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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61화 (61/250)

061화 도공과의 거래 (3)

도자기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너무나 작아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웬만한 무림인조차도 아무리 유심히 들여다본다 한들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내공의 힘을 빌려야겠군.'

주성진은 내공을 돋우어 글씨를 바라봤다. 그러자 깨알 같은 글씨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다지, 노다지, 금 노다지.]

'헉, 금이라고, 그럼 이게 보물지도? 그렇다면……?'

주성진이 번쩍 떠올린 건 어린아이가 그냥 모래톱의 조약돌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사금을 채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노인이 주성진이 하는 양을 쳐다보며 미소 짓다가 곧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주 상단주요!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구려."

주성진은 도자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헤헤, 그렇습니다만. 글자가 보이네요……. 한데 그려진 곳이 존재하기는 한가요?"

노인이 씩 웃었다.

"난 존재한다고 생각하오. 사실 내가 열화문에 있을 때 우연히 낡은 창고 속에서 이 도자기를 처음 발견했소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간직하고 있었지만 결국 나도 알아내지 못했소. 그러다 한 5년 전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건 내 능력 밖이다고."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인지?"

"중원은 넓소이다. 그림 속의 풍경을 봐서는 위치를 찾을 수가 없지, 안 그렇소?"

"네, 그렇다면 다른 게 있다는 뜻인가요?"

노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림 안의 그림, 이게 내 선물이오. 하하."

"그림 안에서 또 다른 그림을 찾아라 이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겁니까?"

"그건 나의 확고한 느낌이요. 10년 전 어느 날 달빛 아래서 도자기를 안고 하염없이 쳐다보는데 도자기의 그림이 순간 변하는 것 같았소이다. 그리곤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봤지만, 아니었소. 그 후로 틈틈이 살펴보았지만 그런 변화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소."

"……."

"그래서 나와는 인연이 아니다 생각했었지. 그런데 말이요. 이 백자는 다른 의미에서 내게 보물 같은 존재였소. 광택을 보시오, 여타의 도자기와 좀 다르지 않소이까?"

그러고 보니, 먼지를 닦아낸 백자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윤택이 자르르 흐르고 있는 백자의 빛깔은 이제 막 백설이 내린 듯하였다.

빛깔뿐이 아니었다.

오래된 도자기로 보이지만 유약의 균열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백자였다.

"호! 그렇군요. 유약이 여타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다 난, 이 도자기와 비슷한 유약을 찾느라 그간 관련 서적을 뒤지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소이다."

"대단하시군요."

"결국, 6년 전에 해답을 찾았소. 어느 날 가마터에서 도자기를 굽는데 불현듯 이 생각이 들더라고. 이 백자를 만든 사람은 그냥 일반 도공이 아니라 열화문의 무공고수일 거라는……."

"……."

"그래서 그분이 유약을 만들 때도 열양공을 이용했을 거라는 확신에, 나도 유약을 만들 때 열양공을 사용했소이다. 근 1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성공했지. 한데 그때부터 내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소. 더는 무리하게 열양공을 쓰면 안 되는……."

"……."

"그래서 방법을 알면서도 지금껏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경우가 다르지 않겠소? 난 이제부터 내가 만들 술잔에 열양공을 사용한 유약을 만들 것이오, 하하."

주성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도자기를 선물로 받아도 될지 고민했다.

'이거, 혹 열화문의 가보일지도 몰라.'

"저. 이 도자기가 열화문의 보물일지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랬다면 낡은 창고 속에 버려져 있었을까. 그리고 말이요. 귀물은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라오. 나는 아니라는 뜻이지. 물론 그대도 주인이 아닐 수도 있소이다. 만일 그렇다면 누군가에 선물로 전해주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주성진은 품속에서 전표를 꺼냈다.

"은자 천 냥입니다. 재료값 하십시오."

"아니. 이런 큰돈을! 아직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때론 그런 게 필요 없을 때도 있는 법이지요. 사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겠습니다. 그때 정식으로 주문물량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노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계약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신뢰가 쌓이고 있었다.

노인은 성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대단한 친구야, 어찌 저런 인물이 무림에 뜻을 두지 않고 상계에 뜻을 두고 있었을까……. 저 재주와 배포가 부럽도다.'

얼마 후, 객잔으로 돌아오자마자 주성진은 일행들에게 질문 세례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자. 중구난방으로 묻지 말고 대표를 정해 물어주세요. 정신 사나워서 답을 해드릴 수가 없군요."

그러자 그들이 모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그사이 주성진은 오늘의 일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뭔가 아주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판로는 천화각을 통해 시작하자고, 입소문이 나면 금방 사려는 사람이 몰려들 거야. 소장가치로 제격이니…….'

주성진이 이것저것 사업 구상을 하는 사이 그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들이 정한 대표는 무당 제자 김남선이었다.

주성진은 아무래도 그들의 질문이 도자기에 그려진 산수화의 비밀 및 양강지력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하였다.

김남선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 음 도자기를 좀 볼 수 있겠소. 물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보여 달라는 건 예의가 아닌 건 알겠는데, 그래도 우리가 그동안 쌓은 정이 있으니 뭐 그 정도는 가능할까 싶은데……."

주성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보는 건 문제없는데 절대 손으로 만지지는 마시기를."

주성진은 곱게 포장한 도자기를 탁자 위에 펼쳤다.

'여기서 깨알 같은 글씨를 볼 수 있는 인물은 화산옥봉 감여군 여협과 감전동, 그리고 김남선뿐일 것이야. 그들의 내공이 이미 일월합벽의 경지를 넘어섰기에.'

일월합벽이란 일류를 뛰어넘어 초일류에 들어서고 다시 절정고수로 향하는 첫길에 들어섬을 의미했다.

감여군은 이미 그 경지를 사뿐히 넘었고, 감전동과 김남선은 절정고수에 초입에 걸쳐있었다.

그들이 도자기를 보려고 몰려든 사이 주성진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과연 내 예상이 맞을까. 표정을 보면 알 수 있겠지.'

잠시 후 주성진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례대로 도자기를 살피고 있었다.

'하. 이것도 수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니 대단히 진지해지는데.'

주성진은 공력을 끌어 올려 그들의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표정을 살피는 것은 나중에 장사할 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이었다.

상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잘 살펴야 하지만 주성진이 연마하려는 건 그 차원을 넘어선 일이었다.

순간 주성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야, 보자 정말로 맞는지.'

그들이 모두 백자에서 눈을 뗐을 때 주성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하. 세 분은 아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러자 강설현이 뾰로통한 모습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칫, 나는 기를 써도 보이지 않던데, 대체 그분들이 누구야?"

"그건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고 내용은 내가 이야기할게, 백자에 적혀져 있는 글귀는 노다지, 노다지. 금 노다지야. 내가 생각하기엔 저 강이 있는 곳에 사금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야."

주성진이 말하는 순간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주성진을 향했다.

"사금이라고?"

"그래 어딘가에서 떠내려오는 금 조각이라는 것이지, 내 생각에는 백자에 그려진 산 어딘가에 금광이 있었던 것 같아. 물론 지금도 캐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지금은 폐광 상태에 있지 않을까 싶어. 금을 캐던 이들은 모두 한때 재미를 보고 떠났겠지……."

그러자 강설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 왜? 사금이 나온다고 가정하면 계속 파면 될 것 같은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 파는데도 점점 양이 적게 나온다면! 땅을 깊게 파면 팔수록 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채굴 시의 위험도 커진다고."

"알겠어, 네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

주성진은 그녀의 말하는 표정이 귀여웠다.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김남선의 음성이 들려온다.

"질문을 추가해도 되겠소?"

"하시구려."

"일단 글귀는 알겠고, 그러면 아까 두 사람이 이야기할 때 '그림 안에서 또 다른 그림을 찾으라는 게' 사금이 있는 정확한 위치가 도자기 어딘가에 있다는 뜻인 거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이다. 도공 그분이 풀지 못한 문제인데 나더러 풀어보라는 것이지. 푼다면 횡재하는 것이고……. 또 질문이 나올까 봐 먼저 밝히는 건데 난 아직 그 비밀의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소. 내 말은 여러분과 똑같다는 뜻이오."

"음, 그렇구려, 솔직히 우리는 대단한 무공 비급이나 영약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소. 한데 사금이라고 하니 뭐 관심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실망감이 드는 건 사실이오."

주성진은 그를 보며 미소 지었었다.

"하하. 무림인 아니라고 할까 봐…….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은 없소, 없으면 이만 종료하고 싶은데."

"그 찻잔 말이오. 그거 나오면 우리에게 공짜로 좀 줄 수는 있는지. 문파에 돌아가서 장문인께 드리려고 그러오."

"그야 문제없소. 대신 널리 홍보는 해줘야겠지요."

김남건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그야, 이를 말이오. 당연히 그렇게 하겠소. 그리고 이건 마지막 질문인데 어떡하면 열양지를 터득할 수 있겠소? 비결이 뭐요?"

"그때 같이 있지 않았소이까. 그대의 삼촌이 말한 대로 하면 된다오. 진지하게 다시 한번 시도해보시오."

"음, 그대처럼 내공이 높아야 하는 건 아니고?"

주성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최소 일류급의 내공이 필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오. 뭐 추가로 덧붙이자면 비결은 정기신의 합일에 있지 않을까 싶소. 내 말은 도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선이 되는 길은 아니고, 그저 음양오행을 궁구해서 심신을 건강하게 다지면 된다는 말이외다. 주역을 다시 한번 보길 권장하겠소."

주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가 급히 붙잡는다.

"미안하오. 이번이 진짜 마지막 질문이오."

"……."

"음. 그대가 도자기의 비밀을 풀었다고 가정하고. 그러면 그 비결을 공개할 수 있으시오?"

주성진은 딱 부러지게 고대를 저었다.

"하하. 그건 곤란하오."

"아. 알겠소. 솔직히 무례한 질문인 건 알겠는데 우리는 저 백자를 깨뜨리면 그 속에서 뭔가 비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소이다."

주성진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래, 노인에게 들은 말을 좀 돌려 말해 주자,'

"음, 나도 처음엔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 떠오른 건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오. 물론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고."

시간이 흐르고 열어둔 창문을 통하여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으로 인하여 방 안을 밝히는 두 개의 유등이 일렁거렸고 방 안에 그득하던 그림자들도 일시적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객실에 있는 주성진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있던 모습으로 보아 운기조식 중인 것 같았다.

그 순간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주성진의 주변에 맴돌던 청량한 기운이 스르륵 콧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하하, 몸이 날아갈 듯 가볍군. 며칠간의 피로가 싹 풀렸어, 장뇌삼을 먹은 효과를 보는 듯하이…….'

주성진은 저녁을 일찍 먹고 다시 한번 짐을 정리하는 중에 똥보 상인이 가지고 있었던 장뇌삼에 눈이 갔다.

수령이 150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잠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먹기로 했다.

만일 수령련이 200년 이상이라면 유보했을지도 모른다. 영단의 주재료로 쓰임새가 있기에…….

'음, 그래도 창밖을 보니, 못해도 시간이 두 시진 정도는 흐른 것 같은데. 좋은 기운을 흡수했으니 소화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린 것이리라…….'

약간의 공력 상승을 기대한 주성진은 객실의 탁자로 가서 앉았다.

운기조식으로 몸을 풀었기에 더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탁자에 앉은 주성진은 자신의 짐 속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책의 제목은 비검록인데 이미 숙독하고 요즘 틈틈이 짬 날 때마다 연습하고 있는 무공서였다.

원래 명칭은 온데간데없고 단순히 비검록으로 명명된 책이었다.

'이기어검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검법이라고 했겠다…….'

주성진이 비검록을 꺼내 든 건 자신의 진척 상황을 책을 다시 보면서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이 무공서는 일찍이 강설주에게 투자금 대신 받은 비급 복제본 중 하나였다.

누군가 천화각에서 돈 대신 대련 비용으로 남기고 간 것이었는데, 다른 건 집에 남겨 두고 이것만 이번 사천행에 심심풀이로 들고 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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