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야바위꾼을 만나다
그 순간 김남선이 그의 삼촌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삼촌, 죄송한데 한 번만 더 설명해주세요. 이해가 될 것 같다고도 잘 안 되네요, 헤헤."
"음 그러니까 열화문의 제자들은 열양공이라는 특수한 내공을 익힌 것이야. 음양오행 중에 화에 특화된, 하지만 한쪽에 편중된 내공을 익히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 항시 피부가 누렇게 뜨고, 내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당하기 쉬워. 그러니 12성 대성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야."
"……."
"하지만 열양공이라도 아니더라도 삿된 마음을 버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정성을 다해 기운과 소통하면 일반 내공으로도 얼마든지 열양지를 펼칠 수 있다고, 알아들었냐?"
"음, 그러니까 환약을 제조하는 게 열양지를 습득하는 수련의 과정이다, 그거죠?"
"그래, 좋은 환약을 만들기 위해 지극정성을 하는 것처럼 몸의 기운에게도 지극정성으로 빌면 음양오행의 기운이 감동해서 불의 기운을 사용하게 해준다, 이거지."
"……."
"내가 굳이 환약 만들기를 강조하는 건 제대로 환약을 만들었을 때의 그 감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으라고 한 뜻이다. 환약제조법의 저자가 책의 말미에 불 피우는 법을 서술한 것도 다 그런 이유라고 본다."
"……."
"아마 그도 때마침 불 피우기가 막막했을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도했다가 습득하게 되었을 거야, 궁즉통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거지, 껄껄."
이야기를 마친 김선우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내 이야기가 어떠했소?"
"하하,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 아닙니까?"
"허허, 딱 좋은 비유법이구려, 그나저나 어쩐다, 주 대행수가 얼른 환약을 만들어 봐야 할 텐데. 우리가 동업한 사이라고 해도 내 비법을 알려줄 수는 없고."
주성진은 정민아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하하 기회가 오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흐르고 약포상을 나온 성진은 중간에 검집을 새로 장만하고 포구로 들어섰다.
한데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음, 야바위꾼이군.'
한데 오늘따라 그냥 지나치기가 싫었다. 평소보다 사람들도 많았고 웅성거린 탓이다.
'잠시 구경이나 해볼까.'
주성진이 다가오자 구경하던 사람 중 몇몇이 길을 비켜준다. 건달들을 몰아낸 장본임을 아는 것이다.
성진은 가볍게 눈인사하고 야바위꾼이 판을 펼친 곳으로 다가갔다.
소매를 걷어붙인 야바위꾼이 웃음을 머금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세 갈래로 잘 다듬은 수염이 마치 학식 높은 유생같이 보인다.
때마침 야바위꾼은 흰 돌을 보여주며 그 위에 하얀 찻잔을 거꾸로 덮었다.
그 옆에는 똑같이 생긴 하얀 찻잔이 두 개 더 있었는데 야바위꾼은 그 두 개의 찻잔도 이어서 덮었다.
"자, 시작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그가 빠르게 찻잔 세 개를 양손으로 돌리고 있었다.
손목의 움직임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현란했다. 수십 쌍의 시선이 찻잔이 있는 곳을 향했다.
따르르…….
찻잔 안에서 울려 나오는 경쾌한 소리.
성진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찻잔으로 향한다. 어느 순간 그의 눈알이 뱅글뱅글 돌았다.
'이거 어지럽군.'
사람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성진의 귓전을 때렸다.
꿀꺽!
탁!
세 개의 찻잔은 동시에 탁자 위에 멈추어 섰다.
사람들의 숨 막히는 정적이 세 개의 찻잔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듯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헤헤, 거십시오! 이번엔 판을 키우겠습니다. 최소 철전 100문입니다. 이번에 맞추면 두 배가 아닌 세 배 드리겠습니다."
찻잔을 돌리던 사내가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웅성웅성.
장내가 술렁인다. 그 순간,
"왼쪽이야!"
"아니야. 중간! 이번에는 여기가 틀림없어."
"난 내 눈을 믿지 않아, 무조건 반대로 갈 거야!"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순간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전 100문을 걸으라고, 저 사람 미친 거 아냐?'
철전 100문을 판에 쏟아부으면 도박판의 한쪽을 가득 차지할 만큼 많았다.
더구나 돈을 걸려는 사람이 당연히 본인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 순간 염소수염을 한 중년인이 성진에게 다가왔다.
"바꿔드립니다. 저희가 보증하는 동전으로."
"그게 뭔 말이오?"
그는 성진이 초보임을 알아챘다.
"장사 전장에서 주조한 동전입니다. 동전 하나에 철전 100문이지요, 장사 전장에서 언제든 돈으로 교환 가능하며 장사 일대의 도박장에 널리 쓰이는 동전이 바로 이 동전입니다."
장사 전장은 장사에서만 영업하는 지역 토박이 전장이었다.
성진은 은자 1냥을 꺼내 동전 10개를 받았다.
"하하, 행운을 빕니다."
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성진은 다수의 사람처럼 왼쪽에 동전 2개를 걸었다.
세 구역으로 나눠진 좌판 위에 수북한 동전 무덤이 쌓이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종료!"
낭랑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리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좌판으로부터 손을 떼었다.
사람들의 손이 다 떨어지자, 사람들과 좌판 사이에 붉은 줄이 길게 걸리었다.
줄의 양편을 잡은 사람은 좀 전 성진에게 동전을 교환해준 중년인과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얼마씩을 걸었는지 하나하나 기억해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박판 주변의 질서를 담당하는 거였다.
야바위꾼이 중년인을 바라보자, 중년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자! 그럼 이제 개봉합니다!"
야바위꾼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치켜들었다.
"하하 오른쪽에 건 분들 축하드립니다. 세 배로 드리지요."
"야호!"
"이 씨, 돈 날렸네……."
환호를 외친 몇몇 사람은 곧바로 다수의 탄식에 묻혀버렸다.
오른쪽에 건 사람이 워낙 적었기에 야바위꾼이 배당금을 지급하고도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대부분은 왼편 아니면 가운데에 돈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주성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눈을 단련한 이상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과 같을 수는 없었다.
'제길, 그냥 지나쳐 갈걸…….'
사람에 따라선 철전 200문이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주성진도 그에 해당한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잃으면 기분이 더럽다. 더구나 그는 자신만만했기에 그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급기야는 자신의 무공에 대한 불신마저 들었다. 아무리 내공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그의 눈은 사부와의 대련에서 얻어맞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단련된 상태였다.
그렇게 돌아서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거 사기요! 여러분은 저 일당들에게 속았다고요!"
'속았다고……!'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주성진이었다. 그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봇짐을 맨 것으로 보아 장사치로 보이는데 나이는 잘해야 본인보다 몇 살 위로 보였다.
그때야 사람들이 웅성웅성한다.
"뭐요, 사기라고! 저런 나쁜 놈들을 봤나! 내 돈 내놔……!"
"음, 사기라는 증거가 있소이까……?"
사람들의 반응은 8대 2로 흥분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주성진은 후자 쪽이었다.
주성진이 젊은 장사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 증거가 있소이까?"
"그럼요, 그 전에 저들의 정체를 말할 것 같으면 수적 출신으로 뭔지 모르지만 같은 수적들에게 쫓기는 자들이에요. 저자들은 주로 사천성에서 사기행각을 하고 다녔는데, 사천당가의 무사들에게 발각되자 곧바로 도망쳤지요. 한데 저들이 호남 장사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사치가 그들의 정체를 아는 게 좀 의아스러웠다.
"어떻게 그들이 수적인 줄 알았소이까?"
"그거야 제가 당시 현장에 있었거든요. 그들이 도망치고 난 뒤 사천 당가의 무사들이 뒤늦게 합류한 그들 상사에게 혼쭐이 났어요, 잡지도 못할 거면 포위나 하고 있지 섣불리 공격해 그들을 놓쳤다고요. 그때 그들이 하는 대화 중에 좀 전 제가 말했던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염소수염을 한 중년인이 장사치를 보며 눈알을 부라렸다.
"이 어디 개떡 같은 놈이 우릴 음해하고 난리야, 좋은 말 할 때 썩 꺼져!"
"흥,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양이지, 네가 너희들을 무서워할 줄 아냐?"
"이 자식이 매운맛을 봐야겠구나."
그가 말을 하며 앞으로 나서자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소리치며 따라나섰다.
"어이! 이보시오, 일 없으면 빨리 집에나 가시오! 내가 저놈을 매타작해야 할 성싶으니까. 세 치 혀를 잘못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거요."
그의 목소리는 다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이탈해 가려 한다.
주성진이 이 대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이, 형씨들, 거기 잠깐만 멈추시오, 내가 이분께 이야기를 들어볼 참이니까!"
그런데도 그들이 점점 다가오려고 한다. 순간,
휘익!
성진이 앞으로 나섰다.
"동작 그만! 계속 앞으로 나서면 내가 가만있질 않을 거요."
내공이 가미된 성진의 목소리에 다가오는 그들이 잠시 주춤거리자 장사치가 재빨리 입을 놀린다.
"저들의 사기 수법은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허공섭물이라는 무공의 절기요. 보통 내공을 이용해 손을 대지도 않은 채 물건을 취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번의 경우는 저 흰 조약돌을 허공섭물로 빨아 당겨 뒤집혀진 찻잔의 밑바닥으로 끌어당긴 것이오."
"……."
"보라고요, 아직도 저 야바위꾼이 찻잔의 밑동을 쥐고 있지 않소이까? 그건 흰 조약돌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저러는 것이요, 그리고 여러분 이상하지 않소이까? 보통은 야바위꾼들이 각기 다른 색을 쓰는 데, 여긴 찻잔도 흰색, 조약돌도 흰색이요."
그러자 군집한 사람들 속에 선원의 복장을 한 자가 소리쳤다.
"맞소이다. 내가 돈에 눈이 멀어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렇소이다. 저놈들이 우릴 속이려고 저리한 게 틀림없소이다."
"옳소! 옳소……!"
군중심리라는 게 묘한 것이다. 한번 누군가가 그러니 봇물 터지듯 말들이 쏟아진다.
성진은 한 번도 그런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음, 그렇군, 속임수를 최대한 감추려고 저런 거였어. 그렇다면 왼쪽에서 나온 흰 조약돌은 반대로 허공섭물로 끌어당기고 있다가 공력을 풀어 살포시 내려놓은 것이 틀림없어.'
이야기가 야바위꾼들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자 갑자기 야바위꾼이 주성진을 향해 찻잔을 냅다 집어 던지며 소리친다.
쉐애액!
"도망쳐!"
성진은 자신에게 날라오는 찻잔과 그 속의 흰 조약돌을 똑똑히 보았다.
'사실이었어!'
순간 성진은 팔을 휘휘 돌렸다.
그러자 찻잔과 조약돌이 한동안 정지 상태로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 잠시 후 성진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 자식! 당해봐라!'
성진은 조약돌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곧바로 달아나는 자를 겨냥했다.
'이런, 걸음이 빠른 자구나, 그렇다면 딴 놈으로!'
꿩 대신 닭이었다. 성진은 일당 중 가장 젊은 자의 등을 향해 찻잔을 집어 던졌다.
쉬익!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무시무시하다.
퍽!
"으악!"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 찻잔에 등을 맞고는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