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무이唯一無二 #
지난 6개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치료하러 왔던 가루비였다. 생각보다 치료가 길어진 것이다.
“······!”
분명 저쪽이 옷을 벗고 있는데, 왜 이쪽이 부끄러운 걸까?
“옷.. 입으세요.”
가루비는 고개를 돌리며 몸을 틀었다.
“아..”
그러자 정신을 차린 번이 왼쪽 아래를 본다. 이미 저 옷은 빨아도 못 쓸 것 같다. 새것을 꺼내입기 위해 옷장으로 향한다.
'후.. 또 이래..'
가루비는 잠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다.
10살. 어중간한 나이다. 14살이면 전쟁터에 가거나 애 아빠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지만, 번은 꼬마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어른이라 하기에도 모호한 경계에 걸쳐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가슴이 뛸까? 아마도 그 꿈 때문이겠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없었어.’
그러다 문득, 가루비는 힐끔 번을 훔쳐보며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차도가 없었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악마의 상징이 사라진 걸까? 게다가 이 방안에 가득한 악취는 또 뭐란 말인가?
“되었습니다.”
번의 목소리에 가루비가 돌아섰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번은 어제와 크게 달라진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마와 눈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게다가 부쩍 큰 느낌.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면이 성장한 건가? 하루사이에?
“성취가.. 있었나요?”
“작지만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루비는 손을 뻗었다. 번의 속을 들여보고 싶었던 거다. 번 역시 피하지 않고 팔을 들었다. 맞잡은 두 손.
피핏.
정전기가 튀었다.
“아..음..”
가루비의 입에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번의 머리 쪽에 쏠려 있던 악마의 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느끼기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활력 충만한 마나가 가득했다.
‘놀라워..’
사람의 몸에 이토록 맑고 깨끗한 기운이 반짝이는 것은 처음 본 가루비였다. 그녀는 점차 의식의 범위를 확대했다. 번의 가슴으로, 하체로..
‘성력이 가득해..’
이름난 팔라딘이나 사제들처럼 번의 몸은 지금 신성력으로 넘치는 활화산 같았다. 그것이 마나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먹음직한 과일이 가득 열린 나무를 바라보는 것 같다.
풍요롭다. 그리고 아름답다.
“아아..”
인간이란 화火식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몸에 탁기를 쌓는데, 지금 번은 그 어떠한 불순물도 없었다. 이것은 채식만 고집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숨 쉬며 들어오는 공기, 마시는 물에도 중금속이나 좋지 않은 성분이 녹아 있을 테니까. 이렇게 깨끗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
흠칫!
그녀의 의식이 어느 한 곳에 닿자, 몸이 바르르 떨었다.
“이, 이건..?”
번의 골반 안쪽 깊은 곳. 그곳에 밤보다 어둡고, 어둠보다 무서운 농밀한 어떤 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
이때, 번이 성녀의 손을 놓았다.
“완전히 몰아내진 못했습니다.”
“아아..!”
번은 아쉽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처연하게 웃었다.
“작은 깨달음을 얻어 놈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거짓말이다.
-이런 간사한 놈! 악마가 따로 없구나!
당연히 악마도 반응했다.
하지만 번의 얼굴은 깔끔한 인상의 미소년으로 돌아와, 누구보다 순수했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저는..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만 할까요?”
번의 눈동자가 그윽하게 변했다.
“신神께선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지난 6개월간 성녀를 통해 신성력을 쭉쭉 빨아먹었던 번. 하지만 여전히 그는 배가 고팠다.
“황자님..”
성녀는 번을 보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그간 번이 얼마나 노력하고 고통받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밤마다 악마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견뎌야 했으며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도 견뎠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긴 쉽지 않았으리라.
“아니랍니다.”
성녀는 번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어른스럽다곤 하지만, 이렇게 안으면 품 안에 쏘옥 들어오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그분께선 모두를 사랑하세요. 특히 황자님은 더더욱..”
신은 이길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하지 않나요? 라는 말은 아꼈다. 대신 그녀의 가슴속 깊은 속에서 뿜어져 나온 노오란 빛이 두 사람을 덮었다. 신성력이었다.
스스스스스스-!
빛은 번의 몸으로 흘러들어 갔다.
-크흡! 제기랄! 여전히 불쾌하구나!
악마가 짜증을 부렸지만, 번은 내색하지 않고 꾸역꾸역 성녀의 신성력을 갈무리했다.
지난 반 년간 번이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성녀의 신성력은 무한대에 가깝다는 거였다. 물론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 힘의 원천은 신神이다. 당연히 아무리 퍼먹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과 같지 않을까? 거기에 하나 더.
“이렇게까지 했는데.. 하아.. 도와주십시오. 제힘으론.. 더는..”
성녀는 정에 약했다.
“그럼요, 그럼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드릴 거에요. 그러잖아도 신전의 정수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어요. 이른 시일 내에 신전으로 갈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 볼게요.”
'정수!'
순간적으로 아싸! 쾌재를 부를뻔했던 번이었지만, 침통한 표정을 가까스로 유지했다.
“그걸로 되겠습니까..?”
악마가 속에서 난리가 났다.
-음흉한 자식!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있었으면서! 이젠 저 여자가 불쌍해 질 지경이다!
뭐라 지껄이든 한 귀로 가볍게 흘리며 번은 성녀와 눈을 맞췄다.
“시도는 해봐야죠. 그분께선 노력하는 사람을 어여삐 여기신답니다.”
성녀는 손을 들어 번의 이마를 매만졌다.
“그보다 표식이 사라져서 천만다행이에요. 이젠 괴소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어요. 차도가 있다고 폐하께 말씀드려도 되겠죠?”
초롱초롱한 눈의 성녀.
하지만 번이 빠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닙니다. 이게 완벽하지 않습니다. 언제 또 튀어나올지 몰라요.”
번의 말에 가루비의 이마가 살짝 일그러진다. 안 그래도 황제에게 볼 때마다 시달리고 있는 그녀였다. 무능하네! 어쩌네, 다른 신의 신관을 불러야 하나? 라며 신성모독까지 하는 그에게 빨리 한 방 먹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또 발작하면 그땐..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겁니다..”
“아아.. 알겠어요.”
성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번을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토닥했다.
“오늘은 잡생각 말고 푹 쉬세요. 표식을 없앴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니까요. 내일 다시 올게요.”
“감사합니다. 성녀님.”
“제가 더 감사한 걸요.”
성녀는 번과 떨어지며 빙긋 웃었다.
“보기 좋아요. 황자님. 우리 힘내요!”
“고맙습니다. 성녀님.”
타악..!
성녀가 나갔다.
그런데 순간, 번의 눈이 다시 빨갛게 충혈되며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너 그냥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 어떠냐? 삼백 년만 묵으면 마왕도 속여먹겠다.
“헛소리 말고, 하던 거나 마저 해.”
성녀가 들어오는 바람에 잠시 강제로 쉬었지만, 안정화된 기운들을 이제 쓸모 있게 바꾸어야 했다. 고작 몸보신 하려고 이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번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였고, 경연에서 이기기 위한 패였다.
-알았다. 알았어. 근데 너 행여나 나와의 약속을 어기거나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저 성녀와 작당해서 날 몰아내거나..
“무슨 악마가 이리 속이 좁아? 너 정말 대악마 맞아? 쩌리 아니지?”
-쩌, 쩌리라니!
“그러니까 이름을 알려주면 좋잖아?”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존함이 아니다.
“아아, 됐으니까 잔말 말고 빨리해. 시간 별로 없다.”
번은 빠르게 다시 준비를 시작한다.
번이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한가할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이 찾아온다. 성녀가 예정보다 일찍 왔다가, 일찍 갔으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후우..”
번이 두 발을 넓게 벌려 서고 눈을 감았다. 두 손은 아랫배에 모았다.
“저주의 근원은 찾았어?”
-그래, 방향은 확실하게 잡았다. 며칠이면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좋아. 준비되면 슬슬 이쪽에서도 한 방 날려주자고.”
당한 건 몇 배로 갚아주는 번이다. 물론 저주 자체가 번에게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그건 그거다. 저쪽에선 분명한 악의惡意를 품었지 않았나?
“시작해.”
번의 외침과 동시에, 아랫배 가득 뭔가가 발광하듯 기괴하게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장장 3시간.
아니 그 이상을 붉으락푸르락 표정이 변하던 번이 어느 순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우우..”
「악마 A의 꼬리를 얻었습니다.」
「악마 A의 꼬리는 특정 조건에서만 발동합니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이걸로 된 건가?”
반 년간 준비했던 일. 이제 얼추 벽 하나를 넘어섰다. 이제 저주를 보낸 놈을 응징하고, 남은 시간 동안 훈련에 박차를 가해 경연에서 승리하는 것만 남았다. 반년이라면 충분히 자웅을 겨뤄볼 수 있으리라.
번은 이 방에 갇혀있었지만, 망국의 왕 페트릭에게도 꾸준히 검술을 배우고 있었고, 성녀에게도 계속해서 신성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저 치료한다는 구실만 이용했다는 거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 힘을 끌어다 쓰면 반드시 태가 나게 되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거나 뒤처리를 확실히 할 수 있을 때만..
“알아.”
침대로 걸어가는 번. 페트릭이 오기 전까지 쉴 요량이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것인데, 악마는 이 와중에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꽤나 잔소리쟁이다.
-그 감각을 잘 익혀야 해. 앞으로 틈틈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훈련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인간에겐 없는 기관이라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릴 거야.
“걱정 말라니까 그러네.”
번은 쓰게 웃으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악마 녀석과 동고동락한 지 반년. 하지만 이 녀석은 모른다. 번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능력들을 가졌는지를 말이다.
꼬리? 그따위 건 일도 아니다. 다리가 수백 개인 송충이로도 살아봤던 그였으니까.
“내가 알아서 해.”
좀 쉬자. 페트릭이 도착하면 또다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 테니까.
.
.
.
“그게 끝이야?”
대청.
황제의 최측근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회의 중이었다.
황당한 얼굴로 묻는 황제에게 집정관이 끄덕였다.
“곳곳에 심어놓은 우리 ‘눈’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제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야 뭐, 변방에서 일어난 작은 소요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지만, 무대가 중앙으로 옮겨지면 그들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진 않겠지요.”
에비뉴가 모든 전쟁을 승승장구하며 황국으로 거듭났다지만, 대륙 전체로 보면 그저 서남쪽 변두리의 왕국이 덩치를 조금 불린 것 정도였다. 실제로 대륙의 2강이라 불리는 두 제국은 오백 년이 넘는 역사와 에비뉴의 일곱 배가 넘는 영토, 열 곳이 넘는 식민지와 속국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비교하기에도 민망했다.
“그래서?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고?”
황제의 관자놀이가 꿈틀했다. 영 심기가 좋지 않은 그의 표정을 보며 집정관이 크흠, 헛기침하며 그를 달랜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직진할 수 없으니 우회하잔 거지요.”
“어떻게?”
“호랑이와 사자가 있는 산에 늑대가 기어들어가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잡혀먹히기나 하겠죠. 하지만 두 맹수가 싸우고 있을 때는 생각해볼 게 많지 않겠습니까? 기다렸다 지친 놈을 공격할 수도 있고, 싸우는 틈을 타 왕 노릇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차라리 승률이 높은 한쪽에 붙는 게 낫겠어.”
조용히 듣던 스캇이 옆에서 끄덕였다.
“그편이 시간 절약엔 좋겠지. 이쪽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황제도 턱을 만지며 동의했다. 대륙에 수많은 나라가 있다지만, 결국 두 제국을 넘어서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 집정관의 말처럼 호랑이나 사자가 아닌 늑대로 살다 죽는 거다. 겨우 그 정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지 않나?
이때,
“쉽진 않을 겁니다.”
은사가 끼어들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부정적이었다.
“제국이 우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 콧대 높은 놈들이 우리와 화친을 맺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뭐가 부족해서요?”
단순히 우기는 게 아니었다.
은사의 정보망은 넓고 깊기로 유명했으니까.
“그리고 호랑이와 사자가 반드시 싸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모험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잘 먹고 잘사는데.”
이건 은사의 판단이 정확했다.
두 제국은 바보가 아니었다. 부딪히면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던 황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말을 돌렸다.
“이 문제는 더 생각해보도록 하지. 그보다 반군들은 어떻게 됐어? 아직도 진척이 없나?”
집정관이 입맛을 다셨다.
“워낙 주변 지리에 해박한 놈들이라 정글을 제집처럼 쓰니 골치가 아픈 모양입니다.”
“거참.. 반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해결을 못 해?”
전쟁이란 게 전투에서 이겼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냥 치고받고 싸우는 게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 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거기 지휘관이 누구야? 그놈이 무능해서 이런 거 아니야?”
“누구라도 비슷할 겁니다. 몇 달만 더 지켜보시죠.”
집정관이 그렇다면야.. 황제는 어깨를 으쓱하고 이 문제는 넘어간다.
“애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황자들의 경연에 관해 묻는다.
시선을 받은 은사가 가장 먼저 답했다.
“카이사르 황자는 최근 성취가 부쩍 늘었습니다. 집중력이 놀랍도록 향상된 것이 원인인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마녀 융이 2황비의 거처에 도착한 시점부터 카이사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녀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카이사르가 일취월장하는 것이 중요했고, 제대로 먹히고 있었다.
“호오.. 그래?”
황제가 호기심을 보이자, 은사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 마음 단단히 먹은 모양입니다.”
“잘된 일이야. 녀석의 편협함이 독기로 승화될 수 있다면 좋은 양분이 될 테니.”
황제는 미소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움찔.
스캇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표정이 영 좋지 않다.
“어~이.”
황제가 장난스럽게 스캇을 불렀다.
“예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스캇을 보며 은사가 웃음을 꾸욱 참았다. 이런 스캇을 또 언제 볼까?
“그래, 연구는 할 만하신가?”
“······.”
벌써 반년이다. 하지만 스캇은 왜 아직도 정령소환마법진에서 악마가 튀어나왔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만간 해결한다고 큰소리 떵떵 치시던 그분께선 어디 가셨나~?”
황제가 스캇을 앞에 두고 누군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최근 스캇 인생 최대의 굴욕을 연일 맞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스캇이 입을 꾸욱 다물고 있자, 옆에서 집정관이 말했다.
“출타하셨나 봅니다.”
집정관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은사가 참지 못하고 큭큭거렸다.
“싼 똥은 치우고 가셔야지~ 그냥 가셨나?”
황제가 비아냥대자, 집정관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제가 치울까요?”
“에이, 그러면 쓰나. 다 큰 어른이 그럼 못쓴다네.”
보통 이런 만담의 포지션엔 자신이 있어야 했다. 놀리는 황제보다 거드는 집정관이 더 얄미웠던 스캇은 부들부들 떨다가,
“..이익!”
터졌다.
“삼일입니다! 삼일!”
모두가 스캇을 보았다. 놀란 황제가 묻는다.
“반년이 걸려도 해결 못 하던 걸 무슨 수로 사흘 만에 하시려고?”
스캇은 이 일에 모든 자존심을 걸었다. 아니, 버렸다.
“대현자..께서 오고 계십니다.”
번, 그 꼬마 놈을 어떻게든 일으킬 것이다.
“······?”
“······!”
“..너?”
스캇을 알기에 더 놀랍다.
사이가 좋지 않은 옛 스승까지 청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가?
꽈드드득.
어금니가 악 물린 스캇의 눈동자가 묘하게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