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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46화 (146/250)

146화 드러나는 음모 (4)

"혹 그자들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알지 못한다면요?"

서욱이 단박에 고개를 내저었다.

"동생. 그건 절대 아니야. 무공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 문파의 절기를 파악하고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네. 더구나 그들은 육선문 소속이니 모용세가의 절기를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야. 우리가 애초에 그 점을 노리고 일을 벌인 것이고."

"네,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야기해 본 것입니다.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자들은 지금쯤 목숨이 간당간당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게. 자객들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썼다고 증언해 주고 이승을 떠나야 했었는데……."

둘은 애초에 이 일을 모의할 때 놈들을 죽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들의 입을 통해 살수가 모용세가의 무공을 펼쳤다는 말이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피를 많이 흘리게 만들어 서서히 죽게 만들게 일을 꾸몄던 거였다.

"형님. 놈들이 죽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입을 통해 자객들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사용했다는 말은 나오겠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옷까지 모용세가의 것을 입힐 걸 그랬습니다. 허허."

서욱은 손을 흔들었다.

"아이, 그러면 안 되지. 모용세가가 이 사실을 알면 당장 우리의 목을 베려 했을 거야."

"뭐 그렇다는 겁니다. 형님, 혹 모용세가가 우리 말고 다른 세력을 의심할 확률은 없을까요?"

"그럴 리는 없어. 남궁세가 보라고. 모용세가의 괴물 때문에 여기에 얼씬도 하지 않잖아. 안휘성의 패자인 남궁세가가 그럴진대 다른 문파는 오죽하겠어?"

곽천일은 고개를 저었다.

"모용세가의 괴물을 타 문파는 모르지 않습니까?"

"늙지도 죽지도 않는 그 괴물을 모를 수는 있지만, 안휘성은 남궁세가의 터전이야. 그러니 타 문파가 함부로 기웃거리지 못해. 반로환동한 그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어… 게다가 자꾸 무림이 상계의 영역을 파고들면 나라에서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뭐, 그렇습니다만 꼭두각시를 앞세운다면 나라에서도 어물쩍 넘어갈지도 모르지요. 모용세가가 우리를 내세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 순간 서욱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우리가 헛된 꿈을 꾼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 괴물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는 모용세가의 일에 개입하는 건 싫어했잖아요. 그러니 또다시 개입할 가능성은 적다고 봐요. 모용세가가 멸문할 위기에 처하지 않는 한……."

곽천일은 말하면서 짜증이 났다.

'하, 그 방법밖에 없겠군. 이야기해 봤자 제자리이니…….'

그 순간 서욱의 말이 이어졌다.

"제길… 육선문 그자들이 죽었다면 모용세가는 이일을 수습하느라고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었어. 하지만 일이 틀어졌으니……."

나라의 관리를 죽이는 건 아무리 무림이 별개의 세상이라 해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대외적으로 정파를 표방하는 문파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죠, 모용세가가 곧 우리를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두렵지만 모용세가와 대척점에 서는 것. 우리가 선수를 쳐서 널리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살수들이 모용세가의 무공을 사용했다고……."

서욱이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다.

"음… 정녕 그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군. 아 참 그건 어떤가? 육선문의 문도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건……."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소문을 내는 것보다는 그들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모용세가를 모함하는 게 훨씬 좋지요. 다만 그러려면 그날 육선문의 문도들을 도와준 무인들까지 다 찾아내서 우리의 뜻에 따르게 해야 합니다."

"후, 그것 참 어렵군……."

그때였다.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헉헉!"

"상단주님. 정보당주 이극기입니다."

정보당주 이극기는 곽천일의 심복 중 하나였다.

"숨 좀 크게 들이시고 말하시게."

"아, 네……."

잠시 후 이극기가 입을 열었다.

"휘주객잔에 육선문의 인물들과 처음 보는 자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답니다. 그것도 비싼 별실을 통째로 빌려서……."

"뭐라, 술판을 벌이고 있다고?"

곽천일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음, 모르는 자들과 술판이라… 지금 상황에 한가하게 그럴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습격을 당했으니 범인을 잡으러 동분서주하고 있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육선문의 정체가 포쾌라는 건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뭔가가 있어. 뭔가가…….'

"형님 채비하십시오, 당장 휘주객잔으로 가야 합니다."

곽천일은 서욱에게 말했다.

"알았네. 가자고!"

"서둘러야 합니다. 모용일천이 알기 전에 말이죠."

한편 객잔에서 주성진은 왕천유를 바라보았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여기는 휘주상단의 앞마당이니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는 걸 모를 리 없소. 분명 보고가 들어갔을 것이오. 내 생각에 곧 나타나지 않을까 싶은데."

"만일 그들이 돈을 싸 들고 온다면 어떡할 것이오?"

왕천유는 씩 웃는다.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것 아니오. 하하."

"아니지, 상상 이상의 거액을 들고 온다면?"

왕천유는 움찔한다.

그의 집안은 나름 부유했으나 독립한 그는 언제나 생활이 빠듯했다.

물론 씀씀이가 헤픈 것도 있었다.

"하하, 그야. 잘 모르겠소이다. 너무 큰돈이면 탈이 날 수도 있는데… 한데 그들이 사주한 걸 알면서도 이토록 복잡하게 일을 꾸미는 건 왜 그렇소이까?"

주성진은 빙그레 웃는다.

'뭐 개인적 원한 때문이지…….'

주성진은 전생에서 자신을 죽인 곽천일과 서욱을 쉽게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피를 말려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줄 것이야.'

"좋은 게 좋은 것이니 그냥 이 일을 나에게 맡겨 주시오."

"에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말고 이야기해 주시오."

"궁지에 물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오. 막다른 골목에 선 그들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오. 가령 높은 관직의 자와 거래를 시도할지도 모르고. 휘주상단이 휘청일 정도의 거액의 돈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소만……?"

왕천유은 고개를 끄떡이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들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큰돈을 안겨 준다면?"

"모든 걸 내게 맡겨 주시오. 나중에 분배는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그때였다.

휘주객잔의 주인이 별실로 헐레벌떡 찾아왔다.

"허헉. 저, 여러분들을 뵙고자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성진이 나섰다.

"누가요?"

"그게, 휘주상단의 상단주님과 총국주님이십니다."

"아, 그래요? 한데 왜 우리를?"

주성진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짓자 휘주객잔의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몹시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십니다."

"알았습니다. 모시고 오십시요."

"감사합니다. 혹시나 만나기를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주성진이 손을 흔들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데 왜 그리 신경 쓰시는지……."

"그야, 저희에게는 휘주상단이 왕이니까요."

"……."

잠시 후 주인장이 곽천일과 서욱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주성진은 그들을 보며 묘한 감회에 젖어 들었다.

만나기 전에는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말자고 마음 단단히 먹었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나니 그건 기우였다.

원수는 원수이되 그렇다고 달려가서 단칼에 그들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많이 늙었군… 그래도 옛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구나.'

곽천일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왕천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거 좋은 분위기를 깨서 미안합니다. 왕 대장님."

"아. 아닙니다. 한데 저를 잘 아시네요. 저희 초면일 텐데요."

"상단주인 제가 그 정도도 모른다면 자리를 내려놓고 낙향해야지요. 하하."

왕천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아, 그야 그렇겠네요. 한데 무슨 일로 귀하신 분이 직접 행차하셨습니까? 그리고 부담스러우니 제게 말을 놓으십시오."

"음, 그러면 말을 놓겠소이다. 내가 여기 온 건 어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서요. 경우가 어찌 되었든 휘주상단이 주최한 연회에 문제가 생겼소이다. 그러니 최고 책임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외다."

"알겠습니다. 그 마음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한데 뒤에 분은 누구십니까?

곽천일은 일행들에게 서욱을 소개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왕 대장과 나머지 두 사람은 보고를 받아 알겠는데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소이다. 혹 도움을 주신 분들인지……?"

왕천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여기 네 분은 어젯밤 자객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입니다. 만일 저분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자칫 큰일 날 뻔했으니까요."

곽천일은 자신의 짐작이 맞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주성진과 일행들이 사실을 알면서도 연극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곽천일은 양은지와 강국영, 그리고 염옥매와 양일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맙소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 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하하. 사해가 동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네 분의 의기에 감탄했소이다."

강국영은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무인으로서 당연한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하하, 알겠소이다. 다름이 아니고……."

곽천일은 말을 잠시 끊고는 시선을 일행들에게 돌렸다.

"음,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여러분에게 약소하나마 답례를 하기 위해서요. 아무래도 어제 발생한 일은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오. 소문이 퍼지면 휘주상단의 대외 위신에 손상이 갈 수 있어서 말이오."

주성진은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 걸 느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실 육선문 소속은 아니지만 육선문을 돕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실례지만 성함이?"

"하하. 천서곽이라 합니다.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순간 왕천유가 나섰다.

"천 사부님은 저희가 어렵게 모신 분으로 무공과 기타 저희가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아, 그렇군요. 젊어 보이는데 대단하십니다."

"제가 동안이라서요. 그래도 내일모레는 사십 줄입니다. 하하."

주성진은 사실 지금 역용한 상태였다.

"아, 그러시군요. 이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담담합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나선 건, 제가 저희 일행의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좀 전에 유흥 삼아 서열 정하기를 하였는데 제가 1등을 하였거든요."

"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그거랑 무슨 상관이……?"

주성진이 씩 웃었다. 상대가 보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깨끗이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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