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드러나는 음모 (5)
"상관있지요. 제가 대장이니까 마음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와 이야기하시죠. 일행들은 모두 제 결정에 군말 없이 따를 겁니다."
곽천일은 슬그머니 불안한 생각이 든다.
'저자, 도대체 뭐지? 이거 상황이 만만치 않겠는데…….'
"음, 미안하지만 내가 다른 분들이 동의하는지 확인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확인해 보세요. 그 전에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무인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겁니다. 하하하."
잠시 후, 곽천일은 미심쩍었는지 한 번 더 확인하였다.
"음, 그렇군요."
"자, 그럼 긴요한 이야기는 단둘이서 하실까요? 우리 일행들은 계속 유흥을 즐겨야 하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이야기한 일들을 여기 계신 분들에게 공개하도록 하지요. 내가 하든, 댁이 하든……."
곽천일은 혹여나 주성진이 중간에서 장난칠까 봐 방어막을 쳤다.
"뭐 그렇다면 상단주님이 직접 공개하시지요. 그게 좋을 것 같은데요."
"좋습니다. 제가 하지요. 아, 그리고 서욱 총국주님은 저의 분신이나 다름없으니 저와 함께할 겁니다."
"뭐…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객잔 주인의 안내로 밀실로 들어갔다.
밀실은 사방이 막혀 있어 은밀한 이야기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자리에 앉은 주성진은 찬찬히 그들을 바라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에겐 기선제압용으로 딱 좋은 재료가 있었다.
'후후, 불안할 것이다.'
"한데 말입니다. 살수들이 좀 이상하더군요. 난데없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쓰지 뭡니까?"
곽천일은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무진장 애를 썼다.
"뭐라고요? 자객들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썼단 말입니까?"
곽천일의 표정 연기가 꽤 실감 났다.
'가증스러운 놈…….'
"네,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들이 왜 모용세가의 무공을 사용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여전히 헷갈리더라고요. 살수 놈들이 정체를 드러내기 싫어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모용세가를 모함하기 위해 그런 것인지……."
두 사람의 얼굴이 하얘진다.
자칫 자신들이 한 일이 들킬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총국주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저, 자객들이 어떻게 공격했습니까?"
주성진은 미리 지어낸 말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게 좀 어설프더라고요. 자객들은 측간이나 으슥한 곳에서 기습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곧바로 우리가 있는 기방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음, 살수들이라고 정공법을 쓰지 않는 건 아닙니다. 무공에 자신 있거니. 수가 많아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정공법을 사용하기도 하지요. 물론 자주 쓰는 방법은 아닙니다만."
주성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렇다는 겁니다. 하여간 그래서 난전이 벌어졌고, 병장기 소리가 나니까 아까 보신 네 사람이 달려왔지요. 당시 그들은 기원 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 중이었어요."
서욱은 주성진의 말을 듣고 서는 살수들이 작전대로 일을 수행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예기치 않은 응원군 때문에 일을 그르친 거였어.'
"자객들이 모용세가의 어떤 무공을 사용하던가요?"
"섬광분운검이었습니다."
"음, 그렇군요."
주성진은 서욱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섬광분운검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모용세가의 무공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저는 뒤로 물러나 경청하겠습니다. 궁금증을 해소했거든요."
"알겠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돌려 곽천일을 바라보았다.
"좀 전 저희끼리 과연 누가 자객을 보냈을까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각자에게 확인해 보니 딱히 크게 원한을 산 일이 없었어요. 물론 세세하게 따지려 든다면 끝도 없겠지만, 뭐 그 정도를 가지고 많은 살수를 보낸다는 건 말이 좀 안 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주성진은 말하면서 계속 곽천일과 서욱의 표정을 살폈다.
'흐흐, 똥줄이 탈것이다. 성공을 확신해서 보낸 게 화를 불렀다. 누가 봐도 엉성한 계책이었거든.'
주성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저희는 살수가 살수답지 않게 모용세가의 무공을 쓴 거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누군가가 덤터기를 씌우려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모용세가가 타격을 입으면 혜택을 보는 이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
"그래서 내린 결론은, 뭐냐면……."
그 순간 서욱이 소리쳤다.
곽천일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린 형국이었다.
"그만, 그만하시오."
서욱의 말이 짧아진다.
"시인하십니까?"
"그게 아니라 터무니없는 소리 집어치우라는 말이외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소이다."
주성진은 그를 노려보았다.
"뭐가 터무니가 없다는 것이죠?"
"모용세가의 섬광분운검은 최절정의 무공이 아니라서 모용세가의 수많은 제자가 거리낌 없이 배우고 익힐 수 있소이다. 그러다 보면 꼭 사고를 치는 자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로 인해 무공이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크외다."
"……."
"해서 그런 이유로 살수들이 섬광분운검을 익히는 것도 과히 어렵지 않소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대와 달리 그들이 그냥 무공의 일부로 섬광분운검을 익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오. 아무래도 살수들은 살인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정통 무공이 약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이까?"
"……."
"그래서 나는 무공 보완 차원에서 자객들이 섬광분운검을 익혔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고."
주성진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뭐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가 주목하는 건 동기입니다. 살수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론 청부 살인을 의뢰하는 건 대가가 무척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나 무턱대고 의뢰할 수 없죠. 엄청난 부자가 아닌 이상은……."
그 말에 서욱이 입을 벌리려 하자 주성진이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두 분은 모를지 모르지만, 무림에 몸담고 있으면 주변 동향에 정통하게 된답니다. 왜냐면 자그마한 정보 하나가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으니까요. 해서 그런 이유로 얻어걸린 정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모용세가가 휘주상단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그러니 전 두 분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용세가가 피해를 보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게 아니라는 합당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곽천일의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간다.
'내가 성급했어. 그때 형님의 말을 무조건 믿는 게 아니었는데… 실패를 계산에 넣어야 했다고!'
후회는 후회고 지금 당장 곽천일은 머리에 연기가 나도록 머리를 굴려야 했다.
"솔직히 나는 내 자리에 아주 만족합니다. 그리고 더 할 깜냥도 없어요. 감히 모용세가에 대들어 휘주상가를 손안에 넣겠다는 그런 거 말이죠. 또한, 내가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습니까? 과유불급이라고 난 그런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그런 일을 꾸밀 리가 없지요."
"……."
"내 생각에 댁들이 내린 결론은 너무 일방적입니다. 상대의 처지에서 원한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댁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은 원한을 상대는 몸서리칠 정도로 처절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
"그리고 여러분 중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한이 있는데도 없다고 말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야 서로를 신뢰한다고 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성진은 곽천일의 간교한 세 치 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인간, 대단하군. 제법 논리적이야.'
"그러니까 누군가 크게 원한 맺은 일 때문에 살수들이 들이닥쳤다. 그 말씀인가요?"
곽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지 시켜드리면 자객들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쓴 것은 그저 우연한 결과일 뿐이고. 누구를 음해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성진은 일단 물러나는 척 하기로 했다.
'후후, 그래도 속으로는 뜨끔할 것이다. 내가 정곡을 찔렀으니까.'
"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단 접수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 저희에게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뭔가 켕기는 게 없으면 그런 말을 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신인도의 문제가 있으니 그런 것입니다. 휘주상단의 앞마당에 살수들이 잠입했다는 게 소문이 나면 그게 상단과 관련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여러 억측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
"만에 하나 잘못 소문이 부풀어져 휘주상단이 살수들의 공격을 받아 크게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로 인한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주성진은 곽천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좋습니다. 다만 육선문의 두 사람은 어제 일을 상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곽천일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 일은 공무와 관계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처지에서 어제 접객당주가 베푼 연회는 지극히 관행적인 일이었습니다. 나라의 일꾼이 찾아왔는데 그 정도도 대접하지 않고 돌려보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요."
"……."
"덧붙여서 만일 그런 자리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당연히 연회에 참석하지 말고 거절했어야 하는 게 맞지요."
주성진은 좀 더 그를 공박할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음, 그럴싸하게 빠져나가려고 애쓰는군. 연회에 참석한 것 가지고 은근슬쩍 위협까지 하고 말이야. 이래서 늙은 생강이 맵다는 건가…….'
주성진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심 실소하고 말았다.
'이것 참. 나보다 어렸던 자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든 모습을 하고 있으니… 난 그런 자에게 늙은 생강이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하면 답례 차원으로 저희에게 얼마나 주실 건가요? 음, 제 생각에 좀 많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저희 일행 중에 안찰사의 아드님이 계셔서 말이죠. 하하."
곽천일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요? 그걸 왜 진즉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말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주성진은 곧바로 대답했다.
"일 인당 은자 만 냥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너무 많은 것 같소. 은자 5천 냥으로 합시다."
"글쎄요. 그럼 은자 9천 냥으로 하시죠."
곽천일은 주성진을 노려보다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자필로 서명하여야 할 겁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것도 많이 봐 드린 겁니다. 저나 육선문의 두 사람은 어제 음모의 희생자가 될 뻔했다고요."
"또, 또, 그 소리. 우리가 한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서로 생각이 다를 순 있겠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