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공작에게 보고를 마친 아론.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소득이 있어서 다행이야.’
아론은 돌아오는 길에 받은 것들을 다시 확인했다.
임무의 대가로 받은 진짜 칠성초. 그리고 아그니 소드.
‘이 칼은 어디다 써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 칠성초는 얻었으니 한시름 놨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렇지만…… 당분간 움직이지는 못하겠는걸.’
아론은 걸어가면서도 몸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겨우 방에 도착한 그는 곧장 침대에 몸을 던졌다.
‘며칠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여기가 바깥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에드먼스 공작가 내부였다. 자신을 노리는 자들도 쉽사리 행동하지 못할 터였다.
‘으으, 그냥 자야겠어.’
아론은 전신의 고통과 수마를 버티지 못해 결국 잠들고 말았다.
***
아론은 그렇게 일주일을 침대에서 잠만 자며 보냈다.
라엘은 아론이 일어나지 않자 당황했지만, 공작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깨어나셨군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아론을 보자 라엘은 울먹거리며 다가왔다.
“어…… 얼마나 지났지?”
“꼬박 일주일 동안 잠만 자셨어요.”
그 말을 들은 아론은 생각했다.
‘아직 몸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그래도 정신은 또렷해졌어.’
그러면서 라엘을 쳐다봤다.
‘얘가 물수건도 갈아주고 간호한 것이 얼핏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해.’
비몽사몽 간에 본 것인지, 아니면 정말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라엘, 내가 잠들어있는 동안 돌봐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그래도 감사의 표시는 해뒀다.
‘그리고 공작도 왔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라엘은 몰라도 공작이 온 것은 정말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겠지. 공작은 한 번도 아론의 방에 찾아온 적이 없으니 말이야.’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련님, 아직 움직이시면……!”
라엘이 놀라서 아론을 저지하려고 했다.
“괜찮아. 오히려 누워만 있는 게 몸에 더 안 좋아.”
아론은 라엘을 안심시키며 환복을 도와달라고 했다.
‘포드 공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해야겠지.’
이번 임무의 성공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 포드였다. 만약 그가 귀환 스크롤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여기에 아론은 없었다.
‘칠성초를 먹는 건 나중에 하자.’
어차피 먹는다고 바로 효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1년은 꾸준히 달여 먹어야 온전히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아론은 도서관에 있는 포드를 찾아갔다.
“어서 오게. 이제 일어났구나.”
“네. 회복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바로 찾아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허허, 죄송할 게 뭐가 있나.”
“그래도 제 스승님이신데요. 그리고 귀환 스크롤을 제게 주셔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론의 인사에 포드는 손사래를 쳤다.
“그것보다, 임무는 힘들었던 모양이지?”
아론은 포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헬브람 백작가와 같이 이동하면서 습격을 받았던 일이나, 길드의 창고에 침입해서 아이젠 측의 기사와 싸웠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아이젠에서 보낸 기사들과 만났다고? 그래서 그렇게 다쳤던 거군.”
“예.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론에겐 칠성초가 있었다. 이걸 먹고 몸을 완전히 회복한다면 다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기사에게 네 정체를 들켰을 때, 오히려 반겼었다고 했지?”
“예. 아무래도 공공연하게는 아니겠지만, 제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거 참. 너는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세상은 가만 두질 않는구나.”
포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다가 혈육 중에서도 너를 노리는 자가 있다고 하니…… 대책은 있느냐?”
그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저도 정식으로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뭐라고?”
포드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아론은 나름 궁리해서 낸 답변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공작의 관심은 다시 식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자니 아이젠의 적이 된 상태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쉽지 않았다.
“후계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니,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이 맞겠지요.”
그 말이 맞았다.
습격이 없었더라면.
아이젠의 기사와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아론은 조용히 마법의 정진만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었다.
“허어.”
포드는 할 말을 찾기 위해 잠시 머뭇거렸다.
아론은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당황스러우시겠지.’
후계자 과정을 밟겠다는 건 가시밭길을 가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현재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 사람은 첫째와 둘째, 셋째, 그리고 막내였다.
이들을 모두 실력으로 이겨야 후계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주목받는 것이 싫었던 게 아니었느냐? 너를 견제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다는 걸 알면서도 후계 경쟁에 뛰어들겠다니…….”
포드는 걱정하고 있었다.
오히려 아론의 행보는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걸 노린 겁니다.”
첫 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니 다음에 암살 기회를 노릴 때는 더 강한 사람들을 보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론은 아직 자신을 지키기에 힘이 충분하지 않았다.
“주목을 받게 되면, 반대로 더욱 암살 기회를 노리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게 되면 좋든 싫든 아버지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저한테 칼을 들이밀게 되면 노하시겠지요.”
“카이만의 성격상 그렇지.”
공작은 철저하게 약육강식을 추구했다. 하지만 묘한 부분에서 보수적인 부분이 있었다.
정식으로 대련이나 경쟁 과정에서 상대를 죽이게 되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암살 같은 경우는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간 타이밍을 노려 습격한 거지.’
밖에서 죽여 버리고 잘 위장하면 사고로 만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공작가 내에 있다면 보는 눈이 많아 저를 죽이기 쉽지 않을 겁니다. 거기다가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다? 더욱 손대기 어렵지요.”
아론은 그 점을 들어 포드를 설득했다.
그 예로 막내, 케빈 에드먼스를 들 수 있었다.
‘위의 형제 중 누군가가 내 재능을 시기해서 암살자를 보냈지. 그렇다면 막내가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내는 잘 살아 있었다.
“아버지는 제가 습격을 당했다고 이야기해도 시큰둥하시더군요. 가문을 이을 의지가 없는 자식의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겠죠.”
하지만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다면 다를 것이다. 공작으로부터 눈에 드니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
“으음. 네 말을 들어 보니 나보다 공작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구나. 겨우 두 번밖에 보지 않았을 텐데…….”
“제가 도서관에서 마법서 다음으로 많이 읽은 것이 에드먼스 가문과 아버지 카이만에 관한 책입니다.”
에드먼스 가문은 메도우드 왕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문이고, 카이만은 가장 강한 마법사이니 관련 서적은 많았다.
‘그리고 카이만 같은 사람은 지구에서 자주 봐 왔다.’
냉철한 판단에 강자만을 우대하고, 자신의 것은 죽어도 지키는 성격.
실력이 곧 생존으로 직결되는 헌터들의 세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군상이었다.
그리고 카이만에 관한 서적들을 읽으면서 딱 그런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왜 그리 어렵게 돌아가려고 하느냐?”
“스승님께서는 다른 생각이 있으십니까?”
“네 목적은 어차피 생존. 그리고 강해지는 것 아니더냐. 그러면 아예 모습과 신분을 바꾼 뒤에 밖에서 새 삶을 사는 게 어떻겠느냐?”
그것 또한 정답 중 하나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론의 상황에서는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건 곤란합니다.”
그렇기에 아론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포드의 도움이라면 의태를 하고 신분도 얻을 수 있겠지만, 할 수 없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살아남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9서클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칠성초는 어디까지나 30살 전후까지로 버티게 해주는 임시방편이었다. 정말 살기 위해서는 9서클의 경지에 들어서야 했다.
“그 목적을 빨리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에드먼스 가문입니다.”
“그건 그렇지. 마법에 관한 물품이며 인재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이니 말이다.”
아론은 얼마 전까지 공작가의 천덕꾸러기였지만, 그도 엄연한 일원이었다. 실력만 보인다면 가문의 재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 기회를 제 발로 차긴 그렇지.’
그래서 가장 나은 선택이 후계자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9서클은 어려운 경지다. 현존하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9서클은 몇 없지.”
“어렵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9서클이 목숨보다도 소중하느냐?”
“예.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목표입니다.”
아론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절박해 보이는구나.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으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너는 내 마지막 제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너를 위해서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도와주마.”
“고맙습니다, 스승님.”
아론은 포드의 그 말이 진심으로 기뻤다.
포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의 실력이었다. 공작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나만 노력하면 된다. 내일, 본격적으로 후계자 경쟁에 들어갈 거라고 알리자.’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포드와 여러 얘기를 하다가 도서관을 나왔다.
***
다음 날.
아론은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그 소식에 에드먼스 가문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약골 망나니였던 아론이?
그가 이러한 행보를 보여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론은 용의주도하게 에드먼스 가문 내부 뿐만이 아니라 바깥에도 이야기가 퍼지도록 작업을 해 두었었다.
당연히 효과는 좋았다.
그 유명한 약골 망나니가 후계자 경쟁을 한다고 하니 귀족들은 물론 평민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당연하게도 공작의 귀에도 들어갔다.
“아론이 정식으로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다니…… 이거 재미있게 되었군.”
공작은 보고를 듣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었다.
“아론 도련님은 여태까지 공식적으로는 아무 행보도 보이지 않으셨었는데, 갑자기 관심이라도 생긴 걸까요?”
비서의 그 말에 공작은 웃었다.
“그 녀석이? 정말로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독대했을 때 말을 꺼냈을 것이다. 일부러 요란을 떨 필요가 없지.”
“그럼 어떤 이유에서…….”
“그거야 당연히 나의 보호가 필요해서겠지.”
공작은 아론의 수를 꿰뚫고 있었다.
“후계자 경쟁을 하겠다고 선언하면 내가 녀석을 지켜줄 거로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내가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아차린 거지.”
“아론 도련님 답지 않게 당돌한 행동이군요.”
“그래. 약자들에게 패악질을 부릴 때나 당당했던 녀석이, 이젠 나한테 수를 쓸 줄 아는군.”
공작의 그 말은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기만 아닙니까? 가주 자리를 이을 생각도 없는데 그렇게 선언하는 것은…….”
“흥. 그 녀석이 과연 내 앞에 와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말씀은 즉…….”
비서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좋아. 녀석이 첫 임무도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니 크게 배려해주지. 에드먼스 가문 내에 있는 불순한 세력들을 확실히 감시하게.”
“예, 알겠습니다.”
공작의 그 말은 암살자 같은 녀석들이 아론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말이었다.
* * *
아론은 라엘에게 매일 아침 칠성초를 달여서 식사와 함께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꿀꺽꿀꺽.
그는 오늘도 아침 식사의 마무리를 칠성초 한 잔으로 끝냈다.
마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반응이 왔다. 활력이 샘솟고 통증이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1년 정도를 반복해서 칠성초를 먹어 준다면 약효를 완전하게 누릴 수 있었다.
꽤 긴 시간이 필요해서 귀찮았다. 물론 자신이 있다면 칠성초를 단번에 씹어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는 칠성초가 머금고 있는 막대한 마나량을 감당할 수 없기에 죽기 싫다면 천천히 장기간 먹어야 했다.
아론은 식사를 마치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저건 어쩐다.’
그는 준비하면서 벽에 걸린 아그니 소드를 쳐다보았다.
이번에 임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아론에게 전혀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지금 와서 검을 가지고 휘두르라고 해도 난감할 뿐이었다.
‘그렇게 쓰라고 주신 건 아닐 테지.’
내다 팔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저걸 가지고 나가는 순간 아이젠 왕국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몰랐다.
포드를 만났던 날에 아그니 소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지만, 그도 명쾌한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그저 잘 가지고 있으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왜 저걸 내게 주신 걸까.’
아론은 고민해 봤지만 당장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작은 대단히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물건을 하나 줄 때도 받는 사람이 제대로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그 냉철한 공작이 준 건데 말이야. 어딘가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아론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방을 나섰다.
***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 이상 아론은 에드먼스 공작가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다녀야만 했다.
이른바 에드먼스 아카데미.
여기에는 마법사의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고 수련을 하는 곳이었다.
왕국은 물론이고 대륙에서도 유명한지라 다른 나라에서도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원래라면 아론은 초급 과정부터 밟아야 하지만, 이미 그 실력은 검증되었기에 고급 과정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고급 과정은 실력자들만 모인 곳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3서클 아래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아카데미가 정한 요건을 갖추면 졸업이 가능했고, 대륙에서 몸값이 비싼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대륙에서는 마법사가 귀한데, 거기다가 에드먼스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증명이 있으면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론의 현재 경지는 3서클이었다. 하지만 마나 친화력이 뛰어났고 신체 또한 건강해진 덕분에 4서클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춘 상태였다.
아론의 나이에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건 대단했다. 그러나 에드먼스 가문의 기준에서는 한참 모자랐다. 다른 이들은 그의 나이보다 훨씬 전에 3서클을 넘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론이 가진 잠재력은 남들과 달랐다. 그건 공작도 인정하는 바였다.
아론은 자신이 늦은 것에 대해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이제 칠성초를 꾸준히 먹고 있으니 신체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수련 시간만 늘리면 되는 일이었다.
한편, 에드먼스 아카데미의 고급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 분위기의 원인은 당연히 아론 때문이었다. 그가 고급반으로 편입된다는 소문을 다들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망나니 공자님이 뭔 바람이 불어서 아카데미에 들어온 데냐?”
학생들은 그를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졸업 과정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곤두서 있는데 이상한 녀석이 들어오는 것을 반길 리가 없었다.
“그분은 약골 아니었어?”
“맞아. 어차피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서 있으실 텐데 어떻게 수업을 들으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
아론이 성질 더러운 것뿐만 아니라 약한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별일 없지 않아?”
“맞아. 몇 달 전엔 기초반 애들이랑 붙어서 연승을 거두셨다며.”
“흥. 그걸 순진하게 믿니? 꼴에 공작가의 자제라고, 자기 체면이 서지 않으니까 사전에 포섭을 해 두고 펼친 대련이겠지.”
어느 학생이 그렇게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대부분의 고급반 학생들은 그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우리, 망나니 공자님한테도 신고식을 할 거야?”
학생들 사이의 신고식은 다름이 아닌 기선 제압이었다.
갓 승급한 학생에게 실력으로 우쭐대지 말라는 명목으로 대련을 걸어 사정 봐주지 않고 기를 꺾어 버리는 악습이었다.
에드먼스 가문의 사람이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는 건 없었다.
이곳 아카데미에서는 신분 차이는 인정하지만, 그걸로 인한 압력 행사는 철저하게 막는 편이었다.
거기다가 몇 년 전, 아론에게 골탕을 먹었던 연습생들도 몇 명 고급반에 있었다. 그들은 신고식이 진행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중이었다.
“어이, 란돌!”
맨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어, 왜?”
이름을 불린 학생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너, 막내 공자님이랑 친하다며?”
“어……?”
“아니야?”
“그, 그건…… 맞아.”
란돌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럼 네가 막내 공자님한테 부탁해서 뒤를 좀 봐주면 되겠네.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망나니 도련님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사실 그는 허세가 심한 사람이었다. 케빈과도 아카데미의 일로 스쳐 지나가면서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그는 막내 공자와 아주 친하다며 유세를 떨고 다녔었다.
‘어쩌지…….’
그는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앗……! 레이라가 보고 있잖아!’
란돌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학생이 이쪽을 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 대답했다.
“당연하지. 맡겨만 줘!”
“흐하하! 그래, 믿는다!”
호언장담한 것과 다르게 란돌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어떻게 이 일을 넘겨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길. 허세를 부린 벌을 받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야, 허튼짓 하지 마.”
누군가가 학생들의 들뜬 열기를 제지했다.
“뭐야, 켄트. 겁먹은 거야?”
“난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일 뿐이야.”
켄트는 고급반에서도 특출난 교육생이었다. 이미 졸업 요건은 모두 채운 수재 중의 수재였다.
“껍데기뿐이라 해도 에드먼스의 이름이 지니는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지? 란돌, 너도 막내 공자님한테 부탁하는 건 그만둬.”
“어차피 가문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약골 망나니일 뿐이야!
란돌은 지적받은 것에 발끈해서 반박했다.
“……알아서 해라. 나는 참여 안 할 테니까.”
켄트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 학생들은 어떻게 아론을 멋들어지게 골려줄지를 열심히 떠들었다.
***
아론이 고급반에 들어가는 날이 되었다.
“반갑다, 아론.”
키가 크고 미형의 남자가 아론을 맞이했다. 그는 고급반을 이끄는 교관이었다.
그의 이름은 에드먼스 브란.
그는 공작가의 직계는 아니었다. 같은 성을 쓰는 방계 중의 한 명이었다.
아론은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방계일지언정 브란 교관은 자신보다 강했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였다.
“네가 조금 변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여기 아카데미 과정은 네 생각만큼 그리 쉬운 곳은 아닐 거다.”
“각오하고 왔습니다.”
브란은 대답하는 아론을 잠시 바라본 뒤에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본가의 에드먼스라 해도 약한 사람은 따라가기 버거울 거다. 뒤처진다고 해도 도움을 바라지는 마라.”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어.’
브란의 단호한 말에 아론은 그렇게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따라오도록.”
브란은 아론을 데리고 고급반 학생들이 있는 훈련장으로 갔다.
그들은 각자 스스로에게 필요한 훈련을 자율적으로 하고 있었다.
고급 과정의 학생들은 일률적인 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다. 그들은 부족한 점을 중점으로 교관에게 교정을 받으며 공부했다.
‘다들 열심히 하는군.’
아론은 그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아론이 훈련장에 등장하자마자 어그러졌다.
학생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더니 아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론을 중심에 두고 원형으로 에워싸는 형태를 취했다.
환영회…… 는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은 적어도 아론을 달가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 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아론은 이들이 벌이는 행위가 그저 우습기만 했다.
‘마나를 뿜어내는 걸 숨기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일이라도 벌이려나 보군.’
아론은 둘러싼 인원들 중 몇 명의 몸에서 마나가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웬만한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양이었지만 아론의 높은 친화력 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당하는 건 질색이거든.’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이럴 때는 한 놈을 잡아서 본보기로 무력행사를 하면 되었다.
‘네가 좋겠군.’
아론은 덩치가 큰 녀석을 쳐다봤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변칙적인 마나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게 고른 이유였다.
그는 학생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행동에 들어갔다. 오른손에 마나를 순간적으로 모은 뒤, 덩치를 향해 충격파를 쏘았다.
“끄억!”
쿵!
갑작스런 공격을 맞은 녀석은 뒤로 쓰러졌다.
“란, 란돌!”
학생들은 쓰러진 덩치의 이름을 부르며 당황했다.
아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란돌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구속 마법을 건 뒤, 마나로 생성한 돌덩이를 그 위에 떨구었다.
“으아악!”
란돌이 고통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본 학생들은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건방지군. 내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살기를 피워대나?”
참으로 망나니에 어울리는 대사였다.
하지만 아론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짓밟아야 후환이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어차피 나는 더 망가질 이미지도 없잖아?’
기왕 망나니인 거.
아론은 막 나가기로 했다.
* * *
아론은 란돌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법으로 그를 공격했다.
“끄억! 끄악!”
그는 기절시키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란돌은 아슬아슬하게 정신줄이 붙은 상태로 비명을 질렀다.
아론은 누구 하나 죽는 모습을 보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객기를 부린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처는 공작가의 신관의 힘을 빌리면 치료가 되었다.
“으악! 으아악!”
란돌의 비명에 학생들은 그저 얼어붙어 있었다.
아론이 오면 어떻게 신고식을 치러줄까 키득거리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란돌의 입에서 용서를 비는 말이 나왔다. 아론도 그때가 되어서야 마법을 중단했다.
“그래. 난 그 말을 듣고 싶었어.”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란돌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유나 들어보자고. 왜 나한테 살기를 보인 거지?”
“신…… 신고식이었습니다!”
“신고식? 나한테?”
아론은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그, 그게……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인지라…….”
아론은 쪼그려 앉아서 란돌의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인정사정없이 관절을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으아아악!”
방금 전보다 더 악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런 아론의 그 행동에 학생들은 놀라서 숨을 집어삼켰다.
“브란 교관님.”
아론은 이 사태를 처음부터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교관을 불렀다.
“치료 신관을 불러 주십시오.”
“알겠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훈련장을 떠났다. 아론의 행동에 대해서는 딱히 경고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교관은 방계일지라도 에드먼스 가문의 생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철저한 강자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바로 공작가였다.
“혹시 그, 신고식? 아직도 나한테 할 사람이 있나?”
아론이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학생들은 그의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각자 자기 자리로 슬금슬금 도망갈 뿐이었다.
아론은 그렇게 첫날부터 같은 과정의 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켜 주었다.
***
아론이 아카데미에서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후, 그의 별명은 약골이 빠지고 그냥 망나니가 되어 버렸다.
아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아카데미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잠깐 거치는 것일 뿐이니까.’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카데미는 후계자 경쟁에 있어서 꼭 밟아야 하는 것이라서 다닐 뿐이었다.
학생들에게 그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론은 그저 자신이 살아남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먼저 벽을 쳐서 귀찮게 들러붙지 않도록 해놨으니 개인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겠지.’
아론은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반가웠다.
그렇게 그는 오전과 오후에는 에드먼스 아카데미에서 수련했으며, 저녁에는 라엘과 같이 훈련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론은 개인적인 수련을 하면서 라엘을 도와주고 있었다.
라엘은 지금 아론이 시킨 대로 앉아서 새 서클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잘 따라하고 있군.’
라엘은 눈을 감은 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론은 혹여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라엘의 마나를 인도해 주고 있었다.
‘곧 있으면 새 서클이 형성될 것이다.’
라엘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이 과정만 마치면 그녀는 2서클에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의지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 아이, 나보다 더 재능이 뛰어난 건 아닐까?’
아론은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초반 과정에서는 성장이 빠르다는 걸 감안해도 라엘의 속도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제 거의 다 됐다.’
라엘은 아론의 도움을 받아서 새로운 고리를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 주변의 마나만 안정화시키면 되었다.
“후우, 후우…….”
라엘은 심호흡을 하며 조심스럽게 서클 주변의 마나를 통제했다.
잠시 후.
“됐다. 이제 그만둬도 된다.”
아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라엘을 향해 말했다.
라엘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어때. 좀 다르지?”
“네. 안에 마나가 가득 차는 것이 느껴져요.”
라엘은 처음 겪어보는 거라서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감사합니다.”
“뭘. 네가 노력한 결과인걸.”
아론은 라엘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그녀의 상태창을 살폈다.
【상태창】
· 이름 : 라엘 그랑블루
· 스테이터스
체력 35(↑9)마력 57(↑13)
근력 32(↑7)민첩 16
지력 27 친화력 55
‘라엘의 상태창은 신기하네.’
아론은 수치를 살펴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서클이 늘어나면서 마력도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다. 고리의 개수만큼 수용할 수 있는 마나가 늘어나니까.’
아론이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체력과 근력이 올라간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얘, 근력이 나보다 높잖아.’
라엘은 분명 마법사였다. 그건 아론이 마나 회로를 확인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서클이 늘었는데 마력 이외의 것이 오른 이유는…….
‘설마? 이 아이, 마투술의 재능도 가지고 있는 건가?’
마투술은 이름 그대로 마법과 격투를 합쳐 부르는 말이었다.
지구에서도 종종 이런 재능을 보이던 헌터들이 있었다. 라엘의 성장형태는 그들의 모습과 쏙 빼닮아 있었다.
‘오히려 이게 잘 된 걸지도 모른다.’
아론은 마법사였다. 그렇다면 조합을 짤 때는 근접 전투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팀을 이루면 시너지가 좋았다.
‘근데 걱정이 좀 되네. 라엘은 내가 깃들기 전의 아론에게 많이 맞았다고 하던데…….’
라엘은 지금 아론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
만약 그녀가 속으로 칼을 갈면서, 나중에 더 강해지면 자신을 때려눕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이 되었다.
‘에이, 설마.’
라엘은 충성심이 높은 아이였다. 설마 복수를 다짐한다던가…….
‘…… 그러진 않겠지?’
아론은 꿀꺽 침을 삼키며 라엘을 바라보았다.
***
라엘만 성장을 했던 건 아니었다. 아론도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세세한 부분에 있어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고급반의 교관인 브란도 무뚝뚝했지만 아론을 잘 가르쳐 주었다.
“아론.”
“예, 교관님.”
오늘도 훈련장에서 마법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교관이 아론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잠시 따라오게.”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론은 군말하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브란 교관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멈추고는 아론을 바라봤다.
“오늘은 너에게 좀 특별한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
“무엇입니까?”
특별한 것이라는 교관의 말에 아론은 눈을 반짝였다.
“에드먼스 가문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마나 호흡법이다.”
“그런 게 있었습니까? 저는 처음 듣는데요.”
아론의 물음에 브란은 잠시 침묵했다.
“그야 너는 어렸을 때 가문의 정규 수업도 거부하고 망나니짓이나 했으니 말이다.”
그 말에 아론은 할 말이 없었다.
남들은 다 배운 거, 아론은 이제야 배우는 것이 된 셈이니 말이다.
“다른 궁금한 점 없으면 바로 설명에 들어가마.”
아론은 경청해서 교관의 말을 들었다.
“이 호흡법은 우리 가문의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은 따라 하려고 해도 회로의 질이 달라서 쉽지 않지.”
그는 이 호흡법 덕분에 에드먼스 가문이 다른 마법 가문들을 제치고 융성해 질 수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네 서클이 자리 잡은 뒤쪽에 있는 회로, 그걸 느낄 수 있나?”
“예.”
교관이 아론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서클 뒤편에 회로가 있었지. 어떻게 써야 할 줄 몰라서 놔두고 있었는데…….’
아론은 그 회로를 사용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지구에서 마법을 썼던 것처럼 사용했었다.
“그 회로는 에드먼스의 피를 타고 난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이다. 그곳에 마나를 보내 빠르게 회전시키면 금세 마나를 집결시킬 수 있지.”
“그러면 마나가 순식간에 동이 나 버리지 않습니까?”
“에드먼스 가문의 호흡법은 그때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호흡법을 이용해 서클에 새 마나를 채우는 것이지.”
아론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러면 서클 뒤편의 회로에 집결된 마나에다가, 서클에 다시 응집한 마나까지 합하면 순간적인 마나량이 어마어마해졌다.
“표정을 보니 원리를 이해한 것 같군. 그 회로가 얼마나 단련되었는가에 따라서 반복 횟수도 달라진다.”
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내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겠다.”
아론은 그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1서클 마법, 윈드다. 지금 시전하는 것은 호흡법을 쓰지 않고 발현한 것이다.”
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서 만들어진 바람을 앞으로 발사했다.
후웅!
뻗어져 나간 바람이 주위를 강하게 휩쓸었다. 이내 바람이 사라지면서 빨아들였던 모래와 흙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이것도 충분히 강하잖아.’
아론은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아무나 교관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똑같이 윈드 마법을 쓰겠다. 이번에는 호흡법을 사용해서 시전하는 것이다.”
브란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아론은 브란의 주위에 있던 마나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흡법으로 저렇게 밖에 있는 마나를 끌어다 쓰는구나.’
아론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 광경을 보았다.
이내 교관의 손에서 바람이 발생 되어서 나왔다.
휘오오오!
훨씬 더 세진 바람이 일대를 휩쓸었다. 아론은 처음 거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회로에 저장한 마나와 끌어들인 마나가 합해지니 출력도 높아지는 거군.’
교관의 시연을 보니 단숨에 이해가 갔다.
‘지구에서는 이렇게 마법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야말로 에드먼스 가문만의 타고난 방법이라고 여겨졌다. 남들이 따라 했다가는 회로가 견디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특수한 회로를 가지고 있어도 몸에 무리가 많이 갈 텐데…….’
특히나 에드먼스 가문의 피를 옅게 가지고 태어난 방계는 더욱 그랬다.
그 증거로 브란 교관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고통이 수반되는구나.’
아론은 그걸 보고 긴장했다.
시연 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따라 하는 차례가 올 것이다. 과연 처음 할 때 얼마나 고통이 엄습할지 두려웠다.
“아론. 방법은 알겠지?”
“예.”
“그럼 한번 해보도록 해라.”
아론은 자세를 잡았다. 먼저 서클 뒤편에 있는 회로에 집중했다. 그런 뒤 마나를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운반했다.
‘으으…… 이상한 느낌이야.’
한 번도 그쪽 회로에 마나를 가득 담은 적이 없다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다음, 아론은 서클의 마나가 비었다고 판단하고 바깥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으윽!”
아론은 즉시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배속에 날붙이가 들어가 날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흐하하!”’
교관은 그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처음이라 당연히 아플 것이다.”
아론은 간신히 몸을 다시 일으켰다.
‘칠성초를 먹기 전의 몸으로 이걸 했더라면…… 며칠은 앓아누웠겠어.’
아론은 그리 생각하며 겨우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원리를 단번에 이해하고 마나를 서클에 넣는 것까지는 성공했구나.”
브란은 아론이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이걸 한 번에 하는 녀석은 너랑 첫째밖에 없었지.”
“형은 어땠습니까?”
“그 애는 처음 할 때, 이 과정을 10번이나 반복했었어. 대단한 놈이었지.”
그걸 들은 아론은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얼마나 재능을 타고난 거야?’
한번 제대로 해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이다.
“너는 이걸 안정적으로 5번 해내는 것이 목표다.”
“예?”
아론은 놀라서 되물었다.
간신히 진정시켰던 배가 다시 아파 오기 시작했다.
* * *
아론은 교관으로부터 에드먼스 가문의 호흡법을 배운 이후로 그것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브란 교관의 감독 아래에서 호흡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처음 할 때만 해도 아파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었다. 그런데 어느덧 호흡법을 연속으로 네 번이나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제는 참는 것이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빨리 5번째에 성공해야 하는데.’
아론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속해서 호흡법을 운용했다.
‘자, 간다!’
아론은 네 번째 호흡을 마치고 끌어모은 마나를 회로에 저장하고는 다섯 번째 호흡에 들어갔다.
“하악, 하아!’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론은 허리를 숙여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약한 녀석!”
교관은 퍼진 아론을 보고 독설을 내뱉었다.
“더는, 못 하겠습니다…….”
“결국 오늘도 버티지 못했군.”
다 죽어가는 아론의 말에 교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겠다. 가서 신관에게 잊지 말고 치료를 받도록 해라.”
교관은 아론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 호흡법 수련은 회로에 부담이 많이 갔다. 그래서 끝나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회로의 수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론은 저릿한 배를 부여잡고 훈련장을 떠났다.
브란 교관은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대단한 녀석이야.’
에드먼스 가문의 호흡법을 가르친지 이제 3주가 되었다.
그런데 아론은 벌써 호흡법을 네 번이나 반복할 수 있었다.
‘첫째 다음가는 재능을 가졌다는 막내도 호흡법을 다섯 번 반복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만약 아론이 그보다 빨리 성공할 수 있다면 막내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교관은 아론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를 응원하고 싶었다.
‘첫째는 재능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아기 때부터 온갖 관리를 받았었지.’
그 결과 재능을 잘 유지해서 처음 호흡법을 배웠을 때 단숨에 열 번이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론은 첫째와 반대의 상황이었다. 타고나길 약골로 태어났고 병의 원인을 몰라 치료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망나니처럼 살다가 제대로 된 마법 교육은 이제 받기 시작했다.
상당히 뒤처진 후발 주자로서 아론은 굉장히 힘들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는 아직 잘 버텨내고 있었다.
‘안타깝구나. 재능은 있어 보여도 몸이 받쳐 주질 않으니까.’
교관은 혀를 찼다.
만약 아론이 건강한 몸을 타고났더라면. 첫째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작님이 왜 옛날에 쟤를 두고 아쉬운 소리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많이 늦었다고 생각은 되지만, 그래도 아론이 잘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고 교관은 생각했다.
***
아론은 치료를 마치고 도서관에 있는 포드를 찾아갔다.
그 둘은 아론의 개인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성과는 어떻게 되느냐?”
포드가 묻는 것은 호흡법에 관한 것이었다.
“5번은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내가 알려준 대로 해도 힘들더냐?”
“예. 회로가 터질 것 같습니다.”
아론이 단기간에 호흡법을 숙달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포드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는 포드가 자신의 스승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혼자서 호흡법을 연습했다면 지금의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빨리 숙련된 덕분에 교관도 나에게 흥미를 가지는 것 같고 말이야.’
그 점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원래 브란 교관은 자신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했지만, 호흡법을 수련한 뒤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론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네 번까지는 되는데 다섯 번은 힘들다…… 으음…….”
포드는 혼잣말을 하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대충은 알겠구나.”
“정말이십니까?”
잠시 후, 포드가 입을 열자 아론은 화색을 보였다.
“너희 가문만이 가지고 있는 서클 뒤쪽의 회로 말일세. 거기를 네 수족처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하네.”
그 말을 들은 아론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으음…… 잘 와닿지 않는데요. 혹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포드가 실력이 좋은 마법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그 천재성 때문에 지금처럼 설명을 제대로 못 하는 부분도 있었다.
“어렵구만. 나한테는 없고 너희들에게는 있는 회로를 잘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포드 역시 난처한 건 마찬가지였다.
“내 조언은 아까 그게 전부일세. 나머지는 네가 깨닫고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론은 호흡법 말고 하나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아그니 소드 말입니다만.”
“말해보게.”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이 났습니다.”
“호오, 그게 무엇인가?”
“이걸 분해해서 저에게 맞는 다른 아티팩트로 다시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아론의 그 발상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지구에서는 던전에서 구한 아이템을 다시 분해해서 제작해 주는 대장장이들이 존재했었다.
“허어……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구나. 일반적인 무기를 다시 녹여 제작하는 건 들어봤어도 아티팩트를 다시 만든다라…….”
포드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손재주가 좋은 드워프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다행입니다. 받은 검의 용도는 그렇게 다른 걸로 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드워프. 제작에 있어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실력을 지닌 그들의 힘이 있다면 아론의 생각은 충분히 가능했다.
***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
아론을 포함한 에드먼스 아카데미의 고급반 학생들은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주목하도록 해라.”
그 집중을 깬 것은 교관 브란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불러 모은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실습이 있을 예정이다.”
그 말에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대부분의 실습은 결과에 따라 점수가 부여된다. 그 점수는 졸업에 연결되는 것이었기에 다들 긴장하면서 교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실습 내용은 몬스터 토벌이다. 카민 영지 근처의 길리샤 습지에서 최근에 몬스터들이 출몰한다고 하더군. 우리는 거기 녀석들을 정리하러 간다.”
에드먼스 가문은 종종 이렇게 몬스터 토벌을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위험한 몬스터면 몰라도 급이 낮은 몬스터에 에드먼스 가문의 병력을 보내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었다. 정식으로 마법사가 된 후에도 몬스터는 종종 상대해야 하니 실습 때 경험을 쌓는 건 좋았다.
‘카민 영지 근처라. 거기라면 공작가에서 반나절쯤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곳이군.’
교관은 설명을 마치고는 학생들을 데리고 가 마차에 탑승시켰다.
카민 영지에는 저녁이 될 즈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실습은 내일 아침부터 한다고 교관은 말했다.
그날은 숙소를 잡아서 묵었고, 학생들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모여 교관을 따라 움직였다.
“여기가 길리샤 습지다.”
잠시 후, 교관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에는 임프들이 서식하고 있다. 임프가 어떤 몬스터인지는 다들 알 테니 설명은 생략한다. 혹시 다른 질문이 있나?”
교관은 학생들을 죽 둘러보았다.
“없다면 설명을 계속하겠다. 너희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녀석들을 토벌하는 실습을 할 것이다. 처리한 마릿수에 따라서 점수를 반영할 테니 다들 열심히 하길 바란다.”
교관의 그 말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점수는 졸업 요건에 중요한 요소였다. 다들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프들은 교활하다. 혼자서 상대하기 보다는 팀을 이루는 것을 추천한다.”
교관은 마지막 조언을 덧붙였다.
학생들은 서로를 둘러보았다.
“라크! 나랑 팀 짜자!”
“우리랑 팀 맺을 사람!”
서로 대화를 몇 번 나누더니 이내 빠르게 팀을 맺었다. 그들은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론에게는 그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실력은 몰라도 성격 더러운 망나니를 팀에 들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아론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혼자 행동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아론, 괜찮겠나?”
“예.”
브란 교관도 그 정도만 물어볼 뿐 별 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실전에서 이렇게 연합하는 것도 생존 능력 중 하나였기에 자신이 도와줘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실습을 시작하겠다!”
브란 교관의 외침에 아론을 비롯한 학생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몬스터들을 잡아야겠군.’
아론에게 있어 아카데미는 단순한 거쳐 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빨리 요건을 갖추고 졸업하는 게 베스트였다.
‘내가 계속 활약해야 공작이 관심을 가져줄 테니 말이야.’
아론은 이번 실습이 자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얼마나 경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 사냥에 있어서 그는 도가 텄다.
‘내가 재능만 없었다 뿐이지, 지구에서 몬스터만 10년을 잡았어.’
아론은 처리해야 할 몬스터가 임프라는 것을 들었을 때 주먹을 꽉 쥐었다.
지구에서도 똑같은 이름의 몬스터가 있었다. 만약 정말로 같은 녀석이라면 아론은 그들의 상대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귀찮게 하나하나 탐색하면서 잡기보다는, 한 번에 많은 녀석을 잡는 게 임프 사냥의 기본이지.’
방법은 두 가지였다.
유인을 하는 것과 직접 본거지에 쳐들어가는 것.
‘경쟁자들이 있으니 내가 본거지를 찾는 게 낫겠어.’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을 탐색했다.
잠시 후, 아론은 막대가 인위적으로 세워진 것을 보았다.
‘찾았다.’
저건 임프들의 습성이었다. 아론은 그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저기, 아론 님.”
그때였다. 학생 중 한 명이 아론을 불렀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학생이었다.
“무슨 일이지?”
“저희는 여기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지금 가시는 방향은 임프의 본거지가 있을 겁니다.”
“그래? 나는 이 길이 좋아 보여서 가는 건데. 충고는 고맙군.”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야, 페이슨. 뭐 하는 거야.”
팀원 중 한 명이 아론에게 말을 건 그를 노려보았다.
“그냥 망나니 도련님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둬. 괜히 우리한테 불똥 튀면 어떻게 해.”
“맞아. 우리 팀 근처에서 객기부리다가 쓰러지면 귀찮아지잖아. 오히려 잘 된 거지.”
“으음. 그렇지만 아무리 망나니라 해도 불덩이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불쌍해 져서 말이야.”
페이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번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우리 점수만 잘 따면 그만 아니야?”
“……어? 켄트, 넌 또 어디가?”
페이슨의 팀을 뒤따라 오던 켄트는 그들을 지나쳐 아론을 따라가려고 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난 너희 팀원도 아닌걸.”
켄트는 그 말을 끝으로 아론이 갔던 길을 뒤따라갔다.
“뭐야 저 녀석?”
“어휴. 재수 더럽게 없는 자식.”
페이슨 팀은 그를 야유하고는 임프를 찾기 시작했다.
* * *
몬스터 토벌 실습이 시작되고 나서 학생들은 열심히 임프 사냥에 나섰다.
그들은 배운 대로 소규모의 임프를 유인해서 처리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페이슨! 이제 뒤로 빠져!”
“응!”
개중에서도 란돌이 속한 조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화아아악!
그들은 페이슨이 이끌고 온 3마리의 임프를 향해 일제히 마법을 날렸다.
“끄르륵!”
임프들은 집중포화를 맞고 쓰러졌다.
“좋았어! 이제 20마리째야.”
란돌은 싱글벙글 웃으며 죽은 임프의 이마에서 뿔을 잘랐다. 이 뿔이 녀석을 잡았다는 증거가 되어 한 마리의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아론 도련님도 자존심 버리고 우리를 따라왔으면 편했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과연 혼자서 몇 마리나 잡을 수 있을까?”
“글쎄, 그래도 한 마리는 잡겠지?”
학생들은 아론이 몇 마리를 잡을지 내기를 하며 키득거렸다.
“야! 그 망나니 이야기 좀 그만해!”
란돌이 윽박을 질렀다.
그는 아론에게 당한 게 있었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졌다.
한편, 아론은 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에 임프의 캠프를 정찰 중이었다.
임프의 서식지는 본거지와 캠프로 나뉘는데, 후자는 여러 개가 존재했고 임프의 수가 적었다.
‘아직 내 실력으로 본거지를 바로 들어가는 건 무리야.’
아론은 그렇게 판단하고 캠프부터 하나하나 박살 내기로 했다.
그가 살펴보는 캠프의 임프들은 아론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캠프는 넓으니까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해서는 먼저 녀석들을 한곳에 모을 필요가 있었다.
파앙!
아론은 일부러 마법을 허공에 발사했다.
그러자 임프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끼익!”
“끼이익!”
녀석들은 아론의 마법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법을 날린 방향으로 하나둘 달려갔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어느덧 수십 마리의 임프 무리가 마법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아론은 이제 녀석들을 잡기 위한 마법을 사용했다.
쏴아아!
아론은 워터 마법을 사용해 임프들의 상공으로 날렸다. 그러자 물이 거센 비가 되어 임프들에게 내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녀석들은 영문을 몰라 소리 지르며 두리번거렸다.
‘한곳에 모이니 얼마나 좋아. 물 낭비 안 해도 되고 말이야.’
아론은 그리 생각하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파지지직!
그의 손에서 번개가 쏘아져 나갔다. 에드먼스의 호흡법으로 마나를 폭발적으로 모았기에 그 위력이 상당했다.
“끼이이이!”
부르르!
번개에 직격당한 임프들이 일제히 단말마를 내지르며 몸을 떨었다.
아론이 먼저 날렸던 워터 마법을 맞은 직후였기에 전격은 순식간에 모든 임프들에게 퍼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프들이 쓰러졌다. 녀석들의 탄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론은 다가가서 뿔을 회수했다.
‘37개…… 38개.’
아론이 마지막 임프의 뿔을 도려냈을 때 그 개수가 38개였다. 이로써 단숨에 다른 조들을 앞서게 되었다.
나머지 캠프들을 차례차례 없애기 시작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게 분명했다.
‘자, 그러면 다음 캠프를 찾으러 가볼까.’
아론은 임프의 뿔로 묵직해진 가방을 두드리며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불청객이 있군.’
몬스터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론도 여태까지 놔두고 있었다.
하지만 사냥이 끝났는데도 계속 따라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왜 나를 쫓아오는 거지?”
아론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저벅저벅.
숨어서 쫓아오던 정체불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녀석은…….’
아론은 그에 대한 정확한 정체를 알진 못하지만, 인상이 남아 있었다.
‘켄트…… 였나?’
그는 유일하게 신고식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론은 켄트가 자신을 따라온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도 아론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내 뒤를 따라온 이유가 뭐지?”
“아론 님께 협력을 제안하고 싶어서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협력이라고?”
아론은 내용이나 들어보자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저와 힘을 합치신다면 둘이서 충분히 본거지를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너는 다른 애들보다 강한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정확한 네 실력을 모르는데 말이야.”
“저도 조금 전에 근처에 있는 임프 캠프를 소탕하고 오던 길이었습니다.”
“……네가?”
아론은 그의 말이 미심쩍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한 뒤에 그의 상태창을 확인해보았다.
【상태창】
· 이름 : 켄트 오스틴
· 스테이터스
체력 56 마력 83
근력 37 민첩 33
지력 115 친화력 110
· 특성 : 【서포터】
켄트의 능력치들은 친화력을 제외한다면 아론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다.
‘이 정도 수치면 캠프를 혼자서 정리했다는 것도 믿음이 가는군.’
아론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캠프만을 공략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조들도 슬슬 캠프에 돌입할 겁니다.”
켄트는 계속해서 아론을 설득했다.
“하지만 본거지는 다릅니다. 다른 조의 능력으로는 감히 들어가지 못할 거고, 저희가 공략한다면 캠프의 임프보다 몇 배 많은 녀석들을 잡을 수 있겠지요.”
“알겠어, 그건 잘 알고 있다고. 잠깐만 있어 봐.”
아론은 켄트의 말을 물리며 계속해서 상태창에 주목했다.
마지막에 적혀 있는 특성 때문이었다.
‘【서포터】라…….’
서포터 특성은 공격보다 지원 계열에 특화된 마법사에게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상태창을 보기 전까진 몰랐었는데…….’
훈련장에서 마법을 쓰는 것을 가끔 본 적이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것만으로는 그가 서포터 특성을 가졌는지 몰랐었다.
아론이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켄트가 침묵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론 님도 빠르게 성과를 올리시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카데미 졸업이 목적이지만, 아론 님에게 아카데미는 단순한 발판이겠지요.”
“으음.”
아론은 잠깐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제안은 거절한다.”
“……네?”
켄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치 아론의 거절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보아하니 같이 전투를 하더라도, 대부분 내가 화력으로 잡아 버릴 거 같은데 말이야. 협력이 의미가 있나?”
“그건…….”
“협력을 하는 이유가 빠르게 밀어 버리고 너 절반, 나 절반 가져가기를 원하는 거 아니야? 이건 내 손해지.”
“그렇지만, 이 고급반에서 저보다 실력이 좋은 교육생은 없을 겁니다.”
“흥. 네 실력은 좋다 치더라도, 그게 화력으로 이어지나?”
아론은 켄트를 바라보며 코웃음쳤다.
“……제 능력에 대해 눈치를 채신 것 같군요.”
켄트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론 님이 60%를 가져가시죠. 어떻습니까?”
“거기에 얹어서, 임프 우두머리의 뿔은 내 거다.”
“……아론 님은 임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군요.”
“그래서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캠프에 와서 사냥하는 것 아니겠나? 다른 바보들은 겨우 임프 몇 마리 유인해서 잡는 것을 반복하고 있겠다만.”
그렇게 말한 뒤, 아론은 켄트를 쏘아봤다.
“우두머리의 뿔을 주지 않겠다면 나도 협력할 생각이 없다.”
“아, 아닙니다. 우두머리 뿔, 드리겠습니다.”
켄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나는 아론을 붙잡으며 사정하는 꼴이 되었다.
***
“저기군.”
아론과 켄트는 임프들의 본거지를 찾았다.
“본거지답게 입구를 지키는 녀석들의 수도 많군요.”
켄트가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전은, 알지?”
아론이 켄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켄트는 대답하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입구로는 가지 않았다. 켄트는 손과 발로 마나를 강화한 뒤에 방벽을 타고 넘어갔다.
작전은 간단했다.
켄트가 임프들의 어그로를 끌고, 아론이 화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아론은 조용히 기다렸다.
“끼이이익!”
임프들이 요란 떠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안에서 켄트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잘 해주리라 믿는다.’
서포터 특성을 지닌 자들은 보조에 특화되어 있었다. 지구에서도 그 특성의 헌터들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잘 끌어 주었다.
아론은 그것을 믿고 켄트를 보낸 것이었다.
잠시 후.
피이이-.
약속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신호다.’
임프를 최대한으로 모은 뒤에 소리를 내 달라고 말했었다. 아론은 곧바로 움직였다.
‘장관이네.’
세 자릿수의 임프들이 켄트를 따라 우르르 달리고 있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하지만 아론은 임프들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녀석들은 켄트를 쫓고 있지만 겁을 먹은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몇몇은 켄트를 보는 게 아니라 고개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인데…….’
아론으로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론 님! 얼른 마법을!”
그때, 켄트의 외침이 아론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신호를 줬는데 공격을 하지 않으니 초조했을 것이다.
아론은 임프들을 노려 마법을 시전했다.
쏴아아!
워터 마법을 넓게 흩뿌려 임프들을 물에 젖게 만든 후에.
“흐읍!”
에드먼스의 호흡법을 사용했다.
그 횟수는 총 네 번.
그러자 거대한 마나가 서클 뒤편의 회로에 축적되었다.
콰르르릉!
전격 마법을 사용하자 귀가 아플 정도의 우렛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뇌전이 임프들에게 퍼져나갔다. 녀석들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시꺼멓게 탄 채 죽어 버렸다.
“하아, 하아…….”
아론은 호흡법의 반동으로 잠깐 머리가 어질했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게 다 우리 거군.’
못해도 임프의 수는 200마리가 넘어 보였다. 저 중의 6할이 자신의 것이었으니 120개의 뿔을 단숨에 확보하게 되었다.
‘어? 근데 우두머리가 안 보이는데, 놓친 건가?’
아론은 임프의 사체를 확인했지만 우두머리를 찾을 수 없었다.
“켄트! 우두머리는 못 봤나?”
“저도 그 점이 이상했습니다.”
“그래?”
아론은 주위를 넓게 둘러보았다. 여전히 우두머리는 없었다.
“일단 뿔부터 챙기고, 우두머리는 그 후에 생각하자고.”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열심히 죽은 임프의 뿔을 잘랐다.
***
아론은 죽였던 임프의 뿔을 회수한 뒤에 본거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하지만 우두머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간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두머리는 지능이 높으니까요.”
아론은 혀를 찼다.
우두머리의 뿔을 가져간다면 못해도 100마리 이상의 점수를 줄 텐데 그 기회가 날아갔으니 말이다.
‘녀석이 이 넓은 습지를 방황하고 있지는 않을 테고, 어디 적당한 캠프에 숨었겠지.’
아론은 우두머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론 님!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켄트가 그를 붙잡았다.
“우두머리를 찾으러 간다. 따라와라.”
“네?”
“못 들었나? 따라오라고.”
“그렇지만 본거지는 모두 정리했는걸요.”
“분배 조건을 잊은 건 아니겠지? 난 아직 우두머리의 뿔을 얻지 못했다.”
“그건…….”
켄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학생이었다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아론이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켄트는 수긍하고 아론을 따라가기로 했다.
아론은 말없이 캠프를 찾기 시작했고, 켄트 역시 군말하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잠시 후, 아론은 마나가 이끌리는 지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너머에 캠프가 있겠군.’
아론은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던 도중, 다른 조의 학생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어, 뭐야. 아론 님?”
란돌이 속해 있는 조였다.
“아까 혼자 가셨는데, 별일 없으셨습니까?”
“괜찮았어. 이제 여기 주변을 탐색하려고.”
“어, 그게…….”
란돌의 조 학생들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아론은 그런 그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내 마법에 다칠 수 있으니까, 다른 곳을 가는 걸 추천할게.”
아론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움직이려고 했다.
“저기, 여기는 저희 자리인데요.”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란돌이 나서서 아론을 막아섰다.
“자리?”
아론은 얘가 뭔 소리 하나 싶었다.
“아론 님은 도중에 들어오셔서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저희끼리는 과도한 경쟁을 막으려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아론은 켄트를 돌아봤다.
“그런 게 있나?”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그랬다고는 들었습니다.”
“흥. 또 그놈의 전통이군.”
아론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란돌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리는 뭔 자리야. 설마 여기를 네 묫자리라고 미리 점 쳐둔 거야?”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댔다.
란돌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아론 님! 아무리 공자님이라도…….”
푸슉!
란돌의 가슴팍으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녀석은 곧장 쓰러지고 말았다.
“뭐, 뭐야?”
학생들은 기겁하면서 일제히 아론을 바라봤다.
“……내가 한 거 아닌데?”
다들 경악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억울하기만 했다.
“저, 저 녀석입니다!”
그때였다. 켄트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형용할 수 없는 형태의 몬스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