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켄트는 약속한 시간이 되자 초소의 입구에 강력한 화염 마법을 날렸다.
화악- 콰앙!
날아간 마법은 굉음을 냄과 동시에 초소 하나를 완전히 불태웠다.
그곳을 지키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으아아!”
그러자 드워프 카슈가 양손에 도끼를 쥐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갔다.
라엘은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가며 전신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스릉!
“웬 놈들이냐!”
무장을 하고 나온 제블린의 경비병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 들고는 침입자와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개중에는 희미하게나마 오러를 쓸 수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쉬익!
라엘은 짓쳐들어오는 검을 빠른 몸놀림으로 피했다. 그러고는 상대가 자세가 흐트러진 타이밍을 노려 공격해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카슈는 그저 무식하게 도끼를 든 채 돌진했다.
카각!
경비병들이 휘두르는 무기는 카슈가 입은 튼튼한 드워프의 방어구를 뚫지 못했다.
콰득!
오히려 카슈의 광폭한 도끼질에 경비병들은 무참히 찢겨졌다.
거기에 더해 켄트의 지원 마법이 라엘과 카슈에게 전해지니 그들은 상당한 기량을 뽐낼 수 있었다.
“남쪽으로 모여! 그리고 자고 있는 녀석들도 빨리 깨워서 모아!”
경비병들은 다급하게 몰려들었고, 추가 병력을 호출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아론이 노렸던 대로 되는 셈이었다.
물론 켄트를 포함한 삼인방은 늘어난 병력을 뚫어낸다고 고생 좀 하겠지만 말이다.
켄트는 계속해서 몰려드는 경비병들을 보며 북동쪽을 쳐다보았다.
‘아론 님. 부디 성공하시길.’
거리가 멀었기에 아론은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염원이 닿길 바라면서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
한편, 아론 일행이 행동하기 직전. 에닉스 영지 북동쪽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제블린 본부의 어느 건물에서는 모종의 회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섯 명의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한 명은 아이젠 측의 귀족이었고, 나머지는 보스를 포함한 제블린의 간부들이었다.
쾅!
아이젠의 귀족은 책상을 세게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몸값을 더 달라니!”
그는 네 명의 간부들을 바라보며 일갈했다.
그런 귀족의 반응에 제블린의 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납치를 부탁받은 대상이 드워프일 줄은 몰랐지. 그런 희귀한 거에는 합당한 몸값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줬잖아!”
“아 글쎄, 그거로는 부족하다니까 그러네.”
그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귀족에게 이런 태도를 보였다간 불경죄로 처벌 받겠지만, 여긴 에닉스의 치안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듣자 하니 헤카롯의 경매에서 어느 졸부가 드워프를 50만 골드에 사 갔다고 하더군. 우리도 그거 비슷하게 받아야 하지 않겠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보스의 이죽거림에 귀족은 화가 점점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언제라도 어느 한쪽이 칼을 빼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네 이 녀석들을……!’
아이젠의 귀족은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녀석들을 베어 버리고 싶었다.
그는 무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네 명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기에 어떻게든 이성의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어깨에 힘주지 말라고. 당신이 아무리 5성 기사라 해도, 우리 네 명은 버겁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 제블린의 간부쯤 되는 애들은 단순한 감투가 아니었다. 실력이 되니까 간부 자리에 오른 자들이었다.
그 말에 귀족은 초조해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것은 자신의 탓이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내가 입을 잘못 놀려 가지고…….’
자신도 상부에서 드워프를 회수해 오라는 지시로 이곳에 파견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녀석들이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틴다면 일정이 늦어지고 만다.
그러면 다시 상부에 연락해서 처리를 부탁해야 했다. 물론 그 방식을 선택한다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건 면하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드워프란 말만 안 꺼냈어도……!’
아이젠의 간부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다.
왕국으로부터 중요한 임무라면서 새로운 조직에 배치될 때는 기뻐했었다. 자신도 드디어 출세 가도를 당당히 걷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초장부터 일이 이렇게 삐끗해 버리다니.
‘어쩔 수 없다. 시간은 하루 정도 남아 있으니까,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드워프를 회수해야겠어.’
귀족은 속으로 결론을 내린 뒤 제블린의 간부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좋소. 내…….”
콰앙!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건물에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폭발이었다.
“뭐야?”
“무슨 소리야?”
귀족은 물론 제블린의 간부들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건물 바깥에서도 갑작스러운 소요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나서 이야기를 다시 진행하도록 하지.”
보스는 그렇게 말하며 침착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상황을 보고하러 온 경비병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남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이 무력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지금 경비들과 대치 중입니다!”
“뭐? 어떤 놈들이야?”
“설마 이번에 우리한테 일거리를 뺏긴 경쟁 조직 놈들 아니야?”
간부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당장에라도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제블린의 보스는 침착했다.
경쟁 조직이 시비를 걸러 왔다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의 촉은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녀석들이 그렇게 시끄럽게 움직이진 않을 거야. 차라리 화풀이를 한다면 잠입해서 몇 명 정도 죽이고 빠져나가겠지.’
보스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경비병을 향해 물었다.
“지금 대치 상황은 어떻지?”
“예상보다 강력한 녀석들입니다. 남쪽에 있는 인원들로는 막아내는 게 불가능해서 지원 호출을 보냈습니다.”
“알겠다.”
그는 경비병을 물리고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양동이다.”
“예?”
“상대가 우릴 바보로 아는 모양이다. 모두 드워프를 감금해 둔 창고로 간다.”
“알겠습니다!”
보스는 간부들과 함께 드워프가 있는 창고로 향했다.
아이젠의 귀족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는 한층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이 더럽게 꼬여 버렸군.’
어쩌면 이번 일은 자기 선에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는 화가 난 발걸음으로 간부들이 떠난 방향으로 따라 걸어갔다.
***
아론은 충분히 남쪽으로 시선이 끌렸다고 판단이 되자 행동하기 시작했다.
켄트 쪽이 확실하게 행동해 준 덕분에 들키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어느덧 아론은 드워프가 감금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창고의 부근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전투를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중요한 걸 보관한다고 광고라도 하는지 창고를 지키고 있는 병력들이 있었다.
‘어디 보자. 3성 급이 두 명이고 4성 급이 한 명 있군.’
침입자를 철저하게 막기 위해 오러 사용자들을 배치해 뒀었다.
아론은 이 정도면 싸워볼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선공권은 이쪽에 있었다. 그리고 이 거리에서 검사와 마법사가 싸운다면 마법사에게 훨씬 유리했다.
아론은 천천히 집중해서 에드먼스 호흡법을 사용했다. 다섯 번을 반복하니 회로에 마나가 충만해졌다.
그런 뒤에 얼음 마법을 시전해 세 발의 아이스 스피어를 날렸다.
파바밧!
3성 급 두 명은 목이 꿰뚫려 즉사했다.
“크윽!”
4성은 갑작스러운 마나 파동을 느끼고 몸을 던졌지만, 왼쪽 어깨에 직격하고 말았다.
퍼석!
아론은 녀석이 반격하기 전에 잽싸게 머리통을 날렸다.
상황은 큰 소란 없이 종료되었고, 아론은 유유히 창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이 어둡군.’
안으로 들어간 순간 조명 하나 켜져 있지 않아서 사물을 판별할 수 없었다.
화악!
아론은 마법으로 만든 빛을 띄워서 주변을 밝혔다. 그러자 내부가 환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는…… 사람들을 보관해 둔 창고였군.’
어디로 팔려나가는 지는 몰라도 모두 창살로 된 상자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꽤 굶고 폭행을 당한 모양인지 아론이 그들을 살펴보아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론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드워프를 찾기 시작했다.
창살로 이루어진 상자 중에서 하나만 천막이 씌워진 것이 있었다. 아론은 천막을 걷어내고 안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 있었군.’
겉보기에 뷰란트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드워프가 웅크린 채 있었다. 그는 아론을 보고는 몸을 덜덜 떨었다.
“누, 누구세요?”
아론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시선을 좀 분산시켜 볼까.’
제블린에도 눈치 빠른 녀석이 있을지 몰랐다.
카앙!
아론은 사람들이 감금된 철창을 모두 부수었다.
“다 나와! 여기서 도망치는 거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아론의 말뜻을 알고는 철창 밖으로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유를 찾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허겁지겁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 중 어린 노예 한 명이 아론에게 힘없이 다가와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론은 멀어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나한테 감사할 필요는 없지.’
그는 그저 창살을 부숴줬을 뿐이었다. 살아 남는 건 온전히 그들의 힘으로 이뤄내야만 했다.
그리고, 아론은 불쌍해서 그들을 풀어준 게 아니었다. 제블린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기 위해 그들을 동원한 것이었다.
“너도 얼른 나와라.”
“……어디로 가는 건데요?”
어린 드워프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형들, 카슈와 뷰란트가 기다린다.”
아론의 입에서 두 명의 이름이 나오자 드워프는 눈이 커졌다.
“형님들이 당신을 보낸 건가요?”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아론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무사히 드워프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군.’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드워프를 데리고 창고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으아악!”
“이, 이러지 마세요!”
그때, 창고 바깥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걸 들은 아론은 혀를 찼다.
‘머리 좀 굴리는 녀석이 제블린에 있나 보군.’
아무래도 아론의 작전을 알아 차린 녀석이 이쪽으로 온 모양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보스를 포함한 제블린의 간부들이었다.
녀석들은 바깥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정리하고는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너 누구냐?”
아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답무용.
곧바로 마나를 끌어모으며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 * *
아론의 기세를 본 제블린의 간부들은 흠칫 놀랐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서 온 아이젠의 귀족도 아론을 발견하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녀석. 어디 출신인지는 몰라도 허울만 있는 녀석이 아니야.’
보스는 아론의 실력을 가늠했다. 여기 다섯 명이서 덤비더라도 이기기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때, 보스의 시선에 아론의 옆에 있는 드워프가 보였다.
‘역시 목적은 드워프였군.’
그걸 본 보스는 입술이 실룩거렸다.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아마 저 녀석은 우리랑 다르게 드워프를 꼭 살려서 데리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보스는 그 점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예측했다. 비전투원이나 다름없는 드워프를 지키면서 싸우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드워프를 향해 달려든다면 저 녀석은 그걸 막기 위해 행동하겠지. 그럼 그 순간을 노려 녀석을 공격하면 된다.’
아론의 실력을 감안해 여차하면 드워프를 죽여 버릴 생각까지 했다.
드워프야 어딘가에서 다시 잡아 오면 되는 거고, 자기들의 목숨은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보스는 간부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간부 한 명이 보스의 뜻을 읽고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쉬익!
간부는 단도를 역수로 잡은 채, 드워프를 노려 공격하려 했다.
“저 녀석을 노려!”
보스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아론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들의 수를 읽은 아론은 침착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론은 쿠브에게 명령해 드워프가 서 있는 땅을 꺼트리도록 했다.
쑤욱!
그러자 드워프는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아론은 다시 쿠브를 시켜 꺼트렸던 땅을 다시 막아 버렸다.
휘익!
이미 드워프는 땅 밑으로 사라졌고, 간부가 휘두른 단도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드워프는 정령과 친하다 했으니까. 쿠브가 길을 안내하면 잘 따라가겠지.’
아론은 드워프가 부디 그래 주길 빌었다.
그리고 그는 드워프를 노렸던 간부를 향해 전격 마법을 발사했다.
파지직!
워낙 가까운 거리였던지라 녀석에게 전해지는 충격이 상당했다. 그는 곧바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런 뒤 전방에서 달려드는 공격을 막기 위해 실드 마법을 펼쳤다.
콰가각!
동시에 들어온 네 명의 공격은 아론의 실드에 막혀 버렸다.
‘한 명 때문에 합이 어그러졌군.’
아론은 거리를 벌린 뒤에 나머지 네 명을 보며 생각했다.
제일 강한 사람이 5성 마스터 급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세 명과 합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명령을 내린 쪽이 보스겠지.’
보스는 5성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간부 두 명은 4성 마스터 정도로 생각되었다.
반면 아론은 4서클 마스터.
숫자로 비교하면 불리한 싸움이지만, 아론에게는 수를 넘어서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에드먼스의 재능. 그리고 아그니 소드의 마나 동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싸워볼 만한 전투였다.
스릉!
아론은 스태프로 의태한 아그니 소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체내의 마나가 증폭되는 것이 느껴졌다.
제블린의 간부들은 갑자기 봉을 꺼낸 아론을 경계하면서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휘익!
아론은 아그니 소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지나간 자리에서 불덩어리가 여러 개 생겼다.
불덩어리 세례는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화르르륵!
간부들은 검에 오러를 실어서 마법을 쳐내며 돌진을 계속했다.
부우웅!
하지만 뒤이어서 날아오는 바윗덩어리에는 돌진을 멈추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어코 그 공격을 뚫고 짓쳐들어오는 두 명이 있었다.
‘한 놈은 보스. 그리고 이 녀석은 간부인가?’
콰가각!
아론은 실드를 전개해 공격을 막고는 반격 마법을 흩뿌리며 거리를 벌렸다.
‘왼쪽 어깨가 시큰한데.’
아무래도 실드를 넘어서 충격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쿠브가 있었다면 대지 마법을 이용해 방어했겠지만, 지금은 실드로 막아내는 게 최선이었다.
‘확실히 연격은 조심해야겠군.’
같은 조직이라 그런지 합을 맞추는 솜씨가 남달랐다.
노리고 들어오는 방향은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마법 시전 사이의 공백까지 고려해서 시간차로 공격을 가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당했겠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 5성 마스터 기사가 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녀석의 공격이 가세되면 이상하게 전체의 위력이 어그러졌다.
‘아마 외부인이겠지.’
나머지 세 사람과 의상의 분위기도 남달랐다.
그렇다면 아론은 보스부터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제블린의 보스는 아론을 경계하며 주시했다.
‘저놈, 괴물이다.’
처음에 견적을 낼 때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예상 했었다. 하지만 직접 부딪혀 보니 상상 이상으로 실력이 출중한 마법사였다.
‘더블 캐스팅을 넘어서 트리플 캐스팅을 하는 마법사는 처음 보는 군.’
보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마법을 동시에 쓰는 마법사는 여럿 보았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은 마법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오히려 상대하기 손쉬웠다.
그러나, 아론의 마법은 동시에 발현되어도 충분히 둘 다 위협적이었다.
‘못 이긴다. 도망치는 게 최선이야.’
보스는 속으로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드워프를 놓치고 녀석들을 보내주는 거? 큰 실책은 맞았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는 것보다 아쉬운 일이 있으랴.
‘드워프는 다시 납치하거나, 다른 녀석을 구하면 된다.’
보스는 간부들에게 지시하고 동시에 도망치려고 했다.
콰득!
그러나, 보스는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확인해보니 거기엔 나무줄기가 치솟아 발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마법을 쓰는 기색은 없었는데?’
보스는 놀라서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화아아악!
그때, 보스의 눈앞에 보인 것은 거대한 불덩어리였다. 그것도 아론이 에드먼스 호흡법으로 증폭시킨 마나를 담은 마법이었다.
‘쿠브, 고맙다!’
아론은 딱 좋은 타이밍에 복귀한 쿠브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쿠브가 땅 밑에서 돌아온 걸 알아차린 아론은 곧장 보스의 발을 묶으라고 명령했었다. 쿠브는 그걸 잘 수행해 주었다.
녀석이 당황한 틈을 노려 아론은 마법을 때려 박은 것이었다.
보스가 있었던 자리에는 바싹 타 버린 시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으헉!”
“대장!”
남은 간부 두 명은 방금까지 보스였던 것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제일 성가신 상대가 죽었으니 이제 전투는 이긴 거나 다름없군.’
아론은 그렇게 판단하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으아아!”
“보스의 복수다!”
간부 두 명은 이성을 잃고 아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남은 기사 한 명은 그 둘의 광기 어린 공격에 끼어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그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쉭! 쉬익!
아론은 녀석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며 반격 마법을 날렸다.
‘확실히 보스가 주축이었군. 보스가 죽으니까 남은 두 녀석은 연계가 형편이 없어졌어.’
그 결과, 아론은 손쉽게 간부 두 명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기사 한 명이었다.
상대가 5성급 마스터라지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아그니 소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론이 자신을 노려보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흥. 이런 녀석들한테 드워프의 납치를 맡기는 게 아니었어.”
휘익!
귀족은 그렇게 말하면서 칼끝을 아론에게 겨누었다.
“나는 이런 양아치들과는 격이 다르다.”
“아, 그러세요.”
아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도발했다.
“네 이놈!”
타닥!
귀족이 땅을 박차면서 아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전투의 결과는 아론의 승리였다.
“으으…….”
귀족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아론은 귀족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약하다. 바르트한과 비교해서 훨씬 형편없어.’
아론은 아이젠의 7왕자와 비무했던 날을 떠올렸다. 그의 검술은 날이 서 있었지만, 지금 이자에게서는 투박함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봐!”
그때, 귀족이 아론을 불렀다.
“나는 아이젠에서 작위를 받은 귀족이다! 만약 나를 죽인다면 왕실이 너를 끝까지 추적할 거다!”
“역시…… 아이젠에서 온 외부인이었군.”
“이제 내 위치를 알겠느냐? 하지만 나를 살려준다면 이번 일은 없도록 해주마.”
아론은 어이가 없었다.
비록 패배했을지언정, 뼛속까지 귀족 의식에 차 있는 녀석인 걸까.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하사하는 그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의 긍지는 패배하면서 같이 내던져 버린 거냐?”
“뭐, 뭐라?”
콰앙!
아론은 마법을 시전해 그의 몸통을 날려버렸다. 더 이상 녀석의 말을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날 찾지도 못할 텐데.’
아론은 드워프의 목걸이 덕분이 완벽하게 형태를 바꾼 상태였다.
“쿠브. 드워프는 어떻게 됐어?”
아론은 쿠브에게 물었다.
그러자 켄트 일행과 합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네, 그거.”
아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동생이 다치거나 했더라면 이번에 움직인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경비 몇 마리 해치우고 드워프만 빼내서 나올려고 했건만.’
일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제블린이란 조직의 보스를 포함한 간부를 죽여 버리고 아이젠의 귀족도 처리해 버렸다.
‘뭐, 어쩌겠어. 언젠가는 부딪쳐야 될 녀석이었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향해 푸른 불꽃을 쏘아 올렸다.
라엘과 켄트가 있는 곳으로 이쪽의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의미였다.
‘이제 합류하러 가야겠군.’
아론은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우우웅.
그러나 마침 그때, 죽었던 귀족의 몸 위로 빛이 두둥실 떠 올랐다.
‘뭐지?’
파앗!
그것은 곧바로 커다란 타원형이 되어 일렁거렸다.
“이, 이건…….”
아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위 마법 중 하나인 포탈이 발동되고 있었다.
“하. 위기 상황이 아니면 이건 절대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포탈의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론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젠슨의 목소리잖아.’
이내 그의 모습이 포탈에서 드러났다.
* * *
포탈에서 나온 젠슨은 가만히 멈춰 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포탈에서 뿜어져 나온 빛으로 인해 주위가 환하게 보였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여러 개의 사체. 그리고 그의 발밑에 있는 귀족의 시체.
젠슨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거기에는 건장한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후.”
젠슨은 숨을 토해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일이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드워프를 데리고 오라고 귀족 기사 하나를 이곳에 보냈더니 바닥에 누워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리다니.
귀족을 죽인 자는 저기 홀로 서 있는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일이 틀어져 버리다니.’
젠슨은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즘 임무의 실패가 잦았다. 그것 때문에 마법사 녀석에게 한 소리 들은 것도 아니꼬운 상태였는데 말이다.
젠슨의 주위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놈이 한 짓이냐?”
그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슨의 화가 향하고 있는 남자, 아론 역시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저자가 나타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등장 방법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포탈을 타고 넘어왔다고?’
아론의 눈이 맛이 가지 않았다면, 눈앞에 있는 저건 포탈이 맞았다.
아론이 모르는 사이에 귀족이 포탈 스크롤을 사용해 포탈을 연 것이리라.
그가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포탈을 만들 수 있는 마법 공학은 에드먼스 가문의 비전이기 때문이었다.
돈을 준다고 해서 다른 곳에 팔 수 있는 물건이 절대 아니었다. 더욱이 이걸 사용한 상대가 아이젠 측 사람이라니.
아론은 생각했다.
녀석들이 어떤 수를 써서 에드먼스 공작가에서 훔쳐 왔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가문 내에서 내통하는 사람이 있어서 포탈의 기술과 스크롤이 빠져나갔다든가.
전자의 이야기는 가능성이 없었다. 공작가는 그 어떤 쥐새끼라도 외부에서 침입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도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이젠과 에드먼스는 사실상 서로를 적국으로 생각하고 경쟁하는 중인데 말이다.
그러나 전자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후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안 사람 중에 아이젠에 정보를 팔아넘긴 사람이 있다니.’
그러나 아론은 더 이상 의혹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었다.
스릉!
젠슨이 검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네가 이번 일을 방해한 것 같군.”
그는 자세를 잡으며 아론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드워프가 도망친 곳은 네 사지를 도륙한 다음에 찾아봐도 늦지 않겠구나.”
젠슨의 검에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걸 본 아론은 긴장했다.
녀석의 오러는 지금까지 아론이 상대했던 자들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할로움에서 도망칠 때 맞붙었던 느낌이랑 완전히 다르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
마치 당시에는 자신과 진지하게 싸워준 것이 아니라 그저 장난에 어울려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앗?’
아론의 시야에 있던 젠슨의 모습이 홀연 사라졌다.
슈욱!
아론의 눈앞에 나타났을 땐 벌써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이거 죽겠는데!’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콰가각!
짓쳐들어오는 검로에 돌이 생기더니 젠슨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아론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기에 죽을 각오로 덤벼야겠다고 생각했다.
젠슨은 멈추지 않고 두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아론은 그에 맞서 순식간에 서클을 돌려 실드보다 강력한 방어마법인 배리어를 펼쳤다.
콰앙!
검과 배리어가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아론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촤학!
쿠브가 급하게 여러 겹의 모래판을 만들어 아론이 날아가는 것을 막았다.
만약 쿠브의 이런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론은 뒤쪽에 있는 건물의 벽에 부딪혔을 것이 분명했다.
이번과 같이 대비하지 못한 충격은 아론의 약한 몸이 버틸 수가 없었다.
‘싸움도 급이 맞아야 하는데…….’
아론은 젠슨을 이길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할로움에서 녀석을 맞닥뜨렸을 때도 저자는 자신을 얕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론이 귀환 마법의 스크롤을 사용해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마주한 젠슨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에 아론은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6성, 아니 7성급은 되는 것 같다.’
무려 7성급 기사의 힘.
아론은 여기서 몇 번 더 전투를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론이 몸을 돌린 순간 젠슨은 사력을 다해 쫓아올 게 눈에 선했다.
설령 쿠브의 도움을 받더라도 무사히 도망치긴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료들이 이변을 알아차리고 와주기를 바라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자신이 당할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론은 자신의 왼팔에 착용했던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위험할 때에만 쓰라고 했던 포드의 말이 떠올랐다.
-상태창 열람 불가-
아론의 능력으로도 무슨 아티팩트인지 확인할 수 없는 팔찌였다.
분명 포드가 준 것이니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녔을 게 분명했다.
아론은 팔찌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거기에 박힌 보석에서 빛이 나더니 아론의 몸을 감쌌다.
그 광경을 본 젠슨은 곧장 달려들지 않았다. 아론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유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라피스의 팔찌」
· 팔찌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신체 능력을 대폭 상승 시켜 준다.
· 팔찌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주문의 시전 시간을 제로에 가깝게 줄인다.
팔찌를 활성화시키자 그제야 아론의 눈에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론은 팔찌의 능력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제한 시간이 존재했지만 능력치를 어마어마하게 올려주었다.
아론은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 올라간 능력치를 확인했다.
【상태창】
· 이름 : 아론 에드먼스
· 스테이터스
체력 91(↑50)마력 158(↑50)
근력 78(↑23)민첩 51(↑20)
지력 138(↑43)친화력 320
‘이렇게나 올라가다니.’
아론은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능력은 바로 시전 시간을 없다시피 해주는 것이었다.
마법이란 건 발현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목숨이 오고 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마법사들은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국지전을 싫어했다.
특히, 지금과도 같이 마법사가 기사가 근접해서 전투를 치르는 것을 가장 골치 아파했다.
하지만 시전 시간이 없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거 잘하면…… 저 녀석을 이기고 살 수 있겠어.’
희망을 엿본 아론은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때, 젠슨은 아론을 향해 오러를 날렸다.
쐐애액!
아론은 당황하지 않고 배리어를 만들었다. 시전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기에 세 개를 겹쳐 생성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아론은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파지지직!
아론의 왼손에서 칼날과도 같은 번개가 쏘아졌다. 전격계 마법 중에서도 상위 마법인 썬더 블레이드였다.
콰앙!
날아간 마법은 젠슨에게 적중했따. 아무리 7성급 기사라고 해도 이 정도 마법이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젠슨도 살짝 당황했다. 설마 아론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녀석. 마법을 시전 시간도 없이 사용하고 있잖아?’
젠슨은 생각했다.
과연 저렇게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대륙에 얼마나 되는가.
그 유명한 에드먼스 가문이라도 이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젠슨의 시야에 희미하게 빛이 나는 아론의 팔찌가 보였다.
‘저것 때문인가?’
아론의 기세가 달라진 것도 팔찌가 빛나기 시작한 이후라는 것이 생각났다.
‘더 시간을 줘서는 안 되겠군.’
젠슨은 체내의 마나를 더욱 끌어내서 오러로 변환시켰다.
꽝!
젠슨은 땅을 강하게 밟으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어찌나 세게 밟았던지, 그가 처음 밟았던 바닥은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아론과의 거리를 좁혀가며 검을 휘둘렀다.
쐐액!
젠슨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지나간 자리에서 희미한 선들이 뻗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론은 처음에 그게 뭔가 싶었다. 이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뻗어 나간 기운들이 얽히고 설켜 강력한 폭풍을 만들어 내는 걸 볼 수 있었다.
타앗!
아론은 계속해서 젠슨과 거리를 벌리며 반격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젠슨 역시 지독하게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각!
그의 칼질이 만들어 낸 검풍은 이 일대를 휩쓸며 온갖 것들을 부수었다.
“저기 두 녀석…… 으아악!”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소란에 경비병 잔당들이 이쪽으로 왔지만, 젠슨이 만든 폭풍에 희생당하고 말았다.
오직 아론만이 그 공격을 피하고 막으며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했다.
이게 다 포드가 준 팔찌 덕분이었다. 시전 시간이 0에 가깝다 보니 배리어가 깨질 때마다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를 이런 방식으로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시전 속도가 빠르다 해도 마나가 차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저 녀석의 검풍이 희생자를 만들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을 막고 보스와 간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경비병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불쌍하게도 젠슨의 검풍에 갈려 나갔다.
그럴 때마다 젠슨은 더욱 폭풍 같이 아론을 몰아쳤다.
‘전투를 길게 끌어선 안 된다.’
아직 마나가 남아있을 때, 저놈을 처리해야 했다.
아론은 젠슨의 광기 어린 눈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쓸 수 있는 패를 모두 이용해서 녀석을 쓰러트리는 것뿐이었다.
‘……살기 위해서 또 도박을 하는구나.’
아론은 포드의 걱정이 떠올랐다. 제발 목숨을 걸고 도박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아론은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
멀리 있던 젠슨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이내 아론의 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쐐액!
젠슨은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칼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얽히면서 검풍을 만들어 내었고, 그것은 아론을 집어삼켰다.
콰카가각!
아론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다.
“쳇.”
하지만 젠슨은 얼굴을 찌푸리며 검을 거두었다. 그가 벤 것은 아론이 아니라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어디로 내뺀 거지?’
젠슨은 금세 아론이 도망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의 잔해에서 마나가 일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에 숨은 건가?’
저벅저벅.
젠슨은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그의 코에 느껴지는 피 냄새는 저기에 아론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한편, 아론은 포드가 준 팔찌 덕분에 배리어를 계속해서 만들 수 있었지만, 충격이 누적되다 보니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타앗!
젠슨의 몸이 아론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아론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젠슨이 움직이는 타이밍에 맞추어 몸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휘익!
젠슨의 오러가 실린 검이 휘둘러졌다. 오러는 아론이 숨어 있는 건물의 잔해를 향해 날아갔다.
콰앙!
오러에 직격당한 잔해는 허공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젠슨은 거기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오러에 의해서 잔해들이 날아간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잔해가 제 스스로 날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젠슨이 의아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쿠구구!
젠슨의 검풍이 만들어냈던 이 근방의 잔해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뒤덮은 무수한 잔해들.
젠슨이 자세히 확인해보니 그것들을 묶고 있는 것은 마나였다. 그 마나의 출발점은 아론의 손이었다.
원래라면 이런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젠슨이 주변을 모두 산산조각 내주었기 때문에 물체들을 다루기가 쉬웠다. 잔해들의 중간을 마나로 이어서 들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론의 천부적인 재능에 쿠브의 도움이 더해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론은 젠슨을 노리고 잔해들을 낙하시켰다.
젠슨은 거기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잔해가 떨어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콰쾅!
잔해의 융단폭격이 젠슨이 있는 곳을 강타했다.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리며 지진이 난 것 마냥 땅이 흔들렸다.
아론은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상대는 7성급의 기사.
고작 잔해에 깔렸다고 죽을 녀석이 아니었다.
움직임을 묶어둘 수 있는 이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최대한 피해를 줘야만 했다.
아론은 에드먼스 호흡법을 이용해 회로에 마나를 축적했다. 그런 뒤 아그니 소드를 바닥에 찍었다.
쿠쿵!
그러자 젠슨이 깔린 잔해의 산들이 들썩였다.
콰득, 콰드득!
괴상한 소리가 울리며 잔해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론은 마나로 압력을 가하면서 최대한 잔해들을 으스러뜨렸다.
아마 젠슨은 저 거대한 압력을 견디느라 몸이 성하지 않을 터였다. 아무리 오러로 근육을 강화한다고 해도 이 정도면 버티는 살갗이 터질 정도였다.
‘이걸로도 부족해!’
그렇게 생각한 아론은 한 번 더 아그니 소드를 바닥에 찍었다.
그러자 땅 밑에서 충격파가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젠슨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잔해 속을 몇 번이고 강하게 뒤흔들었다.
단 한 번만 맞아도 평범한 사람을 갈가리 찢을 수 있는 마법이었다. 거기다가 저렇게 중첩되어서 맞으면 젠슨이라도 버티기 힘들었다.
‘……죽었나?’
아론은 헉헉거리면서 잔해로 뒤덮인 곳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은 없었다.
그는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마나를 짜내서 탐지 마법을 시전했다.
‘아무 반응도 느껴지지 않아.’
마나가 되돌아왔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생명의 반응도 감지할 수 없었다.
털썩.
그제야 아론은 긴장이 풀리면서 땅에 주저앉았다.
‘마나를 너무 많이 써 버렸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아론도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회로에는 마나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었다.
‘스승님이 주신 팔찌가 있어서 다행이야.’
아론은 빛이 거의 꺼져가는 자신의 팔찌를 바라봤다.
이 팔찌의 신묘한 능력 덕분에 아론은 크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비록 일회용이었지만, 발동하는 동안에는 능력을 대폭 올려주고 시전 시간마저 극단적으로 줄여주는 기능이 없었더라면 아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쿠브의 도움과 아그니 소드의 힘도 빼놓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결과 젠슨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제 좀 힘이 돌아온 것 같아.’
아론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젠슨과 맞붙기 전에 빛을 쏘아서 라엘과 켄트가 있는 곳에 신호를 전달해 뒀었다.
‘녀석들은 잘 빠졌겠지.’
아론도 얼른 여기서 나와 그들과 합류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가면 켄트가 응급처치는 해주리라.
화아악!
그때였다. 아론이 떠나려는 순간, 잔해더미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죽었을 텐데?’
그걸 본 아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급히 탐지 마법을 사용한 결과, 아까는 느낄 수 없었던 생명의 반응이 전해졌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잔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놀랍게도 젠슨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
‘저건……!’
아론은 젠슨의 손에 들린 검을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다름 아닌 바르트한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바루나 소드!’
저것도 복제품인가 싶었지만, 멀리서도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원본으로 보였다.
“이게 없었으면 위험했겠군.”
젠슨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론의 예측대로 그가 들고 있는 검은 원본의 바루나 소드였다.
그 검은 젠슨의 피를 흡수해 막대한 마나를 그에게 공급해주고 있었다.
반면, 아론은 전투를 속행할 정도의 마나가 없는 상태였다.
젠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아론을 향해 걸어왔다.
‘오기 전에 공격을…… 해야…….’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팔을 들었다. 하지만 아직 마나가 부족해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도망가는 것도 무리였다. 서 있는 정도로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싸우면서 신경 쓰이는 게 있었거든.”
어느덧 아론의 앞으로 온 젠슨은 그가 끼고 있는 목걸이로 손을 뻗어 만지작거렸다.
“영 수상해서 말이야. 마나는 거의 안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폼으로 차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단 말이지.”
뚜둑!
젠슨은 아론의 목걸이를 쥐어뜯었다. 그러자 아론은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서서히 되돌아갔다.
“이 체형…….”
젠슨은 아론의 변화에 잠깐 놀라더니 이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할로움에서 아그니 소드를 들고 도망치던 게 네놈이었구나. 아론 에드먼스!”
아론은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어서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세간에서 망나니라고 들리는 소문은 다 위장이었나? 뭐, 상관없다.”
스릉!
젠슨은 아론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어차피 오늘 죽을 테니 말이다.”
피잉!
그때였다. 아론의 어깨너머에서 한 줄기의 빛이 쏘아져 나와 젠슨의 오른쪽 팔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이 자식이……!”
젠슨은 아론의 마지막 발악인가 싶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이내 아론의 뒤편에서 등장한 존재를 알아차린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아론의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다름 아닌 포드였다.
부웅!
포드는 아론이 공격당하기 전에 레비테이션 마법을 써서 자신의 곁으로 이동시켰다.
“스, 스승님! 어떻게…….”
아론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포드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게 준 그 팔찌. 그건 능력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사용하는 순간, 너의 위치를 내가 알 수 있게 되지.”
“아……!”
“물론 팔찌를 썼다는 건 위험한 상황이니까,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마법의 시전 시간을 줄이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줬다.”
포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론을 인자하게 바라보았다.
“고생 많았다. 조금 쉬고 있거라.”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젠슨을 바라보았다.
젠슨은 남아 있는 왼손으로 바루나 소드를 잡고 있었다.
‘이 괴물은 누구지?’
그는 포드를 향해 칼을 겨누면서 경계했다. 나타난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고, 마법 하나로 자신의 팔을 날릴 수 있는 상대였다. 지금 상황에선 충분히 조심하는 게 맞았다.
“자네, 쓸 만한 검을 가지고 있군.”
포드가 젠슨이 들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젠슨은 눈을 부릅떴다.
“그 검. 내 제자에게 선물하도록 하지.”
포드는 그 말을 낮게 읊조렸지만 분노가 가득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든가, 영감.”
젠슨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후웅!
한쪽 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검격으로 검풍을 만들어 냈다. 바루나 소드의 덕에 그 위력은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그러나, 포드가 팔을 들며 주문을 외자 폭풍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포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젠슨의 발밑에서 마나로 된 덩굴들이 튀어나와 그를 속박했다.
“제길!”
젠슨은 오러를 이용해 뜯어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젠슨에게 떨어진 마법은 지옥의 겁화, 헬파이어였다.
화르르륵!
젠슨의 비명마저 불길이 집어삼키며, 그는 뼈도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쨍그랑.
그곳에는 바루나 소드만이 떨어지면서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렇게 나오셔도…… 괜찮습니까?”
“네가 목숨을 잃을까 봐 이렇게 달려왔다. 불만이라도 있느냐?”
포드는 아론을 향해 화를 내었다. 진심으로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제자 뒤치다꺼리 하기 참 힘들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랑 만나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정령에게 물어볼 테니 그만 쉬어라.”
포드의 그 말에 아론은 기절하고 말았다.
* * *
에드먼스 카이만은 자신의 서재에서 포드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고맙네.”
비서는 두 사람의 차를 따라 준 뒤에 서재를 나갔다.
카이만은 차를 한 입 마시고는 포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포드 공께서 공작가를 잠시 떠나셨다니요?”
아론은 에닉스에서 쓰러진 직후 곧바로 공작가로 이송되었고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어지간한 이야기는 그가 계약한 정령인 쿠브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포드는 카이만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아론이 자신에게 맞는 아그니 소드의 활용법을 위해 드워프를 찾아간 것과, 드워프의 가족을 구하던 도중 포탈을 마주해 아이젠의 기사와 싸웠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카이만은 그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는 표정이 심란해졌다.
‘드워프가 납치되었었다니. 분명 아이젠 측이 칠검과 관련해서 움직인 것일 테지.’
그것도 문제였지만 그가 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아이젠 측의 귀족이 포탈 마법을 썼다고 했지요?”
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증거는 있습니까?”
카이만의 물음에 포드는 귀족의 시체에서 발견한 아티팩트를 보여주었다.
“……이건!”
카이만은 눈을 찡그렸다.
그가 보여준 아티팩트는 포탈을 기동시키는 장치였다. 그것도 에드먼스 가문에서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었다.
“집안에 쥐새끼가 숨어 들었군요.”
카이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여러 후보가 떠올랐다.
외부에서 침입해 아티팩트를 털어갔다거나. 아니면 마법 창고에도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오래된 시종이 매수당했을 수도 있었다.
‘설마…….’
카이만은 최악의 경우까지 떠올라서 엄지로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
아니길 바랐지만, 자식 중 한 명이 후계자 싸움에서 밀릴 것 같아서 아이젠과 내통한 걸 수도 있었다.
“고민이 많겠구만.”
“……예. 에드먼스가 아이젠과 내통했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카이만은 남은 차를 들이마시며 목을 축였다.
“지금부터 샅샅이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네. 아이젠 녀석들도 일을 꽤 진행시켜 둔 것 같았으니 말이다.”
“혹시 아론이 싸웠던 아이젠의 기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계십니까?”
카이만은 아론이 정확히 어떤 상대와 싸웠는지 궁금했다.
“포탈에서 나온 녀석은 아이젠의 특임대라고 하더군.”
“특임대라고요?”
특임대는 어떠한 임무를 위해 조직된 기사단이었다. 이번에는 아마 칠검과 관련된 임무를 받았을 거라고 카이만은 추측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마지막에 죽었나 싶더니 바루나 소드를 꺼냈네. 거기서 아론은 버티지 못했고, 내가 늦지 않게 도착해서 쓰러트렸지.”
“……그랬었군요.”
카이만은 상황을 이해했다.
아론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아론의 실력이라면 칠검을 가진 아이젠의 기사와 몇 합만 주고받아도 잘 싸운 것이다.’
그렇기에 포드가 도착할 때까지 버틴 것은 놀라운 이야기였다.
‘신기한 녀석이야.’
아론의 명목적인 실력은 아직 막내인 라크에게 밀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론이 해내는 일을 보면 모두 자기 실력 이상의 것을 너끈히 감당했다.
물론 운이 따라 주거나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걸 잘 활용하는 것도 본인의 실력이었다.
“요즘 녀석에게 관심이 꽤 기우는 것 같아 보이는구나.”
포드 역시 그 점을 알고서 카이만에게 물어보았다.
“예. 녀석에게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것이 느껴집니다.”
“자식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도 말년의 큰 재미 중 하나지.”
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그런데, 아론은 아그니 소드로 무엇을 하려고 드워프를 찾아갔던 겁니까?”
포드의 이야기를 듣던 카이만은 그 점이 계속 궁금했었다.
“듣자 하니 아론은 그 칼을 녹여서 자기에게 맞는 아티팩트로 만들려고 했다더군.”
“예?”
그걸 들은 카이만은 잠깐 벙찌더니, 이내 파안대소하며 입을 열었다.
“하하! 아이젠의 재보를 녹일 생각을 하다니!”
그가 아그니 소드를 아론에게 넘겨준 이유는 사용법을 스스로 익혀서 마나를 증폭 시켜 보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에게 맞는 무기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범인이라면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터였다.
‘이번에 얻어온 바루나 소드도 녀석이 맡아도 될 거 같군.’
카이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기를 재가공하기 위해 드워프를 찾아낼 정도니, 바루나 소드도 준다면 어련히 알아서 잘 쓸 것 같았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앞으로 녀석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 결과로 생길 반응이 궁금했다. 과연 나머지 자식들은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아이젠과 내통하는 멍청이가 있다면 그 꼬리를 드러낼지 궁금했다.
“너무 아론을 들볶지는 말아주게. 저래 보여도 아직 소년이니 말일세.”
포드는 카이만의 눈빛을 읽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역시 그 아이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사지로 내몰 생각은 없습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일었다.
“더 할 말이 있지 않나?”
“포드 공 덕분에 아론의 목숨을 구한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네.”
카이만이 차마 말끝을 흐리자, 포드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맹약은 맹약이지 않은가.”
그가 이번에 나선 것은 에드먼스 가문과 맺은 맹약을 스스로 어긴 것이었으니 말이다. 포드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달게 받겠네.”
포드의 그 말에 카이만은 굳은 표정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포드의 오른쪽 손등에 표식이 하나 새겨졌다.
이로써 포드는 당분간 마나를 봉인 당했고,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아론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된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카이만의 그 말에 포드는 잠깐이지만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허허. 내 살아생전에 자네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포드는 껄껄 웃으면서 공작의 서재를 나왔다.
***
아론이 깨어난 것은 공작가로 실려 온 지 일주일 뒤였다.
“으으…….”
아론은 정신을 차리면서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몸에는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아론은 죽은 듯이 잠만 잤었다.
칠성초를 구하긴 했지만 아직 약을 먹어야 하는 기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마나 중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덕분에 아론은 젠슨과 싸우면서 내부의 마나 회로를 일부 손상시켰다.
에드먼스 호흡법을 쓰고, 아그니 소드의 마나를 빌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포드에 의해 빨리 공작가로 이동할 수 없었고 공작가의 뛰어난 신관들이 없었더라면 치료로 회복되지 못할 정도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었다.
‘블러드 임프를 잡고 나서도…… 이랬던 거 같은데.’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 심하게 통증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론은 힘을 줘서 몸을 일으키려고 해봤다.
하지만 조금만 근육을 쓰려고 해도 어마어마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결국 그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택하고 말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이번에 아론이 겪었던 일들이 마치 주마등이 스치듯 그의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지나갔다.
드워프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본 아이젠의 귀족. 그리고 포털 아티팩트. 거기서 나온 젠슨과 바루나 소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네.’
아론은 이번 기회에 좀 쉬고, 머리가 맑아질 때에 다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아무도 없나?’
아론은 눈을 굴려서 방안을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아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어……? 저건?’
그때, 아론의 눈에 책상 위에 있는 두 자루의 검이 들어왔다.
하나는 자신이 쓰던 아그니 소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루나 소드잖아? 저게 왜…….’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정신을 잃기 전에 포드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검. 내 제자에게 선물하도록 하지.」
기억이 완전히 떠오른 아론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아아…… 그랬었지.’
이건 뜻밖의 수확이었다.
애초에 젠슨이 나타날 줄도 몰랐고, 원본의 바루나 소드를 그가 들고 있는지도 몰랐었다.
그런데 바루나 소드를 쓰던 사람은 죽고, 그 검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아그니 소드 덕분에 이번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어.’
그는 이번에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칠검의 유용성을 체감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칠검 중 다른 하나인 바루나 소드를 얻게 될 줄이야.
‘어쩌면 그것도 뷰란트에게 부탁하면 다른 아티팩트로 바꿀 수 있겠어.’
아론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포드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승님이 없었더라면 난 죽었겠지.’
갑자기 전장에서 홀연 나타난 포드. 그리고 단번에 젠슨을 제압하는 모습.
‘어마어마하게 강하셨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공작가의 도서관에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기를 꺼려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오셔서 괜찮으셨던 걸까.’
아론은 포드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당장에라도 몸을 움직여 나가고 싶었지만 통증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끼익.
그때, 방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라엘이었다.
“도련님…… 깨어나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나가서 신관을 데리고 왔다. 덤으로 켄트도 아론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같이 왔었다.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아직 통증이 심하실 겁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신관은 아론의 몸을 살피고는 그렇게 말했다.
“고맙네. 나가봐도 좋아.”
아론은 신관을 물리고는 라엘과 켄트를 보며 물었다.
“포드 님도 같이 돌아오셨지? 지금 도서관에 계시는가?”
아론의 그 물음에 라엘은 시선을 잠시 돌렸다.
“무슨 일이 있었지?”
아론이 다시 묻자,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포드 님께서는 공작가에 오시고 나셔서 공작님을 뵈러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행방을 알 수 없어서…….”
아론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예감했다.
‘나를 구하고 나서, 뭔가 문제를 겪으신 게 분명하다.’
아론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약하지만 않았더라도 포드는 전장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문제도 생기지 않았겠지.
‘……나 때문이군.’
아론은 지금 자신의 실력이 다른 나이의 마법사에 비해 월등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에드먼스 가문 내에서는 아직 뒤처지는 수준이며, 그가 앞으로 겨루게 될 바깥의 상대들과 비교해서도 약함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을 위해주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론은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드워프들은 어디에 있지?”
“일단 공작가까지 같이 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보는 눈들을 피해서 비밀스러운 장소에 모셨습니다.”
아론은 드워프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에게 자신을 그린데란트로 데려갈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