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황궁무림대회 (4)
잠시 후, 식사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마당으로 모인 가운데,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주변은 대형 횃불을 설치했기에 대낮처럼 환했다.
사실 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둘의 눈싸움은 치열했다.
찌르르르!
햇볕에 반사된 거울보다 더 강렬한 안광이 두 사람의 눈에서 번뜩인다.
하나 그런데도 평온한 주성진과 다르게 이관중의 얼굴은 점점 경직되어 갔다.
점점 더하게 눈이 빠개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아, 아파! 더는 못 버티겠다. 놈이 나처럼 투살공을 익히고 있을 줄이야.’
이관중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투살공을 익혔더냐?”
이관중이 묻자 주성진이 빙그레 웃는다.
“공격은 당신이 먼저 했습니다. 난 방어 차원에 그런 거고…….”
주성진은 돌려서 투살공을 익혔다고 시인했다.
“난 그저 기선을 제압하려고 가볍게 쏘아붙인 것뿐이다. 한데 너는 내 눈을 파열시키려 했다고!”
주성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파열까지는 아닙니다. 단지 보름 동안 눈을 못 뜨게 하려 했을 뿐입니다. 하하…….”
“너는 투살공을 어디서 익혔느냐? 마교 출신도 아닌데 살인 안광 술을 익히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하하, 자백하는 것입니까? 마교 출신이라고…….”
이관중은 얼굴을 실룩거렸다.
“마교 출신이 뭐 어때서?”
“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전 댁의 말처럼 마교 출신은 아니랍니다. 투살공은 우연히 익히게 되었고요.”
주성진이 익힌 투살공은 천뇌자의 미완성 무공에 부록으로 남아 있었다.
천뇌자는 그런 투살공을 투살파심공으로 변형하려다 미완성에 그치고 말았고…….
순간 이관중의 말이 이어졌다.
“투살공은 강호에 누출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어찌……?”
“후후, 제가 알기론 마교의 많은 무공이 누출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경우도 그리 특별한 경우는 아닌 것 같은데요…….”
“기록에는 투살공이 누출된 적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로군.”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투살공의 비급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았다 치더라도 익힌 사람을 통해 누출될 수는 있겠죠.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이관중은 무릎을 쳤다.
‘맞다. 저 녀석의 말이 맞아. 실종된 자들을 통해 누출되었을 거야.’
이관중은 고개를 끄떡거리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뭔가?
“주성진입니다. 그쪽 성함이 이관중이시죠?”
“그렇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어울려 볼까?”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잠깐만요. 그전에 아까의 행동은 고의였습니까? 음식점 장사를 방해하려고……?”
“뭐 알면서 왜 물어?”
주성진의 눈 깊숙한 곳에서 화염이 일렁였다.
‘고의로 시비를 걸었단 말이지. 매를 벌었으니 좀 지그시 눌러 주어야겠군.’
“정말로 일부러 시비 건 것인 가요, 저에게?”
“그렇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 않겠다. 내 말을 사실이니까.”
“하하, 그래요. 그러면 강제라도 사과를 받아 내야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선공할 테니 각오 단단히 하십시오.”
이관중은 고개를 끄떡이며 생각했다.
‘저 녀석, 뭐 믿고 설치는 거야? 감히 날 이겨보겠다는 거야…….’
바로 그 순간 주성진이 손에 들린 목검이 수십 수백 개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너무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위이잉!
‘헉!’
눈을 부릅뜬 이관중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배어 나왔다.
‘제길, 고수다! 한데 어떤 게 실체야?’
마치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주성진의 공세에 이관중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검을 흔들었다.
부우웅!
상대의 실체를 알아볼 수 없었기에 고육지책으로 검막을 펼친 거였다.
‘아아, 오늘 일진이 사납군…….’
주성진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며 상대의 검막을 신나게 두들겼다.
따따따따따땅……!
검막 위로 불똥이 수없이 튕기며 날카로운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이관중은 갖은 인상을 썼다.
귀가 울렁거리고 고막이 터질 것 같다.
‘으으으. 빨리 틈을 노려야 해. 반드시! 안 그러면 승산이 없어.’
하나 날카로운 소리는 조금도 멈출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소리의 울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아아아 미치겠군…….’
역습을 가하려고 하지만 수비만으로 점점 더 벅찰 뿐이었다.
그 순간 주성진이 끝장을 보려는 듯, 기합을 토해 내었다.
“야합!”
주성진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박차를 가하자, 수백 수천으로 보였던 검들이 점차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더는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된 거였다.
‘아아, 안 돼!’
이관중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점점 패색은 짙어져만 갔다.
급기야는 이관중이 펼친 검막이 쑹쑹 뚫리기 시작했다.
힘과 속도 면에서 주성진을 어찌할 수 없었던 거였다.
파앗!
“으윽!”
그가 입은 옷들이 베어져 나간다.
그대로 가다간 옷이 걸레 쪼가리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관중은 알고 있었다.
주성진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이 혈안이 되는 건 순식간이라는 것을…….
오히려 옷만 자르는 것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기술이라는 것도…….
“내가 졌소이다. 아까의 일은 사죄하겠소.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주성진은 목검을 거두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기에 이기면 마음이 통쾌할 줄 알았는데…….’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보자, 그다지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래, 저자의 버섯을 내가 사 주자.’
“저기요, 그대가 가진 버섯! 몽땅 제가 사겠습니다.”
이관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한데 얼마인가요?”
이관중은 염두를 굴렸다.
도대체 주성진에게 얼마를 받아야 할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에이 기분이다. 딱 1할만 더 붙이자고!’
“음, 그러면 모두 합해서 은자 오백 냥만 내시구려. 아주 싸게 부른 것이오.”
“헉, 너무 비싼데요…….”
“대량으로 재배하는 법까지 알려 주는 것이니 절대로 비싼 것이 아니라오.”
주성진은 굳이 그걸 알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순간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마 비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소. 하지만 절대 비싼 것이 아니오. 내 십 년간의 피와 땀이 녹아 들어간 것이니…….”
주성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뭐, 어차피 사기로 한 것이니 화끈하게 들어 주자고.’
“알겠습니다. 한데 그 버섯의 이름은 뭡니까?”
“내가 호랑이 버섯이라고 이름을 지었소. 조선을 여행하다 호랑이에게 물릴 뻔한 상인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가 답례로 버섯의 종균과 함께 인공 재배법을 알려 주었소. 아주 몸에 좋은 거라 하면서…….”
“호랑이와 닮지 않았는데…….”
이관중은 싱긋이 웃었다.
“호랑이 때문에 알게 된 거라 호랑이 버섯이라 지은 거요. 나중에 그대가 따로 이름을 지어 보시오. 하하.”
주성진도 따라 웃었다.
‘뭐야. 이름을 까먹었나 보군… 가만 조선말을 잘 하나 본데…….’
“저, 조선어를 잘 하나 봅니다?”
“난 중원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조선인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 그렇게 된 것이군요. 한데 십 년간 고생하셨다는 건 왜 그런 겁니까?”
“토양과 기후가 조선과 달라서 키우는데, 애를 먹었소이다.”
“…….”
* * *
거하게 식사를 마친 동벽테는 차를 훌쩍거리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식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몸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이봐, 북경에 있는 동안 매일 저녁 여기서 식사하는 건 어떤가? 내가 어떡하던 자라탕까지 매일 먹을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주성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저야 좋지요. 훌륭한 음식에다 어르신의 조언까지 날마다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하. 만약에 거절하면 안 알려주려고 했는데…….”
주성진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일 있습니까?”
“실은 심심해서 얼마 전 황궁 나들이를 했지. 오랜만에 가 보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고…….”
“혹 몰래 담을 넘으신 겁니까?”
동벽태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내가 무슨 수로 황궁에 들어가겠나. 하하.”
“아, 그렇군요.”
“한데 말이야… 내가 잘난 환관 놈이 머무는 전각 위 지붕에서 오리 다리를 뜯고 있었는데… 그 환관 놈이 먹는 거라 그런지 아주 맛이 좋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그놈의 입에서 자네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겠나…….”
주성진은 곧바로 눈을 치켜들었다.
“제 이름이 말인가요?”
“그렇다니까… 나도 그때, 깜짝 놀라 아까운 오리 다리를 떨어뜨릴 뻔했다니까. 하하.”
“혹, 잘 난 환관이 동창 제독입니까?”
동벽태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다네. 자네를 죽이려고 첩형들을 모아놓고 모의 중이더라고…….”
“네? 저를 죽인다고요?”
“직접은 아니고 차도살인지게를 모색하는 것 같더라고…….”
그러면서 동벽태는 자신이 들은 바를 모두 주성진에게 이야기했다.
심각한 표정의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음, 귀찮게 되었군요. 자칫 죽을지도 모르고요…….”
“지난번 자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공주와의 만남이 사실 좀 걸리더라고. 궁중 암투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지…….”
주성진은 지난번 만남에서 그에게 공주를 구해 준 이야기를 해 주었던 거였다.
“그럼, 공주를 죽이려 한 직접적인 범인은 동창이겠군요?”
“아마도… 공주를 죽이려다 자네 때문에 실패한 걸 후일 알았을 거야. 게다가 자네가 공주의 측근으로 부상하니까, 더더욱 제독 그놈이 안달이 난 거겠지…….”
“저 때문에 실패한 걸 동창에서 알고 있다고요? 그때 그 일은 공주의 명으로 쉬쉬하기로 했는데…….”
동벽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야!”
“아……!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은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동창에서 어떻게 나올지 예상해 보자고!”
주성진은 자신의 문제에 나서주는 동벽태가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절 챙겨 주셔서…….”
“허허, 뭘… 그 대신 내가 자네에게 잘 얻어먹고 있잖아, 하하.”
“어르신, 얼핏 생각이 드는 건 살수인데요. 그들이 제일 먼저 절 공격하지 않을까요?”
동벽태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럴 수도… 하지만 동창이 마음만 먹는다면 동원할 개인이나 세력은 무궁무진하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자나 세력이 자네를 죽이려 할 수 도 있어. 아니면 신무기를 동원할 수 도 있고, 가령 화탄 같은 것, 말이야.”
“음, 그렇군요, 거기에 제 무위가 알려졌으니 그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군요.”
“하면 어떻게 대비할 생각인가? 그냥 일단 생각나는 것을 나열해 보게나.”
주성진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뭘 해야 할까, 일단 두 가지로 나누자.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주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호위단을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공을 더욱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뭐, 호위단은 알겠고. 내공을 키운다는 건 무슨 뜻인가?”
“저에게 내공은 자신감 그 자체입니다. 제 경험상 내공이 든든하게 받쳐 준다고 확신하면 할수록,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것도 수월해지더군요.”
동벽태는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주성진의 무위를 고려했을 때 그의 말을 일소에 붙일 수는 없었다.
“알겠네. 내기 덧붙여 말하자면 빨리 심검을 본궤도에 올려놓게나. 그렇지만 어렵게 생각할 건 없어. 자나 깨나 항시 마음의 칼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