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생기-2화 (2/142)

2. 포로수용소

조노량은 비몽사몽간에 일어날 시간임을 알았다. 2년 반 동안의 습관이다. 그 습관은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못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조노량의 의식을 돌아오게 했다.

몸살이 처음은 아니다. 이런 곳에서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비교적 건강했던 조노량이지만 감기나 몸살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젯밤에 처음으로 작은 움직임을 느꼈다. 단전 아래에서 휘돌던 미약한 꿈틀거림. 마치 산들바람을 연상시키는 아주 작고 순간적인 움직임이었다. 희망에 찬 조노량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평소와 달리 2시간이나 더 운기를 시도했지만 더 이상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확실히 처음이 아니라는 것은 도움이 된다. 중원에서 처음 기감을 느끼기까지 무려 5년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른 편이었다.

조노량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기감을 느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지독하리만치 성실한 생활태도에 비춰 봤을 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내공 부분의 성취는 느리기 짝이 없었다. 노관장은 그런 조노량의 자질에 대해 무척 아쉽게 생각했다. 내공만 받쳐 준다면 충분히 일류 고수의 반열에 들었으리라는 평이었다. 하지만 조노량은 단지 삼류 무사였을 뿐이다.

조노량은 천천히 의식을 일깨웠다. 짚으로 단단히 엮어 만든 자리가 흠씬 젖어 있었다. 으슬으슬 오한이 들면서 온몸의 뼈마디와 근육들이 아우성을 질러댔다. 몸살이 들어도 단단히 든 모양이다. 정신이 혼몽해졌다.

일순간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전에 없던 일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새벽 운기를 포기하는 것이 맞을 듯싶었다. 어제 느꼈던 기감을 찾기 위해서라도 운기를 하는 것이 옳았지만, 정신까지 혼미해 오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나무판으로 단단히 막아 놓은 막사의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창문의 윤곽을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여명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다. 아무리 촘촘히 막아 놓았더라도 아귀가 잘 맞지 않은 나무판은 두 가지를 통과시켰다. 하나는 날카로운 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얼어붙은 바람이었다.

아직 초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북국의 추위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조노량은 차마 모포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얼마나 졸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곧 기상을 알리는 쇳소리가 울릴 것이다. 삼각형의 녹슨 쇳조각을 쇠몽둥이로 두드리는 소리다. 둔탁한 소리는 적은 울림에 비해 신기하게도 멀리까지 퍼졌다. 수용소 어느 곳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수차례 깡깡거리면 기상을 알리는 소리고, 깡깡깡 세 번 울리면 식사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또 깡깡 두 번 울리면 집합을 알리는 소리다. 수용소의 모든 일정은 이 쇳소리와 함께했다. 사람들은 이를 관습적으로 종소리라고 불렀다. 종이 아닌데도 종소리라는 것이 웃기기는 했지만, 종 대신 치는 것이니 그냥 종소리라고 해도 무방할 듯했다.

이때 옆자리에서 가르릉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조노량과 같은 소조인 루드의 숨소리다. 몸이 약한 루드는 수용소의 강도 높은 노동을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일 년? 그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루드가 수용소에 도착한 것은 불과 반년 전이다. 이십 대의 곱상하고 건강한 젊은이에서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쇠약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가르릉거리는 숨소리는 벌써 폐병쟁이의 그것과 닮아 있다.

깡깡깡깡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기상을 알리는 탁한 쇳소리는 무정하게 울렸다. 보무관의 맑았던 종소리가 그립다.

늙은 당번이 횃불을 들고 막사 문을 밀고 들어왔다.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막사 안을 휘돌다가 모포 밖으로 나와 있는 조노량의 얼굴을 때렸다. 조노량은 입구 반대편 두 번째 다락 침상이다. 막사의 유일한 난로에서 다섯 번째에 위치해 있지만 그다지 온기의 혜택을 받진 못했다. 땔감은 밤새 열을 낼 만큼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서 새벽이면 모든 온기를 빼앗기고 차갑게 식어 버린다.

별로 밝지 않은 횃불 빛이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라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막사의 입구 위쪽으로 나 있는 작은 창문에는 아무런 빛도 새어들어 오지 않았다. 여명이 밝아오려면 아직도 족히 반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조노량은 억지로라도 일어나기 위해 살짝 모포를 들췄다. 차가운 바람이 그 틈 사이로 몰아쳐 들었다. 흥건히 배어 나와 있던 땀이 빠르게 식었다. 근육통이 밀려왔다. 일반적인 근육통이 아니라 몸살에서 기인한 독특한 통증이다. 조노량은 다시 모포를 덮었다. 잠시만이라도 더 온기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기상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포 속에서 뒹구는 일은 조노량으로서는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 ☆ ☆

“어디 아픈가?”

늙다리 우글라다. 올해 예순하나인 우글라는 너무 늙은 나이에 포로로 잡혀온 바람에 일 년도 못 돼서 작업불능자로 분류된 자다. 그의 손에 횃불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우글라가 오늘 기상 당번인 모양이었다. 우글라의 등 뒤로 반장 테무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구먼.”

그냥 무시할까 하다가 억지로 대답을 했다.

“혹시 주머니칼 좀 빌릴 수 있겠는가? 내 자네의 다음 불침번을 대신 서 주겠네.”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우글라로서는 주머니칼을 빌리는 대가로 조노량에게 마땅히 뭔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불침번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조노량의 주머니칼은 짧고 두터운 세모꼴 쇳조각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길이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였고, 갱도 버팀목으로 쓰이는 비연목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달았다. 조잡하고 볼품없는 모양이지만 아주 귀중한 도구이다.

포로들 중에서도 조금 부유한 층은 주머니칼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의 수선을 직접 의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로는 주머니칼을 사용하는 대가로 우글라처럼 조노량의 작은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형태의 거래를 제안해 왔다.

“신발에 구멍이 나서 말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곧 겨울인데, 눈이라도 오기 시작하면 발이 배겨나질 않을 거야.”

우글라는 비굴함이 묻어나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늙다리 우글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굽실거린다. 힘없고 쓸모없는 늙은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주머니칼을 꺼내려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 주머니칼은 조노량의 자리를 들춰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칼은 다락 침상을 떠받치는 발치의 횡목의 옹이 틈 사이에 숨겨져 있다. 조노량은 그 틈을 조금 더 파내고 작업장에서 구한 얇은 나뭇조각을 깎아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워낙 감쪽같아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았다.

조노량은 투덜거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머니칼을 꺼내 건넸다. 오한으로 정수리까지 짜르르 울리는 듯하다.

“내 불침번은 오늘밤 두 시요.”

우글라는 연신 끄덕거리며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손이 느린 그로서는 식사 집합시간까지 그다지 여유가 많지 않을 것이다.

“우글라! 오줌통을 치우시오.”

부반장인 허글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알았네, 알았다구. 내 금세 치움세!”

우글라가 주머니칼을 모포 틈 사이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는 모습이 보였다.

조노량의 인상이 구겨졌다. 누가 가져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는 책임이 자연스럽게 맡겨진 것이다. 조노량은 귀중한 주머니칼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우글라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취침시간에는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 때문에 야간에는 막사 안에 오줌통을 가져다 놓는다.

우글라도 마음이 급한지 서둘러 입구 쪽에 놓인 오줌통으로 다가갔다.

“도대체 누가 또 똥을 싸질러 놓은 거야?”

우글라는 오줌통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투덜거렸다. 대답 대신 곳곳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누군가 오줌통에 큰일을 본 모양이다. 종종 있는 일이다. 우글라는 질색을 하지만 똥도 오줌과 마찬가지로 참을 수 있는 종류의 생리현상이 아니다.

체념한 표정의 우글라가 횃대에 횃불을 걸고 오줌통을 들고 나갔다. 꾸부정한 어깨가 처량해 보였다.

조노량은 우글라의 자리를 힐끔거려 가면서 모포를 정리했다. 일단 일어나고 보니 견딜 만했다. 으슬으슬한 오한과 근육통은 어쩔 수 없지만 혼미했던 정신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얼른 뜨뜻한 국물이라도 한 사발 들이켜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집합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다.

“몸이 불편해 보입니다, 노리앙?”

루드다. 제 몸도 정상이 아니면서 여전히 상냥하다.

“참을 만하네.”

아프다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이! 제우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제우프가 슬그머니 우글라의 침상으로 다가가다가 조노량의 지적을 받고 움찔 물러났다. 제우프는 말상의 삼십 대 사네다. 먹을 것을 위해서라면 비굴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다. 자존심 따위는 애초에 수용소에 가지고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것이 제우프의 살아가는 방식이니 뭐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조노량의 주머니칼은 반 내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물건이라서 반 안에서는 팔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반근짜리 빵을 대여섯 개는 받을 수 있을 만큼 좋은 물건이다. 만약 현재 운반조인 3반이나 7반에 가져간다면 덤으로 가죽까지 얹어, 토끼 반 마리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운반조는 모든 반이 싫어하는 담당이지만 간혹 작은 들짐승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긴 그런 장점도 없다면 누가 그 힘든 운반조를 자처하겠는가?

“일르크가 올 시간이다. 다들 대충 정리하도록!”

부반장의 외침소리가 막사 가득 울렸다. 부반장은 40대의 과묵한 사내다. 옥토르 출신의 거친 전사로서 지금 당장 검투조로 간다고 하더라도 B클래스는 충분하다는 평이다. 거의 이 미터에 가까운 근육질의 몸매는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기를 죽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사내가 과묵하기까지 하니 모두들 부반장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부반장의 말이 떨어지자 아직도 침상에서 뒹굴고 있던 자들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꾸물거리며 침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조노량과 루드 역시 모포를 털어 내었다. 빌어먹을 빈대나 이가 떨어져 나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한쪽 귀퉁이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린 모포가 안쓰럽다. 젖은 모포를 말리다가 태워먹은 자국이다. 중간쯤에 뚫렸다면 어떻게든 기웠겠지만, 덮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자리라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가을을 맞고 말았다.

저녁에라도 2반의 코치노프를 찾아가 봐야겠다. 그가 빼돌린 담요 조각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 정도 작은 구멍쯤은 충분히 기울 수 있겠지?

코치노프는 얼마 전에 죽은 제베의 담요를 재주 좋게 빼돌려서 숨겨 놓고는, 작은 조각으로 잘라 팔고 있었다. 사망자가 나오면 감독관이 그의 개인물품을 수거해 가는 것이 정상인데, 무슨 착오라도 있었는지 담요의 수거를 잊은 것이다. 아니면 미리 감춰두었거나 말이다.

수용소에서는 사소한 물건이라도 버리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담요의 경우는 아주 가치가 크다. 우선 상의든 하의든 선택하여 방한복 한 벌을 재단할 수 있고, 남은 조각은 각종 생필품의 수선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구멍 난 모포를 기우는 것은 기본이요, 떨어진 신발이나 옷을 두껍게 만드는 재료로도 아주 훌륭하다.

조노량은 털어낸 모포를 정성스럽게 개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피혜를 침상 아래로 내렸다. 바닥에 두툼한 나무토막을 댄 거친 가죽신이다. 신발을 말리기 위해 품고 자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요령이다. 난로 위에 끈을 달아 신발을 거꾸로 매달고 말릴 수 있는 특혜는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그날 순번이 된 다른 두 명에게만 한정된다. 막사의 인원이 총 40명임을 감안할 때, 차례가 돌아오려면 각자 이십여 일은 기다려야 한다.

조노량의 시선이 깔개에 머물렀다. 약간 축축한 느낌이다. 밤새 흘린 땀 탓이리라. 몸 상태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지 않음이 틀림없다. 조노량은 나무 베개와 갠 모포를 사물함 위로 가지런히 올리고 깔개를 그 앞쪽으로 기대어 세워 놓았다. 바람이 잘 통하게끔 적당히 간격을 띄워 놓고 비스듬히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밀짚으로 탄탄히 엮어 만든 깔개기 때문에 제법 굳다. 누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넘어질 염려는 없었다.

조노량은 신발을 들고 아래 침상으로 내려와 발을 조심스럽게 신발에 밀어 넣었다. 혹시라도 낡은 가죽이 상할까 염려한 탓이다. 밤사이 신발은 체온으로 적절히 말라 있었다. 어젯밤 꽁꽁 얼어서 부서질 것만 같았던 상태와 비교하면 정말 양호했다.

몸을 일으킨 조노량은 손발을 움직여 밤새 굳었던 몸을 풀었다. 마치 낡은 가구처럼 삐거덕거리는 느낌이다.

“참, 노리앙 이야기 들었어요? 미르코프가 어제 죽었다더군요.”

루드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노량은 사각으로 깔끔이 개인 아래층 모포를 툭툭 치다가 말고 루드를 바라보았다.

미르코프는 얼마 전까지 같은 4반에서 생활했던 동료다. 잘생긴 외모의 청년이었는데, 굶주림과 힘든 노동을 참지 못하고 두 달 전 검투반으로 지원해 갔다.

“아도니아 제3시합에서 당했대요.”

녀석이라면 좀 더 버틸 줄 알았다. 제법 완력도 세고 몸도 날렵했다. 옆 반의 드라스를 때려눕히고 껄껄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 바에야 이곳에서 좀 더 버틸 것이지.”

루드가 가볍게 혀를 찼다. 누렇게 뜬 병약한 얼굴로 남이나 걱정하고 있을 계제가 아닐 텐데…….

덜컹하고 막사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안 봐도 뻔하다. 4반의 감독관인 일르크다. 쭉 째진 뱁새눈을 가진 30대 사내로, 일견 꽤 신경질적인 인상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상당히 곤란한 감독관을 만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여 년간 그를 겪어 오면서 성격과 인상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점을 알았다. 부드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비교적 관대한 성격에 이해심도 많다. 물론 겉으로는 엄격한 척하지만 말이다.

“아직까지 침상에서 꾸물거리는 놈은 없겠지?”

그의 첫마디는 언제나 일정하다. 그러고는 막사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반장을 찾는다.

“테무아, 밤새 별다른 일은 없었소?”

일르크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하지만 유독 반장만은 존중해 준다. 그것이 서로 원만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다.

“감독관님 염려 덕분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테무아가 막사를 둘러보는 감독관의 뒤로 따라붙었다. 마치 조수라도 되는 듯한 자세다. 반장 역시 감독관에 대한 예의에 소홀함이 없다.

“저녁에 작업 배정이 있을 거요. 아마도 다음 달에는 우리 반이 파쇄를 담당하게 될 듯싶소. 하지만 회의 때 반장이 말을 잘 해야 할 거요.”

감독관과 반장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반원들의 얼굴색이 밝아졌다. 수용소의 작업 중 가장 편한 작업이 바로 파쇄다. 단 겨울이 오기 전까지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파쇄는 야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겨울에 파쇄반에 걸리면 오히려 큰 고생을 하게 된다. 겨울에는 차라리 채광을 담당하는 것이 좋다.

아직 초가을인데도 난로를 때야 할 만큼 춥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짐작이 갈 것이다. 때문에 1월 한 달간은 아예 작업이 없다. 수용소에서 가장 편한 시기이자 동시에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작업이 없는 대신 식사량도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어쨌든 초가을에 파쇄를 담당하면 최소한 겨울 동안에는 파쇄를 담당할 필요가 없어진다. 더욱이 반장은 협상의 귀재다. 회의 때 다른 반 반장이나 감독관과의 말싸움에서 절대 질 염려가 없다. 이에 일르크도 작업 배정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는 듯했다.

일르크는 오늘 작업 내역에 대해 반장과 몇 마디 더 주고받고는 막사를 나가 버렸다. 항시 비슷한 이야기여서 그다지 관심 둘 필요가 없는 내용이다.

☆ ☆ ☆

어느새 오줌통을 비우고 돌아온 우글라가 신발을 수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느려서야 식사 시간까지 수선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뭐, 알아서 임시변통이라도 하겠지.

“노리앙.”

테무아가 조노량에게 다가오면서 말을 붙였다. 이곳 사람들은 노량이라는 발음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때문에 조노량의 이름은 조 노리앙이 되었다. 물론 조노량 역시 이곳 발음에 구눌하니 피장파장이었다.

“오늘은 힘을 좀 써야 할 텐데, 몸은 좀 괜찮소?”

테무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조노량을 바라보았다. 눈썰미가 좋은 반장은 이미 조노량의 상태를 눈치챈 모양이다.

“가능하면 오늘 우리가 1등을 해야 하오. 그래야 저녁 회의 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소.”

조노량은 반 내에서도 특급으로 쳐 주는 채광꾼이다. 다른 사람의 두 배는 빠르게 채광을 해낼 수 있다.

힘에 있어서는 이곳 사람들에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한 조노량이지만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우선 바위의 결을 잘 살펴야 한다. 물론 아주 빠르게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바위가 쉽게 부서지도록 적절한 각도의 괭이질이 따라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장비가 필수다. 날카로운 꼭짓점과 적절한 각도로 휘어진 곡괭이가 그것이다. 다행히 조노량에게는 그런 곡괭이가 하나 있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지만 말이다.

세 번째는 지치지 않고 괭이질을 하는 요령이다. 기술이 없는 자들은 단순히 힘으로만 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빠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팔의 힘이 떨어져 오래가지 못한다.

이때 괭이의 무게와 관성을 잘 이해한다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오랜 시간 괭이질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한 탄구의 방향 설정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흙덩이만 잔뜩 캐서야 쓰겠는가? 그래서는 운반조만 고생한다. 따라서 철광석이 뻗어 나간 방향을 정확히 잡고 파 내려가는 눈이 필요하다. 그 방향을 구별하는 눈을 가진 자는 반 내에서 반장과 조노량뿐이다.

반원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마치 바위 속을 꿰뚫어 보는 듯이 느껴질 정도다. 그들이 지시한 방향으로 파 나가다 보면 빠르면 일 미터, 늦어도 삼 미터가 채 안 돼 붉으죽죽한 철광석 광맥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노량은 팔을 휘둘러보았다. 아련한 근육통 증세가 밀려왔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좋아진 듯했다. 역시 활동을 해야 아프지 않은 법이다.

조노량은 테무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견딜 만합니다.”

테무아의 시선이 조노량의 이마에 가 닿았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데다 감지 않아 떡이 진 검은색 머리카락이 기름기와는 다른 습기를 머금고 이마에 가 붙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테무아의 무심한 눈에 짧은 시간 동정이 담겼다가 사라졌다. 설사 죽어 나간다고 해도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 수용소에는 어설픈 수련 신관 하나가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신관은 아무런 신성력도 없음이 밝혀진 지 오래인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 신관에게는 신성력은 물론이고 약조차 없었다. 그나마 막장이라도 무너져 심각한 외상을 입어야 애송이 신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프면 죽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오늘밤은 노리앙이 12번 침상이다.”

각자의 자리는 정해져 있다. 일반 포로들 간에는 대체로 평등하지만 입소한 순서나 그 쓸모에 따라 엄격하게 자리가 배정된다. 자기가 힘이 조금 세다고 함부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반장에게는 자리의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

조노량의 표정이 밝아졌다. 12번 침상이라면 부반장의 바로 옆자리다. 난로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에 기뻐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지금은 행복하기까지 했다. 마치 빵을 한 덩어리 더 배급받았을 때처럼 기뻤다. 오늘은 하루 종일 따뜻한 잠자리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사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테무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노량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한가롭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글라가 아직도 신발을 수선하느라 여념이 없다. 신발의 바닥 부분을 다듬는 것을 보니 거의 마쳐 가는 것 같다.

☆ ☆ ☆

“식사 준비!”

반장의 목소리가 크지 않게 막사 안을 울렸다. 쩌렁쩌렁 울리는 부반장 허글러의 목소리와 상당히 비교된다. 하지만 반장의 나지막한 저음이 더 잘 들리는 듯 느껴진다.

반원들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하나둘 일어서서 문가로 몰려들었다. 반장이 식사 준비를 외친 후 열을 세기 전에 식사 종소리가 울리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알아맞히는 데 아주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너무 빨리 준비시키면 여유시간이 줄어든다. 안 그래도 힘든 수용소 생활인데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쉬어야 한다. 그렇다고 종소리가 울린 후에 집합했다가는 자칫 5반에 뒤질 수도 있다.

조노량은 우글라에게 눈짓을 했다. 빨리 주머니칼을 돌려 달라는 신호다. 우글라는 연신 조노량에게 잠깐만이라는 듯한 입 모양을 해 보이고는 시간을 끌었다. 문가에 모여든 반원들의 입에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섯! 여섯!”

일부러 느리게 세고 있다. 열을 세기 전에 식사 종소리가 울리면 그날은 운이 좋다는 미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늦게 세지는 않는다. 불공정한 것을 아주 싫어하는 이곳 사람들의 특성 탓이다.

조급해진 조노량이 우글라의 침상으로 다가가 주머니칼을 빼앗아 버렸다. 우글라가 무척 아쉽다는 표정을 해 보였지만 대충 수선이 끝난 듯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열, 열하나!”

열이라는 숫자부터 반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오늘은 반장의 예상이 약간 틀렸다. 하지만 스물을 세기 전에 울린다면 괜찮다. 스물이 넘어가면 그날은 운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고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저녁에 작업 배정 회의가 있는 것을 아는 반원들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열일곱, 열여덟!”

조노량은 주머니칼을 건초 매트리스 사이에 서둘러 찔러 넣었다. 제자리에 감춰 두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 매트리스의 움푹 팬 부분에 적절히 찔러 넣었기 때문에 걸리거나 할 염려는 많지 않았다.

이미 부반장은 문 앞에 걸어 놓았던 횃불을 꺼내 들고 있었다.

“열아아아홉!”

깡깡깡

다행히 스물을 넘기지 않고 종소리가 울렸다. 반원들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가장 늦은 조노량과 우글라가 겨우 반원들의 꼬리를 따라잡았다. 너무 서두른 탓에 조노량은 호흡이 가빠지고 두통이 몰려왔다. 다리도 약간 꼬이는 느낌이다.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막사를 나서면서 보니 5반도 줄을 맞춰 막사를 나서고 있었다. 5반은 4반과 막사가 마주보고 있다. 따라서 식당까지의 거리도 거의 비슷해 두 반은 항상 경쟁 상태에 놓여 있다.

반장 덕에 주로 4반이 이기는 편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오늘도 4반이 대여섯 발자국 앞서 있는 상태다. 동쪽 하늘이 조금쯤 밝아진 듯도 하다.

두 반이 경쟁하는 이유는 단 하나,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식사를 하는 것과 식사 후 약간의 휴식시간을 더 즐기기 위해서다. 식당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검투반이나 1조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4반 막사로부터 이십여 미터 앞서 있는 2, 3반 막사를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반대로 7, 8, 9, 10반 막사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 식사 경쟁에서 항상 꼴찌를 면키 어렵다. 그들은 일찍 나와 봐야 식사 줄의 맨 끝에 서서 추위에 떨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식사 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오는 것을 택한다.

따라서 어정쩡하게 중간 위치에 놓인 4반과 5반은 노상 자기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5반이 속도를 올린다. 하지만 곧 경비병의 지적이 들어온다.

“뛰지 말란 말이다. 식사 전에 한 바퀴 돌고 싶은가?”

수용소 내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뛰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왜 그런 규칙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엄격한 규칙 중 하나다.

조노량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앞서가고 있으니 4반이 먼저 도착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4반 줄의 속도도 만족스러웠다. 뛰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속도로 걷고 있다. 이 정도면 절대 5반에게 추월당할 염려는 없다. 다른 반원들은 문제가 없는데, 정작 호흡이 가빠지는 자신이 문제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인 것 같다. 머리도 어찔어찔 거리는 것이 자꾸 다리가 꼬였다.

순간 4반 줄과 나란히 달려가던 5반 줄에서 다리 하나가 넘어와 조노량의 정강이를 슬쩍 걷어찼다. 평소였다면 충분히 피했을 테지만 몸 상태가 엉망이던 조노량은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나뒹굴고 만 것이다.

조노량이 갑작스럽게 덮치는 바람에 조노량의 앞에 걷고 있던 루드 역시 같이 나뒹굴었고, 조노량의 발꿈치만 바라보며 걷고 있던 우글라도 그 위로 엎어졌다.

조노량의 날카로운 시선이 발을 건 자의 얼굴로 향했다. 벌써 서너 걸음 앞서가고 있던 그 자는 조노량을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비열한 크리푸인 하이오지다. 틀림없이 지난 번 일로 앙심을 품은 것이다.

며칠 전 조노량이 갱도에 숨겨둔 상급의 곡괭이를 훔치려다가 조노량에게 정통으로 걸려서 격투를 벌인 적이 있는 놈이다. 물론 경비병에게 발각되어 심각한 사태까지 벌어지지는 않았다. 지금 다시 저놈과 붙어 볼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때가 좋지 못하다.

“4반! 대열을 정비해라!”

후미의 사건으로 4반 줄이 흐트러졌다. 식사 시간마다 자주 말썽이 일어나는 4반과 5반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던 경비병들이 이를 묵과할 리가 없다.

4반 선두가 걸음을 멈췄다. 넘어졌던 세 명이 서둘러 일어났지만 이미 5반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부반장 허글러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어쩌면 오늘밤 린치가 가해질지도 모른다. 반장과 달리 부반장은 관대하지 않다. 힘에 의해 부반장이 된 만큼 다른 반원들의 행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소위 군기를 잡는 행위다.

다른 반원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눈치를 채고 혀를 끌끌 찼다. 하이오지를 욕하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항상 말썽을 피우는 녀석이라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줄을 정렬한 4반이 천천히 출발했다. 어차피 5반보다는 늦었고, 후미의 반이 따라오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서둘 것도 없었다.

☆ ☆ ☆

천천히 식당에 도착해 보니 이미 3반 배식이 끝나고 5반이 줄지어 다음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의 손에는 가지각색의 식기가 들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하이오지의 식기가 눈에 익었다. 그는 단단한 박달나무를 아주 얇게 깎아 만든 최상품 식기로 자신의 모자를 두드리며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조노량의 시선이 루드를 향했다.

“초란초가 조금 필요했었거든요. 식기가 하나 더 있기도 하고…….”

초란초는 기침병에 좋은 약초의 일종으로, 중원의 앵란과 비슷한 식물이다. 여름이면 들판에 자생하는 식물인데, 잘 따서 말렸다가 더운물에 가루를 내어 섞어 먹으면 기침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지만 이를 말아서 피우거나 정제해 섭취를 하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생장조건이 까다로워서인지 자주 발견할 수는 없는 식물이다. 아주 귀하진 않더라도 흔하지도 않은 식물인 것이다.

그때 허글러가 하이오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허글러는 5반원이 가득한 곳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하이오지, 한 번만 더 4반을 건드린다면 죽여 버리겠다.”

허글러의 눈빛이 심상치 않자 지켜보던 5반 부반장인 크리들이 끼어들었다.

“허글러, 너무 심하지 않나? 하이오지가 비열한 짓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 자네의 행동은 5반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네.”

허글러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크리들을 쳐다보았다.

“흥, 자기 반원조차 단속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놓고 무시하는 허글러의 언사에 크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크리들 역시 힘으로 5반의 부반장이 된 자다. 대체로 부반장이 그 반의 무력을 대변한다. 크리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전투를 알리는 그만의 표식이다. 모욕에 대한 대가는 전투뿐이다.

허글러는 그런 크리들이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이 비웃음을 머금고 허리에 손을 척하니 올려놓았다. 할 테면 해 보라는 방자한 태도다.

일촉즉발의 순간, 테무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허글러, 그만 돌아오시오.”

허글러가 움찔하더니 순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한마디는 잊지 않았다.

“크리들, 하이오지를 단속하지 않으면 언젠가 조용한 곳에서 나를 보게 될 거다.”

쉬익

이빨 틈새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돌아선 허글러의 뒤통수를 향해 크리들의 주먹이 날아 왔다.

그야말로 앗, 하는 순간이었다. 누구도 크리들이 비겁하게 뒤에서 기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시 명예로운 북국의 전사가 아니던가? 더구나 한 개 반의 부반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고 있는 자였다.

크리들도 수용소 내에서 정평이 나 있는 주먹이다. 특히 민첩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유명했다. 그런 크리들이 뒤에서 날린 주먹이니 아무리 허글러라고 해도 피하고 어쩌고 할 틈이 없었다.

뻑!

크리들의 주먹은 허글러의 왼쪽 귀 뒤쪽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4반과 5반을 제외한 다른 반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그 소리에 비로소 식사를 중단하고 허글러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큰 소리였다.

누구나 허글러가 바닥에 쓰러지는 상황을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허글러는 그 자리에서 잠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서서히 크리들을 향해 돌아섰다. 오히려 크리들이 주먹을 감싸 쥐고 일그러진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다시 이빨 틈새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크리들의 제2타가 날아들었다. 이 상황에서 기가 죽을 수는 없는 법이다. 기세에서 눌리면 그걸로 끝이다. 크리들의 2타도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돌아선 허글러의 오른쪽 안면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던 크리들의 오른손이 어이없이 허글러의 왼손에 잡혀버렸다.

허글러가 크리들의 오른손을 놓지 않은 상태로 몸을 한 바퀴 돌리자, 허글러의 오른쪽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크리들의 면상에 가 닿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크리들이 무너져 내렸다. 허글러는 그래도 크리들의 오른손을 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크리들은 팽이 끈이 풀리듯 허글러의 주변으로 한 바퀴 돌면서 휘둘러졌다. 한 바퀴 돈 크리들의 몸체가 허글러의 전면으로 떨어지자 허글러는 육중한 발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크리들의 면상을 밟아 버리려는 심산으로 보였다. 그때 누군가의 손길이 다가와 허글러의 어깨를 가볍게 당겼다.

“허글러!”

반장 테무아의 목소리다.

잠시 갈등하던 허글러가 들었던 발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5반 반장도 앞으로 나섰다. 우라도라는 사십 대의 남자다. 둥글둥글한 상인풍의 인상이지만 한 개 반의 반장을 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범상한 자는 아니다.

“크리들이 완전히 깨져버렸군. 티프, 크리들 좀 수습하게.”

우라도의 말에 젊고 호리호리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비교적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짙고 푸른 눈에서는 음침함이 배어 나왔다.

“이봐, 크리들, 그만 일어나라고. 부끄럽지도 않나?”

티프라고 불리는 자가 크리들의 옆구리를 발길로 툭툭 건드렸다.

그 모습에 허글러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일개 반원이 부반장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크리들이 꾸무럭거리며 일어나려 하자 티프라는 젊은이가 이번에는 그의 앞가슴 덧옷을 멱살 잡듯 쥐며 일으켜 세웠다.

“크리들, 크리들 이게 웬 망신인가? 앞으로 몸조심해야겠어.”

티프는 다정스럽게 크리들의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주며 비아냥거렸다.

크리들은 증오에 찬 시선을 들어 티프를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허글러를 향해야 정상이지만 크리들은 허글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티프를 쏘아 보고 있었다.

잠시 티프를 노려보던 크리들이 이빨을 악물고 5반원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몇몇 반원들이 크리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 ☆ ☆

“도대체 무슨 짓들이냐!”

그제야 헐레벌떡 뛰어온 감독관과 경비병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제3반의 감독관인 브리디우스가 오늘의 식당 담당인 모양이다.

“허글러! 크리들! 부반장이 무슨 벼슬인 줄 아나? 이러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성싶으냐?”

브리디우스는 수용소 내에서도 깐깐하기로 소문난 자였다. 감독관은 보통 전사 출신이 아닌 행정관 출신이 많다. 전사 출신이라면 정당하다 싶은 싸움에 대해서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이 행정관 출신의 브리디우스는 난잡한 싸움질을 아주 혐오했다.

“둘 다 오늘 작업 끝나고부터 사흘간 독방에 처한다. 깊이 반성하고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말에 허글러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대수롭지 않은 주먹질 몇 번에 삼 일 독방이라면 너무 과한 처사다. 하지만 이 브리디우스라는 작자는 절대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경우가 없으니 항의해 봐야 별로 득 될 것이 없다.

브리디우스는 목판을 꺼내 무언가를 적고서는 두 반장을 불러 세우고 한바탕 훈시를 늘어놓았다. 이미 3반까지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지만 사건을 구경하느라고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반들은 어서어서 자리를 내주지 않고 뭣들 하는 거냐?”

대충 훈시를 마친 브리디우스가 이번에는 식사를 끝내고도 자리를 뭉개고 있던 자들을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벌써 7반이 오지 않는가? 서둘러 식사를 끝내도록!”

브리디우스는 돌아서며 손을 어깨 위로 휘두르고 반장들에게 지시를 했다. 마치 귀찮은 파리라도 쫓는 듯한 폼이다.

5반 반장인 우라도가 먼저 반원들에게 배식을 명령했다. 그제야 5반원들이 배식구로 몰려들었다. 국그릇을 주걱으로 휘저으며 상황을 구경하던 특수작업조 배식반원들도 다시 배식을 시작했다.

식당이라고 해 봤자 무슨 그럴듯한 건물이 아니다. 넓은 공터에 그저 하늘만 가리는 천막을 치고 목재 테이블 열댓 개를 줄지어 세워 놓았을 뿐이다. 테이블은 의자와 탁자가 일체형으로 되어 네 명씩 빡빡하게 조여 앉으면 여덟 명까지 앉을 수 있다.

의자에 앉아 식사할 수 있는 인원은 한 번에 두 개 반 정도다. 그나마 검투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한 개 반은 걸터앉을 바위라도 찾는 것이 최선이다. 검투반은 아주 느리게 식사를 할뿐더러 한쪽 의자에 3명 이상 앉는 법이 없다. 더구나 인원수도 다른 반보다 많다.

검투반이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자, 4반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배식을 받은 5반이 빈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4반은 어쩔 수 없이 맨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해야 한다.

5반의 배식이 끝나자 4반도 배식을 시작했다. 조노량은 품에서 낡은 나무 국그릇과 구리 수저를 꺼내 들었다. 수저와 그릇은 수용소 내에서 가장 귀중한 도구다. 조노량은 특히 이 구리 수저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일 년 전에 조노량이 직접 진흙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어렵게 구한 구리를 부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반장 테무아도 같이 작업에 참여했다. 조노량이 구한 구리의 양도 양이지만, 수저 두 개분의 구리를 녹일 만한 화력을 얻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었다.

다른 자들은 대부분 나무를 깎아 만든 수저를 사용한다. 나무 수저는 아무래도 부피가 클뿐더러 자루가 부러지기 쉽다. 수용소에서 벌써 15년이나 생활했다는 고참 라솝마저도 자루가 부러진 짤막한 나무 수저를 사용하고 있다. 나무 수저가 불편한 또 한 가지는 그 두께로 인해 그릇의 모서리 부분에 고인 스프를 긁어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부반장이 배식을 받기 시작했다. 커다란 부반장의 국그릇이 가득 찰 만큼 스프가 배식되었다. 아마도 독방이 예약된 부반장에게 반장이 양보를 한 모양이다. 하긴 평소에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원래 반장에게는 항상 2인분의 식사가 제공된다. 하지만 식사량이 많지 않은 반장은 곧잘 부반장에게 자신의 식사를 양보하곤 했다.

특히 작업 평가에서 일등을 한 날이면 거의 100% 부반장에게 양보했다. 그날은 무려 3인분에 가까운 식사가 배정되기 때문이다. 간혹 가다가 반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올 경우도 있다. 조노량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2인분의 식사를 한다. 그런 날이면 정말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해진다.

부반장에 이어 조노량이 배식을 받았다. 뜨끈한 양배추 국이다. 부반장의 그릇을 채운 직후여서 그런지, 특별작업조인 배식반원이 관성적으로 국그릇의 바닥을 휘저어서 조노량의 국그릇을 채웠다. 물론 양은 부반장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바닥을 휘저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무거운 건더기가 떠올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한 손에 국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거칠고 딱딱한 검은색 빵을 배식 받았다. 가만히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무게를 가늠해 봤다. 정량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200그램에 근사하는 무게였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그릇의 절반밖에 차지 않은 양이지만 행여나 흘릴세라 조심스럽게 국그릇을 보호하며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역시 빈 의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때 조노량의 눈에 식당 천막의 기둥을 고정하기 위해 받쳐 놓은 돌덩이가 눈에 띄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그나마 차지하기 어려운 자리지만 오늘은 역시 운이 좋은 날이다.

조노량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쳤다. 하지만 국을 흘릴 염려가 있으므로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앞서가는 부반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걱정은 없다. 비록 초라한 식당일지라도 특별석은 존재한다. 천막의 동쪽 끝에 위치한 탁자 하나가 반장과 부반장만 앉을 수 있는 특별석이다.

그때 꾸물거리며 식사를 하던 검투반 중에 한 사람이 부반장에게 말을 걸었다.

“감동적인 솜씨더군. 아직도 검투반으로 올 생각이 없나?”

부반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케로, 여전히 남의 일에 관심이 많군.”

“그야 자네 재능이 아까워서지.”

“난 관심 없다. 자네 몸이나 조심하도록! 검투반원은 결국 시한부 인생일 뿐이니까.”

“천하의 허글러가 이 몸을 걱정해 주는 건가? 감동적이군.”

“흥!”

부반장 정도라면 검투반에 들어가도 쉽게 목숨을 앗길 리 없다. 그만큼 강력한 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반장은 검투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뭐, 반장이나 부반장 지위에 있다면 굳이 위험한 검투반에 가지 않더라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긴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 ☆ ☆

어느새 동이 트고 날이 완연히 밝았다. 조노량이 앉은 빈 기둥이 마침 동쪽 편에 있어서 따뜻한 햇살이 비치었다. 아무리 미약한 새벽 햇살이라지만 응달진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조노량은 조심스럽게 국그릇을 저어 봤다. 예상대로 건더기가 많이 느껴졌다. 수저를 떠 올리자 푹 삶아진 양배추가 제법 되었고, 수저를 가득 채울 만큼 큼직한 감자도 한 덩이 건져졌다. 조노량은 우선 국그릇에 입을 대고 뜨끈한 국물을 조금 들이켰다.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배 속을 짜르르 울리며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 느낌과 함께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며 행복함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수저를 이용해 양배추 조각을 건져 올렸다. 그 조각을 입 안 가득 물고 먼저 그 국물을 빨아 먹었다. 삶은 양배추 특유의 들큰한 맛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조심스럽게 양배추를 씹기 시작했다. 양배추에 배어 있던 진한 국물이 녹아 나왔다. 조노량은 소화가 잘 되도록 여러 번 씹은 후 천천히 삼켰다.

“노리앙, 좋은 자리를 잡았군요.”

루드가 국그릇을 들고 조노량의 옆에 와 앉았다. 조노량은 식사를 방해 받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루드도 조노량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루드에게도 식사 시간은 아주 소중하다. 노동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배급량이어서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잘 먹어둬야 한다.

조노량은 검은 빵을 입으로 뜯어서 꼭꼭 씹기 시작했다. 무척 딱딱한 빵이다. 만두와 같은 밀가루로 만든 것임에도 그 맛은 천지 차이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우선 느낌부터 다르다. 만두는 부드럽고 쫄깃한 맛을 지니고 있는 데 반해, 이 빵이라는 것은 거칠고 딱딱하며 텁텁하다. 물론 꼭꼭 씹으면 고소한 맛은 일품이다. 그래도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어서 좀 아쉽다. 음식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뭔가가 빠진 것 같다.

잘게 다진 고기를 야채와 잘 버무려 속을 채워 넣은 포자나 주로 볶은 고기와 적절히 간을 한 친채볶음과 함께 먹는 만두가 완성된 음식인 것이다. 만두는 비록 다른 재료 없이 밀가루만 크게 부풀려 놓았지만 친채볶음 등의 요리와 함께 먹을 때의 그 부드러운 맛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조노량은 고개를 젓고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뜨끈한 국물을 좀 더 들이켜고 싶었지만 식사는 천천히 해야 한다. 그래야 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조노량은 소가 되새김질하듯 천천히 삼켰다. 이 감자 조각은 무척 운이 좋은 셈이다. 그냥 양배추 국을 먹었을 때와 감자 조각을 함께 먹었을 때의 든든함은 천양지차다. 조노량은 곡분 덩어리인 감자 조각이 입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반복해 씹었다. 더 이상 씹을 것이 없을 때조차도 혀로 그 가루를 돌려가며 몇 번이고 더 씹고서야 삼켰다.

그렇게 천천히 삼켰음에도 불구하고 식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워낙에 양이 적은 것이다. 뜨끈한 국물을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어쩔 수 없다. 거의 정량에 가까운 빵과 건더기가 듬뿍 든 국을 먹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시원치 않은 몸 상태도 많이 좋아진 듯했다. 뜨거운 국물을 마셨더니 오한도 한결 가셨다. 루드도 식사를 마친 듯 몸을 일으켰다.

돌아가는 길에 허글러에게 감사를 표해야겠다. 자신 때문에 독방형까지 받지 않았는가. 조노량은 허글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글러도 이미 식사를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2인분의 식사를 벌써 마치다니 정말 음식을 음미할 줄 모르는 자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국그릇에서는 남은 국물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아깝기 그지없다.

허글러는 허리를 굽혀 잡풀을 한 움큼 뜯어내더니 식기를 쓱쓱 두어 번 문질렀다. 조노량의 시선을 느꼈는지 허글러가 무심한 눈길로 조노량을 바라보았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허글러는 반장과 달리 대체로 모든 이에게 반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반원들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반장이 오히려 특이한 편이다.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합니다.”

허글러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너 때문이 아니다.”

잠시 쭈뼛거리던 조노량은 줄곧 궁금해했던 질문을 꺼냈다.

“허글러, 어째서 검투반에 지원하지 않는 거요? 당신 정도라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오? 독방에 가지 않아도 되고…….”

허글러의 무뚝뚝한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광대라도 되고 싶은 건가?”

광대라……. 하긴 남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허글러의 시선이 루드에게 옮겨 갔다.

“북국의 전사는 기예를 팔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무슨 다짐이라도 하듯 뚝뚝 끊어져서 들렸다. 아마도 전사의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자기 다짐이리라.

“그렇죠. 우린 모두 북국의 전사니까 말이죠.”

조노량은 루드를 바라보았다. 같은 소조로서, 자주 대화를 나누던 루드인지라 말투만으로도 그의 기분을 대충은 눈치챌 수 있는 조노량이다. 아니, 루드가 오고 나서야 비로소 조노량은 이곳의 언어를 모두 배울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언어에 있어서는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어조는 어쩐지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뭔지 모를 기묘한 여운이 담겨 있다. 약간은 비웃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는가?”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뉘앙스다.

“모두들 알고는 있죠.”

루드의 어투에 익숙한 조노량은 그의 목소리가 약간 꼬여 있음을 눈치챘다.

조노량은 루드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당장 살아남기도 힘든 마당에 무슨 놈의 자존심인가? 본인이야 당당하게 버틴다고 하지만 막상 루드만 해도 병이 골수에 깊었다.

그러나 허글러가 눈치챌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정중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자부심을 가져야겠지.”

허글러는 이 말과 함께 휭 하니 몸을 돌려 걸어가 버렸다. 앞서가는 반장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식당에 올 때는 반드시 반별로 정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식사가 끝난 후에는 개별적으로 돌아가도 된다. 단, 반드시 2인으로 이루어진 소조 단위로 움직여야 한다. 수용소 내에서는 개별 행동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변소를 갈 때조차 적용된다. 탈출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같은 소조원이 5분 이상 보이지 않으면 즉각 감독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만약 같은 소조원이 탈출을 시도한다면 남은 소조원도 같이 처형을 당한다. 그 사항은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반장은 반장과 같은 소조인 것이다.

루드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허글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루드?”

루드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노리앙, 허글러 님은 참 대단한 분이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하다. 그러나 대답을 원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조노량의 입에서는 혼잣말인지 대답인지 모를 말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진짜 무사지.”

☆ ☆ ☆

얼어붙은 새벽 고추바람이 식당 앞 공터의 갈색 먼지를 한 바퀴 휘감아 막사 방향으로 몰아갔다. 아직도 식사에 열중인 후미 반원들이 짧은 옷깃을 여미고 바람을 등졌다.

특별작업조원 두엇이 새로운 국통을 들고 나오는 것이 보인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이 절로 군침이 돈다. 시선을 돌렸다.

나란히 서 있는 막사들이 보인다. 맨 끝에 보이는 8, 9반 막사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덕에 비교적 밝은 빛을 띠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막사들은 시꺼멓게 썩은 빛이다.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얼룩져 보인다.

조노량과 루드는 막사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수용소에는 이렇다 할 만한 담이 없다. 그저 허약하고 키 작은 목책 몇 개만이 포로들의 자유를 구속한다. 마치 탈출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로? 아무리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황야뿐이다. 가장 가까운 아도니아 연합의 도시 라지도니아시만 해도 동쪽으로 일주일을 달려야 한다. 탈출을 시도하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목책 위로 그의 목이 걸리게 된다. 몸은 갈리온의 날카로운 이빨에 갈가리 찢겨져 황야에 버려진 채로 말이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멀리로 웅장한 목조 건물이 보인다. 수용소를 둘러싼 담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이 건물이 바로 크로아지크 수용소가 자랑하는 검투장이다.

물을 마시지 않는 나무.

황야의 거의 유일한 수종인 비연목. 엔젤나이트 아클로의 혼이 담겨져 있다는 바로 그 나무로 웅장하게 건축된 구조물이다. 아마도 크로아지크 황야에서 가장 큰 건축물일 것이다.

검투장 주변으로 경비가 삼엄하다. 평소에도 삼엄한 편이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 것 같다. 평소에 보지 못한 복장의 병력도 눈에 띈다. 그 사이에는 제법 거창한 모양의 마차도 두어 대 보인다. 전형적인 아도니아 귀족의 마차다. 예비시합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걸어서 막사에 돌아오니 대략 삼 분 정도가 소요됐다. 거리상으로는 백여 미터쯤 될까.

벌써 대부분의 인원이 막사에 돌아와 있었다. 고된 노역이 시작되는 끼니인 만큼, 하루 세 끼 중 아침이 가장 풍성하다. 그래도 굶주림을 참고 잠든 포로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이다. 그야말로 힘을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인 것이다.

조노량의 시선이 젝을 향했다. 무언가 열심히 읽고 있었다. 책 읽기를 경시하는 다른 자들과 달리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 귀퉁이가 낡아서 너덜거리는 책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조노량으로서는 그것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없다. 물론 관심도 없다.

젝이 마법사 지망생이라고 했던 루드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 하니 마법사가 되기엔 애초에 그른 자였다. 하긴 마법사가 되었다면 이런 곳에 있을 리 없겠지.

그는 거의 허글러에 버금갈 정도로 장신이다. 하지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다. 그 탓에 키가 더욱 커 보인다.

그의 체형이 대다수 포로들의 모습이다.

키가 얼마가 되었든 포로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없다. 있다면 허글러 정도다. 남들보다 조금 더 먹는다곤 하지만 기름기라고는 없는 건조한 음식을 먹고서, 저 근육질의 덩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다.

옹색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깁고 있는 허글러의 모습이 보인다. 전사 운운하던 아까의 모습과 겹쳐져 조금 우스꽝스럽다.

이미 동이 텄음에도 불구하고 막사 안은 여전히 어두침침하다. 하나밖에 없는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막사 전체를 밝히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막사 안에서는 다양한 냄새가 났다. 짚이 썩어 가는 구수한 냄새, 수십 수백 번 땀으로 젖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한 사십 켤레의 신발에서 풍겨 나오는 고린내. 밤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오줌통 덕에 밴 지린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몸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노린내. 이미 익숙한 냄새였지만 불쾌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업 집합까지는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다. 더구나 오늘은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하이오지와 자신의 일 때문에 지체되었고, 허글러 때문에 지체되었고, 아니 허글러의 일도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으니 역시 자신 때문이다. 그리고 정량에 가까운 빵과 감자 한 알 때문에 지체되었다.

식후 여유시간을 이미 날려 버린 터라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다.

조노량은 우선 세 겹으로 껴 신었던 양말 중 가장 두꺼운 양모 양말을 벗었다. 이건 아주 귀하다. 거친 작업 중에 달리기에는 아깝다. 더 추워지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다. 따뜻한 잠자리와 혹한의 겨울을 대비해 아껴 두어야 한다. 막장에서 작업이 시작되면 땀이 날 테니 괜찮을 거다. 조노량은 발을 굴러 보았다. 따뜻한 식사 덕분인지 오한도 많이 가셨다.

다시 신발을 신고 끈을 탄탄히 조였다. 이제 이 끈은 저녁에 막사로 돌아와서나 풀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겹의 상의를 고르게 편 후, 두 겹으로 껴입은 바지의 안과 밖으로 잘 정리해 넣었다. 그리고 허리끈을 이용해 단단히 묶었다.

복장은 대체로 시커먼 색이다. 원래부터 검은색은 아니었지만 본래의 색을 알아보기는 이미 불가능했다.

모자를 챙겨 들었다. 주머니칼과 양말에 이은 1급 보물이다. 양말과 마찬가지로 양모를 이용해 촘촘히 짰다. 이 모자를 귀까지 덮어 쓰면 한겨울에도 끄떡없다. 마지막으로 주머니를 눌러서 장갑을 확인했다. 리넨(마)으로 만든 장갑이어서 가장 걱정스러웠다. 이미 낡을 대로 낡아서 나달거리는 곳이 여러 군데다. 왼손 중지와 약지에는 벌써 구멍이 뚫렸다. 모포보다 더 급한 것이 장갑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새 것을 장만해야 할 텐데.

깡깡

아니나 다를까 의복을 챙기자마자 집합 신호가 울렸다. 다들 조금은 꾸물거리는 모습이다. 고된 노동의 시작인지라 식사 집합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 ☆ ☆

식당 앞 널찍한 공터는 검투반을 제외한 천오백여 명의 포로와 포로 관리를 맡고 있는 아도니아 제3군단 소속 2개 기대 삼백여 명이 들어서고도 여유가 많았다. 황야 한가운데 세워진 수용소다 보니 남아도는 게 땅이다. 아낄 필요가 없었으리라.

새벽 추위에 다들 어깨를 움츠리고 떨고 있다. 아직은 정렬이라기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준에 가깝다. 곧 수용소의 부소장이 나올 것이다.

부소장의 호통소리가 울려야 비로소 정렬이 된다. 경비병들도 미리미리 정렬을 시킬 마음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저들도 춥기는 매한가지다.

서로 밀착하여 발이라도 굴러 줘야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조노량은 관사 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요새를 연상시키는 단단한 모습이다. 관사는 수용소 내에 건설된 단 두 개뿐인 석조 건물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오늘밤 부반장이 들어가야 할 감옥이다.

호위병 두 명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관사를 나서는 부소장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포로들만큼이나 깡마른 사십 대의 작은 사내다. 그다지 위엄이 서 보이는 체구는 아니다. 날렵하게 빠진 하관과 두 개의 앞니가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 전체적으로는 쥐를 연상시킨다.

들리는 소문처럼 상당한 경지에 오른 기사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건 목소리와 하는 행동을 보아도 그렇다.

여성의 그것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목소리 톤과 경박해 보이는 발걸음, 행동거지, 신경질적인 성격까지……. 정말이지 실력 있는 기사로 보아 줄 수가 없다. 오히려 반장들 같은 행정관 출신이라면 잘 어울릴 것 같다.

부소장 로뜨 쿠아클라는 잘 닦인 투구를 왼쪽 옆구리에 낀 채, 한껏 멋을 부린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있다.

부소장이 보무도 당당하게 연단으로 올라섰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저 플레이트 메일은 정말 전투용이 맞기는 한 것일까?

저 정도로 반짝이게끔 투구와 메일을 닦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할까?

조노량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적인 작업 점호에 플레이트 메일씩이나 받쳐 입고 나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뭣들 하는 거냐? 하루 종일 서 있고 싶은가?”

몹시 신경질적인 고음의 목소리가 공터를 갈랐다.

소장은 오늘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수용소장이라는 직책이 무색할 지경이다. 소장이 부임한 지 벌써 일 년 반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노량이 소장을 본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경비병들이 움직였고, 포로들도 정렬을 시작했다. 애초에 반별로 모여 있었기 때문에 정렬하는 데 큰 소요는 없었다. 포로들도 쓸데없이 시간을 끌어 새벽부터 떨 생각은 없다. 정렬이 늦으면 늦는 만큼 추위에 떨며 부소장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대충 정렬을 끝내자 인원 파악이 시작되었다. 인원 파악은 작업장으로 가기 직전 가지는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비게 된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곳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인원 점검은 반별로 이루어진다. 감독관들이 각자의 반 앞에 서서 점검을 시작했다. 5명씩 8줄. 그리고 각 반별로 네댓 명의 결원 확인 및 결원 사유 점검이 이루어진다. 4반은 특수작업조 두 명과 작업불능자 두 명이 빠진다.

특수작업조란 작업불능자와 마찬가지로 병약하거나 허약하다는 이유로 광산 작업을 감당할 수 없는 자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4반의 특수작업조인 드루크, 토라, 아사는 다른 누구보다도 건강하다. 심지어 드루크는 살이 피둥피둥 찌기까지 했다. 조리를 하거나 배식을 하면서 다른 포로들의 몫을 훔쳐 먹기 때문이다.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작업불능자와 함께 청소, 요리, 배식, 점심 운반, 목책 보수, 텃밭 작업 등 수용소 내의 잡다한 일을 담당한다. 광산 작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편안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밀정 짓이다.

포로들은 그들의 세작질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가끔 이들을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다. 사건이 벌어지면 그 반은 반년 정도는 죽었다고 보면 된다. 지금 7반이 그렇다.

그렇다고 배식을 담당하는 그들을 대놓고 경원시할 수도 없다. 그들과 척지게 되면 당장 식사량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바구니에서 가장 작은 빵이 골라지고 국그릇에서는 맨 위쪽 맑은 국물만 반쯤 떠진다. 안 그래도 적은 양인데 그런 행패까지 당하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오늘은 토라가 광산 작업에 배정되었다. 작업 중에도 밀고할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매일 교대로 한 명씩 광산 작업에 따라나선다.

번호를 붙이며 앞줄부터 5명씩 제자리에 앉는다.

“여덟, 번호 끝! 총 41명 중 4명 결. 특수작업조 2명, 작업불능자 2명. 전원 이상 무!”

맨 뒤에 서 있던 부반장이 커다란 목소리로 인원 보고를 한다.

인원수를 세밀히 관찰하고 있던 일르크가 고개를 끄덕인다. 기껏 40여 명을 파악하는 일이니 그다지 헛갈릴 리도 없는데, 무척이나 집중하는 모습이다.

2반 쪽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또 인원이 비는 것이리라. 하지만 대부분 착오에 의한 소동이다.

역시나 금방 잠잠해진다.

어느덧 모든 반의 인원 점검이 끝났다. 각 반의 감독관들이 부소장을 향해 인원 보고를 한다. 그동안은 절대 움직일 수 없다. 줄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는 경비병들의 몽둥이가 인정사정없이 등짝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부소장은 한껏 위엄을 부리며 인원 보고를 받는다.

인원 보고가 끝나자 부동자세로 서 있는 포로들을 향해 일장훈시를 날린다. 아무도 귀담아 듣고 있지 않다. 심지어는 포로들을 향해 서 있는 반장들도 시큰둥한 표정이다. 물론 경비병들도 마찬가지다.

발이 얼어붙어 온다. 빨리 훈시가 끝나고 작업장으로 향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적어도 5분은 걸릴 것이다. 양모 양말을 괜히 벗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아니다. 지금만 넘기면 더 이상 발이 시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 눈도 오지 않는다.

부소장의 훈시가 끝난 후 이동이 시작되었다. 수용소를 벗어날 때도 추가로 인원 점검을 한다. 출입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눈매가 날카롭다.

작업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이 킬로미터쯤 된다. 포로들의 느린 걸음으로도 반시간이면 충분하다. 공터에 모여 있던 두 개 기대 삼백여 명의 병력이 포로들의 좌우로 함께 행군한다. 천여 명의 포로들을 감시하는 데 넘치는 인원이다.

양쪽 기대에 각각 열다섯 기씩 서른 마리의 갈리온도 따른다. 갈리온은 얼핏 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야수다. 키는 말보다 조금 더 큰 편이고 덩치는 말의 두 배에 가깝다. 이마 정중앙에 솟아 있는 기다란 뿔이 위협적이다. 이빨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가? 한 번 물리면 몸이 갈기갈기 찢긴다.

북국에서는 그런 야수를 길들여 타고 다닌다. 길들여졌다고는 하나, 흉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전투 중에는 큰 효용성이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피를 보면 광분해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기사의 통제에서 벗어난 갈리온은 아군에게도 아주 위협적이다. 보이는 것들을 죄다 공격해대니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서쪽 황무지에 산다는 피리온족은 흉포한 갈리온을 전투에서도 능숙하게 다룬다고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새 작업장에 도착했다. 횅한 벌판에 홀로 우뚝 솟은 절벽이 장엄하다. 부아칸산이다. 반경 오십 킬로미터 안에는 부아칸산을 제외하고 어떤 산도 없다. 오직 이 부아칸산만이 황량한 벌판 한복판에 외로이 솟아, 아주 기묘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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