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 (14/40)

Chapter 4

바칸의 말에 드워프들은 무기를 꺼내 들고 전투 진형을 갖췄다. 이런 일을 자주 겪은 것 마냥 절도 있는 행동이었다.

“기다렸다, 몬스터 녀석들!”

“우리 손님은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없다!”

그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몬스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론은 그런 그들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그린데란트 산맥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숫자는 대륙에 있는 것보다 많다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제대로 된 나라는 드워프들이 사는 페리움 뿐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와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렀는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저렇게 몬스터를 앞에 두고 여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수많은 전투를 겪었고 이겼다는 증거였다.

드워프의 주위로 불안해하는 정령들의 모습이 아론의 눈에 희미하게 보였다.

“우리 정령들도 몬스터를 느끼기 시작했군!”

“너희도 싸우고 싶었지?”

그들은 정령들을 안심시켰다. 정령이 겁을 먹으면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태초의 정령은 위대하군요. 저희 정령들은 대다수가 중급이고 몇몇은 상급도 있는데 말입니다.”

바칸의 말대로였다.

드워프의 정령들은 쿠브보다 몬스터를 감지하는 것이 한발 느렸다.

“덕분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몬스터와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칸은 아론에게 인사했다.

“네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네.”

“다행이야!”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쿠브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녀석들이 보인다!”

“모두 긴장 풀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쫄아있진 말라구, 하하!”

드워프들은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해 잔뜩 날을 세웠다. 아론은 그들에게서 남다른 기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인가?’

아론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나는 보통 밝은 푸른색을 띠는데, 드워프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은 연한 노란색 빛이었다.

아론은 그것이 신기해서 바칸의 상태창을 확인해보았다.

【상태창】

· 이름 : 바칸 쿠쉬타르

· 스테이터스

체력 160 투력 120

근력 198 민첩 101

지력 81 친화력 140

바칸의 상태창이 아론과 다른 점은 하나, 마력이 아닌 투력의 존재였다.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지구에서도 여러 헌터가 있었지만, 투력을 사용하는 헌터는 본 적이 없었다.

‘종족이 달라서 그런 걸까.’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도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몬스터들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임프나 고블린 같은 소형 몬스터도 있었고, 오크나 트롤 등의 대형 몬스터도 있었다.

‘보통 저렇게 무리 지어 다니지는 않는데 말이지.’

그린데란트 산맥은 몬스터들끼리 연합이라도 한 것일까. 아론은 그 점이 의문이 들었다.

‘상관없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쿠브의 성장을 시험해보고 싶었으니까.’

아론은 대지 마법 중에서도 강력한 공격 마법인 어스 브레이커를 준비했다.

마법의 술식을 하나하나 구성하기 시작하자, 쿠브가 곁에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방어마법뿐만이 아니라 공격도 도와주는구나.’

아론은 마법을 구성하면서 더욱 선명해진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아론은 한결 수월하게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친 아론은 달려오는 몬스터 무리를 바라보았다.

‘이 전투는 혼종 전투다.’

이렇게 전사와 마법사가 섞여서 전투를 할 때 마법사의 역할은 원거리에서 최대한 많은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마법사가 화력으로 몬스터들을 죽여 놓으면, 전사들은 손쉽게 잔당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병종이 혼합된 병력은 운용하기 어려웠지만, 잘 다룰 수만 있다면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맞부딪히는 혼전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아군을 배려해서 최대한 뒤쪽의 몬스터들을 요격하는 게 좋았다.

괜히 전사들을 돕는답시고 마법을 날렸다가 아군을 맞히기라도 한다면 낭패였다.

아직 몬스터와 드워프 워리어들이 맞붙기 전의 상황이었다.

아론은 준비했던 어스 브레이커를 발동시켰다.

쿠르릉!

일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땅에서 뾰족한 가시들이 튀어나와 몬스터들을 급습했다.

콰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앞을 달리던 몬스터들은 속절없이 당했다.

그렇게 선두의 몬스터가 공격을 받아 쓰러지니 뒤쪽에서 같이 달리던 몬스터들은 진로가 방해되어 우왕좌왕하기 바빴다.

한편, 라엘이 자세를 잡더니 앞을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녀의 주먹에서 용의 형상을 한 불꽃이 튀어나와 전방 십 수 미터의 몬스터들을 불태웠다.

켄트 역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는 대형 몬스터들에게 속박 마법을 시전해 움직임을 최대한 방해하였다. 그가 전력을 다하면 최소 수십 마리 몬스터의 다리를 묶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휘유!”

“아론 님, 고맙습니다!”

드워프들은 인간들의 무력에 감탄했다.

바칸도 질세라 드워프를 지휘했다.

“모두 투척 준비!”

그러자 드워프들이 일제히 돌팔매를 날렸다.

아론은 날아간 것이 단순한 돌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거기에는 대지의 정령이 타고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돌은 거대한 바위로 바뀌었고, 정령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낙하했다.

콰앙!

그 아래에 있던 몬스터들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죽어 버렸다.

기세 좋게 달려왔던 몬스터들은 이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드워프들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 돌격!”

바칸의 우렁찬 외침에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굳게 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콰직! 콰직!

그들의 무력은 무시무시했다.

드워프가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는 몸이 두 동강 나거나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투기가 넘실거리는 것이 육안으로도 관찰되었다.

‘저것이 드워프 워리어의 진정한 힘인가.’

아론은 마법으로 공격하면서 그들의 전투를 관찰했다.

그야말로 개개인이 살육 전차나 다름없었다.

드워프가 공격을 하면 기운이 쏘아져 나가는데, 그것이 오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오러로 베는 게 날카로운 것이었다면, 그들의 투기는 톱날로 분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들에 비하면 카슈는 아직 어린아이였군.’

그 생각이 사실이었다.

이들은 그린데란트 산맥에서 오랜 기간 몬스터들을 막아낸 노련한 워리어들이었다.

하지만 카슈는 나이가 어려 투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몰랐다.

아론은 만약 이들 중에 한 명과 자신이 붙었으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상상해 보았다.

몇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아도 자신의 몸이 갈려 나가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들이 나에게 우호적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전투에 집중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아론과 드워프들은 우위를 점해갔다.

잠시 후, 치열한 전투를 치른 그들은 몬스터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바칸이 아론 일행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몬스터들에게서 튀어나온 피로 전신이 얼룩져 있었다. 그 모습이 꽤나 그로테스크했다.

“아론 님의 마법 실력은 정말 일품이더군요.”

그는 아론을 칭찬했다.

드워프들은 마법사가 없었으므로, 그가 인간의 마법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간들이 마법을 독자적으로 발달시켰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아론의 동료분들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몬스터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바칸과 드워프들은 아론 일행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론은 몬스터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드워프들도 힘들겠군요. 왕국을 세운 이후부터 이런 드센 녀석들과 계속해서 싸워왔을 거 아닙니까.”

“우리의 어머니가 살고, 자식들이 사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바칸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마냥 힘든 건 아닙니다. 여기에는 저희들이 좋아하는 광물들이 널려 있으니까요.”

그 말대로 그린데란트 산맥의 광물은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또, 성벽에는 저희들이 자랑하는 방어 기구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몬스터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지역이 되었지요.”

그 말을 들으니 실제로 그들의 방어 시설을 본 적이 없는 아론은 궁금해졌다.

'과연 어떻길래 저렇게 자신할 수 있는 걸까?'

인간들의 방어 시설이라 해봤자 성벽 위에 냉병기를 거치하는 게 다였다.

그러면서 아론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들이 대륙에 터를 잡고 자기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도 이곳의 드워프들이 몬스터를 막아줘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린데란트 산맥에 드워프의 왕국이 없었더라면 팽창하는 몬스터들은 결국 대륙으로 진출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역사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아론은 드워프들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몬스터들은 피 냄새에 민감하니까 이제 출발합시다.”

바칸이 그렇게 말하며 차에 올랐다. 드워프들은 얼마 쉬지도 못했을 텐데 그 체력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앞으로 이 정도 전투는 몇 번 더 있습니까?”

아론은 차에 타서 바칸에게 물어보았다.

만약 전투를 계속해서 치루어야 한다면 체력 안배를 할 필요가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성의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는 전투를 겪는 편입니다.”

“앞으로 더 고생이라는 말이군요.”

“그래도 아론 님이 계약한 태초의 정령 덕분에 전투를 피하면서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금 전의 몬스터 무리는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사고였었다. 쿠브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쿠브가 계속해서 대지의 기운을 관찰하고 있었다.

“성에 도착할 때까지 잘 부탁한다.”

“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쿠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는 전력으로 그린데란트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다행히도 쿠브의 탐지 능력 덕분에 아론 일행은 큰 규모의 몬스터 무리와의 조우는 피해서 갈 수 있었다.

중간에 피할 수 없는 작은 전투들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힘들이지 않고 해치울 수 있었다.

성문에 도착했을 때, 바칸을 비롯한 드워프 워리어들이 얼굴을 비추자 입구를 지키던 경비들은 곧바로 통과시켜주었다.

‘여기가 페리움 왕국인가.’

아론은 기대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켄트가 유난히 들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확실히 인간들의 세상이랑 달라.’

이곳의 도로며 건물 등은 모두 드워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마치 각을 잰 것처럼 반듯하고 섬세한 디테일을 자랑했다.

저 너머에는 우뚝 솟은 산이 보였다. 거기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니 한창 광물을 채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건?’

아론은 산 중턱에서 달리는 물체를 보고 놀랐다. 흡사 열차를 닮은 것이 광물을 가득 싣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저게 드워프의 기술인가…….’

아론은 그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하긴, 비행선도 만들어 내는 종족이었다. 열차 비슷한 게 있다고 해도 이해가 되었다.

‘우리 공작령의 시내랑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발달해 있구나.’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드워프들이 일구어낸 도시를 감상했다.

한편, 왕성 내부의 회의실에서는 부족장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왕국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네 명의 부족장이 참석해 있었고, 그들은 오늘 올라온 안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최근 산맥의 오크들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페리움 왕국을 노리는 몬스터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오크 종족은 특히 드워프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지능이 낮아서 제대로 된 문명사회를 구축하진 못했다. 하지만 특유의 번식성 때문에 숫자는 매우 많았다. 게다가 무식하게 힘도 세니 여간 성가신 종족이 아니었다.

“접경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캠프를 늘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쩐지 요즘 정찰을 가장해서 공격을 해오더니…….”

“그것 때문에 우리 부족 전사들의 출동량이 늘어났소.”

각 부족장들은 오크의 세력 확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더 이상 놔두면 오크들이 계속해서 팽창할 거요. 한번 씨를 말려주는 게 어떻겠소?”

“그거 좋소.”

드워프 측에서 먼저 포문을 열자고 주장하는 부족장도 있었다.

“아직 시기상조요. 물론 우리 전사들이 진다는 말은 하지 않겠소. 그래도 지금 맞붙는다면 피해는 어마어마할 거요.”

좀 더 신중히 접근하자는 부족장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쿠르트?”

부족장 세 명의 시선이 한 명에게 꽂혔다.

그는 강철 부족의 부족장이자 아론이 구해준 뷰란트 형제의 아버지였다.

“오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성 밖의 지형은 평탄하오. 우리가 공세에 나서면 피해를 크게 입을 게 분명할걸세.”

“맞지, 맞지.”

“그렇다고 계속 소모적인 방어만 할 생각이오?”

그 질문에 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영원히 수비만 하자는 게 아니오. 신무기가 개발될 날이 머지않았소. 그때 공격해도 늦지 않다고 봄세.”

쿠르트의 그 말에 공격에 나서자던 부족장들도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크에 대한 건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다음은 인간이 우리 왕국에 방문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소.”

“그날이 오늘이지?”

“그렇소.”

쿠르트를 제외한 나머지 부족장은 얼굴빛이 흐려졌다.

“인간이 언제 마지막으로 여기에 왔었더라?”

“60년 더 됐지. 오래전이오.”

“인간은 탐욕적인 종족이오. 나는 아직도 그들이 여기에 발을 들이는 게 달갑지 않소.”

그의 말에 두 부족장도 동의했다.

과거에 선조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착취를 당했는지 그들은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간은 그 사실을 잊고 대륙에 있는 드워프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납치한다는 사실도 들었었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비행선까지 내어준다고?”

부족장 한 명이 눈을 흘기며 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의 아들인 카슈와 뷰란트, 벨파를 구해준 인간일세. 마땅히 대우해 줘야 한다고 보네.”

“강철 부족의 여태까지 노고를 잊겠다는 건 아니오. 하지만 나머지 부족의 입장도 생각해주시오.”

“문제가 생기면 전적으로 내가 책임지겠소. 다른 부족에게 어떠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오.”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알겠소.”

쿠르트의 부탁에 나머지 부족장들은 거절의 의사를 물려뒀다.

“인간 일행들이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전령이 회의실에 들어와 그 사실을 알렸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합세.”

“결국 오고야 말았군.”

“나머지 부족장분들은 가셔도 좋소. 나는 인간을 맞이하러 나가보겠네.”

쿠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회의장을 떠났다.

***

아론이 왕성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그를 맞이해 준 건 뷰란트 형제였다.

그들은 아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론 님!”

“무사히 왔구나!”

그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아론을 반겨주었다.

“다시 보게 되어서 다행이야.”

아론 역시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강철 부족의 단단한 방패인 바칸이 왕자님들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야, 바칸.”

바칸을 비롯한 드워프들은 뷰란트 형제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이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저 셋이 부족장의 아들이란 게 실감이 나는군.’

아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부족장님!”

우렁찬 드워프들의 외침이 왕성 내에 울려 퍼졌다.

아론은 그들이 무릎을 꿇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다른 드워프들에 비해 화려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남성이 있었다.

‘저자가 강철 부족장인가?’

키가 작았지만 그에게서 위엄이 돋보였다. 길게 내려오는 갈색 머리칼은 그의 고고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부족장은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아론 일행을 바라보았다.

“에드먼스 가문의 아론이라고 합니다.”

쿠르트는 페리움 왕국의 실질적인 지도자라고 들었기에 아론은 예를 갖춰서 인사했다.

“오는 길에 몬스터들이 많아 고생이 많으셨겠소.”

“아닙니다. 용맹한 드워프 워리어분들 덕분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쿠르트는 그들을 반겼다. 아론도 드워프 전사들을 칭찬하며 대답해 주었다.

“납치되었던 뷰란트와 벨파를 구해줬다고 들었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불의에 맞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론의 말에 쿠르트는 껄껄 웃었다.

“다른 드워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이곳에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쿠르트의 허락이 떨어졌다.

아론이 원했던 바가 쉽게 이루어진 셈이었다.

“이 녀석. 보통이 아니군.”

그때였다. 쿠르트의 옆에 있던 늙은 드워프가 아론을 물끄러미 보면서 말했다.

아론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뒷말이 없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뷰란트에게 들었네. 자네는 미티움으로 만든 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예, 맞습니다.”

“그걸 가공하고 싶다고 했었지?”

쿠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에 있는 늙은 드워프를 가리켰다.

“이 자는 우리 왕국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드워프 장인이네.”

“헤핌이오.”

늙은 드워프는 아론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다. 이대로 간다면 두 개의 검을 가공하기는 쉬워 보였다.

‘원래 무기를 다른 것으로 가공하는 건 필시 본래의 것보다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론은 그 사실을 감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의 최고 장인이 손을 쓴다면 다를지도 몰랐다.

“그대는 우리 아이들의 은인이니, 약소한 답례라고 생각하시오.”

“감사합니다.”

아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실례가 안 된다면 헤핌 님에게 검을 보여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그는 두 자루의 검을 내밀었다.

“오오…… 이건.”

“인간이 만든 것은 아닌 것 같군.”

쿠르트와 헤핌은 아그니 소드와 바루나 소드를 각각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들이 봐도 놀랄 정도인가?’

한 나라의 지도자와 최고 장인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칠검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흐음.”

헤핌은 두 개의 검과 아론을 번갈아 보았다.

“이것들보다는 이 녀석이 더 물건인데?”

헤핌은 아론을 보며 말했다.

아론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대뜸 자신을 보며 물건이라니.

“네 녀석의 몸. 마나를 받아들이는 재능이 심상치 않아. 미티움으로 가공된 물건을 활용하기에 최적의 몸이야.”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구나.’

아론은 헤핌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마나 친화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기분이다. 네가 쿠르트의 아들을 구해준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드는군. 이 검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마.”

“감사합니다.”

아론은 헤핌의 그 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어떤 걸로 가공하고 싶느냐?”

“저는 마법사입니다. 그래서 제힘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형태의 물건이라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뷰란트가 예전에 말했듯이 검의 형태로 마법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신의 마법에 도움이 된다면 반지든, 귀걸이든, 스태프든 형태는 상관이 없었다.

아론의 대답에 헤핌은 곰곰이 그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손을 잠깐 내어주겠나?”

아론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헤핌은 자신의 손을 잡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헤핌의 손에서 나온 투력이 아론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의 상태를 알아보는 건가?’

아론은 간질거리는 기분을 참으면서 헤핌이 얼른 이것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이 정도면 됐다.”

헤핌은 아론의 손을 놓았다.

그러더니 놓아둔 검을 두 자루 챙겨서 총총 사라졌다.

“헤핌 공이 웃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군.”

쿠르트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네와 검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쿠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저는 인상 쓰는 것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저분은 그게 최대로 웃은 거라네.”

‘뭐, 웃었다면 웃은 거겠지.’

그 답변에 아론은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헤핌 공이 웃으면서 만들어 낸 제작품은 항상 최상품이었지.”

쿠르트의 말에 아론도 내심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과연 두 자루의 검은 어떤 형태의 물건으로 태어날지 궁금해졌다.

* * *

쿠르트는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헤핌공이 최고의 장인인 건 맞지만, 미티움은 워낙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라네.”

“뷰란트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손실 없이 분해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걸세. 못해도 한두 달은 잡아야 하네.”

쿠르트의 설명을 들으니 왕실 공방에 미티움을 녹일 수 있는 화로는 하나뿐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한 번에 하나의 작업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아론에게 맞는 아티팩트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해주었다.

“괜찮습니다.”

아론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몇 년씩만 걸리지 않으면 되었다.

‘아마 여기에 오래 있을 것 같아.’

형제들에게 당해주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아이젠의 기사를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기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동안 여기서 쫓겨나지 않고 수련할 수 있다면 아론은 헤핌이 완성품을 들고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드워프 워리어들의 수련 방식이 궁금했거든.’

그들은 수가 적다뿐이지 무력은 최강이었다.

과연 그들을 양성하는 시설은 어떨지 궁금했다. 거기서 훈련할 수 있다면 자신의 실력도 상승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는 우리의 은인이니, 문제가 없는 한 얼마든지 편의를 제공해주겠네.”

쿠르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자네만 훈련하는가?”

아론은 라엘과 켄트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의사도 물어보고 싶었다.

“저도…… 여기서 단련하고 싶습니다.”

라엘이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드워프 워리어들이 몬스터를 상대로 보여준 무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근접전을 주로 하는 라엘은 그들이 지닌 힘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더 성장해서 도련님의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녀의 속내에는 그런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켄트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아론이 물어보자 켄트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들도 같이 단련을 하고 싶다는군요.”

아론은 그 사실을 쿠르트에게 말했다.

“자네. 성장하는 데 있어서 가장 빠른 방법이 뭔지 아나?”

“무엇입니까?”

“바로 맞으면서 배우는 거라네.”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웃으면서 말하는 쿠르트에게 아론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 느는 데에는 대련 만한 게 없지.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내가 소개해주겠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쿠르트는 카슈를 바라보았다.

“네가 저자의 상대를 하도록 하거라.”

“예, 아버지.”

쿠르트는 라엘을 가리켰다.

카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라엘과 카슈라…… 카슈는 단순무식하게 센 녀석이다. 라엘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하네.’

아론은 카슈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제파. 너는 이분을 상대해 드려라.”

“예!”

켄트의 상대는 아론 일행을 호위했던 드워프 중 한 명이 맡게 되었다.

“그리고 자네는…… 바칸이 맡아주는 게 좋겠소.”

“황송합니다.”

바칸이 예를 갖추어 대답했다.

그들은 쿠르트의 지시에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련을 반기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드워프 워리어들은 싸움을 좋아하는구나.’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나는 상대가 누구라도 봐주지 않소! 날 따라오려면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요!”

카슈는 라엘에게 다가가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요.”

아론과 바칸은 서로의 실력을 잘 알았기에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바칸이라면 연습을 하기에 좋겠어.’

그는 6서클의 기사와 맞먹는 수준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전에 치열하게 싸웠던 젠슨이 7서클의 기사였다.

물론 6서클과 7서클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하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바칸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이 된다면…… 적어도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아론은 그 당시를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다 보니 호승심이 생겼다. 아론은 하루라도 빨리 훈련을 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훈련을 해도 됩니까?”

“우리 전사들이 된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네.”

쿠르트의 그 말에 바칸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지금이라도 가능합니다.”

“그럼 바로 가실까요?”

“좋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아론은 쿠르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나서 바칸의 뒤를 따라갔다.

***

라엘과 켄트의 상대를 해주는 드워프들도 바로 훈련을 해도 상관없다고 했었기에 그들은 같이 이동했다.

아론은 바칸을 따라 훈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훈련장이라기보다는 경기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거 같았다. 바깥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럼 바로 해볼까?”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질 급한 카슈가 먼저 올라갔다. 라엘도 그의 템포에 맞추어 상대하기 시작했다.

‘라엘이 카슈의 스피드는 따라가는데…… 힘은 좀 부치겠는걸.’

아론이 관찰한 바로는 그랬다.

그러나 라엘의 성장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아론은 이제 자신의 상대인 바칸을 이기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다.

“우리도 올라갑시다.”

“예.”

아론은 바칼과 함께 훈련장 위에 섰다. 여기는 충분히 넓었기에 세 그룹이 동시에 훈련을 해도 서로 간섭을 주지 않았다.

바칸은 가볍게 무장하고 망치도 대련용으로 제작된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6서클의 위용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아론은 긴장하면서 양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는 둘 사이의 실력 차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고작해야 4서클 마스터였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나보다 강한 상대를 이겨 왔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과 도움이 따라 줬었지.’

최근에 있었던 젠슨과의 전투에서도 그랬다. 그때 살 수 있었던 것은 포드가 준 팔찌의 도움이 컸다.

아론은 그 요소들의 의존성을 줄이고 싶었다. 이제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상대를 넘고 싶었다.

‘내 성장은 누가 봐도 빠른 편이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대적해야 할 상대들은 이미 높은 경지에 올라가 있다.’

그들을 이겨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자와 맞서 싸워서 이기는 법을 익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는 바칸과의 대련이 제격이었다. 그는 충분히 강했고, 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었다.

아론이 수없이 도전하면, 엄청 깨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싸우다 보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하나둘 체득할 것이다.

“……준비됐습니다.”

아론은 결의를 다지고 바칸을 바라보았다.

바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론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아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움직임이 예상되는 위치의 바닥을 무너트렸다.

그러나 바칸의 움직임이 한 발 더 빨랐다.

‘싱겁군.’

바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대 망치를 휘둘렀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콰가각!

아론은 방어용 돌벽을 앞에 생성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바칸이 쉽게 부술 수 있는 벽이었다.

‘나는 봐주는 법을 몰라서 말이야.’

꽈앙!

바칸은 전력을 다해 돌벽을 부쉈다. 다음에는 곧바로 아론에게 공격을 먹일 생각을 했다.

‘맞으면 좀 아플 거다!’

아픈 거에서 끝나지 않고 반나절쯤은 기절해 있을 것이다.

바칸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그의 윗대도 그렇고, 자신도 다 이렇게 맞으면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부웅!

바칸은 아론을 향해 거대 망치를 휘둘렀다.

파밧!

그러나, 그 공격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아론이 시간 가속을 사용해 재빠르게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바칸이 출발했던 자리에 아론이 서 있었다. 아직 시간 가속 마법이 익숙하지 않아 약간 휘청거리긴 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콰득!

바칸이 부서뜨렸던 돌벽은 사슬이 되어 그의 발목과 손목에 달라붙었다. 쿠브가 성장하니 이제 이런 것도 가능했다.

그의 움직임을 막는 것은 고작 잠깐이겠지만, 아론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는 얼음 마법을 시전해 바칸을 향해 날렸다.

파앙!

그러나 바칸은 자신이 드워프 워리어임을 증명하듯 자신을 속박하던 돌을 부수고 날아오는 마법을 막아냈다.

물론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론이 바칸의 맷집을 고려해서 최대한 강한 마법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바칸은 자신의 투기를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첫 대련이라서 투력을 안 쓰고 상대하려 했는데…… 쉽지 않군.’

바칸은 자신의 안일함을 탓했다. 아론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넘어서 있었다.

‘투력을 썼으니 어쩔 수 없군.’

바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론에게 돌격했다. 투력까지 개방했는데 시간을 오래 끄는 건 전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아론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바칸. 그는 망치를 들어 올렸다.

파밧!

다시 아론이 시간 가속 마법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칸이 이를 예상하고 그의 위치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거긴가!’

바칸은 예상되는 방향으로 몸을 날려 망치를 휘둘렀다.

쾅!

육중한 타격감이 바칸의 손에 느껴졌다.

그러나 맞은 것은 아론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한 흙더미였다.

‘이 짧은 순간에 바꿔치기를 했다고?’

바칸은 속으로 감탄했다.

분명 마지막까지 쫓던 그의 모습은 허상이 아니었다.

조금만 늦었더래도 더미가 아닌 진짜 아론을 칠 수 있었을 것이다.

‘……!’

바칸은 자신의 뒤에서 섬뜩한 마나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뒤로 이동한 아론이 주문을 시전했다.

퍼엉!

강력한 충격이 바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투기를 완전히 뚫고 내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이렇게까지 접근했는데, 바칸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콰앙!

그에게 좋은 반격 기회였다. 바칸의 거대한 망치가 아론의 몸을 가격했다.

아론은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다. 그대로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으윽…….”

그는 부딪친 충격으로 신음을 흘렸다.

한편, 바칸 역시 아론의 공격에 소름이 돋은 상태였다.

마지막 반격은 거의 본능이었다.

만약 대련이 아니라 이게 실전이었다면…….

‘나도 크게 피해를 입었겠군.’

바칸은 아론이 배려를 해서 충격파 마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만약 살상만을 위한 마법을 쏟아부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역시…… 바칸 님에겐 제 얕은수가 어림도 없군요.”

아론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론 님의 전투 방식도 놀라웠습니다.”

바칸은 오히려 그의 실력을 칭찬했다.

“후우.”

아론은 훈련장의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 것은 분하고 아쉬웠다.

하지만 대련의 과정은 속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바칸은 강했다.

그런 상대에게는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언젠가 그를 이기고 말겠다는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좋은 대련 상대야.’

아론은 페리움에 와서, 그리고 바칸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아론이 드워프들의 왕국, 페리움에 온 지도 어언 두 달이 지났다.

그는 그동안 뼈를 깎는 수련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했다.

깡! 깡! 깡!

후우욱! 치익!

한편, 왕성의 근처에 있는 큰 대장간에서는 장인 드워프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달궈진 철을 세심하게 두들기고 찬물에 담그기를 반복했다.

드워프들은 제작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집중한 탓도 있지만, 수많은 화로에서 나오는 열기가 그들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만약 인간들이 이 대장간의 화로를 보면 감탄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최고 등급에 속하는 화로가 여기에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드워프들의 기술이 집약된 무기와 방어구는 물론 아티팩트들도 이 공방에서 제작되고 있었다.

왕성에서 관리하는 곳답게 아무나 들어올 순 없었다. 왕국 내 장인 드워프들 중에서도 최고만을 모아 운영하고 있었다.

깡! 깡!

그들 중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자는 단연 헤핌이었다.

그는 두 달 전부터 아론이 가져온 검을 가공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헤핌은 최근에서야 아그니 소드를 완전히 분해하는 데 성공했다. 미티움을 거의 손실하지 않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는 그렇게 용해된 아그니 소드를 틀에다 부었다.

그러한 과정을 쿠르트가 옆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너는 부족장이면서 할 일이 없나?”

헤핌은 땀을 훔치면서 곁눈으로 쿠르트를 흘겨보았다.

“저도 어릴 때는 장인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요. 미티움을 가공하는 걸 볼 기회가 생겼는데 어떻게 안 보고 배깁니까?”

쿠르트의 그 말에 헤핌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스승님 작업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서 온 거죠.”

“쯧쯧. 내가 언제 적에 네 스승이었냐?”

헤핌은 혀를 찼다.

그가 쿠르트와 사제지간이었던 것도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래. 이 검을 나한테 맡긴 그 인간은 뭘 하고 있나? 듣자 하니 아직 왕국에 있는 모양이던데.”

“헤핌 공도 그자에게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쿠르트가 웃으며 물어보았다.

“흥. 그냥 인간 녀석이 우리나라에서 뭐 하는 지 궁금했을 뿐이다.”

“한창 바칸과 대련을 통해 훈련하고 있습니다.”

헤핌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론의 동향에 대해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흐음. 보아하니 인간 녀석이 쥐어 터지고 있겠군.”

“맞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그랬었다고 하더군요.”

쿠르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점점 대련 시간을 늘리더니, 이제는 막상막하로 합을 주고받는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그 녀석이 바칸과 맞수라고?”

그 말을 들은 헤핌은 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거야 당연했다. 바칸은 드워프 워리어들 중에서도 최고를 자랑하는 수호자 등급이었다.

바칸과 마주 서서 싸울 수 있는 드워프 워리어는 몇 명 되지도 않았다.

‘두 달이 지났다고는 해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인간 녀석의 몸은 바칸과 호적수가 될 실력이 아니었어.’

그런데 벌써 실력이 비등비등하게 올라왔다니. 헤핌은 자신이 아론의 재능을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그 정도 그릇은 되어 줘야지. 그래야 나도 걸작을 만드는 흥이 나지 않겠나?”

“맞는 말씀이십니다.”

쿠르트는 헤핌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왕 만드는 거, 인간 녀석에게 딱 맞는 걸 만들어 주려고 한다.”

헤핌의 시선은 작업대 위를 향했다. 자연히 쿠르트의 눈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직 미완성의 펜던트가 있었다.

쿠르트는 그것이 레어 메탈로 만들어졌음을 파악했다.

펜던트에는 7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무언가를 담기 전의 모습인 것 같았다.

‘한 달 전에 왔을 때도 펜던트를 만들고 계셨었는데…… 아직도 미완성이시네.’

쿠르트는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헤핌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장인에게는 저마다의 생각이 있었다. 괜히 완성되지 않은 것을 물어봐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흐음…… 완성품은 과연 어떨지 기대되네.’

헤핌이 저렇게 몰두해서 작업하는 것을 보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시키니까 만든다는 기색이 역력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최상품의 물건들을 만들어 내셨지.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쿠르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장간을 나왔다.

헤핌이 핀잔을 주었던 것처럼, 이제 밀린 국정을 살피러 가야 했다.

***

헤핌이 아티팩트 제작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론 역시 이를 악물고 대련을 하고 있었다.

파앗!

아론은 바칸을 노려 마법을 날렸고.

부웅!

바칸 역시 아론의 급소를 목표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렇게 둘의 공격이 교차했다.

“크윽!”

아론은 가슴 부근을 맞고는 신음을 흘렸다. 큰 충격이었기에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예전의 아론이었더라면 방금 타격으로 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칸과의 대련으로 무수히 담금질 된 결과, 얼굴을 잠깐 찡그리는 것으로 참을 수 있었다.

물론 바칸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아론이 날린 마법을 맞고 옆구리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둘은 거리를 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근접하면 무조건 공격을 성공시키시는군요.”

바칸은 아론에게 한 방 먹은 것을 칭찬했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만약 바칸이 들고 있는 저 메이스가 연습용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의 갈비뼈는 짓뭉개졌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 100% 죽었겠지.’

반면 그의 마법은 바칸의 옆구리를 때리는 데 그쳤다.

이번 전투 역시 아론의 패배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오늘 훈련은 이쯤 할까요?”

“그럽시다.”

아론과 바칸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훈련장에서 내려왔다.

“저도 훈련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편입니다만.”

바칸이 아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론 님만큼 극단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론이 걱정되어서 조언하는 중이었다.

“아직 4서클 마스터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6서클인 저와 대등하게 맞붙는다는 건 잘하시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아론도 그의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앞으로 자신이 만나야 할 적을 떠올리니 고삐를 세게 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바칸을 안심시켰다.

둘의 훈련이 끝나니 라엘과 켄트도 훈련을 마치고 내려왔다.

‘두 사람도 열심히 하는구나.’

아론은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특히 라엘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매일 단련을 하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상처를 입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훈련이 끝나면 힘들어서 지칠 법도 했다. 하지만 라엘의 눈빛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 애도 강해지고 싶어 하는구나.’

아론은 그 심정에 공감이 갔다.

“둘 다 힘들겠지만, 서클 훈련 마저 하고 끝내자.”

“네.”

아론의 말에 라엘과 켄트는 힘차게 대답하며 그를 따라갔다.

“정말 대단하네.”

카슈는 멀어져가는 세 인간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드워프 워리어도 훈련의 양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 셋은 그것을 넘어서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서클 훈련은 체내의 마나를 순환시켜서 서클을 활성화하도록 만드는 훈련이었다.

이것도 근력 운동을 하듯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회로를 자극시켜야 했기에 집중하는데 체력도 많이 들어갔고 고통도 수반되었다.

그 과정은 마치 물방울이 돌을 뚫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걸 계속해주어야 언젠가 새로운 서클이 형성되었다.

아론과 라엘, 켄트는 방금까지 최선을 다해 대련에 임한 것도 모자라서 또다시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강해지는 것에 대한 욕망은 우리 전사들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들을 보니 그 생각이 바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모든 인간이 저 세 분처럼 건강하게 욕망을 품었다면 좋았을 텐데…….”

카슈의 말에 바칸이 거들었다.

저들의 빠른 성장 속도도 말도 안 되는 훈련량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쿵! 쿵!

라엘은 채워 뒀던 손목 보호대를 풀고 땅에 내려놓았다.

‘……얼마나 무거운 걸 끼는 거야?’

아론은 그 장면을 보고는 속으로 놀라워했다.

라엘이 최근에 몸을 강화하기 위해 무게를 달고 대련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게가 저렇게 무거운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쩐지…… 근력이 예상외의 속도로 오른다 싶었다.’

아론은 켄트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혹시 너도 저렇게 훈련하냐?”

“예. 그렇긴 한데…… 저도 저 정도 무게를 달고 하지는 않습니다.”

켄트도 라엘의 무게에 놀랄 정도였다.

“라엘.”

“네, 도련님.”

“무게 달고 훈련하는 거 말이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카슈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질문에 라엘이 대답했다.

분명 이 대화는 카슈도 들었을 것이다.

아론은 그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원래 무게는 많이 달아야 해.”

카슈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나처럼 체술에 적합한 몸을 가질 수 있지.”

“아니, 그…… 너는 드워프고, 라엘은 인간이잖아.”

“뭐 어때. 인간은 근육 싫어하나?”

카슈는 그렇게 말하며 라엘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키울 겁니다.”

“거 봐.”

라엘의 대답을 들은 카슈는 씩 웃어 보였다.

아론은 순간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저렇게 무게를 점점 늘려나간 결과, 자신보다 우락부락해진 라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전의 주인이 라엘에게 심한 짓을 많이 했었지.’

만약 자기보다 강해진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잘못하면 피의 복수를 당하는 건 아닐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상상이 정말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너무 무리하게 시키진 마라.”

“내가 알아서 하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게.”

카슈는 대답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 * *

그렇게 또 2주가 흘러갔다.

아론은 오늘도 변함없이 바칸과의 땀나는 대련을 마쳤다.

“오늘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국경 근처가 요즘 뒤숭숭해서 말입니다.”

“저번에 말했던 오크들 때문인가요?”

“예. 녀석들이 계속해서 성벽 근처를 어슬렁거린다고 하더군요.”

“별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바칸은 서둘러 훈련장을 나갔다.

아론은 멀리서 드워프와 대련을 하고 있는 라엘과 켄트를 보았다.

두 사람도 열심이었다.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아론의 독단이었는데, 저렇게 열심히 훈련에 임해주니 내심 미안하면서도 뿌듯했다.

‘저번보다 무게가 더 올라가 있네.’

그는 라엘의 손목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예전에 꼈던 것보다 더 무거운 무게의 손목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이젠 나보다 힘이 세지 않을까…….’

아론은 두 사람이 훈련을 마치는 것을 기다리려고 했다.

보통은 아론이 바칸과 대련을 끝내면 그 둘도 동시에 마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 훈련은 어쩐 일인지 좀 길어지고 있었다.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까우니 먼저 하고 있어야겠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훈련장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클 훈련을 시작했다.

이 훈련은 항상 통증이 수반되기에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그래도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았기에 참고 버텼다.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이상했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평소보다 몇 배는 아픈 고통이 아론의 몸을 덮쳤다.

잠시 후, 다른 사람들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뭐, 뭐야? 왜 저러나?”

카슈가 아론의 기색을 살피고는 놀라서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는 것을 라엘과 켄트가 막았다.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저 얼굴을 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잖아!”

카슈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론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는 아론의 근처에서 요동치는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도련님은 지금 벽을 넘어서려고 하시는 중입니다.”

라엘이 설명해 주었다.

마법사들은 4서클까지는 노력만 하면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5서클부터는 재능의 영역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4서클까지 쏟아부었던 노력 그 이상이 필요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거 같긴 합니다.”

켄트는 아론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아론보다 먼저 5서클에 올라갔었다. 그래서 지금 아론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켄트는 자신이 5서클의 벽을 넘어설 때, 저렇게 마나 흐름을 불안정하게 내뿜지 않았었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저 정도라면 6서클, 아니 7서클쯤은 되어야 보이는 불안정함이 아닐까?’

켄트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실제로 아론은 그 수준의 역경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론의 마나 친화력이 너무 뛰어난 탓이었다.

높은 친화력은 아론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만, 반대로 이런 경우에 성장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아론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럽다고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새로운 서클을 만들어 내지 못할 바에야 죽어 버리자는 심정으로 체내의 마나를 진정시켰다.

주변에 있는 자들은 방해하지 않고 숨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론의 주변에서 휘몰아치던 마나 폭풍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도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아론이 다섯 번째 서클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이 충만감……!’

그는 눈을 감으면서 체내의 마나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개마냥 날뛰던 마나가 새로 생성된 서클에 들러붙으면서 잠잠해졌다.

“아론 님……!”

라엘과 켄트는 아론이 눈을 뜨자 가까이 다가갔다.

“성공한 것 같아.”

아론은 숨을 가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드디어 5서클에 돌입하셨군요.”

“응. 이제 너랑 같은 서클이 되었군.”

“서클만 같을 뿐이지 실력은 아론 님이 훨씬 위에 있으십니다.”

켄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정도의 성장이면…… 이제 슬슬 바칸 님과 붙어서도 이길 수 있겠는데?’

아론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붙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국경에서 생긴 문제 때문에 훈련장을 떠난 상황이었다.

‘나도 새로운 서클에 적응을 좀 해야 할 필요도 있으니까.’

아론은 그와의 다음 대련이 기대되었다.

***

저벅저벅.

쿠르트는 자신의 아들 세 명, 그리고 헤핌과 함께 훈련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걸어가면서 어제 바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내일 있을 아론 님과의 대련을 참관해 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시간 내는 건 어렵지 않다만…… 왜지?]

[진귀한 장면을 보실 겁니다.]

[진귀한 장면이라?]

[예. 아마 제가 아론 님에게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쿠르트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바칸은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드워프 워리어였다. 게다가 그 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 수호자 등급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진다는 게 쉬이 상상되지 않았다.

바칸과 아론이 대련을 빌미로 훈련한 지는 어언 두 달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아론이 바칸과의 격차를 뛰어넘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쿠르트는 아들 셋을 대동해서 훈련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헤핌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오는 길에 만났기에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헤핌도 같이 참관하게 되었다.

‘이미 준비는 끝났나 보군.’

쿠르트가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론과 바칸이 이미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말했던 대로 질 수도 있겠구나.’

쿠르트는 아론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보았을 때랑은 훨씬 달라진 기량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론 님. 며칠 사이에 뭔가 깨달음이 있으셨나 봅니다.”

“다 바칸 님이 성의를 다해 저와 대련해주신 덕분이죠.”

그 후로 둘은 말없이 씩 웃었다. 곧 대련을 시작한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타앗!

언제나 그랬듯, 바칸의 달음박질로 시작되었다. 그는 메이스를 굳게 쥐고 아론을 노려 달려들었다.

이전처럼 봐주는 건 없었다. 아론도 성장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바칸은 투력을 끌어 올려 투기를 한껏 개방시켰다.

순식간에 좁혀진 둘 사이의 거리.

부웅!

바칸은 메이스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파밧!

그러나, 아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흩뿌려진 연노랑 빛 투기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익숙한 패턴이다!’

바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반동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항상 대련 때마다 아론은 이런 방식의 반격을 노려왔었다.

하지만 번번이 아론이 중심 잡기를 어려워해서 약한 마법만이 날아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론은 완벽하게 우뚝 서 있었고, 곧바로 반격 마법을 시전하는 중이었다.

‘이런……!’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위 마법을 쓸 거라는 것을 말이다.

화르륵!

근거리에서 펼쳐지는 화염 마법이었다.

바칸은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다. 맷집 하나에는 자신 있었으니 맞으면서 공격하자는 판단을 내렸다.

“으아악!”

그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파밧!

그러나, 아론은 또다시 사라질 뿐이었다.

‘동시에 마법을 쓴다고?’

바칸은 허공에 메이스를 휘두르면서도 마나의 흔적을 찾아 아론의 다음 경로를 좇았다.

그는 바칸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나타났다.

‘……쉽지 않군.’

방금 한 합의 전투로 피해를 입은 건 바칸뿐이었다.

‘새로운 서클이라도 얻으셨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의 아론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니 말이다.

여태까지의 대련은 그가 아론을 받아주는 형태로 펼쳐졌었다.

아론은 바칸을 이기기 위해 항상 여러 전략을 짜 왔었다. 바칸은 그것을 상대해주며 결국은 이겼었다.

그러나 이젠 그 상황이 역전되려 하고 있었다.

‘……이젠 내가 아론 님 입장인가.’

어떻게 이겨야 할지 궁리해야 하는 건 이제 바칸이었다.

쾅!

아론은 바칸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가 마법을 쓰자 바닥이 터져 나가면서 뾰족한 가시가 솟아올랐다.

‘당하지만은 않는다!’

꽈앙!

바칸 역시 투기를 잔뜩 두르고서는 메이스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를 노리고 생성되던 가시는 그 공격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바칸의 선택은 오히려 패인이 되고 말았다.

‘어……?’

바칸이 내려친 곳에 구멍이 보였다.

그가 언제 파놓은 거지? 라고 생각한 순간.

화르르르!

구멍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라 바칸을 잡아 삼켰다.

애초부터 땅을 뒤엎고 가시를 만들어 낸 건 눈속임이었다. 진짜 아론의 노림수는 바로 이 공격이었다.

상승한 서클과 쿠브의 도움으로 만들어 낸 구멍이었다. 바칸이 첫 공격을 맞았을 때 실행한 것이기에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제길!’

이미 화염을 맞아 버린 이상.

바칸은 몸으로 버텨내기로 마음먹었다.

쿠오오!

그의 체내에서 투기가 맹렬하게 방출되어 갑옷처럼 몸을 감쌌다.

그렇게 뜨거운 불꽃은 몇 초간 바칸을 휩쓸었다.

잠시 후, 화염이 사라지자 바칸이 두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칸 님, 버텨내셨군요!”

숨 막히는 둘의 대련을 보고 있던 뷰란트가 외쳤다.

“그렇게 보이느냐?”

하지만 아들의 반응에 쿠르트는 껄껄 웃었다.

“네?”

뷰란트가 영문을 몰라 그렇게 물음과 동시에.

“……내가 졌습니다.”

바칸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는 투력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었다.

아론은 이제 그가 맨몸으로 어쩔 수 없는 상대였다.

그걸 잘 알았기에 대련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언제 또 저 뒤로……?”

아론은 어느새 바칸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론의 머리 위에는 윈드 커터가 발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바칸이 항복을 외치지 않았더라면 또다시 강력한 마법이 그의 뒤를 덮쳤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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