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화 약포상과의 거래
"네, 그렇습니다. 제게 수령이 오래된 하수오가 있어서요, 제 느낌으론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까? 그래 한 50년은 되나 보구려, 허허."
김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반대로 성진은 정색했다.
"아닌데요. 그 정도를 가지고 제가 감정을 의뢰하겠습니까? 몇백 년은 되어 보이니 그런 거죠,"
"뭐라고! 그거 정말이오?"
갑자기 김선우의 목소리가 커진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흥분한 김선우가 갑자기 주성진의 옷을 잡아당겼다.
"빨리 갑시다."
"저, 두 사람은요? 계속 대화 중인데요."
"뭐,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갑시다."
주성진은 그가 몸이 달아 서두르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저러지? 난 그저 감정만 받을 건데, 그렇게도 하수오를 구경하고 싶었나?'
어쨌든 두 사람이 돌산 아래로 내려가자 이야기 중인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었다.
"삼촌, 말도 없이 어딜 가요?"
"……."
대답이 없었다. 김선우의 머릿속엔 오로지 하수오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약포상에 돌아온 네 사람은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다.
뒤늦게 따라온 두 사람을 내보내려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들도 그들끼리 대화하다 얼핏 하수오라는 말을 들은 거였다.
주성진은 여러 겹 꽁꽁 싸맨 보자기를 펼쳤다.
"허……!"
김선우는 하수오를 보자마자 침을 꼴딱 삼키며 손바닥만 한 둥근 유리 조각을 들고 하수오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게 뭡니까?"
"아. 이거 서역에서 건너온 돋보기라는 것이오, 물건을 크게 보는 것이지."
주성진은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놀라워했다.
'그래. 매번 혁신적인 것들이 새로이 등장하지, 장사를 제대로 하려면 그런 것들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 다 돈이거든.'
한편 한참을 이리저리 살핀 김선우의 눈빛이 형형 빛났다.
'이건 못돼도 수령이 300년이 넘은 것이야. 대략 300년에서 400년 사이. 음, 그나저나 어쩐다. 이걸 어떡하던 입수해야 하는데…….'
주성진이 감정을 의뢰한다고 말했기에 그 부분이 상당히 걸렸다.
'팔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수오가 들어가야 회춘단 3천 개를 만들 수 있는데.'
회춘단은 그가 의원 시절부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정력강화제였다.
하지만 수령이 적어도 250년이 넘은 하수오를 구하기가 어려워 대량생산을 못 하고 있었다.
그저 실험용으로 오래된 하수오 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거 내게 파시구려, 은자 만 냥 드리겠소."
은자 만 냥은 김선우가 평생 알뜰살뜰 모은 전 재산이었다.
"헉."
"앗……."
김남선과 정민아가 깜짝 놀랐다, 반면 주성진은 차분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은자 만 냥을 대뜸 주겠다! 그러니 팔아라, 음…….'
"저, 일단 하수오가 얼마나 오래된 겁니까?"
"300년은 족히 넘었소, 그러니 제발 내가 구매할 수 있게 해주시오."
그는 여의치 않으면 무릎까지 꿇을 태세다.
"아, 잠깐만요. 왜 이 하수오가 필요한 건지 말씀은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음, 그건 내가 뭘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재료라서 그런 것이오. 사실 난 오래전부터 약포 사업을 중원 전체로 확장하는 게 꿈이었소, 일반 백성들도 저렴하게 약을 사 먹을 수 있도록."
"……."
"그런 차원에서 내가 뭘 만들려고 하는 것은 그 사업의 시발점이요. 달리 말해서 대계를 위한 밑천이라 볼 수 있소이다."
성진은 김선우의 눈을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뭐 그러시다면 저와 합작하시지요. 하수오는 공짜로 내놓겠습니다."
김선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번쩍 떴다.
"음 5대 5는 내가 너무 억울한 것 같소. 내가 수십 년 동안 개발한 약방문이 백 가지가 넘소."
"하하. 저는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3, 의원님이 7로 하시지요. 그리고 저도 나름 이바지하겠습니다. 여러 약초를 구하는 데 말이죠, 어떠신가요?"
"좋소, 우리 앞으로 잘해봅시다.'
김남선과 정민아는 오래된 하수오라는 소리에 입을 벌리고 하수오를 쳐다보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거래가 체결되자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산에서 자나 깨나 무공만 수련하던 그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여튼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성진과 김선우는 정식으로 계약에 서명하고 손도장을 찍었다.
일을 마친 주성진이 자리를 뜨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자 김선우가 붙잡았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선물할 게 있으니까."
"선물요? 전 드릴 게 없는데."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 부담 없이 받으면 된다오, 하하."
잠시 후 김선우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전칠기 목곽을 하나 들고 왔다.
딱 봐도 고급스러웠다.
"열어보시오."
성진이 목곽을 열자 오래되어 보이는 책이 하나 들어 있었다.
"하하, 환약 제조법이오. 배우고 익히면 요모조모 쓸모가 많을 것이오, 특히 제대로 익히기만 한다면 만일 불을 구할 수 없을 때 손가락으로 불을 피울 수도 있소이다. 책의 끝부분에 그 비법이 서술되어 있으니 참고하시오."
"아, 네……."
그 순간 김남선이 끼어들었다.
"삼촌, 그러면 그거 무공 아닙니까?"
"무공이라면 무공이지, 하지만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니 보통의 무술과는 다른 게지."
"그래도 무공인데……."
김남선은 삼촌이 덥석 주성진에게 비법을 전해 주는 것 같아 괜히 아깝고 배가 아팠다.
"허허, 녀석. 그래 기분이다. 원한다면 너와 민아에게도 가르쳐주마."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호호, 고마워요, 야외에서 노숙할 때 유용할 것 같아요. 화섭자 없이도 불을 피울 수가 있으니까."
김선우는 손을 내저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의 하수오를 구하게 되어 한껏 기분이 고조된 상태였다.
"아니야 고맙긴, 사실 너희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지, 무당산이나 화산에도 유사한 비법들이 있을 거야. 다만 내공이 최소 20년 이상이 되어야 펼칠 자격이 되니 참고하라고."
'음, 펼칠 자격이 된다는 건 무슨 뜻이지? 펼치면 펼치는 것이지.'
주성진이 그의 말을 골똘히 곱씹을 때 김선우가 성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 대행수, 내 과거 의원으로서 한마디 하겠소이다."
성진은 그가 자신에게 무척 중요한 말을 할 것 같았다.
"네, 말씀하십시오, 귀를 씻고 듣겠습니다."
"무식한 무림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공을 늘릴까만 골몰하지만 사실 운기 공부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오. 유학자나 의원, 상인, 나아가 일반인 중에서도 운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들이 많소이다."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저도 토납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습니다."
"토납법도 따지고 보면 운기 공부의 일종이요. 한데 왜 그리 열심히 운기 공부를 하는 줄 아시오?"
"그게, 건강에 이로우니까 그러는 것 아닌가요?"
김선우는 웃음을 지었다.
"하하, 반도 못 맞추었소. 자연스럽게 운기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뿐만 아니라 정신을 맑게 유지해주고 기억력을 증진케 하는 효능이 있소이다. 그러니 주 대행수도 운기 공부를 할 때 내공 증진만 생각하지 마시오. 그쪽만 집착하면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법이라오. 주화입마라는 말이 왜 생겨났겠소, 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오."
주성진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다.
'그래, 과유불급이라 했어.'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절 깨우쳐주셔서."
"아니요, 난. 주 대행수라면 내 말을 받아들일 것 같아서 말한 것이오, 무식한 무림인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지……."
김남선이 불만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저 들으라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알면 됐다. 녀석아,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그렇게 하라고, 다 늙어서 깨달음을 얻겠다고 어디에 처박혀,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끙끙 앓지 말고 말이다."
김선우는 폐관, 면벽 수행을 빗대어서 그렇게 말한 거였다.
김남선이 여전히 뚱한 얼굴로 김선우를 바라보았다.
"뭐 알겠습니다. 노력은 해볼게요."
"그래 한번 지켜보겠다."
"저, 그런데요, 삼촌, 불 피우는 거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시범을 보여주셔야, 배우는 데 큰 자극이 될 것 같은데요."
"좋다. 녀석아. 그러면 안마당으로 나가자, 거기에 죽은 나무가 하나 있거든."
잠시 후 일행들은 죽은 나무 가까이 모여 있었다. 김선우는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하더니 갑자기 오른손 검지를 쭉 내밀었다.
쉭……!
펑!
순간 나무 타는 냄새가 나는가 하더니 그만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깜짝 놀란 성진은 죽은 나무를 자세히 살폈다.
'뭐야. 불에 달군 꼬챙이로 지진 듯이 구멍이 뚫려 있네.'
이를 본 김남선이 놀라 소리쳤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삼촌! 그거 열양지 아니에요? 제가 알기론 열화문 조양 선생의 절기로 알고 있는데요, 혹 그분의 제자셨나요?"
"아따, 녀석 말 많네, 그래 열양지다, 어쩔래?"
"정말인가요?"
김선우가 허둥대는 조카의 모습을 보며 잔잔히 미소를 베어 물었다.
"녀석아. 마치 열양지가 열화문의 독문 무공이 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럼,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내가 알기론 이름을 달리하지만, 그와 유사한 수법이 사파나 마교에도 있다고, 하나 말이다. 내가 말하려는 열양지는 그것들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야."
김남선은 눈을 치켜뜨며 그의 삼촌을 바라보았다.
"아이. 선문답하는 것도 아니고 똥개 훈련시키는 겁니까? 질적으로 다르다뇨,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녀석아 민아도 있는데 말을 가려서 해. 사부를 닮아 주둥이가 더 거칠어졌군, 쯧쯧."
김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질적으로 다르다고 한 건 난 양강 지공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익힌 내공으로 화(火)의 기운을 손가락에 모으고, 그 기운을 손가락을 통해 밀어낸 거야. 기운은 항상 음양오행이 상생하고 있으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지."
"아니 그게 말처럼 쉬운가요? 뜨거운 기운이 이유도 없이 왜 손가락에 모인답니까?"
김선우가 씩 웃는다.
"녀석아, 네가 제대로 환약을 만들어 보면 알게 된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환약을요? 솔직히 제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거 탕약 달이기보다 쉽다고 들었거든요. 가루 약초를 찹쌀과 꿀을 바른 후에 말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것아 약초를 가루로 분쇄하면 약 효과가 반감되지, 진정한 환약이란 탕재를 최대한 졸인 다음 그늘에서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말려야 해. 그런 다음 꿀을 발라 환을 만든다고, 자세한 건 이따가 내가 환약 제조법을 알려줄 테니 그리 알도록."
정민아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저도 한 말씀 드릴게요. 그러니까 결론은 약초를 다려 환을 만드는 지극 정성이면 열양지도 가능하다 그 말씀인 것 같은데, 맞나요?"
"하하,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로지 제대로 된 환약을 만들겠다는 일념이면 손가락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아,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나무에 불을 내지 않는 건 마당 전체가 탈까 봐 그런 것이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