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 (5/40)

Chapter 5

심문 대상은 총 세 명이었다.

아론이 쓰러트린 마법사 한 명이랑 잔챙이 두 명.

나머지는 모두 죽었기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왜 우리 백작가의 마차를 습격했지?”

호위대장이 잔챙이 한 명의 멱살을 잡으며 윽박질렀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두 눈을 부릅뜨고 호위대장을 노려볼 뿐이었다.

“쳇! 곱게 대해줄 때 입을 여는 게 좋을 텐데 말이야!”

협박에도 무반응이었다.

아론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은 훈련을 받은 암살자들이다. 고작 저런 거에 반응할 애들이 아니지.’

두들겨 패거나 손톱을 뜯는 등의 신체적 고문을 가해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제가 녀석들의 입을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호위병들 속에서 한 명이 손을 들며 나섰다.

그 정체는 프랜시스였다.

‘저 녀석이?’

아론은 그의 출현이 미덥지 않았다. 경계 마법 설치조차도 귀찮아서 설렁설렁했던 녀석인데 말이다.

‘아마 로안의 눈에 들어 점수를 따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 자에게 밥값을 하겠다는 목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용주의 아들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불순한 의도만이 눈에 보였다.

‘뭐, 내가 막을 권리는 없지.’

어차피 밤은 길었다. 약을 먹고 난 직후라서 몸도 아픈 곳이 없었고 말이다. 한번 녀석이 어떻게 하나 지켜보기로 했다.

“자네들을 사주한 자는 누구지? 무슨 이유로 습격을 한 거야?”

프랜시스는 습격자 중 한 명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물었다.

“자, 얼른 말해!”

하지만 프랜시스의 바람은 이어지지 않았다. 녀석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 어?”

마법사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광경을 본 아론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런 암살자들에게 하위 정신계 마법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주박이 걸려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건가?’

정신 마법을 써서 녀석들에게 자백을 유도할 계획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프랜시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어찌 된 거냐?”

“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호위대장이 물어보자 그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한번 해보겠다.”

“아, 아론 공자님이요?”

갑작스럽게 아론이 자처하자 호위대장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큰 기대는 하지 말게. 그냥 해보는 거니 말이야.”

아론은 그렇게 밑밥을 깔아둔 채 자신이 상대했던 마법사에게 접근했다.

‘어디 한번 지구의 정신계 마법은 먹히는지 시험해 볼까?’

지구에서도 헌터들이 쓸 수 있는 정신 조작 마법이 있었다. 문제는 그 조건이 한정적이고 흔적이 남는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또 다르지.’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이 마법을 모를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공작가 도서관에서 본 마법서들에는 지구의 정신 마법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방어법은 없을 터.’

아론은 직접 시험해 보기로 했다. 기억 속에 있는 정신 마법의 기동식을 차례대로 읊었다.

그러자 잠시 후.

몸이 묶인 마법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너의 형이 곧 네 목숨을 가져갈 것이다!”

녀석은 그렇게 외치더니 끅끅대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론은 즉시 손을 뗐다. 그러기 무섭게 녀석의 몸에 불길이 화르륵 치솟기 시작했다.

“우왓!”

“갑자기 몸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어!”

녀석의 체내에서 생성된 뜨거운 화염은 전신을 바싹 태운 후에야 사그라들었다.

‘형이라고……?’

아론은 마법사의 외침을 되짚었다. 정신계 마법을 쓰자마자 버티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 그거라니.

‘아마 불에 탄 이유도 비밀 유지를 위해서겠지.’

아론의 마법 덕분에 비밀이 약간은 드러나 버렸지만 말이다.

“방, 방금 들었어?!”

로안이 몸을 오들오들 떨며 외쳤다.

“분명 형이라고 했었지?”

그 말을 듣자 아론은 로안이 보이는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자신의 형이 암살자들을 보냈다고 이해한 건가?’

일이 의도치 않게 흘러갔다. 하지만 아론은 그 오해를 따로 정정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넘어간다면 나는 로안에게 있어서 완벽하게 생명의 은인이 되니까 말이야.’

나중에 쓸 수 있는 패를 확보했는데 굳이 자기 손으로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형님이 내 목숨을 노리고 암살자들을 보낸 거야!”

로안이 부르르 떨었다.

원래 형제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항상 모든 부분에 있어서 경쟁하는 사이였다.

“아론 님, 감사합니다!”

로안은 곁에 있는 아론을 향해 감사를 표시했다.

“아론 님이 아니었다면 전 오늘 이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다. 나도 위험했으니까 움직인 것일 뿐이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로안의 반응을 살폈다.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지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결국 아론에게 있어 일이 터진 것이니 말이다.

‘분명 형이라고 했었지.’

에드먼스 가문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위에 있는 남자 형제는 첫째와 둘째이다.

‘그 둘 중 한 명이겠군.’

왜? 무슨 이유에서? 라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재능이 뒤늦게 개화하기 시작해서?’

그렇다면 늦었다. 더 일찍 죽였으면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아론은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싶었다. 적어도 공작가에서는 보는 눈들이 있기 때문에 암살을 당하거나 할 위험은 적었다.

***

그날 밤, 습격을 당한 이후.

로안이 아론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전에는 어쩔 수 없어서 공작의 아들이니 상대해준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태도는 순전히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 하는 것이었다.

소문이 잘못되었구나.

이 사람은 실력이 있다.

로안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물론 이번 사건을 통해 인연을 맺어두어야겠다는 그의 계산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습격이 있고 난 이후로 항상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이후에 공격은 오지 않았다.

어느덧 할로움 초입에 도착했다.

아론과 로안은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아론 님. 저희 헬브람 백작가가 아론 님을 호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은 무슨. 덕분에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약소하지만 이거, 받아주십시오.”

로안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돈?’

1만 골드라고 적혀있는 수표였다. 이 수표는 왕국 내의 은행에서 언제든 금화로 바꿀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공작가의 돈은 내가 쓸 수가 없는 상황인데, 이렇게 주면 고맙지.’

아론은 예기치 못한 것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고맙네. 유용하게 쓰도록 하지.”

아론은 로안과 헤어지고 할로움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할로움이군.”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곳은 아니네요.”

“그러게.”

의외로 도시의 미관은 깔끔했다.

물론 법보다 힘이 우위에 있는 용병 도시 아니랄까 봐, 골목길 곳곳에는 약이나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다.

거기다가 대낮인데도 술집에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웨카 길드가 이쪽이었지?’

아론은 로안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여기군.’

겉보기에는 평범한 술집 겸 여관처럼 생겼다. 하지만 일정 절차를 거치면 정보 길드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론과 라엘에게로 꽂혔다.

“뭐야? 대낮부터 둘이서 자러 온 건가?”

그중에서 덩치 큰 사내가 아론을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아론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팟!

함부로 입을 놀린 녀석에게 마법을 날렸다.

“상대를 보고 까불도록.”

마법은 녀석의 뺨을 스치며 피를 냈다.

“어쭈?”

경고성으로 날린 마법은 오히려 덩치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풋내기 마법사인가 본데…… 내 앞에서 마법으로 까불다가 골로 간 녀석이 5명은 넘어!”

그 모습을 본 아론은 코웃음 쳤다. 도발하는 것이 너무 싸구려였다.

“오오, 콕스!”

“아직 비린내 나는 애들인데, 살살해.”

주위 사람들은 덩치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아론은 어이가 없었다.

이들은 그저 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당장 내게 사과하고 가진 물건을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쿵! 쿵!

덩치는 아론의 멱살을 잡으려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녀석의 오른팔이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동작은 이어지지 못했다.

파바박!

녀석의 심장에 날카로운 얼음들이 여러 개 꽂혔다.

아론의 손에서 발현되어 나온 얼음 마법이었다.

“윽…… 억……!”

쿵!

덩치는 뒤로 나자빠지면서 쓰러졌다.

“이야! 저 어린 마법사, 최고잖아?”

“이봐 주인장! 여기 송장 생겼으니까 좀 치워줘!”

“콕스 녀석, 까불더니 결국 먼저 갔구나, 핫핫!”

다들 사람이 죽었는데도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싸움이 흔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잠깐의 여흥으로 생각했다.

아론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양고기 스튜랑 코일산 맥주, 샐러드를 가져다주게. 여기 시녀에게도 맥주 빼고 같은 메뉴로.”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일 조용한 방도 하나 예약해주게.”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지와 중지를 펴 들어 보였다.

이게 로안이 알려준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식사 후에 정보 길드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종업원은 그렇게 말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맞겠지?’

이어서 음식이 나왔고, 아론과 라엘이 식사를 하는 동안 2층에서 사람이 한 명 내려왔다.

‘저 사람인가.’

그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게 로브를 입고 있었다. 2층에서 내려온 그는 그대로 가게 밖으로 나갔다.

‘다행이군.’

로안의 말에 의하면 저게 긍정의 의사표시라고 했었다. 아론은 정보 길드의 사람과 만날 준비를 했다.

***

이웨카 길드의 수장 셀린.

그는 아론이 가게에 등장한 이후의 상황을 수정구를 통해 보고 있었다.

‘저 자가 아론 에드먼스라…….’

공작가의 약골 망나니가 무슨 일로 여기에 온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내 그가 보여주는 화끈한 행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가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하들을 심어 뒀었는데, 저렇게 단번에 죽여버릴 줄이야.

콕스는 이웨카 길드의 견습 정보원이었다. 하지만 약한 녀석은 결코 아니었다.

‘힘 좀 쓰는 녀석을 단번에 죽이다니.’

셀린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정구를 들여다보았다. 아론에 대한 정보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저 제스처는…….’

아론이 보인 일련의 절차와 손동작. 이웨카 길드와 접선을 원한다는 의미였다.

공작가의 망나니가 우리 길드에 무슨 정보를 얻으려고 온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망나니라고 소문난 녀석이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은 즉, 에드먼스 가문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거군.’

이건 특종이었다. 아론과 에드먼스 가문에 대한 정보를 전방위로 수집해야겠다고 셀린은 생각했다.

“이봐. 저 손님은 내가 직접 만나도록 하지.”

셀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다.

* * *

아론이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다시 찾아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그것이 의례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아론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종업원은 품에서 열쇠를 꺼내서 내밀었다.

“주문하신 방 열쇠입니다. 호수를 잘 확인하시고 들어가십시오.”

아론은 열쇠를 받아서 확인했다. 거기에는 ‘304’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여기로 가면 정보 길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거지?’

아론은 라엘과 함께 위로 이동했다. 304호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끼익.

그러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론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에드먼스 아론 님. 그리고 그의 전속 시녀인 라엘 님. 저는 이웨카 길드를 이끄는 셀린이라고 합니다.”

아론은 가벼운 묵례로 인사를 받았다. 라엘은 예를 갖춰서 인사했다.

“여기에 앉으시지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셀린이 의자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미안하게 됐군.”

아론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가게 1층에 있던 덩치 큰 녀석은 아마 길드 소속이겠지? 시비를 걸길래 그만 죽여버리고 말았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사과드려야 하지요. 견습이라고는 하나 상대가 누군지도 파악하지 못한 잘못이 있습니다.”

“괜찮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어.”

“알고 계셨군요? 저희 쪽의 사람이란 것을요.”

“대부분 정보 길드들은 풋내기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가드 정도는 두지 않나? 그래서 당연히 그리 생각했을 뿐이야.”

“그렇군요.”

셀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아론 님께서는 어쩐 일로 저희 길드를 찾아오신 겁니까?”

“아그니 소드라고 들어 봤나?”

“예. 아이젠 왕국이 찾고 있는 칠검 중 하나지요.”

“그걸 찾고 있네.”

탁.

아론은 책상 위에 수표를 건넸다. 로안에게서 받은 1만 골드짜리였다.

‘공작이 준 임무만 완수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지출은 싼 편이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소재를 알고 있다면 이 금액으로 정보를 사고 싶네.”

“어이쿠, 아론 님. 넣어 두시지요.”

셀린은 아론의 행동을 제지했다.

수표를 다시 아론에게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저희 길드원이 아론 님께 물의를 일으켰으니까, 이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거래는 확실히 하고 싶은데.”

“대신 다음번에도 저희 길드를 좀 애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셀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번에 아론과의 거래를 트면서 에드먼스 가문과 접점을 만들어 두려는 생각이었다. 공작가와 다리를 놓는 값으로 아그니 소드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적당한 거래였다.

아론 역시 그 수를 읽고는 고개를 끄덕인 뒤 수표를 다시 집어넣었다.

“아그니 소드에 대한 소재라면 짐작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나?”

“하지만 이건 아론 님이라고 해도 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괜찮아.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구해야 해서 말이야.”

“저희 길드의 정보에 의하면, 아그니 소드는 크로머 길드에 있습니다.”

“크로머 길드면 이 도시에 본거지가 있는 그 길드를 말하는 거겠지?”

“예. 맞습니다.”

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론 역시 그 길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장물을 비롯해 주로 불법적인 물건들을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길드였다.

법치 국가였더라면 진즉에 사라졌을 곳이지만, 무력이 우위에 있는 할로움에 본부를 둔 곳이라서 존속이 가능한 길드였다.

“어떻게 흘러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크로머 길드의 창고에 있을 겁니다.”

“길드가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편하군. 얼마를 주면 살 수 있지?”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셀린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이미 아이젠 왕국 측이 먼저 크로머 길드에 접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왕국 쪽에서 구매 의사를 전했다, 그 말인가?”

“예. 아마 재보가 유실되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꺼림칙한 길드임에도 불구하고 군말 없이 돈으로 무마하려고 하는 거군.”

거래가 성사된다면 아그니 소드는 다시 아이젠 왕국의 보물고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거기로 간다면 입수 난이도는 한층 더 올라간다. 그 전에 선수를 쳐야만 했다.

‘아이젠 측에서는 왕가의 재보이니 팔 생각은 전혀 없을 테고…….’

답은 나왔다.

거래 전에 미리 움직여서 훔칠 수밖에.

“크로머 길드 창고의 설계도를 구해줄 수 있겠나?”

“어렵지 않습니다.”

셀린은 즉시 수정구를 조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로브를 입은 사람이 방에 들어와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준 뒤 나갔다.

“다만, 이 지도는 공짜가 아닙니다.”

“오히려 깔끔해서 좋다.”

세상에 진정한 무료는 없다고 생각하는 아론이었다. 그는 100골드를 꺼내서 주었다.

“감사합니다.”

셀린은 웃으며 돈을 받아들었다.

종이 뭉치는 꽤 두꺼웠다.

아론이 슥 내용을 훑어보니 창고에 대해서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꽤나 철저하게 조사되어 있군.”

“저희가 공급하는 정보의 질에 대해선 수장인 제가 보증합니다. 특히 이곳 할로움에 대한 것은 더욱 자세히 조사하지요.”

셀린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건네준 종이에는 건물 도면은 물론 경비의 배치와 순환 시간까지도 적혀있었다. 아론은 그 점이 만족스러웠다.

“혹시 우리 가문 영토의 자세한 지도도 있나?”

“돈만 주신다면 드리지요.”

“아니, 괜찮아.”

역시, 정보 길드답게 에드먼스 공작가에 대한 것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있더라도 침입할 수 있냐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말이다.

셀린은 농을 던지는 아론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하다. 아론 님에 대한 여태까지의 소문은 잘못되어 있었어.’

그게 와전된 것이든, 일부러 꾸민 것이든. 아론은 소문으로 듣던 사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겉보기에 몸이 좀 약해 보이긴 하지만, 이 자는 절대 망나니가 아니야.’

오히려 사리 분별을 정확히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소문이 사실이고 그 사이에 사람이 변했다? 그건 있을 수 없어. 아니면 연기였던 건가?’

후자가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긴 했다. 아론은 에드먼스 가문 출신이다. 거기다가 넷째니까 후계 경쟁에서 견제를 피하기 위해 연기를 했을 수도 있었다.

정확한 이유야 본인만이 알겠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준비가 끝났다는 거겠지?’

셀린은 아론이 뭔가 일을 낼 것 같다는 직감을 느꼈다.

‘아론 님과 관계를 잘 맺어두는 게 좋겠어.’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린 셀린은 아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만, 원하신다면 창고 입구까지는 통과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론은 잠시 생각했다.

‘설계도를 살펴보니, 입구를 도움 없이 통과하는 건 어려워 보이는걸.’

그리고 내부의 경계가 오히려 입구 쪽보다 느슨했다. 정보가 정확하다면 안에서 아론이 들킬 일은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만약 이 모든 게 다 거짓 정보라면…….’

할로움의 길드들이 모두 한통속이라서 아론을 속이고 있는 거라면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론이라고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혹시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귀환 스크롤을 준비해 뒀지.’

이건 포드가 노파심에서 준 것이었다. 사용하면 공작가로 곧장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아론은 셀린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아론은 이틀 뒤에 행동을 시작했다. 실행하기 전까지 크로머 길드의 창고에 대한 설계도를 아주 달달 외워뒀었다.

덜그럭덜그럭.

먼저, 아론은 이웨카 길드가 준비해 둔 마차에 숨어 있었다. 이 마차는 오늘 창고로 들어가는 짐을 실은 상태였다.

‘몸 상태는 괜찮아.’

아론은 마차를 타기 전에 미리 반쪽짜리 칠성초를 복용해 두었다. 혹시나 행동 중에 몸이 아파서 생기는 이변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이, 싸이언!”

“굴락에서 온 마차야. 얼른 들여보내 줘.”

크로머 길드의 창고 입구.

경비병이 마차를 끌고 온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멈춰 세웠다.

“마차 좀 확인할게.”

“아이, 뭘 그렇게까지 해?”

“요즘 우리 정보가 밖에 새어나간다는 소문이 있잖아. 그것 때문에 대장이 얼마나 난리 쳤는지.”

“에휴. 유연성이 좀 있어야지. 내가 여기서 몇 년을 일했는데.”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론 그는 크로머 길드에서 수년간 일했지만, 그 정체는 이웨카 길드의 스파이였다.

‘낯짝도 두껍군.’

마차에 숨어서 남자의 목소리를 듣던 아론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알잖아. 그거, 들어와 있는 거.”

“아아…… 알지. 그래도 할 거면 좀 빠르게 해 줘. 오늘 돈 받고 바로 집에 가야 하니까.”

“알겠어, 알겠어. 그냥 확인만 할게. 하여튼, 너도 딸 낳고 나서 완전 딸바보 다됐구나.”

“시끄러. 일이나 해.”

경비병은 깔깔 웃으며 마차의 막을 젖혔다. 안에는 불법으로 포획한 희귀 몬스터들이 있었다.

“끼에에!”

몬스터는 전부 눈을 가린 채 난동부리지 못하게 묶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빛이 들어오자 감각으로 알아차리고는 울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 녀석들 울잖아!”

남자가 경비병을 보챘다.

“미안, 미안.”

경비병은 이리저리 슥 둘러 보더니 다시 막을 내렸다.

“좋아.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군. 통과!”

“수고해라.”

“가정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다음에 술 한번 마시러 나와!”

“어, 그래!”

그렇게 아론이 탄 마차는 입구를 유유히 통과했다.

‘몬스터가 들어 있어서 그런지, 열어서 안쪽까지 확인하진 않는군.’

아론은 한숨을 돌렸다.

만약 마차에 실린 것이 몬스터가 아닌 짐들이었다면 경비병들이 직접 뒤져보다가 걸릴 가능성도 충분했었다.

‘입구를 통과하고 마차가 멈출 때가 신호라고 했었지.’

그때 거적에서 나와 미리 손질해 둔 마차의 아랫부분을 열고 나가면 되었다.

마차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행선지는 창고 내의 야외 보관소. 싣고 온 몬스터를 보관해야 했기에 때문이었다.

드르르륵…….

잠시 후, 마차가 멈추었다.

‘지금이다!’

아론은 잽싸게 움직여 마차의 아랫부분을 열고 나왔다. 그런 뒤 기어서 수풀 안으로 숨어들었다.

“굴락에서 온 몬스터다! 조심히 다뤄!”

마차를 몰고 온 남자는 태연하게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렇게 해 두면 잠깐은 사람들의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아론은 계속해서 몸을 숙인 채 수풀 속을 헤치고 나갔다.

‘아그니 소드는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다.’

수풀 끝에는 또 다른 보관 건물이 있다. 거기에 바로 아그니 소드가 있었다.

아론은 소리를 줄이는 한에서 최대 속력으로 달려나갔다. 혹시나 침입이 발각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다.

잠시 후,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도 입구는 경비병이 두 명 서 있었다.

‘지금 시간이면 바로 막 교대했을 것이다. 당분간 새 경비병은 오지 않아.’

그 정보는 이웨카 길드가 건네준 종이에 있었다.

‘마법 내성은 없어 보이고.’

그렇다면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아론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각각의 손에서 아이스 볼트를 시전했다.

그러고는 두 명의 목을 노리고 마법을 발사했다.

파밧! 파밧!

결과는 적중. 녀석들은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론은 즉시 수풀에서 튀어나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건물 안으로 무사히 들어오는 데 성공한 아론.

목표 대상인 아그니 소드는 이 건물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지하에 인원이 몰려 있다 보니 1층의 경계는 좀 느슨하단 말이지.’

아론은 경비병의 눈을 피해서 곧장 서쪽으로 달렸다.

그곳의 보관소에는 서적 위주의 장물들이 많이 있었다. 아론은 거기다가 불을 지를 작정이었다.

‘거긴 화재에 취약한 비싼 물건들이 많지.’

불이 난 것이 확인된다면 진압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지하창고의 인원도 비게 되었다. 아론은 그 틈을 노려 들어갈 계획이었다.

‘사람이 잠깐 비는 5분. 그 안에 다 끝내야 한다.’

설계도에 적힌 것처럼 서쪽 보관소의 경비 교대에는 5분의 공백이 있었다.

아론은 보관소의 정중앙으로 갔다. 거기서 파이어볼 마법을 시전한 뒤, 타이머 마법을 덧씌웠다.

이런 것은 지구에 있을 적에 던전에서 몬스터를 유인하기 위해 많이 하던 행위이기에 익숙했다.

‘지금 터지면 내가 빠져나가기 곤란하니까 말이야.’

아론은 5분 뒤에 타이머 마법이 발동하도록 설정한 뒤 주변을 살폈다.

‘화재 방지 마법들이 곳곳에 걸려 있군.’

복잡한 술식은 아니었다. 아론은 불길이 잘 퍼지도록 하나하나 그것들을 전부 해체해 두었다.

‘이제 1분가량 남았나?’

아론은 잽싸게 보관소를 빠져나온 뒤, 지하창고로 향하는 근처에 매복했다.

잠시 후.

콰앙!

서쪽 보관소에서는 타이머 마법이 정상적으로 발동했고, 파이어볼이 이리저리 흩뿌려지고 있었다.

“불이야!”

방금 막 교대로 들어간 경비병이 놀라서 뛰쳐나오며 소리 질렀다.

“불이다! 모두 서쪽 보관소로 오라고 해!”

경비병들은 다급하게 불이 난 곳으로 향했다.

‘성공이군.’

아론은 혼비백산한 경비병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이윽고 지하창고에 있던 경비병들도 올라와서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론은 이때를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시 지하 쪽 문은 닫고 올라왔겠지.’

설계도에 의하면 지하창고 정문은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론이 아무리 마법을 쏘아도 부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론은 우회하기로 했다.

배수로로 향하는 창을 마법으로 뜯어내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그니 소드를 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견딜 만했다.

‘으, 질척거리는 이 느낌.’

아론은 버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먼저 향해야 할 곳은 지하창고가 아니었다. 우선은 마나 제어실로 향했다.

끼익.

배수로 창을 열고 마나 제어실에 도착한 아론. 여기에는 지키는 인원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건물의 마나 공급을 담당했다. 여길 파괴한다면 곳곳에 설치되어서 빛을 비추는 라이트 마법들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아론은 마나 제어실의 중앙에 있는 마정석으로 다가갔다.

‘이걸 부수면 마나 공급이 차단된다.’

그러나 당장 부술 생각은 없었다. 기껏 경비병들을 서쪽 보관소로 모아뒀는데 말이다.

아론은 아이스 볼트 마법을 시전한 뒤 다시 타이머 마법을 덧씌웠다.

이번에 조작한 시간은 7분 뒤.

‘이 타이밍이면 내가 지하창고에 진입할 시간이지.’

그는 설계도를 보면서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서 돌렸었다.

아론은 마법을 시전한 뒤 다시 배수로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에야말로 지하창고로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이웨카 길드 덕분이군.’

아론은 새삼 그들의 정보 수집 능력에 감탄했다.

만약 로안을 만나지 못했고, 자신이 골랐던 1, 2위 길드에 갔더라면 이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미지수였다.

‘좋아. 지금쯤 시간이 됐겠지.’

이 창만 열면 바로 지하창고로 진입할 수 있었다.

팟!

타이머가 가동되어 마력 공급이 끊김과 동시에 아론은 지하창고로 진입했다.

‘이곳의 경비는 둘뿐.’

원래라면 스무 명은 가까이 되는 인원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아론은 앞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는 경비병을 향해 마법을 날려 단숨에 처치했다.

‘아그니 소드는 어딨지?’

아론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아그니 소드가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에 있군.’

불이 꺼져서 주변을 자세히 볼 순 없지만 아그니 소드에서 흘러나오는 마나 반응이 아론을 이끌고 있었다.

아론은 가까이 다가가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아그니 소드」

· 오래전부터 아이젠 왕가에 내려져 오던 재보. 태초의 검에서 갈라져 나온 불의 힘을 품고 있는 검이다.

상태창이 제대로 떠 올랐다. 그렇다면 이게 아그니 소드가 맞다는 증거였다.

아론은 그것을 챙겨 들고 지하창고를 벗어나려고 했다.

“윽!”

그때, 아론의 몸에 통증이 찾아들었다.

‘너무 무리했나.’

이곳에 침입하기 전에 미리 반쪽짜리 칠성초도 먹어 둔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런 것을 보니 심하게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하긴, 타이머 마법을 쓸 때부터 느낌이 싸하긴 했지.’

지구에서 사용할 때는 시간을 정확히 다룰 수 없었다. 어림잡아 5분 내외로만 컨트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론의 몸은 달랐다. 정확히 초 단위까지 마법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섬세한 능력을 마음껏 사용했으니 반동이 오는 것이었다.

‘얼른 공작에게 이 검을 가져다주고 진짜 칠성초를 받아야지.’

그 약초만 먹을 수 있다면 몇 년 동안은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

아론은 그런 희망을 품고 지하창고의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어차피 경비병들은 지금 정신이 없겠지?’

그들은 보관소의 화재를 진압함과 동시에 차단된 마나 공급을 재개한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콰앙!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폭음이 들려왔다.

‘뭐지? 내가 설정한 타이머 마법들은 다 발동이 되었을 텐데.’

혹시 서쪽 보관소에서 화재 진압을 하다 일이 생긴 걸까?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폭음은 꽤 가까운 장소에서 들렸었다.

‘젠장. 이러면 지하로 사람이 몰리잖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론은 빨리 이 건물을 벗어나기로 했다. 아론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렸다.

‘뭐지?’

복도를 지나는 도중이었다.

아론의 코끝에서 피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피 냄새의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경비병의 시체?’

피를 흘리며 죽은 녀석들의 시체를 본 순간, 아론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누군진 몰라도 나 말고 다른 침입자가 들어온 게 확실해.’

아론은 즉시 계획을 수정했다.

몸을 반대로 틀어서 다시 지하로 내려가 배수로를 이용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론은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다.

‘……뭔가 온다!’

아론의 본능이 경고했다.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즉시 몸을 뒤로 젖혔다.

쐐애액!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아론이 있었던 곳을 무언가가 지나갔다.

쾅!

그 기운은 벽을 강타했다.

아론은 얼굴을 굳힌 채 고개를 무언가가 날아온 방향으로 돌렸다.

“감이 좋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그런 말을 읊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원래 복도를 밝히던 라이트 마법이 꺼진 탓에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단지 장신의 사내라는 것. 그리고 실루엣을 보아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거기다가 오른손에 든 검. 방금 날아온 기운.

‘……기사인가?’

아론은 긴장하며 남자를 살폈다.

검에서 어슴푸레하게 흘러나오는 오러가 보였다. 이곳에 있던 경비병들과는 실력의 차원이 다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거지?’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남자는 칼끝으로 아론이 들고 있는 아그니 소드를 겨눈 채 물었다.

“마법사가 그 검을 어디에 쓰려고 들고 가는 거지?’

“필요하니까. 내가 살기 위해선 이게 있어야 하거든.”

아론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진심인가?”

“그래.”

“웃기는구나. 네가 살기 위해서 한 행동이 결국 죽음을 자초할 테니 말이다.”

남자는 크게 웃었다.

“그 검은 아이젠 왕가의 재보다. 즉, 아이젠 왕국의 것이라는 말이지.”

“무슨 소리야. 그 검이 지금 아이젠 왕국에 있나? 이렇게 내 손에 있는걸.”

“시답잖은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상태창】

· 이름 : 비메르 케이트

· 스테이터스

체력 75 마력 41

근력 97 민첩 53

지력 30 친화력 68

‘좋아, 보인다.’

아론은 쓸데없는 말을 던져서 상태창을 볼 시간을 확보했다.

‘수치가 좀 높은데.’

체력과 근력을 보아하니 수련이 잘 된 기사였다.

‘붙어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겠어.’

아론은 평가를 마쳤다.

자신이 이 남자를 쓰러트릴 확률은 드물었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수밖에.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소속은 아이젠 왕국인 것 같고.’

어지간한 말로 회유할 상대도 아닌 것을 확인했다.

‘싸우는 척을 해주다 틈을 봐서 도망치는 게 베스트다.’

귀환 스크롤이 있긴 했지만, 그건 곧바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한 번에 공작가로 이동시켜주는 마법이 담겨 있는 스크롤이었다. 그걸 발동하기 위해서는 마법진을 그려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저 기사 녀석이 내가 마법진을 그리는 걸 두 손 놓고 봐주진 않겠지.’

아론이 생각을 마치자, 남자는 자세를 바꿔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눈독 들이지 말아야 할 것에 눈독을 들인 죄. 죽어서 대가를 치러라.”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시지.”

아론은 아그니 소드를 허리춤에 둘러맸다. 그런 뒤 남자와 싸울 준비를 했다.

* * *

아론은 주변의 마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러 사용자와 붙는 것은 처음이군.’

오러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칼밥을 좀 먹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검을 쓰는 사람은 많아도 체내의 마나를 검에 씌워서 기운을 방출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허투루 공격한다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어.’

어설프게 공격 마법을 시전한다면 저 남자는 그 틈을 이용해 오러를 뿌릴 게 분명했다.

아론은 일단 실드 마법을 펼치기로 했다.

후웅!

예상대로 남자는 검에다 오러를 실어서 휘둘렀다.

재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오러. 아론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면서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퍼엉!

실드와 오러가 부딪히면서 큰 소리를 냈다. 오러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이 몸의 높은 친화력 덕분이야.’

아론은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조우했을 때 오러를 피한 것도, 이번에 오러를 눈으로 보고 막은 것도 아론의 마나 친화력이 높아서 그런 것이었다.

만약 친화력이 낮은 마법사가 저 녀석과 대치했다면 이미 오러에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기사는 오러가 막힌 것을 확인하더니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둘 간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쉬익!

근접해 온 기사는 아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론은 재빨리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캉!

마법과 검이 부딪혀 공명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기사의 쾌검.

캉! 캉! 캉!

아론은 정신없이 방어 마법을 펼치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거리를 벌릴 궁리를 생각했다.

‘제길. 가까스로 막는 것만으로도 한계네.’

아론은 실력의 차이를 실감했다.

마법사와 기사의 전투에서는 거리의 유지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기사가 자기 마음대로 거리를 좁혀올 수 있다는 것은 마법사 쪽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였다.

‘큭!’

방어 마법을 시전해 가까스로 기사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그 충격을 완전히 상쇄할 순 없었다. 같은 부위에 공격이 계속 누적되니 버티지 못한 살갗이 터지면서 통증을 불렀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아론은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화악!

방어 마법 대신 기사가 있는 방향으로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휘익!

덕분에 기사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여기서 내가 공격한다면 저 녀석의 다음 공격에 다리가 잘릴 것이다.’

그래서 아론은 일단 거리를 벌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발과 다리에 마나를 순간적으로 집중시키고는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콰앙!

굉음이 일었고, 아론의 몸은 기사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아론은 왼팔로 마법을 시전했다.

쉬쉬쉭!

기사가 서 있는 바닥에서 덩굴이 올라와 그의 발과 다리를 옭아맸다.

이걸로 녀석의 움직임을 완전히 묶을 순 없었다. 칼질 몇 번이면 덩굴을 베고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잠깐이면 충분해.’

아론은 오른팔을 앞으로 뻗고 왼손으로 손목을 붙잡았다. 단단히 오른손을 지지한 뒤에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치지직!

아론의 손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그는 공작가에서도 몇 번 써본 적이 없는 강력한 전격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나가 위태롭긴 한데, 살려면 어쩔 수 없어!’

다음 수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해내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없었다.

콰르르릉!

중급 전격 마법, 라이트닝 스트라이크가 아론의 손에서 쏘아져 나왔다.

콰앙!

질주하던 번개는 그대로 기사가 있는 곳에 직격했다.

하지만, 그 공격으로는 녀석을 죽일 수 없었다.

“흥. 거칠게 발악하는군.’

그 기사의 한 마디에 아론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러 실드로 막아냈군.’

아론의 눈에 녹아내리는 오러 실드가 보였다.

기사가 보유한 오러의 양으로 보건대 당분간은 오러 실드를 펼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 다시 방금과 같은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서걱! 서걱!

기사는 자신의 발을 옭아매던 덩굴들을 잘라냈다. 그런 뒤, 다시 아론을 향해 달려왔다.

아론은 기사를 향해 캐스팅 시간이 빠른 마법들을 시전해 공격했다. 그러나 녀석은 쉽게 피하거나 검을 휘둘러서 막아냈다.

금세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기사.

그는 위에서 검을 휘둘렀다.

아론은 방어 마법을 시전했고.

캉!

그 공격은 거기서 멈추었다.

‘어?’

아론은 순간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공격이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기사는 순식간에 왼발로 공격을 가했다.

뻐억!

날아든 기사의 발이 아론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컥!”

아론은 벽에 부딪히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오러가 담기지 않은 공격이었음에도 그 충격이 상당했다.

“괜히 시간만 끌었군.”

기사가 아론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켁, 켁!”

아론은 숨쉬기가 힘들어 연신 기침을 했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도망칠 곳이 없나?’

실질적으론 없었다.

앞에는 기사가 있었고, 도망치려고 일어나는 순간 칼에 베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도망칠 곳이 없다면 만들어내면 그만이었다.

“그 검, 가져가야겠다.”

기사가 그렇게 말하며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아론은 바닥을 짚은 양손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마법을 시전했다.

콰앙!

그러자 전투로 약해졌던 바닥이 뻥 하고 구멍이 뚫리며 아론도 함께 떨어졌다.

“크윽.”

아론은 바닥을 구르며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비명을 질렀지만 살기 위해선 움직여야 했다.

“누구냐!”

그때, 저편에서 경비병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타악.

동시에 기사도 구멍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서걱!

그러더니 달려오던 경비병을 단칼에 베어내고는 다시 아론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귀찮게 하는구나.”

기사가 말할 그때였다. 치직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이 건물에 마나 공급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제 서로가 모습을 완전히 확인할 수 있게 되자, 기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는…… 에드먼스 가문의 망나니 아닌가?”

아론은 속으로 놀랐다.

이 녀석은 약골이라 사교계는커녕 집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데 왜 이리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후. 아그니 소드를 회수하는 것 말고도 공적을 더 올릴 절호의 기회로군.”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의 나라에선 내 목숨이 가치가 있나 보군.’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의 공작 가문 아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그게 네 맘대로 될까?”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마법을 시전했다. 아까, 기사가 경비병을 상대하던 그 찰나에 영창을 준비해 뒀었다.

콰가강!

스파크가 일며 뇌전이 기사를 덮쳤다.

“크윽!”

기사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공격마저도 녀석을 죽이기에는 부족했다.

‘기사는 무슨 맷집이 얼마나 되는 거야?’

아론은 울고 싶었다.

녀석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혀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갑옷은 너덜너덜해졌고 그 틈새로 피가 나오는 것이 보일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제 마나도 얼마 없는데…….’

아론은 품속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약병이 있었다.

‘여기에는 여태껏 마셨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반쪽짜리 칠성초가 담겨 있다. 정말 비상시에 쓰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론은 약병을 꺼냈다. 지금이 그 비상 상황이라고 여겨졌다.

꿀꺽.

그는 잽싸게 내용물을 마셨다.

그러자 몸에 마나가 용솟음치는 게 느껴졌다.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반쪽짜리가 이 정돈데 진짜 칠성초를 먹었을 때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

괜히 매물을 구하기 어려운 약초가 아니었다.

저벅, 저벅.

기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론이 무언가를 마시려고 하는 순간에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타다닥!

그러고는 쏜살같이 달렸다.

아론은 극대화된 감각으로 기사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반대 방향으로 몸을 굴렀다.

그러나 그 순간.

기사는 오른발을 축으로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 아론을 몰아붙였다.

터억!

기사는 팔꿈치를 이용해 아론을 벽으로 몰아세운 뒤 압박을 가했다.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다니.’

아론은 질려서 말도 안 나왔다.

하지만 오히려 기회였다.

녀석도 지친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공격을 막아줄 오러 실드가 없었다.

“그 망나니가 이렇게 싸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에드먼스 가문도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었군.”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들었다.

아론은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오른팔을 기사의 배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파앙!

손에서 뻗어져 나온 마나가 충돌을 일으키며 강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몸이 붕 뜬 기사는 허공을 날다가 벽에 부딪혔다.

‘끝이다.’

아론은 녀석이 일어나기 전에 죽일 생각이었다. 얼음으로 된 창, 아이스 스피어를 만들어서 녀석의 심장을 노려 발사했다.

푸욱!

가슴이 뚫린 기사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아론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힘들었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귀환 스크롤을 쓰기 위해서는 마법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꽤 걸려.’

자신도 엄연한 침입자 중 하나였다. 언제 경비병들이 달려올지 몰랐기에 빨리 이곳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남은 반쪽짜리 칠성초를 먹어서 움직일 힘은 있었다.

아론은 허리춤에 찬 아그니 소드를 확인했다.

‘역시 쉬운 임무가 아니었구나.’

이제 이걸 가지고 공작가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아론은 머릿속에 외워둔 설계도를 바탕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나가야 한다.’

남은 반쪽짜리 칠성초를 약병 하나에 다 갈아 넣은 거였다. 그만큼 약효가 세지만 그 반동으로 지속 시간은 짧았다.

‘원래라면 이웨카 길드에서 심어둔 스파이의 마차를 타고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하겠군.’

아이젠 왕국에서 온 기사와 대치하느라 시간을 너무 오래 허비하고 말았다.

‘사람들만 드나드는 쪽문 쪽으로 가야겠어.’

이곳에선 거기가 제일 가까운 탈출구였다.

비록 대기 중인 경비병과 대치해야겠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잠시 후, 필사적으로 달리니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예상보다 경비병이 적다는 것이었다.

‘아직 안쪽에서 소요가 끝나지 않았나 보네.’

아론은 라이트닝 볼트로 얼마 없는 경비병들을 쓰러트린 뒤에 문을 박차고 나갔다.

‘타이밍이 좋아.’

밖으로 나가자 저 멀리서 달려오는 마차가 한 대 보였다.

아론은 이번 임무가 위험한 것임을 알고 여러 플랜을 준비해 뒀었다. 이것도 그중에 하나였다.

“도련님! 얼른 타세요!”

마차의 문이 열리고, 라엘이 내려와 아론을 부축해서 태웠다.

* * *

아론은 마차를 탔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공작가로 돌아가기 전까지 안심은 금물이었다.

‘그래도 라엘이 빠르게 움직여줘서 다행이야.’

오늘 아침 작전을 시행하기 전, 라엘에게 당부해 뒀었다. 지정된 시간이 지나도 정문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쪽문으로 마차를 몰아 달라고 했었다.

“도련님! 상처가 왜 이리 많으세요!”

“움직이던 도중에 기사를 만났거든. 중요한 건 내 몸이 아니야.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말씀하신 경로로 이동하고 있어요. 그것보단 치료를 어떻게……!”

라엘이 아론의 몸을 살피며 걱정된다는 표정을 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괜찮아. 공작가에 도착하기만 하면 돼.”

공작가에는 최고의 치료 신관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었다. 지금 아론의 상처쯤은 말끔히 낫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초를 과다 복용해서 생긴 내상은 치료가 힘들지도 모르겠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론은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습격한 크레머 길드도 바보는 아니었다. 언제 추적자들을 보냈을지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이걸 봐 줘.”

아론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도련님. 이거는……?”

“보다시피 마법진이야. 나중에 내가 말한 장소에 도착하면 좀 그려 주겠어?”

“알겠습니다.”

라엘에게 마나를 다루는 방법은 가르쳐 줬었다. 마법진을 따라 그리는 건 기초적인 거였기에 라엘이 해도 상관없었다.

마차는 어느덧 할로움의 입구를 통과해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마차는 속도를 올렸다.

잠시 후, 아론이 말한 장소에 마차가 도착했다.

아론은 라엘의 부축을 받아서 마차에서 내렸다.

널찍한 공터였다. 보는 눈도 없고, 대기의 마나도 적당하고. 마법진을 이용하기에 최적이었다.

포드의 도움으로 공작가에도 전송받을 수 있는 마법진을 그려 놓았기에 좌표는 문제없었다. 다만 마나가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존재했다.

‘안 그래도 몸에 마나가 얼마 없는데…… 며칠 정도는 앓아눕겠군.’

아론은 그리 생각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혹시나 뒤따라 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역시나.’

아론의 예상은 정답이었다.

“여기에 있었군.”

그 말과 동시에 아론을 노리고 오러가 날아들었다.

퍼엉!

아론은 즉시 실드 마법을 펼쳐 공격을 막아냈다.

“크윽.”

그러나 몸에 전해지는 충격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레머 길드의 창고에서 보았던 기사랑 똑같은 복장이잖아?’

아론은 이곳에 나타난 남자 역시 아이젠 왕국의 소속임을 알 수 있었다.

“흐음. 비메르를 이긴 게 그저 운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군.”

기사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아론을 보며 말했다.

“되게 끈질기네.”

“비메르를 죽인 거에 대해 별생각은 없다. 그는 그저 기사답게 싸우다가 죽은 거니까.”

기사는 아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그니 소드는 애타게 찾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사연이 있나 보네.”

“그걸 말해줄 수는 없다. 뭐…… 얼굴을 감싼 복면을 내려서 정체를 밝힌다면 말해줄 수도 있지.”

“사양하지.”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약효가 아직 남아 있어서 움직일 순 있지만 길어야 몇 분일 거였다.

‘다행인 것은 기사가 라엘의 행동을 예의주시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마 라엘은 전투를 할 수 없는 시녀로 파악한 모양이었다.

‘뭐, 틀린 거는 아니지만.’

아론은 자신이 쓸 수 있는 패를 생각했다.

‘마나는 거의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스크롤을 몇 개 챙겨오긴 했는데.’

스크롤에는 마법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 스크롤은 마나가 적은 사람도 쓸 수 있었고, 위력이 강할수록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비싸졌다.

스크롤은 공작가니까 쉽게 수급할 수 있었다. 다만 가문 내 서열 5위인 자신에게는 배정된 수량이 몇 개 없었다.

‘그래서 고심해서 골라왔지.’

자신이 출력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등급의 실드 마법을 내장한 스크롤과 공격 마법 스크롤 한 개.

‘어떻게든 마법진이 완성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상대는 아론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이내 틈을 발견했는지 기사는 재빠르게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쉬익!

오러를 담은 검이 휘둘러졌다.

아론은 즉시 스크롤을 찢었다.

그러자 아론의 주위로 실드가 생성되었다.

퍼엉!

그러나 기사의 오러에 실드는 하염없이 깨지고 말았다.

‘이런. 그래도 5서클 마법사가 펼친 정도의 실드였을 텐데. 이걸 쉽게 깨다니.’

그렇다면 상대는 5서클 마법사 이상의 실력을 가진 기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론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검이 휘둘러지는 그 타이밍에 라이트닝 볼트를 시전해 기사를 향해 날렸었다.

그 결과는 적중. 녀석의 옆구리에 생채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순간, 기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상하다. 일부러 오러 실드를 두르지 않은 건가?’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장난은 여기까지다.”

기사가 말했다.

“뭐야, 장난이었어?”

아론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전력을 다해서 받아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정말인가 보군.’

그는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론은 저 기사와 정면으로 치고받을 생각이 없었다.

“나를 얕봐줘서 고맙군.”

“……뭐?”

아론은 라엘이 어느덧 마법진을 완성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즉시 공격 마법 스크롤을 하나 찢었다. 여기에는 강력한 폭발 마법인 익스플로전이 저장되어 있었다.

콰콰쾅!

기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라엘!”

그와 동시에 아론은 마정석 하나를 그녀에게 던졌다. 라엘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마법진의 중앙에 꽂았다.

아론은 기사가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5서클 정도의 실드도 가볍게 뚫은 녀석이다. 죽지는 않았을 테지.’

하지만 이 정도 폭발이면 당분간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잘 있어라!”

아론은 그 말과 함께 포드가 준 귀환 스크롤을 찢었다. 그는 라엘과 같이 이곳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폭발로 인한 잔해가 잦아들고, 기사가 그를 찾으려고 했을 때는 온데간데없는 상황이었다.

***

아론과 라엘은 귀환 스크롤의 힘을 빌려서 무사히 공작가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쿨럭, 쿨럭!”

하지만 아론의 몸은 성하지 못했다. 마정석의 마나를 빌렸지만 체내의 마나를 거의 다 끌어다 쓴 덕에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론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했다.

‘포드 공, 고맙습니다.’

그는 아파서 기침하는 와중에도 그에게 감사했다.

귀환 스크롤을 포드가 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아론은 아그니 소드를 들고 오던 도중에 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면 괜찮겠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을 기었다.

“도련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신관님을 불러올게요!”

라엘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한편,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사용인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나둘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아론 도련님이…….”

“뭐야? 또 어디서 술 드시고 들어오셨나? 저 몰골은 또 뭐고?”

사용인들은 자기들끼리 아론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비키세요!”

잠시 후, 치료 신관을 데려온 라엘이 사용인들을 밀어내며 아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으으…… 으…….”

잠시 후, 신관의 치료 덕분에 아론의 정신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충격으로 인해 찢어졌던 살이 다시 피어오르면서 체력이 돌아왔다.

‘이 정도면 움직일 수 있겠어.’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신관이 그를 말렸다.

하지만 아론은 신관의 팔을 뿌리쳤다.

“난 괜찮아. 그보다 지금 공작님을 바로 만나고 싶다.”

아론은 비틀거리면서 공작이 있는 건물로 갔다.

몰골이 말이 아닌 아론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랐다. 그래도 그들은 아론이 공작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잠시 후, 카이만의 서재에 도착한 아론.

“몸이 많이 상했군. 수고했다.”

카이만은 아론을 보며 그리 말했다.

“그래서, 아그니 소드는 가져 왔나?”

아론은 허리춤에 둘렀던 아그니 소드를 카이만의 책상 위에 올렸다.

“여기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친 자식보다 검에만 관심을 가지는 냉혈한이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론은 공작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고했다, 고 했었지.’

아론의 기억에 따르면 공작은 좀처럼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공작은 자신에게 관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여기 약속한 대로 칠성초를 주마.”

공작은 직접 함을 내밀었다.

아론은 그것을 받아서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칠성초」

· 7년 동안 순도 높은 마나를 머금은 일곱 갈래의 약초.

‘이건 진짜군.’

공작이 가짜를 줄 사람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해서 상태창을 확인한 아론이었다.

“감사합니다.”

“약속한 대가를 줬을 뿐이다.”

카이만은 그렇게 말하며 아론을 바라봤다.

“넌 칠성초를 이용해서 타고난 약골의 몸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지.”

“예.”

“그럼 네가 그때 말했던 것처럼 살려고 발악한 것이 성공한 셈이군. 이제 목표도 이루었는데 뭘 하려고 하느냐?”

“실력을 키울 생각입니다.”

“왜지?”

“저주받은 것 같은 몸만 치료하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 목숨을 노리는 적이 더 생겼습니다.”

“적이라고?”

“예.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요.”

“흐음.”

카이만은 아론이 말한 내부라는 단어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을 키우겠다고 말한 거였군.”

아론은 생각했다.

원래는 칠성초만 구하고 30살 이전에 9서클을 도달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공작가 내에서 날 노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도 내 목숨값은 비싸게 쳐주는 모양이고.’

아이젠 왕국의 재보인 아그니 소드를 자신이 가져가게 되었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왕국의 공적이 될 것이다.

공작가의 무력을 생각해서 공개적으로 말을 하진 않겠지만, 물밑에선 아론을 없애기 위해 활발히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난 한번 죽었다 살아난 몸이야. 이왕 사는 거 길게 살고 싶다고. 거기다가 이 재능 넘치는 몸으로 죽기는 싫다.’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카이만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적이 생겨버린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죽일 겁니다.”

“내부에도 적이 있다 하지 않았나? 설마 그 내부의 적이 네 형제라도 그럴 건가?”

“예. 설령 아버지라고 해도…… 제 적이 된다면 죽이는 건 힘들어도, 팔 하나 정도는 뜯고 죽을 겁니다.”

아론의 도발 가득한 대답.

그러나 카이만은 오히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하하!”

카이만은 큰 소리로 웃었다.

자식들 중에서 저런 서슬 퍼런 눈빛을 가진 녀석이 있던가?

첫째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론이 내뿜는 안광은 첫째의 것보다 강렬했다.

어쩌면.

지금은 첫째가 가장 앞선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놈도 어떻게 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네가 말한 대로 발악이구나.”

카이만은 웃으며 말했다.

“그 태도, 마음에 든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 봐라.”

“알겠습니다.”

“너의 의지를 봐서 선물 하나를 더 주지. 그 아그니 소드, 네가 가져가도록 해라.”

공작의 입에서 파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아그니 소드를 챙기고는 공작의 서재를 떠났다.

헌터, 공작가 망나니 되다 1권

헌터, 공작가 망나니 되다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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