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생기-1화 (프롤로그) (1/142)

후생기

1-10권 完 + 후기 + 외전

-가글

1권

1. 프롤로그

악쓰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여 귀를 먹먹하게 한다. 팔의 근육도 끊임없이 경련한다. 더 문제는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손목과 손등이다. 검을 떨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다잡아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상대의 검은 단단한 바위와 같다. 한 번씩 부닥칠 때마다 팔 전체가 자르르 저려 온다. 내공의 힘이다.

지역 상권을 놓고 수많은 싸움을 벌여 봤지만 이런 싸움은 처음이다. 후통(뒷골목)을 노리는 세력이라 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런 싸움에 길들여져 있던 보무관이 제갈가의 제대로 된 무사들을 상대로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압도적인 숫자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전세는 이미 기울었다. 보무관 백여 명의 무사가 그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제갈가의 무인들에게 그야말로 유린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뒤로 빠진 조노량의 시선이 전장을 한 바퀴 훑었다. 아직까지 서서 무기를 부여잡고 있는 보무관의 인원은 이제 절반가량. 일각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진 결과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제갈가의 무인과 평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서너 명. 노관장과 소관장, 그리고 두 명의 호법뿐이다. 노관장을 상대하고 있는 자는 제갈가를 이끌고 온 젊은 공자다. 그는 무슨 친선 비무라도 벌이듯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까지 담고 있다. 반면 노관장은 이미 서너 군데에 검상을 입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그것이 한계다. 수십 년 수련을 쌓은 결과가 이제 서른도 안 돼 보이는 젊은 공자의 무공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니. 새삼 제대로 된 무가의 무서움을 알겠다.

그때 젊은 관장이 공자의 옆구리를 노리고 좌측으로 다가드는 것이 보였다.

또한 조노량의 옆쪽에서 제갈세가의 무사를 상대로 연신 밀리고 있던 좌호법 보포삼이 조노량에게 눈짓을 해댄다.

안 그래도 밀리고 있던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공자에게 다가들었다.

조노량도 이빨을 악물고 재차 전장을 헤집고 공자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젊은 관장의 칼이 공자의 옆구리를 향해 짓쳐 들었다. 제법 빠른 공격이지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는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젊은 관장의 칼을 흘리기 위해 슬쩍 몸을 눕혔다. 멋진 화사진번의 수법이지만 글쎄, 간단히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반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도 직감할 수 있었다.

조노량은 막싸움판에서 단련된 몸이다. 그런 객기는 죽음에 이르는 만용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좌호법의 검이 앞의 상대를 무시하고 눕혀진 공자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깜짝 놀란 공자는 서둘러 검을 세워 보포삼의 일격을 막아 갔지만 휘어진 허리는 충분한 힘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더구나 기회를 잡은 젊은 관장과 노관장의 칼이 그 자의 다리와 머리를 노리고 대기를 갈랐다.

이런 경우는 보기에 뭣하더라도 뇌려타곤의 수법이 최고다. 차라리 바닥에 등을 대고 검에 힘을 싣거나 굴러서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명가의 자존심인지, 공자는 그러지 않았다.

조노량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막아낼 상황이 아닌 것이다. 너무 늦었다. 이제는 뇌려타곤 아니라 어떤 수법으로도 세 개의 칼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때 조노량의 눈이 커졌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껴진 바로 그 순간, 그 자의 몸이 기이한 각도를 그리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상체와 하체가 따로 떨어져 있기라도 한 듯, 하체를 뽑아 올려 젊은 관장의 칼을 피하고 검을 몸에 밀착한 상태로 상체가 솟구쳐 올라갔다. 몸통을 노리던 좌호법의 검이 공중으로 튕겨졌다. 목을 노리는 노관장의 칼은 솟구치는 상체의 탄력을 이용해 가슴에 턱을 붙이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피해버렸다.

공자의 움직임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솟구치던 상체가 호선을 그리며 노관장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몸보다 앞서 공자의 검이 노관장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반대로 그의 다리는 평형을 이루며 떨어져, 젊은 관장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어이없게도 발차기 한 방에 젊은 관장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허옇고 뻘건 덩어리들이 비산했다.

좌호법의 등에는 그가 지금까지 상대하던 무사의 검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절망하고 있던 조노량의 눈에 낙하하던 공자의 중심이 멈칫 흐트러지는 것이 포착됐다.

역시 노회한 막싸움꾼인 노관장은 녹록지 않았다. 공자의 검이 가슴에 박힌다 싶은 순간 공자의 손을 꽉 틀어쥐고 더욱 깊이 그 검을 자신의 가슴에 박아 넣은 것이다.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구속된 공자의 옷자락을 좌호법의 손이 움켜쥐었다.

좌호법의 등을 꿰뚫은 무사가 당황하여 검을 그어댔지만 좌호법의 손은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움켜쥔 채로 절명한 것이다.

그때 노관장의 시선이 조노량의 시선과 마주쳤다.

기회였다.

몸을 돌렸다.

조노량의 등을 노리던 낭아도의 사내가 도를 뻗어오는 것이 보였다.

무시했다.

조노량의 짧은 칼이 낙하하던 공자의 몸통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리고 불에 대듯 엄청난 통증이 등줄기를 헤집어 왔다.

낭아도일 것이다.

하지만 조노량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칼을 비틀어 회전시켰다.

벌어진 틈 사이로 피가 터져 나왔다.

관성에 의해 조노량의 몸이 공자의 몸 위로 겹쳐졌다.

노관장은 아직까지도 그 자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덕에 조노량의 얼굴 바로 앞에 노관장의 얼굴이 보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엉켜들었다.

자신의 몸 내부에 있던 무엇인가가 등 쪽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경험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낭아도가 몸에서 빠질 때는 절대 혼자 빠지는 법이 없다. 그 날카로운 톱니바퀴가 상대의 내장까지 함께 훑어 빼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빛과 소음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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