게 나이를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성진이라고 합니다.”

“이기옥이라고 합니다. 전 황궁에서 왔습니다.”

주성진은 살짝 놀라운 표정으로 이기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외투를 벗자 궁녀의 옷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거 멀리까지 발걸음을 하셨군요. 부르시면 제가 직접 궁으로 달려갔을 텐데…….”

그녀가 급히 손을 내젓는다.

“제가 어찌 감히 주 상단주님을 오라, 가라고 청하겠습니까, 장차 이 나라의 부마가 되실 분인데…….”

주성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음…….’

여전히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뭐, 그건 그렇고요. 그래 어쩐 일인가요?”

“주 상단주님에게 부탁을 하러 왔습니다. 장안의 화제가 된 옷감 때문에…….”

주성진은 순간 머리를 짚었다.

‘큰일 났다. 황궁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고가 없는데…….’

유차돈이 가지고 온 옷감은 기원을 돌며 홍보용으로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주성진은 옷감이 괜찮다는 소문이 이렇게나 빠르게 황궁까지 들어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주성진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음, 지금 당장은 재고가 없는데 어떡하죠? 아무래도 급하신 것 같은데…….”

우아한 그녀의 얼굴에 시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아아, 큰일이군요. 조금 있으면 궁중 연회가 개최될 예정인데 이를 어쩌지요?”

“저, 한데 직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죄송합니다. 급해서 그걸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저는 궁궐의 모든 복식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주성진은 다급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연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그러실 거예요. 오늘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음, 그렇군요.”

그녀는 주성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돌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주 상단주님, 이런 말씀 드리면 외람되지만, 너무 하셨습니다. 새로운 안료로 만든 옷감이 개발되었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궁에 알렸어야죠. 만일 이 일이 잘못되면 제 목이 달아날지도 모릅니다.”

주성진은 차마 변명을 할 수 없었다.

구차한 변명이야 줄줄이 말할 수 있지만, 그걸 말한다고 이번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자칫 이 일이 잘못되면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음 언제 연회가 개최됩니까?”

“앞으로 보름 후입니다. 저희로서는 지금부터 새 옷을 만들기도 빠듯한 일정입니다.”

주성진은 복식 관계자의 고충을 헤아리고도 남았다.

‘음, 이 일을 어찌한다. 내가 도움을 주어야겠는데…….’

“알겠습니다. 제가 5일 이내에 전달해 드리지요. 그리고 필요하시다면 옷을 만들 재단사들은 제가 직접 수소문해서 궁에 파견토록 하겠습니다. 아 비용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낼 테니까요.”

“정말이신가요? 그래 주면 고맙겠습니다. 하면 옷감은 어찌 구할 생각이신지요?”

주성진은 빙그레 웃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제가 직접 휘주에 다녀와야지요. 하하.”

“그럼 경공을 쓰시겠다는 말인가요?”

주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러고 보니 무공을 익히셨군요.”

이번에는 그녀가 깜짝 놀란다.

누가 듣고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전음을 펼쳤다.

―제가 무공을 익힌 걸 어찌 아신 겁니까?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는데요.

―그야.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경공을 아시는 같아 궁녀님을 유심히 살펴보았지요.

―그게 다인가요? 그래서 그 짧은 순간 제가 무공을 익힌 것을 아셨다고요?

―왜요.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지요. 제가 무공을 익힌 것이 알려지면, 그 즉시 제 목이 사라지고 없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특수한 무공을 익혀서 안 것이지 대다수 무인은 궁녀님이 무공을 익힌 걸 모를 겁니다. 한데 무공이 뛰어나 보이는데요.

―아니요. 보잘것없습니다. 주 상단주님, 혹 심검을 완성하셨습니까? 좀 전에 특수한 무공이라고 한 것 거짓이지요?

이번에는 주성진이 매우 놀랐다.

―심검을 완성한 건 아니고요. 심검 문턱을 조금 밟았습니다…….”

―오래 전 사부님이 제게 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오로지 심검을 익힌 자만이 저희가 무공을 익힌 걸 알아볼 수 있다고요. 설사 지금처럼 무공을 갈무리하고 있어도 말이죠.

―하, 그런가요.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이기옥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예전에 부상을 입은 여류 무인이 피할 곳을 찾다가 황궁으로 도망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뭐가 두려운지 황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평생 궁녀로 지냈습니다. 물론 가짜 궁녀 행세를 한 것이지요.

―그러면 그분의 진전을 이은 겁니까?

―네. 그분은 마음에 든 궁녀를 자신의 제자로 삼았지요. 그리고 그 후 일인전승으로 무공이 저에게 이어졌습니다.

―황궁에서 무공을 익히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잘 모르시나 본데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궁녀들이 기거하는 곳은 중 심처에 있어서 외부에서는 잘 모른답니다. 그건 그렇고 주 상단주님! 분명한 건 이제 주 상단주님 근처에서 무공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아무리 은신술이 뛰어나더라도 말이죠.

―아, 그래요? 그거 좋은 소식입니다. 솔직히 전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최근에 주 상단주님의 무공이 일취월장한 모양입니다. 호호.

주성진은 전음을 풀었다.

“후딱 다녀오겠습나다.”

“부탁드립니다. 주 상단주님, 그리고요. 이렇게 하시지요. 북경 내 옷 잘 만드는 이들은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하니 그들은 저희가 섭외하겠습니다. 단 비용은… 호호.”

“아, 그게 시간 절약 상 더 좋겠군요. 그럼, 당장 내려갈 채비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재단 비용은 몰라도 옷감 비용은 넉넉하게 내도록 하겠습니다. 기존 옷감의 두 배면 충분하겠지요? 아 참. 그걸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만들 옷은 대략 1,000벌입니다.”

주성진은 손을 살짝 들었다.

“다. 견직물이지요?”

“아닙니다. 견직물과 면직물 반반입니다.”

“음, 그러면 합해서 2000벌 정도 되는 거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저 주 상단주님, 제가 특별히 주 상단주님의 옷을 지어드리겠습나다.”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제 성의이니 받아 주십시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요.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고맙지요. 호호.”

잠시 후, 주성진은 그녀를 보내자마자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최단 시간 내에 휘주에 당도하려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휙휙!

주변의 경물이 빠르게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안휘성 휘주에 가까이 다가오자, 지치지 않을 것 같은 주성진의 입에서도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무리를 하는 거였다.

갈증과 배고픔을 안고서…….

‘이 산중만 벗어나면 휘주가 금방이야. 자자, 힘내자고! 잠깐, 무슨 소리가 나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