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생강시의 등장 (2)
조자양은 고개를 푹 숙였다가 입을 열었다.
“변명 같지만, 심증은 있되,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나름의 복안은 있었습니다. 강시를 조종하는 옥피리를 제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게 없으면 절대 강시를 부릴 수가 없습니다.”
“…….”
“음, 그랬는데, 제가 급히 외유를 나가면서 그만 옥피리를 집무실에 두고 와 버렸습니다. 제 실수이지요. 물론 옥피리를 금고에 보관해 두었지만, 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금고는 부술 수 있는 문제라…….”
“그러니까 결국, 반란을 일으킨 쪽에서 옥피리를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는 말이군요.”
조자양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음, 제가 강시에 대해 아는 게 제한적이기는 한데, 그래도 확실히 아는 게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강시를 제조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시쳇말로 돈을 들이부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
“제가 말씀드린 건 당연히 강시 제조 비법을 안다는 전제입니다. 물론 이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네. 강시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실입니다. 각종 약을 갖춰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 같은 경우가 아니라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같은 경우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강시는 거의 준비가 된 것이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술만 걸면 되는 상태였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제가 말씀드리는 강시는 생강시입니다.”
주성진은 이일에 깊은 흑막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강시라고요? 그게 일반 강시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네, 맞습니다. 음, 50년 전 전 전대 문주님께서 대외 원정을 나갔다가 사라진 배교의 흔적을 발견했지요, 거기서 가사상태의 생강시와 강시 제조술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말이 생강시이지 산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산 사람이라고요?”
“강시를 제조하기 위해 고수를 잡아다가 오랜 시간 가두어 둔 것이죠.”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사람을 가두어두었는데 그게 생강시라니?”
조자양은 주성진이 가진 의문을 충분히 이해했다.
“생강시를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배교가 제일 선호하는 것이 고수를 납치해서 생강시로 만드는 것입니다. 의외로 방법도 간단합니다. 절대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 후에 오로지 물만 주는 것이지요. 고수는 살기 위해 운기조식밖에 할 수 없는데 그게 배교가 노리는 것이지요.”
“…….”
“시간이 흐르면서 고수는 생명의 근원만 간신히 유지한 채 점차 가사상태에 빠져듭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게 내공은 계속 쌓이게 되고 몸의 노폐물이 사라져 생강시로 가장 이상적인 몸 상태가 되어 가는 것이죠.”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머리를 살짝 쳤다.
“아하, 생강시도 호흡을 하는 군요, 당연한 건데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네요.”
“호흡뿐이겠습니까? 생강시는 음식 대신 사람이나 짐승의 기운을 빼앗아서 생명을 유지한답니다, 그러니까 타 생명의 선천진기를 취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도 가지고 있어, 간단한 대화도 가능하답니다.”
이제야 주성진은 그가 부탁하는 것임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선 적으로 생강시를 제거해 달라는 것이군요. 문주 위를 도로 찾는 건 그다음이고요.”
“염치없지만 그렇습니다. 주 상단주님이라면 충분히 생강시를 제거하고도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 상단주님! 그리만 해주신다면 하오문의 정보를 제가 살아 있는 한, 공짜로 얻게 해드리겠습니다. 하오문주가 저의 둘도 없는 친구랍니다.”
주성진은 회가 동했다.
하오문의 정보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이는 크나큰 이익이었다.
“고급 정보도 포함되는 것입니까?”
“그럼요. 그러니 부디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잊지 마십시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일이 성공하면 강시술에 대한 걸 모두 저에게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조자양은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어휴, 모르겠다. 신고하든, 간직하든 내가 알 바 아니야. 난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니까.’
“그럼요. 기꺼이 내어 드리겠습니다.”
* * *
시간이 흘러 칠흑 같은 밤, 주성진은 복면하고 북경 외곽에 위치한 북천문의 담을 타 넘었다.
그곳은 조자양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가장 경계가 느슨한 후미진 곳이었다.
가볍게 담을 넘은 주성진 피 냄새에 그만 얼굴을 찡그렸다.
‘음, 여긴 하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주성진은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순간 인기척이 들려 급히 몸을 감춘 주성진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었는데 웬 괴인이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대자 몸이 쪼그라들더니 푸석푸석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저놈이 혹 생강시? 음… 그런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일이 공교롭게 되었네. 뭐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르지.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으니까.’
주성진은 재차 주변을 살폈다.
다른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누군가가 있어야지, 자! 그렇다면 모습을 드러내자.’
“누구냐?”
주성진이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었다.
주성진은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것이 생강시이더냐?”
그러자 상대방의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놈! 조자양이 보냈느냐?”
“조자양이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내 눈으로 똑똑히 생강시를 봤다는 것이다.”
“너 이 새끼! 죽고 싶은 게로군,”
주성진은 그를 쏘아보았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긴 놈이다.
“보기와 다르게 사갈 같은 마음을 가졌구나.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흥, 난 오히려 네놈이 불쌍하다. 내가 생강시의 무서움을 제대로 맛보게 해 주겠다.”
“그래, 나도 원하는 바다.”
삐리리, 삐리리……!
돌연 피리 소리가 들리자 생강시가 주성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움푹 안으로 들어간 기괴한 모습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말을 한다.
“크크크, 몹시 맛있는 놈이군.”
주성진은 사전에 예비 지식이 있었지만 정말로 생강시가 말을 하자 당황스러웠다.
달리 생각하면 생강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음, 반은 인간이고 반은 강시로 보는 게 옳은 것 같아. 한데 저 괴물이 날 보고 몹시 맛있다고 했겠다.’
주성진은 생강시가 자신의 기운을 느끼고 곧바로 자신의 기운을 갈취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천지기 뿐만 아니라 나의 내공도 탐이 나겠지, 자, 그러면 생강시와 말을 섞는 것도 좀 그렇고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자고!’
“에잇! 이거나 받아라!”
주성진은 힘껏 쌍장을 뿌렸다.
쉬이익!
주성진의 장풍이 빛살처럼 강시에게 향했다.
강시는 멍하니 주성진을 바라보다 장풍을 맞이했다.
펑!
새파란 강풍이 강시의 가슴을 강타하자 크나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주성진의 이마에 골이 새겨졌다.
자신의 장풍을 맞고도 멀쩡한 생강시 때문이었다.
비록, 옷이 찢어지고 피부가 벗겨져 핏방울이 뿌려졌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뭐야, 오히려 위세 당당한데, 게다가 피도 금세 멈추었어.’
주성진은 재차 장풍을 뿌렸다.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진 느낌이었다.
쉬이익!
펑!
상처 난 바로 옆에 주성진의 장풍이 강타하자 이번엔 강시가 조금 움찔했다.
역시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튀었다.
“하. 정말 튼튼한 놈이네.”
장풍 정도로는 어림없겠다고 판단한 주성진은 처음으로 강환을 선보이기로 했다.
하지만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강시가 반격을 가해 왔다.
‘이런 내가 시간을 지체했구나, 처음 시도하는 거라서…….’
강시의 눈에 적개심이 번뜩이고 있었다.
‘음, 이성이 있었을 때의 감정이 살아났는가?’
순간, 강시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생강시가 철봉을 무자비하게 휘두른다.
‘허, 철봉을…….’
주성진은 잠깐 멍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순간 강시가 철봉을 휘두르자 위화감이 생긴 탓이었다.
‘적응하자, 저 괴물은 생강시야. 소싯적 무공을 기억하고 있다고.’
부웅!
자지러지는 소리가 대기를 가르고, 철봉이 곧장 주성진의 머리를 향해 쏘아져 왔다.
무지막지한 위력 앞에 좀 전 옥피리를 불었던 자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후후후…….’
당장이라도 생강시가 휘두른 철봉이 주성진의 머리를 박살 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성진도 잔뜩 긴장 상태다.
강시가 방어를 도외시하고 다짜고짜 공격하리라고는 예상했지만, 철봉에 실린 힘과 속도가 그의 상상 이상이었던 거였다.
‘침착하자, 침착하면 이길 수 있어!’
강시의 능력이 기준치 이상이었지만 본인이 진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주성진은 공력을 배가하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얼핏 무기가 없는 그에 비해, 철봉을 가진 생강시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몸을 틀어 피하면서 손날로 철봉의 방향을 슬쩍 바꾸어 흘려보낸다면 주성진은 충분히 강시의 공격을 피할 거로 생각했다.
“탕!”
주성진의 손날이 생강시의 철봉을 스치듯이 치면서 흘려버리려 했다.
그러나 상대의 철봉은 단순히 힘으로 가격한 것이 아니라, 주성진이 잘 모르는 무공 초식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강시의 공격은 힘으로 내리친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주성진의 손날에 의해 미끄러질 것 같았던 강시의 철봉은 잠깐 멈칫거렸다가 그대로 주성진을 향했다.
‘아이쿠!’
상대 철봉의 제어하지 못한 주성진은 간신히 뒤로 휘청거리며 두 발자국을 물러섰다.
‘이거 얕보면 안 되겠는데…….’
주성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은연중에 상대를 생강시라고 무시하던 생각이 확 달아났다.
그 순간, 생강시의 철봉은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쉬이익!
대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가 매섭다.
주성진은 힘껏 내공을 모야 팔로 철봉을 막았다.
“꽝!”
진기로 단단히 보호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픔이 완전히 가실 수는 없었다.
‘제길, 이럴 때 검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
주성진은 상대의 공격을 막긴 했지만, 또다시 신형을 뒤로 물러야 했다.
그 순간, 생강시는 재빠르게 세 번째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시의 철봉에서 빛이 발해진다.
그건 강기가 발현된 현상이었다.
주성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치겠군. 생강시가 강기를 펼치다니, 그렇다면 검강 아니지. 봉강이겠구나.’
주성진은 내공을 잔뜩 끌어올려 재빠르게 팔을 뻗었다.
그의 팔이 맨눈으로 보기에도 많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만큼 상대의 봉강에 대항해 진기를 쏟아 붓고 있는 거였다.
비록 무기도 없고 상대가 생강시라는 점이 생소해 다소 당황했지만, 여하튼 주성진은 초고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