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생강시의 최후
주성진이 일고의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것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마주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꽝!”
강기로 뒤덮인 철봉과 주성진의 두툼한 팔이 굉음을 내며 충돌하였다.
순간 철봉이 생강시의 손에서 벗어나 위로 튕겨 올라갔다.
강시는 반사적으로 철봉을 움켜잡았다.
하나 더는 선기를 잡을 수 없었다.
무기를 놓친 충격 탓에 뒤로 물러난 생강시의 회색 눈이 희번덕거렸다.
“크크크, 네놈이!”
주성진의 눈이 빛났다.
자신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으나 강시의 회색 동공에서 일말의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가자!”
주성진 동작은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생강시가 두려움을 느낄 때, 주성진의 주먹은 이미 턱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휙!
빠르고 묵직하다.
하나 주먹이 거의 생강시의 턱에 닿을 무렵, 생강시가 빠르게 이동하며 피하고 있었디.
‘어라?!’
주성진은 상대가 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동작! 이형환희야.’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주성진은 상대가 멀쩡했을 때, 대단한 고수였음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투지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흥, 그렇단 말이지! 좋아. 내가 강한지, 네가 강한지 해보자고!’
허공을 지나칠 것 같았던 주성진의 권이 마치 뱀처럼 구부러지며 옆으로 이동한 생강시를 노렸다.
순간 생강시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에 고개를 숙였다.
주성진의 권이 아슬아슬하게 생강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주성진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생강시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에 발로 생강시의 얼굴을 올려 찬 것이다.
그 한 번의 발길질엔 내공이 5할이나 담겨 있었다.
그 후 주성진의 동작은 작은 날짐승을 채 가는 매 같았다.
주성진의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어지며 연속으로 생강시의 몸을 난타했다.
“끄으윽!”
생강시의 몸이 3장이나 날아가 처박혔다.
‘되었다!’
주성진이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생강시는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다시 공격하려 들었다.
주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의 주먹이 몸을 강타했는데. 금강불괴가 따로 없구나.’
생각은 생각이고 다음 수를 고민해야 했다.
마치 성난 용권풍 같은 기세로 덮쳐 오는 생강시를 본 주성진의 신형이 빙글 옆으로 돌아갔다.
“어휴 징글징글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성진의 눈빛은 강해져만 갔다.
‘그럼 시작해 볼까!’
주성진은 애초에 펼치려고 했던 강환을 펼치기로 했다.
쉬이익!
달려들던 생강시가 위험을 감지했는지 잠시 주춤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주성진의 손끝에서 초승달 모양의 고리가 연속적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팡, 팡, 팡.
강환을 얻어맞은 생강시의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성진의 공격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무자비할 정도로 수많은 강환이 혈강시의 가슴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었다.
“카아악!”
생강시의 몸이 완전히 무너졌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휴, 힘들었어.’
생강시의 죽음을 확인한 주성진은 북천문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그전에 생강시를 움직이려고 피리를 불던 사내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였다.
뚜벅뚜벅.
반각 후, 넓은 연무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뒤로 2층 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 주성진은 주변 경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넓은 연무장엔 20명의 무인이 늘어서 주성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성진은 그들 중에 피리를 불던 사내가 있는지 유심히 살피다 돌연 시선을 고정했다.
‘저기에 있었군. 비겁하게 얼굴을 감추려고 하다니…….”
피리를 불던 사내는 뭐가 두려운지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주성진과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웠을 것이리라.
주성진은 비웃음 흘리며 사내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려고 했다.
한데 그보다 먼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주성진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멈추시오. 더는 다가오지 마시오.”
주성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친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60세가량으로 보였는데 눈빛이 날카로웠고 코는 매부리코였다.
“난 북천문 원로원 원주 이세민이오. 그대는 누구시오?”
“저는 조자양 문주의 부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성진은 여전히 복면하고 있었다.
“무슨 부탁을 받았소이까?”
“몇 가지 있었지만, 최우선으로 북천문이 멸문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무림 공적으로 몰리면 끝장이라 하면서…….”
이세민은 주성진의 신랄한 말에도 표정 변하지 않았고 동요하지 않았다.
늙은 생강이 맵다는 말이 괜히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북천문 내부 문제에 제삼자가 관여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소만…….”
“저도 웬만하면 그러려고 했지만, 생강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원주께서는 특별히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생강시를 북천문의 수호신으로 삼으려 했소이다. 대외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강시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소이다. 그게 무림의 법도요.”
주성진의 얼굴에 비웃음이 흘렀다.
“허허 수호신이라… 한데 그 잘난 수호신이 사람의 생기를 빨아먹고 있던데 그건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인 중에 중죄를 지은 자가 있어 처벌한 것뿐이오. 평상시라면 짐승의 생기로도 충분하오이다. 이는 우리가 늘 식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오. 그대도 주기적으로 짐승의 고기를 섭취하지 않소이까? 다 똑같은 이치요.”
“하하, 그래요? 그럼 왜 날 죽이려고 했습니까?”
원로원 원주는 고개를 살짝 까닥거렸다.
“그 점은 조금 성급했소.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신임 문주가 경험이 없어 허둥댔소이다. 하지만 좀 전에 말한 대로 우리는 생강시를 북천문의 수호신으로 삼으려 했소이다. 해서 문주가 생강시에게 명한 건 전체적인 틀에서는 잘못이 없소이다. 그대는 분명 침입자였기 때문에…….”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허허. 전체적인 틀에서 잘못이 없더라… 그거 궤변 아닙니까?”
“이보시오. 궤변 운운하기 전에 그대가 담을 넘어 무단으로 북천문을 침입한 걸 상기하시오. 이는 명백한 거주지 침입이란 말이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북천문 문주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원천적으로 불법 침입이 아니죠.”
원로원 원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자양 그자는 더는 문주가 아니오.”
“탄핵을 받은 것도 아닌데 어찌 그가 문주가 아니라고 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는 반란입니다.”
“조자양 그자는 신분상 애초 문주 위에 오르지 못할 자였소. 전대 문주가 문규를 어겨가며 억지로 그 자리에 앉힌 것이라오.”
주성진은 피씩 웃었다.
“하하, 그래요? 그런데 인제 와서 문주 위를 박탈한단 말입니까? 그것도 비겁하게 문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댁이 북천문 사정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뭐, 좋소. 그대의 잘못은 없던 것으로 할 테니 이대로 물러나 주시오.”
주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전 문주의 부탁을 받고 온 사람이니까요. 원주님 제가 신호를 하면 조자양 문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가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단, 전 문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말입니다.”
“이보시오 정녕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려는 거요?!”
“원하시면 벌주를 마실 의향이 있습니다. 그전에 조자양 문주를 불러야겠지만요. 하하하.”
원로원 원주의 얼굴에 살짝 다급함이 그려졌다.
“이보시오. 그대는 지금 큰 실수 하는 거요. 북천문은 단순한 문파가 아니오. 유사시 외적이 침입하면 나라를 도와 북경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소이다. 하니 외부인이 북천문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나라의 호된 질책이 따를 것이오.”
주성진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흥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나도 할 말이 있지…….’
“그러니까 무림 문파이긴 하지만 동시에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문파라는 건가요? 물론 공짜로 봉사하지 않고 돈을 받겠지만…….”
사실 주성진은 조자양에게 북천문이 북경 방어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그렇소이다. 그러니 어서 물러가시오.”
“그리 말씀하시니 더더욱 돌아가면 안 되겠는데요. 왜냐면 제가 육선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거든요. 자 그런 의미에서 무림에서는 강시에 대해 원주님의 주장대로 공격성만 띠지 않는다면 봐준다는 식의 논리가 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명 치하에서는 절대로 있을 순 없는 일이죠. 나라에서는 강시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으니까요.”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던 원주의 얼굴에 점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괜히 나라를 들먹이다가 역으로 되치기를 당한 셈이었다.
“정말 육선문과 관계가 있소이까?”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렇습니다. 해서 이번 강시의 일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장본인이지 않습니까. 자칫 강시에게 죽임을 당해 껍데기만 남는 신세가 될 뻔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대를 잘 알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공격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오. 하지만 그대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우리가 강시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오. 생강시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사용법도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오.”
주성진은 원주의 궁색한 변명을 듣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음, 북천문의 전 전대 문주가 배교의 유물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북천문으로 옮겼다는 이야긴 저도 들었습니다. 사실 그때 배교의 흔적을 지웠으면 모든 게 깔끔했을 텐데, 듣는 내내 그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
“그래도 여태 강시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은 점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문주를 교체하자마자 바로 강시를 만들어 버렸다는 말이죠! 이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문주가 문제가 있어서 교체한 것이 아니라 강시를 만들기 위해 내쫓지 않았나 그런 의심을 해 봅니다.”
주성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는 사전에 조자양과 약속된 신호였다.
삐이익!
“원주님, 제기 조자양 문주룰 불렀습니다. 그는 곧 전 문도를 소집할 것이며 과연 문주로서 자격 미달인지 신임을 물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불신임을 받는다면 저는 강시를 부리는 비급만 회수하고 더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주성진의 일방적인 말에 원주는 갈등에 빠졌다.
‘저자를 공격해 말아? 생강시를 죽였다면 보통 강자가 아닌데…….’
하지만 그의 갈등도 주성진이 복면을 벗고 이름을 밝히자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성진이 초고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자신이 내쫓은 문주가 하오문주와 막역한 사이라서 그런 문주를 통해 주성진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