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104화 (104/250)

104화 기세옥이 광검을 펼치다

한편 걸어오던 두 사람은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시야에 주성진과 기세옥이 잡힌 거였다.

"이봐, 용평, 수상한 놈들이 있는데……."

"그러게 말이다. 여기가 조용하다고 해서 일부러 왔건만, 사천상단에는 공개 비무장밖에 없잖아."

"그래도 거기서 할 걸… 괜한 시간 낭비가 아닌지 모르겠네."

용평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야, 습근아. 난 어중이떠중이 똥파리들이 모여들어 우리 둘의 대결을 지켜보는 걸 원치 않아."

"뭐 그건 그래, 사실 여기가 당가타가 있던 곳이니 호기심에 한번 와보고도 싶은 것도 있었고……."

용평은 고개를 끄떡이며 습근을 바라본다.

"이봐, 쟤들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건 그렇게 보인다마는. 한데 경계하는 놈들이 저들을 그냥 통과시킨 건가?"

"아닐걸, 너도 봤잖아 경비하는 자들을… 그들 실력으로는 잡상인이나 내쫓을 정도라고."

섭근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네 말은 저들이 경비 무사들의 눈을 피해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냐?"

"야,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음, 그래도 말이야 간만에 우리 둘이 몸 좀 풀어보려 했는데 쥐새끼가 끼어들다니 좀 짜증나네. 아 참, 두꺼비 그놈은 왜 안 나타나는 거야. 막내 주제에 감히 형님들을 기다리게 만들어."

"하하. 그놈이 막내라고 하면 입에 거품을 물걸? 자기가 먼저 태어났다고 바득바득 우기잖아."

이야기를 듣던 용평은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섭근아. 이 기회에 그놈이 오면 우리 셋이 서열을 정하자, 우리 둘은 여기서 서열을 정하면 되겠고,"

"좋다. 하지만 임시야, 서열이 영원할 순 없잖아."

"두말하면 잔소리지… 대외총책 그자가 상인 놈 하나 죽이라고 부르기에 기분이 불쾌했는데, 차라리 잘됐어. 이번 기회에 내가 형님 소릴 듣게 되었으니 말이야, 하하."

섭근은 용평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야. 누가 할 소리를… 네깟 놈은 열이 덤벼도 날 이길 수 없어!"

"어쭈, 그러다 지면… 그 창피를 어이 할 꼬나……. 쥐구멍이라도 기어들어 가야 할 거다. 하하……."

"이봐. 입이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너 예전에 두꺼비에게도 진 적이 있잖아. 하지만 나는 그놈을 가뿐히 이겼다고!"

용평은 섭근을 살짝 노려봤다. 눈에는 가소롭다는 빛이 역력했다.

"너는 어느 적 때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게 벌써 20년 전 이야기라고. 그리고 난 그놈에게 진 그것이 아니야. 그날 내가 고뿔이 걸려서 몸이 안 좋았다고."

"무인은 항상 싸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그따위 변명 따윈 필요 없어."

"흥, 잘났어. 정말…! 그래 오늘 나에게 당해봐라! 네 주둥아리를 꿰매 줄 거다."

한편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던 주성진이 입을 막고 하품을 한다.

'빨리 올 것이지. 애들처럼 재잘거리긴…….'

그 순간 기세옥이 입을 열었다.

"저자들! 전혀 경계의 빛이 없네, 우리가 만만하게 보이나 봐."

"그야 저희가 완전히 기세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가까이 다가오면 눈치챌 거예요. 저들도 실력자들이니까요."

"하하, 얼마나 다가와야 눈치챌까? 만일 저 녀석들이 까불면 내가 처리하지, 기련검객 조천걸의 강호 재출도 기념으로……."

주성진은 씩 웃었다.

"어설프게 작명하다간 나중에 웃음거리가 돼요."

"녀석, 내가 그리 허술해 보이냐? 설산검객 조천걸은 실제 있었던 인물이야. 무공도 꽤 세다고… 하지만 그 녀석의 운은 그게 다였어. 내가 이름 모를 동굴에서 다 죽어가는 그를 발견했거든……."

"……."

"누군가와 싸운 것도 아니야. 독초를 잘못 먹고 중독된 거였어. 내가 손쓰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고. 젊은 친구 중에는 무공을 곧잘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주성진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그의 이름은 뇌리에 없었다.

'모르겠는데, 변방에서 활약하는 인물인가 보군…….'

"저, 그와 죽기 전에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요?"

"아니야,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가 싸우는 걸 봤어, 잘 싸우더라고……."

그사이 그들이 주성진과 기세옥에게 점점 다가왔다.

한데 두 사람이 기세옥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계속 주성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섭근은 용평에게 작게 속삭였다.

"맞지? 주살 대상 주성진?"

"그래……. 용모파기에 그려진 그대로야. 우리 대결은 잠시 미루고 우선 저놈부터 처리하자고. 옆에 있는 놈도 쓱싹 해버리고……."

"알았다. 한데 무공을 곧잘 한다고 하더니만 영 별로인데, 아무리 기세를 갈무리하고 있더라도 내 눈을 속일 수 없지. 딱 봐도 견적이 나오는데……."

그러자 용평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섭근은 씩 웃으며 용평을 바라보았다.

"알았다, 그러면 내가 처리하마."

용평은 급히 손을 흔든다. 주성진을 누가 먼저 저승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향후 대접이 달라질 것이었다.

"아니야 내가 처리하마."

"아니야 내가……."

"내가……."

섭근은 얼굴을 찡그리며 용평을 바라보았다.

"에이 할 수 없지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그래……."

한편 주성진과 기세옥은 그들이 모깃소리를 내도 다 듣고 있었다.

둘은 느긋하게 전음으로 대화한다.

―너! 원수가 많구나. 저자들이 널 죽이려 하는데…….

―글쎄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긴 있었는데…….

순간 주성진의 머리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혹 사도련!'

―어르신, 제 생각에 저들은 사도련의 부활을 꿈꾸는 패거리들 같습니다. 일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처음 보는 자가 바로 절 알아보더라고요. 미리 저의 용모파기를 숙지한 거죠. 아, 저들 패거리에 사천상단도 들어 있습니다.

기세옥은 빙그레 웃었다,

―사파 놈들이라고? 요사이 무림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려는 구나. 사도련의 부활을 꿈꾼다, 이거지?

―네, 자세한 사정은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오늘만은 살계를 펼쳐야겠다. 저놈들이 나까지 한꺼번에 죽인다고 하니…….

―네, 심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자들로 보입니다.

전음을 끝낸 기세옥이 전면으로 나섰다.

"이것들아, 내가 물로 보이냐, 내 목이 그리 가벼워 보여?"

그러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란다.

"허!"

"어!"

그들은 자기들끼리 나지막이 속삭인 것을 상대가 들었다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색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리끼리하게 변해갔다.

'엄청난 고수야…….'

'엿 됐다…….'

그 순간 기세옥이 말을 이어갔다.

"귀찮으니까 둘이 한꺼번에 덤벼. 셋을 셀 동안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간다."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휙!

한데 방향이 반대 방향이다.

그들은 이심전심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는 거였다.

'제법이군, 그래도 꼴에 눈치라는 게 있다, 이거지…….'

기세옥은 그들이 재빨리 위기를 감지하는 것을 보고 내심 이죽거렸다.

'그래도 어쩌냐, 날 만난걸……."

그들이 쏜살같이 도망가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슈악!

그의 목검이 번쩍이는 순간 단숨에 빛무리가 앞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빛의 향연이었다.

주성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폭발이야. 세상에 광검이라니…….'

광검은 검에서 뻗어 나온 검광과 혼동할 수 있지만, 엄연히 달랐다.

왜냐면 실체가 또렷이 있기 때문이었다.

방어하지 못하고 직격당하면 최소 사망이었다.

스걱!

눈동자가 한 번 깜빡인다 생각한 순간 두 사람의 목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들은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죽으면서도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

쿵! 쿵!

그들의 수급이 떨어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주성진은 그들을 묻어주고 돌아왔다, 적이라곤 하나 까마귀밥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돌아온 주성진은 기세옥을 바라보았다.

"시신을 묻어주는 내내 어르신이 펼친 광검을 생각했습니다. 언뜻 생각한 게 검기의 일종 같아 보였는데 맞습니까?"

기세옥은 빙긋이 웃었다.

'그럼 생색 좀 내볼까. 뭐 원리 정도야…….'

"그전에 자네는 내가 펼친 게 광검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아, 그게 책에서 봤습니다. 일반 시중에서 구해본 건 아니고 천화각의 서고에서 보았습니다."

"천화각? 거긴 뭐 하는 곳이냐? 혹 기녀들이 나오는 곳?"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기원은 아니고요. 무림 문파 중 한 곳으로 인정받은 곳입니다."

"인정을 받았다고……?"

"그게 좀 복잡한데, 바로 말씀드리지요."

주성진은 그에게 천화각에 대해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음, 재미있는 곳이군. 내가 너무 세상을 등지고 살았나 보네……."

"뭐, 이제 당분간 저와 같이 지낼 텐데, 곧 적응하실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거기부터 가자고, 기원 말이야."

주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기원 말입니까?"

"이봐 뭘 생각하는 거야. 나는 거기 가서 예술혼을 펼치고 싶은 거라고. 시를 짓고 그림을 논하려 한단 말이야."

주성진은 그가 예전에 한량이 아녔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일면 맞았다.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치는 기녀들이 있었다.

그와 같이 유명한 기녀들은 금기서화는 물론이고 악기와 가무까지 못 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들이었다.

"아, 네… 그렇게 하시지요, 하하."

"그래, 오랜만에 다시 세속의 때를 묻히려는데 기왕에 첫 출발지가 좋아야 하지 않겠나? 더구나 물주가 내 눈앞에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안 그래?"

"알겠습니다. 다만 가더라도 소문은 내지 말아주십시오.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떡이며 넌지시 물었다.

"좋아하는 여인이 있나?"

"네. 그렇습니다. 차차 알려드리지요. 그건 그렇고, 헤헤."

주성진의 눈웃음에 기세옥은 고개를 끄떡였다.

"광검은 검기의 연장선이야. 하지만 이기어검을 터득하지 않고선 전개하기가 녹록하지 않아. 이는 물론 내 기준이고 다른 방법으로 광검을 시전할 수도 있을 것이야. 확신할 수 없지만 검환을 구사할 수 있는 자라면 광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주성진은 검환을 생각해봤다. 그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거였다.

'검환은 강환의 일종이지…….'

강환는 강기의 상위 혹은 응용기술로 강기를 구 형태로 동그랗게 압축시키는 기술로 보통은 구슬 형태를 띤다.

크게 보면 강기와 같이 외부에 기를 유형화시키는 기술이었다.

보통은 상대가 있는 곳을 향해서 강환을 날려 폭탄처럼 터트리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

"내가 광검을 연마하게 된 계기는, 오늘 같은 일이 예전에도 있었는데 결국 경공 실력이 딸려 그놈을 놓치고 말았지. 해서 도망가는 놈을 놓치지 않으려 연마하게 되었어. 하지만 광검이라 해도 만능은 아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