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48화
직원 화장실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온 물리치료사들은 주머니 안에 있던 쿠션을 꺼내 수정 화장을 했다.
9시간 근무에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수다를 떨 시간이 이 시간밖에 없었다.
“너희 요즘 그 채널 봐?”
“뭐? 어떤 거?”
“그…… 그, 아…….”
눈치를 보며 요즘 자신이 푹 빠져 있는 너튜브 영상을 동기들에게 말하려던 영선은 눈치를 보다가 화장실 안에 자신들 말고 다른 귀가 있지는 않을까 살폈다.
아무도 없다고 확인을 한 영선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환자를 읽는 한의사’라고 개인한의원 채널인데…….”
목소리를 낮춰 말을 하는 영선의 말에 귀를 기울인 동기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어? 나도 봐. 의외던데? 나는 동네 한의원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줄 몰랐거든?”
“너, 목소리 너무 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영선은 자신은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큰 목소리를 낸 동기에게 눈치를 줬다.
“뭐 어때. 솔직히 대표님만 안 들으면 되지 않아? 여기 있는 직원들 다 애사심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어. 어차피 다 이직하고 그런 건데. 오히려 우리한테는 도움 되는 거 아닌가? 다른 한의원 분위기는 어떤지 알고.”
“그건 그렇긴 한데 병원 안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 들키면 눈치는 보이지.”
“우리끼리 있는 건데 어때.”
입조심을 하자는 영선의 말에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동기들은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을 찾았다.
“에? 이런 데가 있다고? 근데 일하기엔 솔직히 힘들겠다. 처치를 바닥에서 한다니.”
“그러게, 우리처럼 물리치료까지 하는 치료사들은 베드가 더 낫지 않아?”
“그래도 나는 한번 가보고 싶던데. 이번 주 토요일에 나 off인데 한번 가볼까 싶긴 해.”
“나도 가볼까? 요즘 어깨 뻐근한데.”
“야, 너희 다 다른 병원도 다니고 하는 거야?”
영선은 자신이 먼저 말을 꺼냈던 명의 한의원이지만 이렇게 우르르 나서서 너튜브를 찾아볼 줄은 몰랐다.
특히나 다른 사람들의 몸을 살피느라 제 몸을 살필 시간이 없는 물리치료사 동기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정한 한방병원이 아닌 명의 한의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겠다는 말에 괜한 말을 꺼냈나 싶었다.
“다른 병원 가보면 어때. 가서 분위기도 살피고, 배울 건 배우고 오면 좋지 뭐.”
입을 삐죽 내민 동기는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은 영선의 허리를 쿡 하고 찌르고는 피식 웃었다.
“얼른 나가자. 팀장님한테 들키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뭐라고 하실라.”
우르르 빠져나간 물리치료사들의 말소리가 사라지자 잠자코 화장실 안에 있었던 연아가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전 남친이자, 요즘 업계 사람들에게 핫한 이재마의 소식을 남의 입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아니라면 빽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재마가 정한 한방병원에 비하면 구멍가게밖에 되지 않는 명의 한의원을 알리고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 오빠. 지난 영상 있잖아? 지난주에 찍은 거. 그거 편집한 거 봤는데 맘에 안 드는데.”
-뭐? 그게 왜.
“아니, 맨날 무슨 의료 상담만 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기분이라.”
-원래 처음 너튜브 채널 만든 취지가 의료 상담, 상식 알려주는 거 아니었어?
“아, 아무튼, 그냥 다시 찍어.”
연아는 자신의 약혼자인 중기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스럽게 지난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편집자에게 건네받은 지난 주말에 찍은 영상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전 남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연아야. 나 주 6일 출근하고 하루 쉬는 데 그 하루를 매주 너튜브 영상 찍잖아. 근데 다시 언제 찍어. 이번 주는 그냥 올리고.
“다시 찍을 거야. 우리 팀에서 다시 찍을 영상 대본 보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
연아는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중기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지,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툭 끊었다.
“정한 한방병원 입사만 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뽑아 줄 것처럼 하더니, 영상 하나 다시 찍는 거로 투덜거려?”
투덜거리던 중기의 목소리가 맘에 들지 않는지, 연아는 발을 쿵쿵 구르며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 * *
“안녕하세요. 서울시 문화재과 강지영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진료실 안쪽으로 들어오는 지영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어려 보이는 이재마 원장의 모습에 흠칫 놀랐지만, 악수를 청하는 재마의 손을 맞잡았다.
지난번에 명의 한의원을 방문했을 때는 원장인 이재마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선약을 하고 찾아왔기 때문에 그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진료가 끝날 시간을 맞춰서 왔지만, 그녀가 명의 한의원에 들어왔을 때도 대기 환자가 있었다.
대기 환자들의 진료를 다 보느라 지영과의 약속 시각이 15분이 지나서야 진료를 끝난 재마는 그제야 시청 직원인 지영을 만날 수 있었다.
“환자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죄송합니다. 두 번씩이나 찾아오셨는데, 약속 시간이…… 아, 지났네요.”
재마는 시간을 확인하며 약속 시각보다 15분이나 지난 상황이 미안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요. 어느 정도 예상했거든요. 저희 집에서 명의 한의원까지 버스 타고 40분이나 걸리는 데도 저희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명의 한의원 소문이 돌았다더라고요.”
“하하, 민망하네요.”
먼 동네까지 명의 한의원에 대한 소문이 났다는 소문이 요즘에는 제일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지영뿐 아니라 환자들도 먼 곳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왔다고 할 때는 뿌듯하기도 하면서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먼 곳까지 어렵게 찾아온 만큼 만족도 높은 치료 서비스를 해야 했다.
“저희 할머니도 제가 명의 한의원 온다니까 어떤지 꼭 말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진료 받으려면 순서가 너무 길어서…….”
“그렇죠. 대기 시간을 기다리시기에는 바쁘시죠?”
“근무시간에 외근 나와서 대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면담하기도 힘드신 원장님이시라.”
“아, 근데 문화재과에서는 무슨 일로 저희 한의원에…….”
재마는 정 실장에게 시청 직원이 주고 갔다는 강지영의 명함을 받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보건소 직원들이 한의원을 찾아왔는데, 문화재과에서 찾아올 줄은 몰랐다.
“문화재과에 있는 저도 서울 안에 이런 고택이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아, 이 한의원은 저희 외조부께서 4대째 관리하시며 한의원을 운영하던 건물이라서요.”
모두들 비싼 서울 땅에 새 건물을 올리며 새 단장을 할 때도 고집을 굽히지 않은 구 씨 가문의 자랑이자 역사인 명의 한의원이었다.
지금은 구 씨가 아닌 재마가 그 한의원을 이어서 하고 있지만, 그 명맥을 잇는 마음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문화재과도 고택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는데, 너튜브 채널에서 소개하시는 영상을 보시고는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이 정도 고택이면 시에서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이야기도 나왔고요.”
지영은 자신이 명의 한의원에 직접 찾아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냈다.
처음 명의 한의원에 들어서자마자 시청 직원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지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제가 한번 와본 이후에,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어요. 원장님 연락이 언제 오나 기다렸습니다.”
“네?”
자신의 연락을 기다렸다는 말에 재마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해인동이 지금 개발 구역으로 묶여 있잖아요. 1구역 쪽은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고…….”
“아…….”
자신이 괜히 놀란 티를 내지는 않았나 민망해 재마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문화재 지정하려면 조건도 부합해야 하고 시간도 걸려서요. 개발 진행에 속도가 붙으면 혹시나 저희 과에서 문화재 지정 기회를 놓칠까, 애가 탔거든요.”
“그렇죠. 저희 해인동 주민분들도 개발에 대한 기대도 크시고요.”
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영의 말에 동의했다.
“원장님께서는 어떠세요? 명의 한의원 건물을 문화재 지정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아…….”
재마는 선뜻 지영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처음 듣는 제안이었고, 자신은 한 번도 명의 한의원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터였다.
오히려 개발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재마는 자신의 속마음을 지영에게 들킬까 입을 꾹 다물었다.
“5대째 이어오신 가업인 만큼, 그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온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겠죠.”
재마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된다면 명의 한의원의 진료는 이곳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겁니까?”
단 한 번도 문화재 지정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재마였지만, 의외의 기회가 주어진 만큼 그 기회에 대해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었다.
“아니에요. 오랜 시간 이곳에서 자리를 지켜가며 주민 건강에 힘 써주셨는데, 문화재 지정을 했다고 내쫓을 수는 없죠. 선택권은 원장님과 명의 한의원에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적당한 보상을 해 드리고 시에서 관리를 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운영하시던 것과는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운영과 시설관리에 관한 부분을 시청과 계약을 하시고 진료를 이어가실 수 있습니다.”
“네.”
재마는 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익사업을 지양하고 문화재로서 가치를 보전하는 데 집중을 하겠다고 하시면 전시 공간으로 활용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 이후 이어갈 명의 한의원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이 조금 기분이 묘했지만, 명의 한의원에 기회가 되는 건 분명한 일이었다.
그냥 넘기기에는 아쉬운 기회였다.
“아마 문화재로 지정이 된다면 서울시 문화재과에도 좋은 일이겠지만, 명의 한의원에도 좋은 일이 되는 건 분명할 겁니다.”
지영은 문화재 지정까지 자신 있다는 듯, 장담했다.
“원장님이 운영하시는 한의원과 너튜브 채널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솔깃한 지영의 제안이었지만, 재마는 섣불리 결정을 할 수는 없었다.
“제가 결정을 할 수는 없고요. 명의 한의원을 이어오신 외조부님께 상의 드려보고, 저희 직원분들과 결정 후에 연락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요. 쉬운 결정은 아니죠.”
지영은 재마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꼭 긍정적인 대답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명의 한의원에 반했거든요. 그냥 개발 예정지에 묶여 밀어버리기에는 정말 아까운 곳이에요.”
지영은 사심이 담긴 속마음을 재마에게 털어놓았다.
문화재과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 옛것에 관심을 가지고 호감을 느끼는 지영은 단 두 번의 방문으로 이 공간에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그 가치를 꼭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이 문화재과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