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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05화 (105/250)

105화 당가로 불려가다 (1)

기세옥은 주성진을 흘깃 바라보곤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광검이 빠르고 예리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힘은 약하지. 만일 자네라면 분명 막을 수 있을 것이야. 공간을 내어주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방어막을 씌우라는 뜻이군요."

"그렇지, 온몸으로 기를 내뿜고 있으면 그만이야."

그가 말을 하면서 뭔가가 생각 난 듯했다. 주성진을 강하게 노려본다.

"이봐. 자네에게 충고하나 하지……. 자넨 왜 검막을 사용하는 건가?"

주성진은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자 당황스러웠다.

"그야 방어를 위해서입니다만……."

"검막은 우리 같은 경지에 이르려면 불필요한 기술이야. 뭐 하러 그러냐고! 내공을 뿜어 자연스레 막을 치면 되는데……"

주성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그걸 미처 생각 못 했군, 괜히 팔 아프게 검을 돌렸잖아. 무위가 상위로 갈수록 예전 생각을 고쳐야 하는데……. 음 그러면 그건……?'

"저, 어르신, 호신강기를 구사할 수 있으시죠?"

"호신강기라… 그것도 높은 경지에 이르면 잡기술이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신의 공간만 잘 지키면 돼! 고수의 싸움은 공간 대 공간의 싸움이라고, 알겠나?"

주성진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신강기가 잡기술이라고? 혹 호신강기를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호신강기는 무엇보다도 위기 때, 그 빛을 발하는 무공이었다.

가령 수면 중에 공격받아도 최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주성진은 하나라도 더 얻어낼 것이 있기에 불필요한 논쟁을 피해갔다.

"네. 그렇군요. 하여간 광검은 굉장한 기술로 보입니다. 특히나 다수를 상대할 때 유리할 것 같습니다."

기세옥이 고개를 끄떡였다.

"무적의 살인광선이 되는 거지. 단 상대가 고만고만했을 때만."

"아, 그렇군요. 빛이 분산되면 흐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군요."

"그렇지, 하나 그걸 극복할 방법은 있지. 자네 주장대로 무식하게 내공을 더 키우면 된다네. 난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주성진은 곧바로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깨달음이 났다는 것이죠?"

"그렇지 깨달음만 있다면 심검도 불가능하지 않아.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아 참, 내가 한 가지 빠트린 게 있군……. 음, 병기의 중요성을 빠트릴 뻔했어, 이번에 자네 덕에 절실히 깨달았는데……."

"병기의 중요성을요?"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네. 자네가 가진 보검처럼."

"무림에는 신병이기가 많이 있나요?"

"뭐, 많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순 없겠지. 비근한 예로 만년한철로 만든 검이나 운철로 만든 검이 존재하니까……."

"그럼, 전설의 검은 어떤가요? 가령 막장검 같은?"

"글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청동검이 철검보다 뛰어나다 할 수 있을까? 그 시절엔 철기 사용이 보편화 되지 않은 시절이라, 난 좀 회의적인데……"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보검이라 알려진 것이니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하."

"자넨 떠도는 전설이나 신화를 믿는 편인가 보군?"

"제가 몽상가는 아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법이나 강시의 존재가 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믿기 힘들지만, 실제 하니까요."

기세옥은 싱긋이 웃었다.

"후후, 난 그런 걸 모두 기로 해석하고 있지. 우주의 기 말이야. 그러니까 뭐냐, 사물의 기운은 밝은 기운과 암흑의 기운으로 나뉘는데, 자네가 말한 건 모두 암흑의 기운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어……."

"……."

"하나 내 말을 곡해하지 말게. 암흑의 기운이 다 나쁜 건 아니니까. 반대로 밝은 기운이 다 좋다는 건 아니야."

주성진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럼 부적술이나 술법을 연구하는 자들, 혹은 귀신을 불러내는 무당들은 모두 암흑의 기운과 관련이 있겠군요. 반대로 정파의 내공은 밝은 기운에 속하겠고요. 한데 사공이나 마공은 잘 모르겠는데요……."

"내 생각에 사공이나 마공은 밝은 기운과 암흑의 기운이 뒤섞여 있다고 봐. 고대 마교나 혈교의 괴상한 수법들이 단적인 예이지……."

그들은 그 이후에도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까지도…….

다음 날 주성진은 당가의 긴급 연락으로 객잔을 떠났다.

'아직 회갑연 전인데, 왜 나를 부르는지 짐작이 가는군.'

고대하던 당가홍 부녀에게 내단 한 알을 건네었을 때, 당가홍이 당가에 연락했노라고 말했었다.

사천당가에 도착한 주성진은 당가 제자의 안내로 넓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내부에는 입추의 여지 없이 정파의 인사들로 가득했다.

주성진이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모습도 보인다.

개방 장로 이곽춘, 당문의 연락당주 당천기, 화산옥봉 감여군 등등.

주성진이 들어서자 그들은 회의를 멈추고 일제히 주성진을 바라봤다.

회의를 주관하던 당문 가주 당운악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와 주었구려. 음, 미안하외다. 예정에 없던 일로 오라고 해서……. 어제부터 우리끼리 회의를 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었소이다. 하여 당사자이기도 한 그대의 이야기를 안 들어 볼 수가 없었소이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괘의치 마십시오. 저는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하하. 이거 그래도… 그대의 자리를 비워놓았으니 우선 저기에 앉으시오."

주성진은 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당운악이 말문을 열었다.

"음, 솔직히 지금의 상황에 가장 애가 타는 사람은 본인이외다. 지금껏 숱한 위기와 천재지변을 헤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려는 모양이오. 사천성을 이대로 사파 놈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 않겠소?"

사실 주성진에게는 이번 상황이 절호의 기회였다. 사천에서 사천상단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정파 세력을 등에 업는다면 사천상단 쯤이야…….'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당장은 사도련의 잔당들과 내통하고 있는 사천상단을 어떡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니까요."

"그 부분은 그대 덕에 명분을 갖추었소. 총무련에서는 불온한 무리를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바, 그들과 내통한 사천상단을 무림의 법으로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소. 아무리 그들이 나라에 하소연한다고 해도, 이번 경우는 과거의 사례로 볼 때 문제가 되지 않소이다."

당가 가주의 말처럼, 무림과 상계는 상호 불가침의 관계였다. 물론 사소한 충돌은 내내 이어왔지만…….

하나 그건 지엽적인 거였다. 전면적으로 무림이 나서 상단을 치려 한다면 그건 나라에서 좌시하지 않았다.

"하면 완벽한 증거가 필요하겠군요. 그들을 옭아매려면……. 물론 제가 증인으로 나설 수는 있지만요……."

당운악이 지긋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후후 우리 당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소이다. 우리에게도 눈과 귀가 건재하외다…….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그들 하수인 몇을 잡아서 관련 증거를 확보했소이다. 그들은 근래 주의할 인물로 우리가 주시하던 자들이었소."

"아, 그렇습니까? 잘 되었군요."

"현재 시점에서 사천상단을 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소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사도련의 잔당들이요. 자칫 역으로 뒤통수를 맞을 수가 있소이다."

주성진은 당가타와 비교해서 이곳이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 취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평상시야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지만…….

"네, 그도 그렇군요."

주성진은 이 문제야말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개입할까……. 일단은 좀 더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저, 가주님, 제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서요? 뭐든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개방 장로 이곽춘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하하. 다시 보게 돼서 반갑소이다. 나는 그대가 사파 놈들의 표적이 된 것이 당가의 반역도를 처리하고부터라 생각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거지만 저를 죽이려는 자들이 더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고혼이 되었지만요."

그러자 그가 눈을 크게 치켜뜬다.

"내가 알기론 그대가 어딜 다녀왔다는 보고를 들었소이다.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오?"

주성진은 대답을 유보하고 고개를 돌려 당가홍을 바라보았다.

'그가 토룡지왕에 대해 말한 건 아니겠지?'

주성진과 눈이 마주친 당가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음, 음. 그건 제가 말씀드리지요. 실은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이라 이 자리에서 말하긴 곤란하군요."

주성진은 살짝 미소 지었다.

'하긴 그걸 이야기할 리가 없지. 그럼 어딘가에서 개방 제자가 날 본 모양이군.'

개방 장로 이곽춘은 당가홍을 잠시 노려보았다.

'흥, 둘이 뭔 일을 도모했구나. 주성진이 일개 객잔 주인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이곽춘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주 상단주는 참으로 공사다망하오이다."

살짝 비꼬는 말투다.

"하하. 제가 답례한 겁니다. 저분에게 암기술의 원리를 배웠거든요……."

이곽춘이 순간 머쓱해졌다.

'이런… 체면 구기게 생겼네.'

"음, 일단 알겠소. 그건 그렇고 죽이려는 자들이 누구였소?"

"제가 강호 경험이 짧아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상착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성진은 말하면서 동시에 기세옥이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네, 그거 아나, 자네의 경지가 되면 사물이나 인물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지."

"네, 오래되지 않은 거라면, 한데 그건 왜?"

"눈을 감고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보게, 그리하면 사물이나 인물을 제법 묘사할 수 있다네."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내가 봐줄 테니 오늘 여기서 죽은 자들을 땅에다 그려보게. 자네 자신을 믿어, 알겠지……."

한편 이곽춘은 옳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럼 화공을 불러올 테니 말해 줄 수 있겠소?"

"네, 그 전에 제가 서툴지만 그들의 용모파기를 그려보겠습니다."

그 순간 당가 가주가 자신의 부하에게 손짓했다.

"가주님, 부르셨습니까?"

"너는 당장 예문학을 데려오거라. 올 때, 문방사우도 같이……."

"네. 알겠습니다."

당 가주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주 상단주, 예문학 그 녀석은 내 막냇사위가 될 녀석이오.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오."

"아, 잘되었군요. 멀리까지 가서 화공을 섭외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잠시 후, 앳된 얼굴의 예문학이 나타났다. 그의 곱상한 얼굴이 영 무인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곧바로 주성진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용평과 습근의 얼굴을 떠올리며…….

쓱쓱……!

조금씩 종이 위에 그린 선들이 사람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중인들은 주성진이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는 걸 무척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 됐다! 일단 여기까지가 내 한계이고.'

더는 그림을 제대로 배워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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