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건달들을 제압하다 (1)
둘을 기절시킨 성진은 얼굴 가득 미소 지으며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머지 건달 하나가 출입구 안으로 들어간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 일부러 보내 준 거였다.
'후후후, 곧 떼로 몰려나오겠군,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나야 고맙지…….'
잠시 후,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출입구가 덜커덩 떨어져 나가고 수십의 건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대낮부터 얼굴이 벌건 게 안에서 술판이라도 벌인 모양이었다.
성진은 싸울 공간 확보를 위해 일부러 뒤로 물러서자 그들이 성진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저 새끼 밟아 죽어버려!"
한 사내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건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와아아!"
그들은 한껏 수적 우위를 믿고 있는 듯했다.
성진은 목을 휘휘 돌리더니 곧바로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그들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럴 땐 사부의 박투술이 제격이지.'
성진이 달려오자 선두에 섰던 건달이 주먹을 뻗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팔 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헉!'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자신의 허리가 강제로 꺾여서 허공에 붕 뜬 것을 느껴야 했다.
"아아악!"
성진이 그를 공중으로 집어 던진 거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성진은 또다시 달려들던 건달을 발로 걷어차는 것과 동시에 옆에서 잡으려는 자의 양팔을 잡아 땅에 메다꽂았다.
퍼엉!
"아아악……."
삽시간에 몇몇 건달들이 나뒹굴자 뒤편에서 누군가가 외친다. 처음 소리친 바로 그 자였다.
"이것들아. 모두 비수 꺼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달들이 단검을 꼬나쥐고 성진을 덮쳐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성진의 등 뒤가 서늘하다.
'이게 어딜?'
건달 하나가 성진의 뒤에서 단검을 찌르려 한 것이다. 살짝 허리를 비틀어 단검을 피한 성진은 뒤차기로 정확히 그자의 명치를 가격했다.
"크아악……."
성진은 비명을 내지른 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곧바로 주먹을 내뻗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진다.
퍼버벅, 퍽, 퍽!
"으아악, 으악……."
성진의 주먹과 발이 스쳐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자들이 있었다.
틈새로 성진을 공격하던 자들은 더 비참했다.
성진의 금나수에 걸려들어 공증을 한 바퀴 회전한 채 땅바닥에 사정없이 나뒹굴었기 때문이었다.
"아아악……."
사방에 비명이 난무하면서 어느덧 그 많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쓰러진 자들은 혼절하거나 정신이 돌아와도 바둥거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성진은 계속해서 그들을 몰아쳤다, 마침내 세 사람이 남았을 때 가운데에 있는 자가 돌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의 양옆에 있는 자들도 따라서 무릎을 꿇는다.
"항복합니다."
"항복합니다……."
성진은 코웃음을 치며 그들은 바라보았다.
"흥……."
"이것들이 항복한다면서 단검은 왜 손에 쥐고 있는 거야?"
화들짝 놀란 그들이 단검을 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그만 정신이 없어서!"
성진은 가운데 있는 자를 노려봤다.
"너는 누구냐?"
"칠성파 두목 이강두입니다."
성진의 차가운 시선이 다른 자에게도 돌아갔다.
"저는 갑조 행동대장 곽형도입니다."
"저는 을조 행동대장 방극상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순간 이강두가 애원하는 눈빛을 성진에게 보냈다.
"보내 주시면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흥, 그냥 보내달라고?"
성진은 코웃음을 쳤다.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그들이다.
언제 등 뒤에서 칼을 들이밀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숫자는 사십이 넘었다.
성진은 잠시 고민했다.
'음, 어쩐다, 죽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순간 번뜩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분골착근! 게다가 분골착근에 당하면 관절이 상해서 6개월은 힘을 못 쓴다고 하잖아.'
분골착근은 강설현이 가르쳐 준 금나수에 있는 수법이었다. 원래는 무공 초식이지만 흔히 고문 수법으로 많이 쓰이고 있었다.
성진은 짧고 강렬하게 분골착근 수법을 써보기로 했다.
'그녀 말로는 내공이 40년은 넘어야 시전할 수 있다고 하던데, 가능할까……?'
머릿속으로 상상해봐야 소용없다.
순간 성진의 팔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두목 이강두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비틀며 힘을 주었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강두는 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찾아오는 강렬한 극통…….
"아아악, 아아악……."
너무 아픈 고통에 이강두는 눈을 까뒤집으며 버둥거렸다.
급기야는 전신이 오그라드는 고통에 혼절하고 말았다.
성진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어린다.
'하하, 성공했다, 이것으로 내 공력이 확실히 40년은 넘어선 거군.'
그때였다. 나머지 두 명이 어깨를 들썩인다. 도망치려는 모습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성진은 빠르게 양손으로 그들의 어깨 견정혈을 집었다. 곧이어 그들도 하늘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지르다 잠잠해졌다.
칠성파의 나머지 수하 중 깨어 있는 자들은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성진은 그들에게 소리쳤다.
"장사를 떠나라. 만일 내 눈에 띄면 다음은 없다, 알겠나!"
"네, 네……."
"좋아. 반 각의 시간을 준다. 쓰러진 놈들 데리고 모두 사라져!"
반 각이 지나고 건달들이 놓고 간 무기들만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순간 성진은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뭘 그리 훔쳐보십니까? 구경 끝났으니 다들 일들 보십시오."
대낮에 비명이 난무하고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구경꾼이 없을 리 없었다.
구경꾼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서 오히려 성진에게 다가오는 노파가 있었다.
"허허, 참……."
성진이 중얼거린 순간.
"댁은 뉘시오?"
노파의 말에 성진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 건물의 새 주인입니다."
"그러니까 건물을 샀단 말이오?"
"그렇습니다만……."
성진은 노파를 살펴보았다.
'음, 풍상에 찌든 얼굴, 무공은 없어 보이고…….'
"무슨 계획으로 이 건물을 샀나?"
성진은 발끈했다.
"아무리 어르신이라 해도 초면에 무례한 질문 같습니다만."
"이봐, 젊은이,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다만 내 이웃들을 위해 이러는 거야."
성진은 질문의 의도를 좁히기로 했다. 섣불리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구체적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지요?"
"자네 여기에 정착할 건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바로 떠나게나, 승냥이가 사라지면 더 포악한 늑대 떼들이 오는 법이지."
성진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음. 그나저나 내가 뜨내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길 계속 머물지는 못하는데…….'
그 순간 형산을 떠날 때, 사제들의 간절한 눈빛이 떠올랐다.
'좋아, 사부님을 설득해서 그들을 데려와야겠다. 은자 이천 냥과 사제들의 무공을 책임진다고 하면 충분하겠지. 이거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겠군.'
성진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제가 여기서 한동안 기반을 닦을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계속 여길 있지는 못합니다. 몸은 하나고, 할 일은 많기 때문이죠."
노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성진은 그런 노파의 표정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어르신! 설령, 그렇다 해도 이 주변에 앞으로 칠성파 같은 건달들이 발을 못 들이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제게 복안이 있으니까요."
마음 졸였던 노파가 잇몸을 만개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쭈글쭈글한 주름이 더 많이 나타났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난 포구 앞에서 가판 장사를 하고 있다네, 일간 한번 찾아오게나, 공짜로 대접할 테니까. 늘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가판대가 내 가판대이니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걸세."
"네, 잘 알겠습니다."
"내 소원이 자릿세 뜯겨 보지 않는 걸세, 자네 덕에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 어휴 내가 어쩌다가 건달들에게 돈을 갈취당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아휴 내 팔자야."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그녀에게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저 무슨 일이라도?"
"아.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
성진은 자리를 떠나려는 노파를 불러 세웠다,
"아까 그놈들 말고도 이 포구 주변에 건달패거리들이 더 있겠지요?"
노파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자그마치 4개 파가 더 있다네, 그들이 촘촘하게 몰려 있는 건 그만큼 여기가 물이 좋기 때문이야. 그놈들이 보호세, 자릿세 명목으로 뜯어가는 돈이 어머어마하거든."
성진은 전생의 경험으로 미루어 대충 상상이 갔다.
"도박장이나 환락가도 있겠네요?"
"그렇다마다, 여긴 없는 게 없다네."
"그렇군요. 저, 어르신, 건달패거리들이 저들끼리 싸우지는 않나요?"
노파는 씩 웃는다.
"왜 안 싸우겠나? 저들끼리 경계를 정해놓은 모양이지만 툭하면 칼부림이지."
"감사합니다. 알려주셔서."
노파가 돌아가고 성진은 외부를 정리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달들이 흘리고 간 무기들도 빠짐없이 챙겼다. 그것도 팔면 다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건물 내부는 전형적인 객잔의 모습에서 변한 게 거의 없었다.
보통 1층은 식당과 주방 그리고 객실로 꾸며져 있고 2층은 모두 객실이었다.
다만 좀 전 술판을 벌인 탓인지 곳곳에 술병이 나뒹굴고 먹다 남은 음식들이 탁자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음 예상대로 원래 객잔이었군, 목은 좋은데 어쩌다가…….'
성진의 예상으론 고급 객잔이 틀림없었다.
1층 여기저기를 꼼꼼히 둘러본 성진은 계단을 타고 2층에 올라갔다.
2층에 오른 주성진은 순간 마음이 쓰라렸다. 은자 200만 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의 부친이 장안에 은닉해 놓은 보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없어졌다면 벌써 없어졌을 것이니 조급하지 말자며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제길 당장 돈이 있으면 새롭게 객잔을 열 텐데, 할 수 없지, 원래 생각했던 대로 해야겠군.'
새롭게 객잔을 열려면 주방장을 포함한 일할 사람이 있어야 했고, 건물의 내외부 시설도 새롭게 꾸며야 했다.
설령 음식 재료나 술을 외상으로 매입한다 해도 들어갈 비용이 엄청났다.
물론 어찌어찌 건물과 땅을 담보로 사채를 끌어다 쓸 수도 있겠지만 성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초보가 생빚을 내면서까지 객잔을 운영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생에 어깨너머로 관찰하고 주워들은 풍월은 많지만, 이 모든 게 간접 경험이지 직접 경험이 될 순 없었다.
해서, 성진은 일찌감치 생각을 굳힌 게 포구에 정박하는 선원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할 생각이었다.
박리다매로 수용인원을 늘리고 모든 부대시설은 제공하지 않을 요량이었다.
오로지 잠만 자도록 한다면 적은 투자 비용으로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 행패 부리는 선원들이 있다 해도 그들을 다루는 건 어린아이 팔 비틀기보다 쉽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천천히 2층 객실을 둘러본 성진은 마지막 객실로 향했다.
성진이 들여다본 객실들은 모두 건달들이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어라, 여긴 문이 잠겨있네.'
다른 객실과 달리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뭐, 힘으로 고리를 뜯으면 되지!'
성진은 자물쇠가 걸려 있는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찌 찌직! 펑!
고리가 굉음과 함께 뜯겨 나갔다.
'하하, 들어가 볼까.'
성진은 자신의 예상과 다른 객실 내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잠자는 곳이 아니었군, 두목 놈이 집무실로 쓴 모양인데.'
넓은 객실 바닥에는 양탄자가 깔렸고, 제법 비싼 가구와 골동품들이 책상 주변에 놓여 있었다.
한 바퀴 휘휘 내부를 둘러본 성진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성진의 얼굴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