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강상 혈투 (3)
갈고리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영활하게 그의 사지를 당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음, 갈고리가 엉키지 않네.'
비록 여러 사람이 행하는 동작이지만, 한 사람이 할 때와 마찬가지로 질서정연하다.
'머뭇거려서는 안 돼!'
"야합!"
두 다리가 교차하며 한 줄기 회전력을 만들어낸다. 주성진은 그 힘을 운용해 힘껏 허리를 튕겨 올렸다.
이른바 공중에서의 2단 도약을 주성진이 시도하는 중이었다.
공력이 가득하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지금은 몸을 써야 했다.
2단 도약은 주성진의 몸을 넉 자가량, 위로 떠오르게 해주었다.
쉬익!
발아래의 공기를 매섭게 할퀴고 지나가는 갈고리들.
순간 주성진의 우수가 아래로 향했다.
스가각!
주성진은 되돌아가려는 갈고리의 줄을 모조리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또다시 날아오는 갈고리의 줄을 좌수로 잡아 휘감았다. 갈고리를 던진 자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갈고리를 잡아당겼다.
'후후후, 바라던 바다.'
주성진은 전해진 상대의 힘을 이용해 단번에 적선으로 돌진했다.
주성진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다니 용서할 수 없다.'
검을 움켜진 손아귀에 한층 힘이 더해진다. 순식간에 파란색 광채가 검봉 앞으로 쭈욱 뻗어 나온다.
"저건 검기!"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주성진이 쥐고 있는 검은 처음보다 두 배는 길어 보였다.
"아아. 석 자가 넘는 검기라니!"
또다시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오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급히 외쳤다.
"모두 피해!"
바야흐로 주성진의 검이 그들을 쓸어버리려 할 찰나였다.
"잠깐만! 저들을 우리 몫으로 남겨주시오."
물에 흠뻑 젖은 육숭이 배의 난관을 붙잡고 적선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적의 배 밑에서 잠수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소."
적의 배에 착지한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마음껏 해보세요. 뒤는 내가 맡을 테니까."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어 적들이 오히려 독 안에 든 쥐가 되어버렸다.
그 순간이었다.
퍽!
큭!
가죽 북을 치는 듯한 소리와 비명이 동시에 어우러지며 해적 하나가 스르륵 주저앉았다.
하얗게 뒤집힌 눈동자와 입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품으로 미루어 내가중수법
에 당한 듯하다.
'누구지, 저자는… 분명 아군인데.'
못 보던 자가 난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아. 금의위의 위사인가 보군.'
주성진은 다시금 그자를 눈여겨보았다.
바로 이때 신강쌍마 곽여문이란 자의 소매가 펄럭였다.
쇄애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주성진은 금의위 위사가 걱정되었다.
'음, 너무 가까운 거리인데…….'
그 순간 금의위 위사가 노기를 터트렸다.
"비겁한 놈!"
금의위 위사는 날아오는 암기를 향해 오른손을 크게 내저었다.
팅!
암기가 튕겨 나가는 소리다. 그 순간 기습한 곽여문이 화들짝 놀랐다.
'억!'
난데없이 차가운 물방울이 본인의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철포수인가…….'
본인이 암기를 던지고 상대가 소매를 휘두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주성진은 금의의 위사의 소맷자락이 칼날같이 빳빳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손길을 따라 흩뿌려지는 물방울들.
물에 젖은 천이 펼쳐지며 쏘아진 물방울이었다.
쉬쉭!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 금의위 위사가 반격을 개시했다.
손에서 바람 소리가 이는 것으로 보아 그가 지법을 전개한 게 틀림없었다.
금의위 위사는 뒤로 물러나는 곽여문에게 그림자처럼 달라붙으며 손가락을 연속해서 튕겼다.
"어어!"
곽여문은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위사의 공세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배꼽 부위가 따끔거리며 막대한 통증이 밀려왔다. 순간적으로 호흡이 막히고 손으로 배꼽 부위를 만졌더니 뜨끈한 핏물이 자신의 손을 적셨다.
"내가 저놈한테 진 것인가. 신강쌍마인 내가……."
그의 그림자가 급속히 길어졌다.
쿵!
주성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위력이 대단하구나. 도대체 저자의 무공이 뭐지. 혹 소림의 탄지신통…? 소림의 탄지신통은 웬만한 철판도 우습게 뚫어버린다고 하던데.'
휙, 휙!
그 순간 갑판 위에서는 동시다발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육숭은 문용강과 접전을 펼치고 있었고, 육숭의 사제 천상일은 천월랑이라는 여인과 겨루고 있었다.
나머지 해적들은 임호풍의 타구봉에 맞아 차례로 이승을 하직하고 있었다.
주성진이 특히 주목한 건 천상일이었다.
'어리숙해 보이던데… 내가 저자의 무위를 너무 낮추어 보았군, 이제야 진면목을 보는 것인가…….'
상대 천월랑의 무기는 붉은빛이 감도는 채찍이었다.
반면 천상일은 검을 들고 있었다. 이전 열 번의 부딪침은 언뜻 보기엔 백중세였다. 주성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천상일은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려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짙은 살기가 검신을 타고 검봉으로 집중되자 천월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저놈이… 한낱 도사 나부랭이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상당한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끈적거리는 살기가 그녀의 미간을 겨누고 있자 신경이 곤두섰다.
'음, 얼굴이 따끔거려.'
천상일은 검을 겨눈 자세 그대로 오연하게 서 있다.
한데 그녀의 눈에는 천상일이 보이지 않고 거대한 검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으으, 신검합일이다. 저건…….'
천월랑은 진저리를 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려온다. 그녀는 왼손으로 머리를 쓸어 뒤로 넘긴다. 허파가 찢어질 것만 같다.
이미 상대와 십여 합을 겨룬 후, 그녀는 침 삼키기도 거북할 정도의 탈진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쉬익―
순간, 천상일의 신형이 갑판 위를 미끄러지며 천월랑에게로 쇄도한다.
천월랑은 채찍을 당겨 끌며 오로지 전방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으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던 천상일의 몸이 흐릿해진다. 그리곤 거대한 검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채찍이 춤을 춰 보지만 순간적으로 목표물을 잃고 허공에서 머뭇거린다.
돌연 전방 좌측이 싸늘해진다.
온몸이 찌릿해질 정도의 차가운 기운에 그녀는 황급히 채찍을 회수하며 좌측을 방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허초, 실제로 혈광이 밀어닥친 것은 우측이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틀었다. 하나…….
싸악!
살갗이 날카롭게 베어지는 소리와 함께 목으로부터 얼음조각이 박혀드는 듯한 통증이 지극히 짧게 전달되었다.
그리곤 자신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쿵!
한편 육숭과 문용강의 대결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문용강은 사력을 다하여 자신의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명색이 사실상의 우두머리인 그였다. 신강에서 주름잡던 그가 듣도 보지 못한 자에게 밀리고 있으니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익힌 마공도 정종 내공신법을 익힌 상대에게 하등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놈!'
시시각각 밀려오는 두려움에 신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힘까지도 끌어올리고 또 끌어올렸다.
그가 뿜어내는 마기는 주위 공간을 흉흉한 살기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육숭은 몸을 젖히며 오른발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문용강은 상대의 후퇴가 자신의 공격을 대비하려는 것으로 믿었다.
'후후, 그러면 비장의 수를 써볼까.'
하지만 착각은 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상대가 한 걸음 물러선 것이 후퇴가 아닌, 단지 탄력을 만들기 위한 동작일 뿐이었음을 그는 깨달을 여유는 없었다.
육숭의 순간적인 돌진과 뼈를 저미는 아픔.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보고 느낀 것이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자욱한 피 냄새가 주변에 가득하다.
순간 시체들 사이에서 금의위 위사가 주성진에게 걸어왔다.
"감사하오이다. 그대가 수많은 사람을 살렸소이다."
"아, 아닙니다. 그저 할 일을 다 했을 뿐입니다."
"아, 인사드리겠소. 금의위 북진무사 소속, 장군 이한동이라 하오."
장군이라면 그 나이에 상당한 지위였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 쳐도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주성진은 그의 무공이 그의 빠른 승진을 담보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림의 무공을 익힌 무장이라… 음. 그래도 내가 알기로는 탄지신통은 소림 본산의 제자만 익힐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것도 극소수만.'
"기호상단의 상단주 주성진이라 합니다."
"그대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소이다. 다만 검호상인이 그대인 줄은 꿈에도 몰랐소이다. 이렇게 젊을 줄이야. 누구 상상이나 했겠소. 하하."
주성진은 하오문을 통해 소문을 퍼트린 게 절반의 성공도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음, 앞으로 이름 대신에 별호를 이야기해야 하나… 그래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을 거야.'
"혹 소림의 제자인가요?"
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렇소이다. 황제 폐하의 부탁으로 하산했지만 난 늘 소림을 그리워하고 있소이다."
"아아, 그렇군요. 혹 죽은 자들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십중팔구 단심맹 소속의 무리일 것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심맹은 또 뭐야.'
"그대의 얼굴을 보니 잘 모르는 모양이오. 하긴, 아직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오. 쉽게 말해서 단심맹은 총무련에 반기를 든 마교의 연합세력이오."
"하, 그렇습니까. 저도 무림에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단심맹이 마교의 잔당들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걱정이오. 저들이 화약을 다루는 것을 보니, 원나라 시절 염초의 제조 방법이 널리 퍼졌다고 하더니만 이제야 제대로 실감한 기분이오."
화약의 재료인 숯, 유황, 염초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염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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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진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화약의 위력을 보고 새삼 자신이 익힌 무공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머리가 무공을 앞서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군요. 이번에 저들이 사용한 폭시가 연사 능력이 극히 떨어져서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만일 빠르게 격발할 수 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건 그렇소만, 만일 그대가 없었다면 우리는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요. 이기어검의 고수가 중원 전체에 과연 몇이나 있겠소이까. 공주님이 운이 좋았던 거지……."
그의 마지막에 말에 주변에 있던 일행들도 동요하고 있었다.
"공주님이 배에 타고 있었습니까?"
"그렇소이다. 원래는 황제 폐하의 남방 시찰에 동행하였는데 좀 더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 이런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소이다."
주성진은 그의 말에서 공주에 대한 불만의 기색을 엿볼 수 있었다. 주성진은 그가 스스럼없이 말하는 게 혹 불경죄는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렇다고 내색은 할 수 없는지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음, 그렇다면 누가 공주님을 시해하려 했을까요?"
"그건 알 수가 없소. 하도 많기 때문이오."
주성진은 의외의 대답에 눈을 치켜들었다.
"방금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적들이 너무 많소. 왜냐면 황제 폐하의 중요 결정사항은 모두 2공주 마마의 머릿속을 거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오. 이거 참, 내가 말이 좀 많은 것 같은데 그대들을 믿고 말하는 것이니 어디에 퍼트리진 마시오. 우린 모두 함께 싸운 전우 아니겠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