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마지막 전투, 이어지는 장
그 순간 가공할 기파가 대기를 요동치게 했다. 한참 뒤로 물러나 있던 기대원들에게까지 날카로운 기파가 몰아닥쳤다.
대치하고 있던 두 존재가 격돌을 시작했다. 조짐도, 소리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둘 사이, 회색 대기가 터져 나가며 거친 회오리를 만들었다. 둘 모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기세를 돋웠다. 색도, 형태도 없는 무언가에 의해 서로의 피부가 갈라지고 터져 나갔다. 바람의 칼날과 얼음의 창이 날았고, 다크 스톰과 어둠의 저주가 서로를 겨냥했다. 지옥의 겁화가 서로의 눈을 어지럽혔고, 갑자기 생겨난 검은 대지가 이글거리며 자리를 잡아 갔다.
기대원들은 탈진한 제우스를 들쳐 메고 천천히 계곡 안쪽으로 물러났다.
기회였다. 둘 모두 기대원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 도망쳐야 한다.
“산을 넘는다.”
커트리안의 낮은 외침이 떨어지자 기대원들은 전력으로 오른쪽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는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기대원들의 눈에 절망감이 어렸다. 능선을 따라 수백의 마물들이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다.
케이드와 케이지니스, 마인과 거인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존재들까지 빽빽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었다.
강가의 자갈들처럼 모여 일행을 노려봤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꿈틀거렸다. 엄청난 수의 마물이 동시에 일행들을 향하자 절로 기가 질렸다. 기대는 천천히 계곡 안쪽으로 물러섰다.
계곡 내부에서는 여전히 두 강대한 존재들 간의 격돌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자갈과 심지어는 바위까지 떠올라 휘돌았다. 국지적이었기에 자연의 힘보다 강력했다. 안쪽 계곡까지 들썩거렸다. 상당한 거리였는데도 풍압에 가죽갑옷이 퍼덕퍼덕 소리를 내며 요동을 친다. 자꾸 떠오르려는 몸을 고정시키기 위해 서로를 부둥켜안아야 했다. 흩날리는 부유물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다.
고골리를 상대로, 롤을 상대로 보여 준 모습은 장난이었다. 두 존재의 격돌 속에서 아스르부테의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유일한 희망은 아스르부테가 패퇴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쥐날개 또한 선의를 가졌다고 볼 근거가 없었다. 등에 돋아 있는 불길한 모습의 날개와 창백한 얼굴에서 풍기는 음침함, 절대 선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동료의 절반을 잃어 가며 육 개월을 달려왔다. 경계를 불과 사흘 거리에 남겨 두었다. 탈출이 눈앞에 보였는데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때 일단의 마물들이 퓨콤뜨리아리트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르부테의 권속들이었다.
열 명의 케이지니스가 동시에 그라비티를 시전했다. 갑작스런 기습에 퓨콤뜨리아리트의 중심이 삐끗 흐트러졌다. 그 뒤로 케이드들의 다크오오라가 쏟아져 들어갔다.
팽팽한 접전 중에 벌어진 일이다. 아주 작은 틈이었지만 그걸로 족했다. 아스르부테가 시전한 바람의 칼날에 퓨콤뜨리아리트의 왼쪽 팔목이 썽둥 잘려져 나갔다.
그라비티, 중력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마법이지만 강대한 마왕인 퓨콤뜨리아리트를 묶어 놓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벌어진 작은 틈, 아스르부테가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다급해진 퓨콤뜨리아리트는 그라비티의 구속을 통째로 찢어 내며 날아올랐다. 다크오오라 몇 줄기는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힘을 가진 마왕 간의 접전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력이 달리던 터였다.
‘이렇게 소멸하는구나!’
퓨콤뜨리아리트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츠아앙!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권능을 집중하고 있던 아스르부테의 옆구리가 쩍하고 절반 가까이 벌어졌다.
초록색 피가 강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끓어올라 기화함과 동시에 무서운 기세로 어딘가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타격에 아스르부테의 거체가 휘청거렸다. 그 한 방으로 삼 할의 힘이 소실되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스르부테의 피가 모여드는 장소에 한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화한 피를 모두 흡수한 인영은 입맛을 다셨다. 아스르부테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어 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의 피 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대한 마왕 아스르부테의 피를 흡수하며 나타난 인영은 루드이자 강대한 마왕인 토리도였다.
루드는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시며 뒤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루드의 뒤에 시립해 있던 두 사람이 퓨콤뜨리아리트를 공격하던 케이드와 케이지니스의 무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역시 몸이 문제라니까!”
루드는 한탄을 토해 놓으며 퓨콤뜨리아리트 옆으로 이동했다. 루드는 잔뜩 경계하는 퓨콤뜨리아리트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니, 아버지가 여긴 웬일이십니까?”
퓨콤뜨리아리트의 눈이 한껏 커졌다.
“이 기운은? 서, 설마 토리도냐?”
“왜 아니겠습니까? 놀러 나오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원! 그나저나 지혈 안 하십니까? 제가 먹어 버립니다.”
그 말에 퓨콤뜨리아리트가 질겁하며 잘려 나간 손목을 소환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잘려 나간 손목이 붙어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아비의 피를 먹어? 아이고, 내 신세야. 어쩌다가 이런 놈들만 싸질러 놓았단 말이냐.”
토리도는 퓨콤뜨리아리트의 한탄을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의 권속들을 돌아봤다.
자신의 권능을 얻은 티프와 허글러였지만 삼십 마리가 넘는 케이드와 케이지니스의 무리를 맞이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케이드가 연신 분화를 해대고 있으니 한 마리씩 차분히 숫자를 줄여 놓고 있는 것조차 별 의미가 없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들었다.
“정말 쓸모없는 분들이라니까.”
토리도가 손짓을 하자 절반이 넘는 케이드와 케이지니스의 몸이 산산이 찢어지며 피분수를 뿜어냈다. 뿜어져 나온 피가 기화되어 루드에게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퓨콤뜨리아리트가 조금 전 토리도가 했던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아들아,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니까.”
그때 아스르부테의 두 머리가 분노의 피어를 토해 놓았다. 낮고 높은 두 개의 음역이 교차하며 대기 속으로 퍼져 나갔다.
격전을 치르고 있던 티프와 허글러가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마주 싸우던 케이드와 케이지니스들도 함께 얼어붙었다.
또 한 번 터진 피어에 제법 떨어져 있던 기대원들까지 얼어붙었다.
하지만 토리도와 퓨콤뜨리아리트는 귓구멍을 후벼 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이고 시끄러워라. 저놈은 목소리만 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서둘러야 할 거 같은데요. 다른 놈이라도 나타나면 곤란하단 말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소환체가 허약해서 말이죠.”
“맞다. 나도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했거든. 서둘자! 아들아.”
“언제는 힘이 있었다고, 노인네……. 쯧! 우선 저 키메라 놈 입이나 닥치게 하죠.”
퓨콤뜨리아리트는 버릇없는 자식의 말에 화를 낼까 말까 망설이다가 말았다. 버릇없는 자식을 가르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아무리 아스르부테가 강대한 마왕이래도 두 명의 마왕을 맞이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산양의 머리가 경계를 하고 뱀의 머리가 빠져나갈 구멍을 살폈다.
그때 토리도가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강대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어쩌죠?”
“빌어먹을, 그러게 서둘자고 했잖아!”
“막 서둘 참이었잖습니까?”
둘의 대화는 거대한 힘의 파동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삼십 미터 높이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쿠웅!
그라운드 제로, 폭심으로부터 거대한 폭발이 퍼져 나갔다. 자갈이 비산하고 바위가 불타올랐다. 강한 진동에 계곡이 무너질 듯 들썩였다.
허글러와 티프의 몸체가 가랑잎처럼 떠올라 바위틈에 처박혔다. 케이드와 케이지니스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스르부테가 반색했다. 우코르바흐, 이 느림보 놈이 이제야 나타나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격전지 중앙에 떨어져 내린 우코르바흐는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 붉은 눈이 아스르부테의 모습을 훑고 높이 날아오른 퓨콤뜨리아리트와 토리도를 훑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은 어째 하나같이 목소리만 큰 거냐?”
“누가 아니립니까? 저 미련퉁이 자식까지 나타났으니 제 유희는 날 샜습니다. 슬슬 돌아가 볼까요?”
“안 돼! 벨제뷰트 님의 명하셨다. 무조건 싸워야 해!”
“무슨 명요? 아, 몰라요. 전 벨제뷰트랑 엮이기 싫습니다. 아버지의 주인이지 제 주인은 아니잖아요. 알아서 하세요.”
“안 된다니까!”
“무슨 소리세요? 힘도 없는 노인네 하나랑, 이 허약한 소환체의 육신으로 저 무식한 놈을 상대하라고요? 제발, 가능성 있는 얘기를 하세요. 하나는 몰라도 둘은 절대 안 돼요. 처음부터 기습을 했어야지요. 뭔 설득을 한답시고…… 아버지가 다 망쳐 놓은 거라고요.”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마계의 문 높은 상공에는 은밀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기운을 눈치채지 못했다.
조노량은 입을 들썩였다가 다물었다. 분명 루드다. 일 년을 넘게 같은 소조였던 루드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루드가 아스르부테에게 한 방 먹인 것은 분명했다. 수용소 생활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비실거리던 순둥이 루드가 어떻게?
루드가 박쥐날개의 사내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한없이 의문만 쌓여 갔다. 하지만 분명한 건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눈에 봐도 아스르부테의 부상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갈라진 옆구리는 벌써 아물어 붙었지만 그 커다란 몸체는 아직까지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었다. 조노량은 직감적으로 아스르부테가 도주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 순간 아스르부테와 루드 사이에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대지를 찢어발길 듯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을 보자마자 납작 엎드렸다. 후폭풍이 계곡 경사를 타고 진동했다.
고개를 들자마자 제일 먼저 박쥐날개와 루드의 반응을 살폈다.
화들짝 놀라는 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 반응에서 새로 나타난 자가 적임을 알았다.
어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루드가 발을 빼려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루드는 벌써 삼사 미터나 뒤로 물러나 있었다. 박쥐날개가 루드의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전투를 속개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기대했던 일말의 희망도 물거품이 된다. 스스로가 촉발제가 되어야 했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조노량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극한의 경공을 발휘했다.
칠십여 미터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조노량의 기운을 감지한 우코르바흐가 시선을 돌렸다. 감지한 순간 조노량의 신형은 이미 코앞에 들이닥쳤다. 마법이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속도!
극도로 끌어올린 검기가 우코르바흐의 하박을 베고 지나갔다.
쿠쿵!
역시나 하박에서 무거운 폭발이 일어났다. 조노량은 우코르바흐를 그대로 지나쳐 가며 다시 한 번 암경을 발출했다.
쾅!
☆ ☆ ☆
연이은 폭발에 반신 우코르바흐마저 당황했다. 충격 문제가 아니라 의외성이 문제였다.
하지만 전신이라 불릴 정도로 전투를 광적으로 즐기는 우코르바흐였다. 내부에서 일어난 충격에 살짝 비틀거리면서 불길을 토해 놓았다.
우코르바흐의 입에서 출발한 거대한 불줄기가 조노량을 향해 무섭게 쇄도해 들어왔다.
아스르부테와의 접전을 경험해 본 조노량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몸 자체가 불덩이인 우코르바흐와는 접근전도 불가능하다. 거리를 벌린 채 최대한 변칙적인 움직임을 가져 갔다. 다행히 일위진천환영보의 묘리는 쾌보다는 변칙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나아가고 물러남이 자유로웠다. 좌우의 이동에 규칙이 없었다. 유일한 규칙이라면 단 한순간도 한 지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 마치 블링크를 쓰는 듯 번쩍번쩍 움직이는 조노량의 움직임에 번번이 헛손질을 날리게 되자 우코르바흐는 분노했다.
아스르부테가 마의 법으로 마왕의 반열에 올랐다면, 우코르바흐는 마의 법을 버리고 육체와 불의 권능으로만 지금의 위치에 오른 존재다. 그로 인해 반쪽짜리 신이라는 오명을 버리고 온전한 마왕의 이름을 얻었다.
불의 권능과 더불어 육체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그 어떤 마왕도 우코르바흐를 따라올 수 없었다. 신장 십 미터에 이르는 아스르부테도 마의 법을 배제하고 싸운다면 우코르바흐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스르부테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자신조차 꺼리는 우코르바흐에게 싸움을 걸다니? 곧 한 줌 숯덩이가 될 것이 뻔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자신의 안위가 먼저다.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힘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일, 쿨하게 아쉬움을 접었다.
아스르부테의 시선이 근근이 도망 다니고 있는 조노량에게서 벗어나 허공을 향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춤거리고 있는 퓨콤뜨리아리트와 토리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세는 다시 역전됐다. 토리도 놈의 기습만 아니었으면 두 놈을 다 상대했을 터였다.
건방진 자식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부자다. 이번 기회에 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스르부테는 바람의 칼날을 소환했다. 그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둘에게 몰아치듯 쏟아 부었다.
갑자기 시작된 공격에 퓨콤뜨리아리트가 먼저 반응했다. 토리도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블링크를 시도했다. 하지만 소환된 바람의 칼날은 예상보다 많았고, 빨랐다. 미처 블링크를 완성하기도 전에 쉴드가 깨져 나갔다. 가까스로 블링크에 성공을 했지만 그 자리에도 바람의 칼날이 몰아 닥쳤다.
잠깐 타이밍을 놓쳤지만 토리도 역시 강대한 마왕이었다.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지만 토리도 역시 아비인 퓨콤뜨리아리트의 권능을 넘어선 지 오래다. 비록 허약한 소환체에 강림해 있다 해도 아스르부테 따위에게 이렇게 능욕을 당할 존재는 아니었다.
첫 번째 공격에 허벅지를 허용한 토리도도 분노했다. 제대로 한 방 먹이지 않으면 두고두고 비웃음을 살 터였다. 특히 렌토르에게만은 비웃음을 사기 싫었다. 겨우 아스르부테 따위에게 도주했다고 하면 렌토르는 물론 다른 형제들도 비웃을 것이 틀림없다. 소환체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한 방 먹이고 본체로 다시 와서 박살을 내 줄 셈이었다. 비록 워리놈의 분노를 피해 다니는 처지가 될지라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
토리도는 아스르부테의 피를 흡수하며 얻었던 힘을 개방했다. 토리도의 힘이 바람의 칼날들을 뭉개며 아스르부테의 본체를 향해 날아갔다.
아스르부테 또한 분노했다. 지금 닥쳐오는 기운이 자신의 기운과 동일한 기운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빈대 새끼! 감히 내 힘으로 나를 공격해?’
아스르부테의 몸에서 다시 한 번 강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둘의 격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둘의 격돌을 확인한 퓨콤뜨리아리트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아들아, 어차피 소환체이지 않으냐? 잃어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거라. 아비를 원망하지 말고!’
퓨콤뜨리아리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코르바흐를 향했다.
그분은 위태위태하게 우코르바흐의 불꽃을 피해 내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잠깐의 시간을 버는 것뿐,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우코르바흐가 마구 날린 불덩이에 이미 수많은 공간이 용암의 대지로 부글거리고 있었다. 그분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걸치고 있던 가죽옷은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고, 신체 곳곳이 붉고,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우코르바흐는 거침없이 조노량을 압박해 들어갔고, 그 자리마다 용암의 대지가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조노량은 반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코르바흐가 추격해 들어오느라고 거리를 좁히면 그때마다 암경을 난사했다.
타격을 받을 때마다 우코르바흐의 거체가 들썩거리는 것이, 겉으로 표시가 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 것 같았다. 인간의 몸으로 마왕의 신체, 그것도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그 어떤 마왕도 따를 수 없다는 우코르바흐의 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우코르바흐의 이성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마치 파리를 잡으려고 날뛰는 광견처럼 마구잡이로 몰아치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 그라운드 제로가 형성되었고, 네 번째 그라운드 제로가 형성되려는 순간, 우코르바흐의 거체에 거대한 충격이 몰아닥쳤다.
전투 본능으로 똘똘 뭉친 우코르바흐는 그 상황에서도 닥쳐오는 충격을 감지했다. 그라운드 제로를 형성하기 위해 막 뛰어오르려던 몸을 거뜬히 추스르고 기운을 집중했다. 강체화, 피하기는 늦었으니 버텨 내려는 것이다.
거대한 충격이 우코르바흐의 신체를 강타했다.
쿠궁!
살짝 부풀어 오르며 붕괴하려던 우코르바흐의 육체가 단숨에 결속을 강화했다. 우코르바흐의 거체가 두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단지 그뿐이었다. 우코르바흐는 웃고 있었다. 직격당하면 아다만티움도 가루로 붕괴시킬 충격을 받고도 거뜬히 버텨 냈다.
퓨콤뜨리아리트는 경악했다. 기습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권능이 어떠한 방해도 없이 완벽하게 들어갔다.
산도 무너뜨린다는 소리 없는 천둥, 페르미티에스 토나티오(파멸의 벽력)를 정통으로 맞고도 버텨 내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피하거나 막았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쉴드도, 어떠한 방어도 없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런데 겨우 두 발자국을 물러나고 말아?’
얼마나 단단한 육체기에 맨몸뚱이로 페르미티에스 토나티오를 견뎌 낸단 말인가? 뱀파이어의 시조답게 퓨콤뜨리아리트 자신도 마의 법보다는 육체적인 능력에 특화된 존재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선에서였다. 페르미티에스 토나티오 같은 기술을 상대로는 육체적인 능력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퓨콤뜨리아리트는 턱이 떨어져라 입을 벌렸다.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이 먹히지 않는다면 뭘 어쩌란 말인가? 우코르바흐, 그 터무니없는 몸뚱이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어 봤지만 실제로 겪어 보니 어이를 잃어버릴 지경이다.
지글거리며 불꽃을 피워 올리는 우코르바흐의 눈, 그 눈이 조노량에게서 퓨콤뜨리아리트에게로 옮겨갔다.
안 그래도 미꾸라지를 상대하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한 종족의 시조, 퓨콤뜨리아리트만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상대는 아니다. 그의 자식인 렌토르에게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더욱 전의가 타올랐다.
퓨콤뜨리아리트는 안 그래도 한 번쯤 싸워 보고 싶었던 상대였다. 미꾸라지 한 마리야 언제든 잡을 수 있다. 우선 저 흡혈의 왕을 잡아 즐거움을 맛본 후 다시 미꾸라지를 데리고 놀면 된다.
우코르바흐가 진정 원하는 싸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동등한 수준의 상대를 만나 치열하게 싸우고, 철저히 파괴하는 것!
가슴을 타고 저릿하게 올라오는 충격에 새삼 살아 있음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상대다운 상대를 만났다. 그래, 바로 이런 싸움을 원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목표로 했던 변두리 촌놈은 아니었으나 퓨콤뜨리아리트 정도라면 훌륭한 먹잇감이다.
우코르바흐의 전투 본능이 흥분으로 끓어올랐다. 절로 입이 벌어지고 광소가 터져 나왔다.
허공에 떠 있는 퓨콤뜨리아리트를 향해 우코르바흐의 거체가 뛰어올랐다.
놀라운 도약력, 놀라운 속도!
퓨콤뜨리아리트는 벌렸던 입도 채 다물지 못하고 각종 밀어내기 기술을 펼쳐 냈지만 우코르바흐의 육체를 밀어내지 못했다. 얼마나 강하게 뛰어올랐는지 우코르바흐는 허공에 뜬 상태에서도 퓨콤뜨리아리트의 모든 기술을 무용으로 돌렸다. 종내 다시 한 번 블링크를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우코르바흐의 진공을 피해 낸 퓨콤뜨리아리트를 향해 불덩어리가 날아왔다. 차라리 불덩이라면 상대할 만했다. 비록 꺼지지 않는 겁화라지만 물리적인 힘만 상쇄해 내면 된다. 빙(氷)의 정화, 아이스니들을 던져 내고 버스터로 방향을 틀었다. 빙정이 녹는 사이에 버스터에 의해 겁화의 방향이 살짝 틀어졌다. 미세한 각도의 조절,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몸을 빼낼 시간은 충분하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고 있는 우코르바흐를 향해 무력화의 저주를 걸었다. 크게 기대할 바는 아니다. 그 정도 저주가 통할 상대는 아니니까.
생각대로 우코르바흐를 감싸고 타오르던 불꽃이 화륵 치솟았다가 사그라들자, 저주는 봄볕에 눈 녹듯 허무하게 소멸됐다.
이 정도 잡기술로는 우코르바흐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역시 상대할 수 있는 기술은 페르미티에스 토나티오밖에 없다. 하지만 페르미티에스 토나티오는 퓨콤뜨리아리트라고 하더라도 수식을 구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우코르바흐에게선 도저히 그럴 틈을 뽑아낼 수 없었다.
그 순간 대지를 디딘 우코르바흐가 다시 한 번 퓨콤뜨리아리트를 향해 뛰어올랐다. 블링크로 피할 수도 있었지만 똑같은 패턴, 뭔가 변화를 꾀해야 했다. 토리도의 상황으로 볼 때 결국 시간은 저들의 편,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퓨콤뜨리아리트는 우선 숨을 돌리기 위해 안개화를 시도했다. 육체를 구성한 세포들이 미립자 단위로 흩어지며 대기에 녹아들었다. 뱀파이어 일족의 권능 중 하나다. 미립자 크기로 흩어진 조각들은 하나의 의지에 의해 조율된다. 동시에 각자의 의지에 의해 스스로를 보호한다. 한번 펼쳐지면 그 누구도 자신을 찾아낼 수 없다.
그 순간 우코르바흐의 육체가 거세게 불타올랐다. 육체가 뿜어내는 불꽃이 범위를 넓혀 공간을 점유했다. 몸 전체를 감싸고 타오르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코르바흐도 한때는 마의 법을 다뤘다. 하지만 상대를 찾아 마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육화된 화염의 권능을 제외한 모든 법을 버렸다. 강대한 육체를 추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선택은 올발랐다. 마의 법을 넘어서는 강대한 육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마의 법을 다루는 존재들과 끝없이 싸워 왔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자들을 꺾으며 마왕의 반열에까지 올라섰다. 마의 법은 그 역시 오래전에 다뤘던 힘이었기에 이를 상대하는 법도 잘 알았다.
이렇게 육체를 감추는 기술은!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크아앙!”
우코르바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염의 권능을 전사했다. 단 한 번 힘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표피를 타고 흐르던 염화가 사방으로 비산해 나갔다.
☆ ☆ ☆
퓨콤뜨리아리트의 안개화 권능은 육체를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립자 단위로 흩어 놓는 기술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물리적인 힘을 맞이해서는 밀려날 뿐 타격을 받지 않지만 화학적인 타격에는 깨지기 쉬웠다. 그 화학적 변화를 촉발하는 데는 불태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야말로 퓨콤뜨리아리트에게는 최악의 상성인 셈이다.
대기 중에 흩어져 있던 퓨콤뜨리아리트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분사된 화염의 범위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작고, 일부분만의 타격이지만 해당 미립자들은 소멸을 면할 수 없었다. 각각이면서도 하나인 미립자들이다. 동류의 소멸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하나인 미립자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핵을 향해 모여들었다. 강제로 육체가 재구성되고 퓨콤뜨리아리트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퓨콤뜨리아리트의 키가 한 뼘은 줄어든 것 같다. 입가에서는 한 줄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매우 낭패한 표정이었다.
우코르바흐의 미소가 짙어졌다. 작은 성취감, 즐거운 것이다. 자신의 한 수가 정확히 상대의 약점을 찔렀다.
우코르바흐는 전투의 긴장감 속에서만 살아 있음을 느끼고, 희열에 불타올랐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타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극도의 쾌감을 맛보았다. 정신적 만족감이 아니라 육체가 느끼는 쾌감이었다.
그 순간 우코르바흐는 등판을 강타하는 강렬한 폭발을 느꼈다. 육신이 앞쪽으로 덜컥 쏠릴 만큼 강한 폭발이었다. 나타날 존재가 아직도 남았단 말인가? 뭐, 아무래도 좋다. 전투를 위한 이성 외의 다른 이성은 오래전에 날려 버렸다. 자신에게 이 정도 타격을 선물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제든 환영이다.
우코르바흐는 광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새로운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의 미꾸라지가 연신 손짓을 해댄다. 본능으로도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우코르바흐의 육체를 타격했다. 툭툭 터져 나가는 신체가 불꽃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틈을 메워 버린다. 방금 전의 타격처럼 무거운 타격은 아니었지만 잔매가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전의를 불태우기에도 미천한 존재, 우코르바흐의 뇌리에 짜증이라는 생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여유가 있다면 이런 자극도 즐겼겠지만 지금은 자신에 버금가는 강대한 마왕을 상대하는 와중이다. 이런 하찮은 자극에 만족할 수 없었고, 이런 하찮은 존재에게 할애할 시간도 없었다. 즐겁지만 동시에 짜증스러웠다.
그때 또다시 강력한 힘이 우코르바흐의 육체를 덮쳤다. 아까와 동일한 기운, 퓨콤뜨리아리트의 궁극기였다.
연속된 타격에 우코르바흐의 강체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충분치는 않다.
퓨콤뜨리아리트는 두 번째 페르미티에스 토나티오 역시 우코르바흐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궁극기다. 마냥 퍼부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누적된 피해와 봉인의 여파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힘을 회복했더라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빌어먹을 마법사 자식을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스르부테를 상대하고 있는 토리도는 처음의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연신 밀리고 있었다. 그놈의 자존심 덕분에 아직까지 분전을 하고 있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진행된다면 소환체의 소멸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반면 아스르부테는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자신 역시 그분의 합세로 인해 겨우 버티고 있지만 위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육체적 권능은 벌써 깨져 나갔고, 마의 법은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기술도 두 번이나 성공시켰지만 통하지 않았다. 유혹, 마비, 혼돈, 지배……. 떠오르는 잡기술은 많았지만 그런 기술 따위로는 상대가 불가능하다.
암담한 현실이었다. 퓨콤뜨리아리트는 토리도가 제안했던 도주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벨제뷰트가 내린 임무는 완수하지 못했지만 그 대가가 반드시 소멸이라는 근거도 없다. 소멸만 아니라면 그 어떤 징벌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
누가 아는가? 가벼운 징계로 그칠지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계속 버틴다면 소멸은 기정사실이다. 토리도야 소환체 하나만 잃으면 그만이지만 자신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은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뱀파이어 일족은 시조를 잃게 된다. 근본 없는 떨거지들로 전락할 자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멍에쯤은 짊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코르바흐야 나중에 힘을 회복하고 나서 밟아 주기로 하고 작금의 불명예는 감당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퓨콤뜨리아리트가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을 때, 계곡을 포위한 마물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함성 소리와 울부짖음 소리 그리고 흄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전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네 명의 마왕이 전투를 벌이는 현장에 하급의 마물들이 몰려들어?
퓨콤뜨리아리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록 작은 힘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어린 마물인 흄 따위가 강대한 마왕들의 전장으로 몰려들어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정 모르는 신출내기 마물들의 간덩이가 테트리카 산만큼 부었다고 해도 본능이 거부하는 일이다.
황당한 현실을 맞이해 잠시 혼란했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새로운 사실이 상기됐다. 저 하급의 마물들이 날뛸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그들의 지배자가 명했을 때뿐이다.
퓨콤뜨리아리트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그 사실을 왜 간과했단 말인가? 이 빌어먹을 변두리에서 태어난 새로운 마왕, 그 존재에게 두들겨 맞고 마계로 쫓겨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는 지금처럼 힘이 불완전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만 다녔던 놈이기에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사항이었다. 왜 이제 와서 마왕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역에 스스로 나타난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 나왔다. 일반적인 흄과는 기운 자체가 달랐다.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그 기형아 놈이 자신을 쫓던 아스르부테와 우코르바흐를 편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도주도 못하고 소멸할 것이 뻔했다. 반면 아스르부테와 우코르바흐를 공격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한순간에 타결된다. 아니, 아니지. 아스르부테와 우코바르흐가 당한다면 그 다음 목표는 결국 자신이 아닌가?
이 비겁한 욕심쟁이 놈이 힘이 빠진 자신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침침한 마계의 문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스르부테는 물론 우코르바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잠시 호흡을 골랐다.
본능적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지한 것이다. 그렇게 찾아다녀도 꼬리조차 드러내지 않던 이 땅의 지배자, 변두리 촌놈이 나타난 것이다. 우코르바흐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것과 달리, 아스르부테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애써 찾아다니던 상대가 제 발로 나타났으니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현재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다시 추가된 변수가 반갑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이 이렇게 실타래 꼬이듯 꼬여 들어 간단 말인가?
저만치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토리도의 처참한 모습이 아스르부테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마무리인데, 촌놈의 등장 시기가 매우 적절치 않다. 그렇다고 촌놈을 무시하고 마저 마무리 짓기에는 촌놈의 마기가 예상 외로 강대했다.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거대한 먹구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요동치며, 회오리치며 검은 구름이 전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기와 하기의 4대 흄이었다.
계곡을 둘러싼 마물들 간의 전투도 격화일로에 있었다. 산지사방에서 포효와 울부짖음 소리가 정도를 더해 갔다.
조노량 역시 주변의 변화를 인식했다. 검은 구름이 전장을 뒤덮는 것을 보자마자 빠르게 뒤로 몸을 뺐다. 기대원들은 둥그렇게 원진을 그리며 계곡 깊숙이 물러나 몸을 사렸다. 마물들의 전쟁터와 마왕들의 전장 사이의 완충지대였다.
마인들과 거인들 그리고 케이드 등이 계곡 위 능선을 타고 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수적으로 심한 열세였다. 더구나 토착 마물들의 주력군이라고 할 수 있는 어둠의 기사들과 수십의 흄들이 전장에 가세한 터라, 침략군의 군세는 조금씩 밀려 계곡 안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기대원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곳까지 밀리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방이 전쟁터인지라 달리 피할 곳조차 없었다. 그 흔한 동굴 하나 없었기에 사방을 다 방어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애초에 숨어 있던 장소는 이미 치열한 접전지로 변해 버렸다. 이전 플라누라 평원에서의 전투와는 또 다른 양상이었다. 당시에는 그들의 전쟁터 중 일부분을 뚫고 나가는 전투였기에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물들이 전부 계곡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야말로 오래지 않아 전투의 중심지로 변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 시간 검은 구름이 일정 고도 이하로 내려앉고 있었다. 검은 구름은 시위라도 하듯, 천천히 공중을 휘돌며 귀곡성을 발했다.
하나인 듯 뭉쳐서 휘돌던 검은 구름이 크기를 줄이며 숫자를 불려 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치 케이드가 분화를 하듯 분리된 검은 구름들이 각자 회오리치며 각 마왕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위협하듯 비행을 시작했다. 지나간 자리로 뒤늦게 돌풍이 들이닥칠 정도로 빠른 비행이었다.
토리도와 퓨콤뜨리아리트는 급히 날아올라 검은 구름들과 거리를 벌렸다. 두 개의 검은 구름이 뭉클거리며 토리도와 퓨콤뜨리아리트를 위협하는 사이, 검은 구름 중 집채만 한 구름 하나가 아스르부테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아스르부테는 바람의 칼날과 얼음의 창, 마의 벽을 만드는 동시에 이리저리 몸을 피했으나 오래지 않아 검은 구름에 완전히 둘러싸이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때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 아스르부테를 집어삼킨 검은 구름 속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마물들의 울부짖음을 완전히 삼켜 버릴 정도로 엄청난 소리였다. 소리뿐만 아니라 번개가 치듯 요란한 빛이 명멸을 거듭했다. 심지어는 무언가 구름을 뚫고 튀어나오기도 했다.
귀곡성, 벽력이 치는 소리,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비명 소리. 기대원들은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했다. 소리로 인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조노량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고 머리가 지끈지끈 울려왔다.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검은 구름 하나가 아스르부테를 완전히 감싸고 맹렬히 회전하는 모습을 본 우코르바흐가 광소를 터트리며 그 안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두 개의 검은 구름이 그런 우코르바흐를 막아섰다. 우코르바흐는 비웃듯 막아선 검은 구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우코르바흐의 몸을 타고 기세를 올리던 불꽃이 푸른색으로 빛났다. 함께 막아섰던 검은 구름 하나도 곧 몸을 합쳤다. 두 개의 구름이 하나의 구름이 되어 우코르바흐를 가두고 거세게 회전을 시작했다. 검은 구름의 한 귀퉁이가 맹렬히 회전하면 불쑥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리찍듯 꽂히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검은 구름들 불꽃의 팔과 다리가 수시로 검은 구름을 뚫고 튀어나왔다. 검은 구름 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 ☆ ☆
전투의 향방조차 짐작할 수 없는 아스르부테와 다르게 우코르바흐에게 달려든 두 마리 흄은 확연한 비세였다. 토리도와 퓨콤뜨리아리트를 견제하던 나머지 두 마리의 흄이 위협하듯 귀곡성을 토해 놓은 후, 우코르바흐를 감싸고 있는 검은 구름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기의 네 마리 짐승이 모두 우코르바흐에게 달려든 것이다.
바짝 긴장했던 토리도와 퓨콤뜨리아리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흄들의 목표가 침략군의 수장들임을 확인했다.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만일 하기와 그의 흄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면 지금의 몸 상태로는 절대 막아 내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로써 이 땅의 지배자가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짐승이 아니라 나름 사리 판단을 할 줄 안다는 것도 짐작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흑색 구름 안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흄들의 방식으로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무엇 하나 짐작할 수가 없었다.
천지를 집어삼킬 듯 터져 나오는 충돌음과 마의 법이 발현되는 징조가 어우러져 사방으로 충격파를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권능으로도 흑색 연기 속을 꿰뚫어 볼 수 없으니 전투의 향방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계곡 입구에서는 마왕들이, 외곽에서는 그들의 권속들이 가능한 모든 권능을 발현하고 있는 탓에 계곡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심지어는 전장과 제법 거리를 둔 능선들까지 들썩였다. 만약 계곡이 조금이라도 가팔랐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한들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퓨콤뜨리아리트는 인간의 무리를 살폈다. 계곡 안쪽 깊숙이 원진을 구성하고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린 퓨콤뜨리아리트는 기형아 놈들과 마왕의 전투에 집중했다.
아스르부테와 하기로 짐작되는 흄의 전투는 여전히 향방을 알 수 없었지만 우코르바흐를 상대하고 있는 흄들은 조금씩 기세를 잃어 가고 있었다. 이 땅에서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강대한 존재들이지만 아무래도 마왕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퓨콤뜨리아리트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만일 우코르바흐가 조무래기 흄들을 무너뜨리고 아스르부테에게 합류한다면, 기형아 놈이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버텨 내기 어려우리라. 그렇다고 저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 흄들을 돕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흄들이 자신을 우군으로 인정해 줄 리도 없었다. 그야말로 발발 동동 구를 뿐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조노량 역시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며 마왕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한 적과 적일 가능성이 높은 존재들, 절대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던 끔찍한 존재인 흄들까지 전투에 가세했다. 그야말로 난전이며 혼전이었다.
마물들의 전장도 능선에서 계곡 안쪽으로 조금씩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토착 마물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긴 수십의 흄과 어둠의 기사들이 가세했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침략군이 밀리는 모습이었다.
그때 전음 하나가 조노량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소리가 아닌 뇌리를 직접 울리는 전음이었다. 중원에서도 한두 번밖에 접해 보지 못했던 전음을 이 땅에서 접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오라! 내 안으로 와서 네 권능을 발현하라! 아스르부테를 멸하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웅웅거리는 소리에 조노량은 화들짝 놀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검을 휘두를 뻔했다.
전음의 내용상, 또한 방향상 전음을 날리는 대상은 아스르부테를 상대하고 있는 집채만 한 연기 덩어리였다. 조노량은 음산한 연기 덩어리에서 흘러나오는 전음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 연기 안으로 들어오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가당키나 한 일인가?
조노량은 바짝 긴장한 채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전음은 그치지 않았다.
-두려워 말라! 그대의 권능을 내가 보았다. 내 너를 보호할 터이니 어서, 어서 내 안으로 와 권능을 발하라!
-빌어먹을 자식! 들어오라니까! 뭘 망설이고 있는 것이야? 죽고 싶은 거냐?
-크크크, 실망스럽소! 그렇게 무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앉은 자리에서 죽겠단 것이오?
-도와주세요. 그대의 힘이 필요해요. 버텨 내기 힘들어요.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검은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양했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을 담은 목소리도 있었고, 짜증 섞인 중년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다중인격? 하지만 음색 자체가 달랐다. 다중인격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객체가 하나로 묶여 있는 느낌?
조노량의 안색이 조금씩 굳어졌다. 분명한 적 아스르부테 그리고 음침하고 소름 돋는 모습의 흄, 본능적인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흄은 분명 자신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쩌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확률 문제였다.
설마 자신을 도운 존재를 죽이려 들겠는가?
그런 순진한 생각으로 조노량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몸을 날렸다.
갑작스럽게 조노량이 대열을 이탈하자 커트리안이 급히 만류하려 했지만 조노량의 신형은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무엇 하나 확실한 방법이 없었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은 마물들의 혼전을 틈타, 뚫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살아남을지, 아니면 전멸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대로 넋 놓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막 입을 열려던 커트리안은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노리앙이 가세하더라도 뚫는다고 보장할 수 없는 강대한 마물의 무리였다.
아까도 무모하게 달려들더니 이번에도 말없이 뛰쳐나간다. 심대하다고 자부하는 자신마저 피어 한 방에 전의를 상실했었는데, 노리앙은 주눅조차 들지 않는다. 감히 마주 보기도 두려운 마왕들에게 살기를 뿜어대며 달려들고 타격을 가한다.
커트리안은 조노량의 눈에 떠오르던 귀기를 기억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리앙이 빠진 이상 바로 탈출을 지시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넌 어떤 존재인 거냐?’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커트리안은 경악하고 말았다. 달려 나가던 노리앙이 검은 연기 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날린 것이다. 아무리 단단한 마물들도 저 안에 들어간 후 갈기갈기 찢겨 나오곤 했었다. 더구나 노리앙이 달려 들어간 검은 연기는 한눈에 봐도 마왕에게도 뒤지지 않는 가공할 존재였다.
커트리안의 우려와 달리 검은 연기는 진짜 연기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조노량의 진입을 허락했다.
칠흑의 어둠, 조노량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칼날보다 날카롭게 휘돌던 연기는 조노량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다만 고막을 찢어 놓을 것 같은 소음은 더욱 증폭되었다.
조노량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아스르부테의 기운을 찾았다. 한쪽 방향에서 벼락같이 뇌전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가 허공중에 방전되었다.
그 순간 손바닥만 한 연기의 동굴이 뚫리며 조노량의 시야를 터 줬다. 하지만 여전히 빛 한 점 허락하지 않는 칠흑의 어둠 속이다. 연기의 막이 뚫렸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조노량은 본능적으로 이를 눈치챘다. 안력을 돋우자, 보였다.
어둠 속에서 마구 몸부림치며 난동을 부리는 아스르부테의 거체!
아스르부테는 미친 듯이 사방으로 힘을 방출하고 있었다. 온몸에 성한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터지고 찢어져 있었지만, 검은 연기 역시 아스르부테가 힘을 방출할 때마다 찢기고, 폭발하며 타들어 갔다.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 주고 있는 것이다.
검은 연기는 아스르부테의 육신을 찢어 놓고 있었으며, 아스르부테의 권능은 흄의 영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아스르부테가 힘을 쏟아 부으며 연기를 뚫으려 하면 연기 역시 물러나지 않고 아스르부테의 베리어를 찢고, 그 두꺼운 거죽마저 찢어 버렸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그야말로 흉험하기 그지없는 싸움이었다.
조노량은 시간을 들여 암경을 끌어올렸다. 잔잔한 바다처럼 고여 있던 내기가 조노량의 부름을 받고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오른손으로는 오첩도를 굳게 움켜쥐고 왼손에 내기를 극한까지 집중했다.
후웅!
애초에 소리가 없는 암경이다. 설사 소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소음 속에서는 절대 들리지 않았으리라.
소리 없이 공간을 넘은 암경이 막 불의 창을 소환하던 아스르부테의 베리어를 넘어 몸 속 깊숙이 꽂혔다.
우르르!
콰과쾅!
거세게 터져 나오는 폭발!
베리어를 격하고 내부를 직접 타격한 암경이 폭발했다. 악어가죽처럼 우둘투둘한 아스르부테의 거죽 곳곳이 더욱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거죽까지 터져 나오지는 못했지만 내부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산양의 머리와 뱀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며 초록색 피가 수차로 뿜어내듯 터져 나왔다.
단숨에 균형이 무너졌다.
깨어졌다가 복구되기를 반복하며 아스르부테를 보호했던 베리어가 흐릿하게 걷혔다.
검은 연기가 회오리치며 아스르부테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기운이 아스르부테의 상처를 파고들어 틈을 벌렸고, 벌어진 크레바스에 얼음의 알갱이가 생성되어 수복을 방해했다. 순차적 움직임이었으나 그 간극이 너무 짧아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스르부테는 다급히 베리어를 복구해 보았지만 이미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뱀의 머리가 날카롭게 눈을 돌렸다. 정확히 조노량의 시선과 마주쳤다. 이글거리는 분노와 극도의 증오가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연기의 동굴이 메워졌다.
조노량은 자리를 이동했다. 연기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 워낙 넓었던 터라 환영보 대신 경공을 발휘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지만 아스르부테의 위치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조노량은 외곽을 돌며 아스르부테의 우측을 점유했다. 하지만 아스르부테의 권능은 검은 연기를 뚫고 조노량의 위치를 감지할 수 없었다. 하기가 철저히 아스르부테의 이목을 가로막았다.
조노량이 움직임을 멈추고 내기를 끌어올리자 그 자리에 다시 연기의 동굴이 뚫렸다. 터널이 뚫리자 아스르부테도 조노량을 감지했다. 하지만 이미 조노량의 암경은 연기의 동굴을 뚫고 날고 있었다. 소리도 시차도 없이 날아간 암경이 다시 아스르부테의 내부를 격탕시켰다.
아스르부테는 강대한 권능으로 장기에까지 보호를 걸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운이 반응해 일으키는 폭발, 그 보호가 오히려 더 강한 폭발을 야기했다.
장구한 세월을 살아온 아스르부테지만 이런 식의 공격을 받아 본 경험은 없었다. 겉은 멀쩡한데 내부로만 충격이 전달된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급히 수복할 수는 있었다. 키메라답게 찢겨지고 파괴된 조직을 제거하며 동시에 복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마력에도 한계가 있다. 충격이 누적된다면 결국 수복조차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