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건달들을 제압하다 (2)
'와, 전망이 끝내주는군.'
성진의 눈앞에 장강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한동안 창문 밖 정경을 감상하던 성진이 책상 옆에 놓여 있는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 건달 놈에게 어울리지 않게 고상한 책들이라니…….'
책장에는 사서삼경을 비롯한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 그리고 불교 서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음, 책들이 깨끗한 걸 보니 그냥 장식품인 게로군.'
성진의 시선이 책들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제법 비싸 보이는 화병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의 고개가 다시 책장으로 향했다.
'가만, 언젠가 책장 안에 공간을 만들어 금고를 넣어둔다는 이야기를 동료 상인들에게 들은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맞아, 두목 놈이 그간 갈취한 돈! 물론 상단의 전장에 보관할 수도 있겠지만 내 촉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성진은 일단 책장의 책을 꺼내기 시작했다. 혹시나 책장 안쪽에 무슨 단서라도 있는지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아, 없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성진은 책을 꺼낸 빈 책장에 구멍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뭐 그렇다면 좀 무식한 방법이지만 책장을 옮겨보자고.'
성진은 힘을 주고 책장을 들어 올렸다.
"옷 차!"
한데 책장이 좀체 들리지 않는다.
끼이익…….
'이상한데… 책장을 못으로 박았나?'
못으로 박았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이쿠, 경첩! 그걸 왜 생각 못했지?'
경첩은 문과 문틀 사이를 연결하는 쇠붙이였다.
'그래, 책장 전체가 문일 수도 있는데.'
성진은 눈을 빛내며 책장의 양 끝을 차례로 잡아당겼다. 왼쪽에서 꿈쩍하지 않던 책장이 오른쪽 끝을 잡아당기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익!
'하하, 열리는구나.'
잠시 후. 책장이 열리고 나니 공간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공간 안에 보통 여인의 키만 한 금고를 발견한 순간 성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거 뭐야. 산 넘어 산이네.'
성진은 두목 놈이 제법 용의주도하다고 생각하며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열쇠가 없으니 할 수 없군, 뭐 검기 연습하는 셈 치지 뭐.'
성진은 검에 기를 불어넣기 시작하자 검이 검명을 토하기 시작했다.
징…….
"하!"
성진은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여기 엷게 푸른빛을 보이는 게 검기이겠지. 좋았어, 한 번에 간다.'
성진은 공력을 배가시켰다. 푸른빛이 점점 진해졌다.
"얍!"
순간 성진의 신형이 검과 한 덩어리가 되는가 싶더니 짙푸른 검기가 힘차게 소용돌이치더니 뻗어나갔다.
스걱…….
철로 된 자물쇠의 이음 부분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자 성진은 환호를 질렀다.
"하하하. 이게 웬 횡재냐?"
금고 안에는 보석류와 골동품 그리고 금괴와 은자가 수북이 들어 있었다.
성진은 일일이 은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사천구백구, 오천!'
은자만 하더라도 물경 5,000냥이었다.
그러자 다시금 생각이 바뀐다.
'하하. 그렇다면 객잔을 열어도 되겠구나. 그나저나 이것들을 어떻게 한담?'
없던 돈이 생기니 이전까지 생각지 못했던 걱정이 생겨났다.
반병신이 되어 쫓겨났지만 분명 칠성파의 두목은 어떡하던 자신의 돈을 되찾으려 할 게 분명했다.
자신이 직접 오지 못한다면 누군가를 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음, 그렇다고 이것들을 전장에 맡기자니, 영 그렇단 말이야.'
성진은 전생에 하오문에 취구환의 판로를 알아보려 했다가 기밀이 새 나간 게 생각났다.
'뭐, 그렇다면 땅을 깊이 팔 수밖에. 그간, 농사일 하면서 도를 텄지, 하하.'
한편, 한 시진 전 칠성파가 박살 났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 흑도 각파의 두목들은 일제히 부하들을 소집하고 회의에 들어갔다.
칠성파와 바로 인근에 접한 두량파의 두목은 손으로 대머리를 박박 긁으며 자신의 부하들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어디서 그런 놈이 나타난 거야? 장칠아. 설마 천화각에서 보낸 건 아니겠지?"
그의 부하 중 곱상하게 생긴 자가 입을 열었다.
"두목, 그건 아닐 겁니다. 저희가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그들이 공격할 리가 없습니다. 명색이 정파니까요."
"음, 그건 그런 것 같군, 그럼 그놈의 정체가 뭐지? 사파 출신일까?"
"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사파 출신이 틀림없을 겁니다. 제 생각엔 그놈이 혼자라서 천화각에서 감시를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두량파의 두목은 고개를 끄떡였다.
천화각은 장사 일대에 사파나 마도의 문파가 진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장칠. 네가 얘기 좀 해봐,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당장은 그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알 수가 없습니다만 최악의 수를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야, 그걸 몰라서 묻냐? 구체적으로 대책을 말하라니까!"
장칠은 속으로 이를 갈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개XX, 두고 보자, 언젠가 네놈의 멱을 따 버릴 것이다.'
"하하. 두목, 진정하시고요, 일단은 흑룡문에 전서구를 날리자고요. 그간 상납금을 받아 챙겼으니 고수들을 파견해 줄 것입니다."
"음, 그들이 아무리 빨리 오더라도 최소 사흘은 걸려, 또한 천화각 때문에 많은 고수를 파견하기는 어려울 것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놈은 한 명입니다. 강한 고수 몇이 신분을 위장해 온다면 문제없을 겁니다."
두목은 팔짱을 끼며 장칠을 바라보았다.
"좋아 전서구를 보내자고. 그래도 만일 놈이 공격한다면 사흘을 버터야 하는데 어떡하지?"
"두목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리를 잠시 비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파들과 재빨리 연합하는 것입니다."
두목 황동출은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쳐다보는 부하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꼬리를 말면,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리는 놈들이 날 우습게 볼 거야.'
"이봐, 나 흑표 황동출이야. 어디 맹수가 도망치는 것 봤어! 빨리 자리나 마련해!"
장칠은 고개를 숙였다.
"네 두목, 빨리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타파 놈들도 흑룡문에 줄을 대고 있을 테니 사정은 저희와 매한가지일 겁니다.
한편, 난장판인 객잔 한곳에서 땀을 닦는 이가 있었다.
'에구, 다 됐구나.'
주성진은 자신이 작업한 곳을 바라보았다.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하, 감쪽같구나.'
주성진은 바로 전 1층 객잔의 나무 바닥을 뜯어내고 땅속에 금고를 파묻은 거였다.
그때였다.
쾅, 쾅!
"계시오?"
귀에 익은 목소리다.
'어, 어르신이 왜?'
"잠시만 기다리세요."
성진은 객잔의 뒷문으로 빠져나가 다시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노파가 고개를 돌리자 성진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하, 문짝이 고장 나서 나무를 덧댔습니다."
"휴, 그런가? 난 문에 못 칠을 한 것을 보고 멀리 떠난 줄 알았다네."
"하하.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한데 무슨 일이신지?"
"좀 전에 내 가판에 들른 황씨에게 이야기를 들었네, 오늘 밤 이화원에서 4파가 긴급 모임을 한다는군."
성진의 눈이 번쩍 떠졌다.
"4파가 회합을 한다고요?"
"그렇다네. 난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자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지."
성진은 잠시 멈칫거렸다.
'뭐지? 의도가? 나더러 가보라는 말인가? 아니면 4파의 공격을 대비하라는 것인가?'
"저.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자네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차피 그들과 부딪히는 건 필연이니까 말이야."
"하하. 어르신은 제가 이기리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파는 빙그레 웃는다.
"내가 소싯적에 무공을 좀 익혔었거든, 단전이 파괴되어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성진은 노파의 과거를 알고 놀라워했다.
"무림인이었습니까?"
"뭐… 그래도 보는 눈은 아직 살아 있다 자부하네."
성진은 노파의 의뭉스럽게 느꼈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하하. 고맙습니다. 그러면 이화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노파는 장황하게 이화원의 위치를 설명했다. 이화원은 성진의 예측대로 기원이었다.
노파는 이에 그치지 않았고 각파의 본거지까지 소상하게 성진에게 알려주었다.
"그래, 결심은 섰는가?"
"네, 그리하도록 하지요, 한데 뒤탈은 없을까요?"
"뒤탈이 뭐 있겠나? 다만 그놈들 뒤에 혹 사파 놈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게, 정 뭣하면 내가 도와줄 테니."
성진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도와주신다고요?"
"나중에 이야기함세. 허허."
"알겠습니다. 꼭 말씀해 주십시오."
한편 시간이 흐르고 밤은 깊어갔지만, 이화원은 밤이 비껴간 모습이다.
마당 곳곳에 설치된 횃불 사이로 무장한 사내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4개 파의 느닷없는 회합으로 문을 닫은 이화원엔 기녀들의 교소와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사라졌다.
지금 4개 파의 두목과 참모들은 사방이 훤히 보이는 누각 위에 있었고, 그들 중 각파의 우두머리들은 붓 통 속에서 붓 대신 종이를 꺼내 펼쳐보고 있었다.
그들이 제비뽑기하는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말로는 합의가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끈적끈적한 비음소리가 들린다.
"호호, 제비뽑기 결과 4개 파 임시수장으로 황동출님이 선출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이, 축하는 무슨……."
두량파 두목 황동출은 거들먹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들어. 지금부터 내가 대장이다. 이제부터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
주변의 심드렁한 반응을 예상한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황동출은 장칠을 손으로 가리켰다.
"야. 장칠아. 네가 작전을 이야기해 봐라."
장칠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놈이 저럴 줄 알았다. 무식한 놈아, 내 생각을 들으면 기절초풍할 거다. 일이 잘만 되면 흑룡문 놈들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놈들에게 거액의 수고비를 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하하.'
장칠은 목을 가다듬었다.
"음, 음. 우선 놈을 여기 이화원으로 유인해야 합니다. 그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준다고 한다면 설령 의심하더라도 우릴 만나러 올 것입니다. 자신의 무공을 믿고 있을 테니까요. 그와 동시에 저희는 만만의 준비를 해야겠지요."
모든 이의 시선이 장칠에게 쏠리자 장칠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흠흠, 제 생각은 말입니다, 여기 마당에 구덩이를 파서 놈을 잡아들일 함정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고수이니 재수 나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습니다. 해서, 돈을 듬뿍 주고서라도 철물점 황씨를 데려와야 합니다. 참고로 아실지 모르겠지만 황씨는 기관술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 순간 청구파 두목의 두꺼운 입술이 꼼지락거렸다.
"이봐. 그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것보다 기관술은 하루아침에 뚝딱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고."
"하하, 기관술을 설치할 건 아닙니다. 제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지요. 먼저 함정을 설치할 구덩이를 팝니다. 그리고 구덩이를 다 파고 나면 이번에는 구덩이 양옆으로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구멍을 파야 합니다. 왜냐면 구덩이 위에 설치된 위장막을 사람이 줄로 잡아당기도록 해야 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