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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60화 (60/250)

060화 도공과의 거래 (2)

잠시 후 웃음을 멈춘 노인이 여전히 들뜬 표정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대는 열화문을 알고 있었소, 그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한계와 부작용도 알고 있었소이다. 사실 내가 하려는 작업은 열양공이 필요하다오. 흙을 빚을 때부터 가마터에서 구울 때까지, 열양공이 없다면 만드는 데 시간이 많아 소요될 뿐더러 실패한 도자기가 속출할 것이오. 그러면 단가가 오르는 건 자명한 이치고."

"아! 그런 작용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그리고요, 실은 제게 또 다른 동업자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한테 열양공에 대해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원래 그분은 무공을 익힌 의원이었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야기 전하기가 쉽겠소이다. 사실 난 열화문의 제자가 맞소, 하지만 돌아가신 사부가 열화문 내에서 비주류라서 나도 비주류로 따돌림을 당했지……. 그 후 사부와 나는 견디다 못해 무림에 나서지 않는 조건으로 열화문을 떠났소이다……."

잠시 동안 그의 말이 이어졌다.

"……."

"음, 그 이야긴 이쯤하고 내가 그대에게 요청할 게 있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내가 탁한 내공을 정화하게끔 그대가 도움을 주었으면 하오이다. 수령이 적어도 200년 이상인 산삼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걸 구할 수는 없으니, 열화문의 비법으로 내공을 정화하려고 하오이다."

"……."

"물론 그런다고 영원히 부작용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10년은 끄떡없을 것이오. 어쨌든 10년간은 열양공의 부작용으로 돌연사할 일은 없을 것이오, 허허."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도와드리지요. 한데 과연 제가 도움이 될까요?"

"그럼. 그렇다마다! 그대 정도면 충분히 자격이 넘치고도 남소, 내가 그대의 내공을 느꼈다고 했을 때 난 이미 그대의 내공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소이다. 왜냐면 그 정도로 내게 감응이 오려면 적어도 양강 계열의 내공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하거든. 그대가 미미한 수준이라면 난 전혀 느낄 수 없었을 것이오."

주성진은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

'음 내가 열양공을 익힌 건 아니지만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열양공에 버금가는 기운을 내뿜을 수는 있지. 그렇지만 내가 그의 공방을 지나면서 일부러 의식하진 않았단 말이야. 그렇다면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기운이 방출됐다, 그건데?'

주성진의 미간이 점점 좁혀진다. 머리를 과도하게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바로 그 순간, 주성진의 눈꼬리가 위로 향했다.

'아! 그렇군, 도자기 가마터를 둘러볼 때 개중에 몇 개는 방금 화덕을 개방한 탓에 굉장히 뜨거웠었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몸속 뜨거운 기운이 이에 반응한 것일 거야, 뭐 이열치열이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기운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어르신이 때마침 그걸 느낀 거야.'

주성진이 잠시 고뇌에 찬 모습을 보이자 그가 반응했다.

"이보시오, 무슨 일이 있소?"

그제야 생각을 접은 주성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아닙니다."

"난 또… 그대가 도움을 준다니 정말 고맙소이다. 한데 지금은 아까 느꼈던 기운을 느낄 수가 없는데 그건 무슨 이유이오? 다만 말하기 꺼려진다면 말 안 해도 상관은 없소이다."

'뭐, 말해줘도 상관없지,'

주성진은 자신의 동업자인 김선우에게 배운 걸 그에게 말해 주었다. 성진의 일행들도 덩달아 귀를 쫑긋거린다.

다만 일행 중 그의 조카인 김남선과 정민아는 당시 그 자리에 있었기에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성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고 있었다.

자신들도 틈틈이 시도하긴 하지만 여전히 실패한 걸 주성진은 이미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무공의 깊이에서 주성진과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

'휴…….'

주성진의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경청한 노인이 돌연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하하, 하하하……."

"하, 음양오행이라! 내가 제대로 한 수 배운 것 같소, 알려줘서 고맙소이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 이야기가 참고가 됐다면 좋겠네요. 그건 그렇고 제가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될까요?"

엷은 미소를 짓던 노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내 부탁은 말이오, 다름 아니라 내가 열화문의 단약을 먹고 운기조식하는 동안 날 꼭 잡아달라는 거요. 분명 내 몸이 흔들릴 텐데 그리 놔두면 필시 난 주화입마에 빠져들 것이오, 이는 문헌에 기록된 내용이라 확실한 거요."

"……."

"한데 문제는 그대 외에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이오. 내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발산되기 때문에……."

주성진은 어느 정도의 열기인지 알고 싶었다.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습니까?"

"하하. 그 정도가 아니오, 보통 사람이면 이미 까만 재가 되어 있겠지."

"허……."

"뭐……."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란다.

당연히 주성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잠시 후 떨리는 마음을 삭이며 주성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 여전히 그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음, 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주성진도 사람인지라 과연 본인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못 하겠다고 말하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야 원, 날뛰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네.'

그 순간 화산옥봉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은 노인에게 향해 있었다.

"잠깐만요, 제가 주 상단주의 임시호위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상단주의 신상에 변고가 발생한다면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주 상단주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제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습니다."

노인은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오래된 생강이 맵다고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답게 그녀의 의도를 바로 읽어냈다.

"하하,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주 상단주가 손가락으로 굵은 장작에 불을 붙일 수 있는지, 없는지로 판가름하는 걸로……."

화산옥봉은 빙그레 웃었다.

"호호. 좋아요, 만일 불을 붙인다면 제가 인정하지요."

그녀는 호위의 임무와 별개로 이 기회에 주성진이 과연 열양지를 펼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주성진은 눈빛으로 화산옥봉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내 마음도 안심이 되겠어. 내 마음속에 불기운이 있는데, 내가 불에 타겠냐고, 절대 아니지…….'

곧바로 가마터에 쓰일 굵은 장작이 준비되고 주성진은 호흡을 고르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자, 제대로 보여주자.'

그러자 자신의 의념에 따라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발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성진의 내공이 양강지력으로 급격히 변모한 탓이었다.

"얍!"

순간 성진은 기합을 내지르며 검지를 앞으로 쭉 내뻗었다.

그러자 곧장 검지를 통해 뜨거운 기운이 성난 용암처럼 장작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쉬익…….

펑…….

한줄기 뜨거운 열기가 장작에 부딪치자 장작에 시커먼 구멍이 나면서 점차 타들어 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장작 전체에 불이 붙었다.

치익…….

화르르르…….

이때, 무엇보다도 놀란 이들은 삼선녀였다.

'어머, 아, 앗! 저 놀라운 화기는…….'

각기 경호성을 발한 그녀들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갓 시골에서 올라온 성진의 모습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로 그는 달라져 있었다,

놀라움이 가시자 달콤한 마음이 그녀들의 속을 파고든다.

그게 사업 상대를 잘 선택한 뿌듯함일 수도 있고 묘한 여심의 변화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둘 다이거나…….

* ? ? * ? ? *

시간이 어느덧 두 시진이 흘렀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으나 지금은 그 해가 기울어 곧 붉은 빛을 내뿜으며 서쪽 저편으로 사라질 순간이었다.

그 시간이 누구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인 노인과 주성진 그리고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억겁과 같은 긴 시간이었다.

하여튼 긴 홍역을 치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노인은 몸속의 탁한 기운을 내몰 수 있었고, 노리끼리한 얼굴은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또한 그에 더해 자질구레한 잔주름도 많이 가셔있었다.

대략 봐도 10년은 젊어진 모습이었다.

다시 원래의 자리에 모여든 일행들은 노인이 새롭게 가져온 호리병처럼 생긴 백자를 보고 있었다.

도자기에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있었고 도자기의 위아래 부분 일부가 깨져 다시 붙인 흔적이 엿보이기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도자기 위에 흔히 볼 수 없는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는 거였다.

그들이 먼지 낀 백자를 바라보고 있는 감상평은 첨예하게 갈라져 있었는데, 일부는 대뜸 실망한 표정이고 일부는 '그래도 뭔가가 있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주성진은 후자였다.

그 순간 환한 얼굴의 노인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이건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오……. 한번 자세히 보시오, 만져 봐도 상관없소이다."

주성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뭐지? 백자를 내게 선물로 준다고! 하, 정말로 뭔가 있는 모양인데…….'

"아, 고맙습니다. 저, 먼지가 많이 낀 것 같은데 제가 닦아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사실 좀 미안하긴 하구려, 내가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 하는 건데, 창고에 그냥 묵혀 두었으니……. 하지만 알아 두어야 할 건, 한때는 이 백자가 내겐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었소."

주성진은 눈을 치켜떴다.

"보물이라고요?"

"그렇소이다, 차차 설명 할 테니 일단 보기나 하시구려."

갑자기 백자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한 성진은 주머니의 손수건을 꺼내 백자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점차 백자 고유의 순백한 빛이 주성진의 눈을 사로잡는다.

한데 유난히 먼지가 많이 낀 부분을 닦아내니 그곳의 산수화가 자세히 눈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멀리 낮은 산자락이 솟아 있고 밑으로는 강물이 졸졸 흘러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전원이 펼쳐져 있고, 강물의 한쪽 끝, 모래톱에서는 어린아이 하나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것 같은데 일종의 채 같은 거였다. 큰 알갱이를 골라내는…….

모든 것이 지극히 생략되어 있어서 얼핏 보면 산수화가 아니라 몇 가닥의 선으로 이루어진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는 여백의 미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구도였다.

'음. 도자기에 그려 넣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구나, 한데 이걸 굳이 도자기에 새겨 넣은 이유가 뭘까? 이런 유의 그림은 화폭에 담아야 제 맛일 텐데…….'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산수화에 거슬리는 잡티 하나를 발견했다.

'음, 내가 제대로 닦지 않았나 보군.'

주성진은 다시 손수건으로 잡티를 닦아내려 했다.

한데 자세히 보니 그건 잡티가 아니었다.

'뭐야! 이건 글씨 같은데. 하, 그렇단 말이지…….'

주성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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