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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39화 (39/177)

# 베팅 #

-어엇? 번 황자님이시다!

-저분은..? 스캇 경이셔!

스캇의 저택이니 당연히 스캇이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사람들이 놀란 건 그의 상태였다. 그가 축 늘어진 모습을 언제 봤겠는가?

“······.”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워라, 스캇. 따위의 말을 준비했던 황제는 가만히 번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얼굴인데, 낯설다.

-물러서라! 번 황자님께서 악마에 씌었다!

-악마의 상징이다!

-맙소사!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야?

그랬다. 번의 얼굴.

이마에 뚜렷한 문장 하나가 반투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핏빛처럼 검붉은 V는 악마의 상징이기도 하며 제물이 악마에 완전히 잡아먹혔을 때 보이는 형상이기도 했다. 심지어 눈동자도 토끼 마냥 새빨갛다.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보긴 힘든 상태.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군요.”

은사의 말에 황제는 대답이 없었다. 눈을 찌푸린 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스캇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깨우고 싶었으나, 돌아가는 꼴이 심상찮았다.

우르르..

사제들과 팔라딘이 번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자,

“멈추시오!”

수도 경비대도 움직였다.

번을 지켜야 하는 자와 악마를 물리쳐야 하는 쪽이 대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이아 신전 사제들은 악마를 추종하는 자들을 가혹할 정도로 단죄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황자라는 신분이 걸리긴 해도 이 일을 보고, 가벼이 넘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저것을 보시오! 고작 잡귀 따위가 만들 수 있는 상징이 아니오! 최소 중상급 악마가 번 황자님을 잡아먹은 거요!"

"옳소!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살펴보겠소!"

사제들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번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비대장도 물러서지 않는다.

"내 관할管轄이외다. 도움이 필요하면 따로 신전에 청하겠소. 여봐라! 어서 썩 황자님을 모시지 않고 뭣들 하느냐!"

"넵!"

"황자님을 모셔라!"

여긴 수도다. 황실이 지척인데, 황자를 사제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 않나? 문제가 있어도 경비대가 처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제들 역시 경비대가 번에게 접근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았다. 팔라딘들은 경비대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체력적 우월함이 있었고, 사제들 또한 필사적이었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

“제가 나서겠습니다.”

지켜보던 딘딘이 한발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황제는 머리를 흔들었다. 가만히 있으란 뜻이었다.

-무슨 일이여?

-나도 이제 막 도착해서 잘은 모르는디, 황자님께서 악마에 씌웠다는구먼.

-악마? 그게 참말이여?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났다. 두려움에 멀리 도망친 이들도 있었지만, 때론 호기심이 모든 것을 이길 때도 있다. 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하지 않나?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웅성웅성-

-번 황자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신전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곤 해도 악마를 몰아내긴 해야지! 저 눈을 좀 보라고! 흐미-! 무서워라!

많은 이들이 두려움의 눈초리로 사태를 지켜보는 한때, 인파 속에서 한 여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녀는 악마에 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문가였다. 그래서 알고 있다. 지금 이 일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왜지..?’

악마가 이럴 이유가 없다. 사제들이 득실거리는 이런 도시에 출현해봐야 무엇을 얻겠는가?

‘게다가 번 황자라면 그..?’

여자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기억들이 마구 엉켰다. 사제들의 말처럼 저 상징을 보건대, 저건 절대 저급한 악마가 아니었다. 적어도 오백 년 이상 살았을, 간교하고 음흉하며 강력한 악마다!

'대체..왜?'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마녀 융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이때, 대치하던 경비대와 사제 하나가 눈에 띄는 충돌을 했다.

“커헉!”

비집고 들어오려던 사제를 경비대가 내동댕이쳐버린 거다.

“어이쿠!”

자빠져서 엉덩이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사제를 보며 팔라딘의 일갈이 터졌다.

“신이 두렵지도 않소!”

“진짜 해보자는 겁니까?”

비록 에비뉴 황국에서 생활하지만, 이들은 신의 이름 아래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악마를 단죄하는 행사에 있어 가로막는 모든 것들은 신의 철퇴로 깨부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비키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서! 황자님을 모셔!”

“길을 트시오! 계속 막아서면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두 무리가 격하게 맞서자, 여기저기에서 잡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걸 멍하니 바라보던 한 사람.

“······.”

번이다.

‘미치겠군.’

사제들의 우려완 달리 번은 지금 제정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도 알고 있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물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진 모르겠지만, 정령이 번의 안에 갇혀버렸다. 아직 악마의 진면목을 모르기에 번은 그리 심각하게 인지하지 않았고, 우선 스캇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것인데, 분위기가 개판이었다.

‘악마라고..?’

사제들이 저리 날뛰는 걸 보면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데,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그래도 이쪽이 이성이 있다는 것은 보여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스캇 경을 부탁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경비에게 말하는 번. 그의 모습에 주변의 모두가 움찔! 했다.

“황자님!”

“정신이 드신 겁니까?”

번의 목소리에 경비대장이 빠르게 번에게 접근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번이 차분하게 말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의 얼굴은 더욱 심각했다. 이마엔 아직도 선명한 문장이 떠 있고, 두 눈은 충혈되다 못해 핏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았다.

"속지 마시오! 악마에게 조종당하는 것일 수도 있단 말이오!"

"그렇소! 어서 신전으로 모셔야 하오!"

사제들이 날뛰었지만, 번은 스캇을 경비대에 넘겨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을 믿어 줄 상황이 아니군요.”

번의 말에 경비대장이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날카로운 칼날이 모두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뚫겠습니다.”

“아닙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대화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번은 걱정스러운 듯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 말씀을 듣고 확신했습니다. 제가 황자님을 지킬 것입니다.”

악마고 뭐고 일단 황자를 모신다.

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경비대는 들어라!”

“네!”

“네! 대장님!”

“지금부터 가로막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 순간, 모든 경비대가 검을 뽑아들었다.

"히이이익!"

"이, 이 사람들이 정말!"

사제들이 기겁하며 한발 물러났으나, 그들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다.

"어림없소!"

"진정, 신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려는 거요?"

"여길 지나려면 우릴 넘어서야 할 거외다!"

쿵, 쿵쿵, 쿵!

팔라딘들이 절대 비켜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쥔 철퇴가 무시무시하다.

인간군상이 모이면 다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

“저 악마를 빨리 끄집어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번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늙은 사제.

“저놈들도 악마와 다 한패다! 사정 봐줄 것 없어!”

가만있질 못하겠는지 폴짝폴짝 날뛰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젊은 사제까지.

“썩! 저 악마 새끼를 잡지 않고 뭣들 하는 거냐!”

그 중 또 한 사제가 소리를 다시 치는데,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리곤 날뛰던 사제가 앞으로 홱! 고꾸라진다.

"꾸에에엑!"

“······?”

“······!”

갑자기 공격당한 사제를 돕고자 근처의 팔라딘들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발을 떼지 못했다.

“어, 어떻게..”

“화, 황제 폐하..”

복면을 벗은 황제.

그의 뒤에 은사와 딘딘이 나란히 섰다. 사제를 걷어찬 황제가 주변을 빤히 노려본다.

뭐해? 알아봤으면.

“꿇어라-!”

딘딘이 무섭게 외쳤다.

저릿저릿-!

딘딘의 박력은 일반인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살기와 전장에서 다져진 분위기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전장을 누비며 천인살千人殺이란 별명을 넘어 만인살萬人殺에 가까워지고 있는 무장. 그 누가 그의 목소리에 떨지 않을 수 있는가?

물론 이렇게 가까이에서 황제 폐하를 마주할 줄 몰랐던 놀람이 사람들에겐 더욱 컸으리라. 그래서인지 넋놓고 아무것도 못 한채 바라만 보는 사람이 많다.

“······.”

황제는 나뒹구는 사제를 보았다.

이래서 광신도가 싫다. 이놈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번이 악마 새끼면, 내가 악마란 얘기냐? 쏴주고 싶지만, 참자. 지켜보는 사람도 많고, 황제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처사다.

“뭣들 하느냐! 무엄하다!”

상황을 인식한 경비대장이 버럭버럭 외쳤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숙였다.

“흐음.”

저놈 불러다 교육 좀 시키려 했더니, 다른 부분에선 그래도 꽤 하는데? 악마 씐 아들내미도 잘 지켜주려 했고. 마냥 무능한 놈은 아니었나 보다.

근엄한 표정으로 황제가 걸었다. 그러면서 턱짓하자, 경비대에게 맡겨진 스캇을 은사가 냉큼 받아왔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섰다.

“······.”

“······.”

부자父子는 그렇게 잠깐 눈을 맞추었지만, 황제가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상황은 금세 끝난다.

“가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철鐵의 황국의 지배자이자, 지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신이시다. 감히 누가 그의 결정에 반기를 들까?

"아..아, 안됩니다!"

물론, 가끔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바닥을 구르던 사제가 죽기 살기로 외쳤다.

"번 황자님께선 악마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황제가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쿠웅-!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 소리가 모두의 심장을 콰악! 밟은 것 같다. 이 카리스마는 절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악마고 뭐고..”

황제가 싸늘한 목소리를 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사제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잠시 눈이 뒤집혀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긴 했지만, 여기 에비뉴에서 결코 대항해선 안 되는 한 사람이 누구인지 번뜩 떠오른 거다.

“내 아들이다.”

신神조차 발아래 두려하는 오만한 황제였다. 그런 그가 고작 악마 따위를 거들떠나 보겠나? 옆에 묵묵히 서있는 번의 붉은 눈동자보다 황제의 이 평온한 눈이 더 무서웠다.

이것이 자리가 주는 힘. 존엄의 후광이었다.

“······.”

“······.”

모두가 입을 다물자, 황제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딘딘.”

“예! 폐하!”

“성녀를 들라 하여라.”

“알겠사옵니다.”

황제의 고개가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경비대장.”

자신을 지목할지 몰랐던 경비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크게 외쳤다.

“넵! 폐하!”

“황자를 호위하도록.”

“이 목숨 바쳐 따르겠나이다!”

황제는 피식 웃으며 모두가 들르라는 듯 다시 한 번 명령했다.

“방해하는 자들은 즉결처형하라.”

합법적 살인면허를 취득한 경비대장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팔라딘을 노려보는 그들의 광기 어린 표정에 사제들이 몇 걸음씩 물러났다.

꿀꺽.

소름 돋은 몸으로 간신히 침을 삼킬 때, 경비대장이 검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황제 폐하 납신다! 길을 열어라!”

“예!”

“비켜라! 이놈! 죽고 싶으냐!”

경비대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사제고 뭐고, 앞을 막은 이들을 향해 사정없이 으르렁댔다. 이것이 황제의 힘. 철鐵의 군대를 이끄는 수장의 버프였다.

‘과연..’

번은 휘적휘적 걷는 황제의 뒤를 따르며 끄덕였다.

절대권력!

그가 살던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과 억압이 여기선 가능하다. 지금 아버지가 저 오만하던 사제의 목을 날려버린들 그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을까? 헌법, 윤리, 인권 따위는 이 순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저 사람이 곧 법이며, 신神이다.

‘제길, 이거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건가?’

무슨 일이 벌어져 악마가 몸에 들어왔는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차라리 신전으로 갔다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볼 땐 아버지가 위기에서 아들을 구해준 것으로 비치겠지만, 번이 판단할 때 이 에비뉴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악마란 단어가 풍기는 어감이 너무 좋지 않다. 자칫 경연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쨌든 내 잘못은 없어. 나는 스캇이 시키는 대로 한 것 뿐이다. 쫄지 말자.’

여차하면 다 뒤집어 씌울 생각을 하며 번은 차분한 얼굴로 계속 걸었다. 황제 일행이 황궁 쪽으로 떠나는 것을 보며 군중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폐하께서 갑자기 나타나실 줄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십 년 감수했네! 그려.”

사람들은 황제를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감히 그 지위까지 얕잡아보진 않는다.

“다 끝났으니, 가세. 일이 밀렸다고.”

“그려. 근데 번 황자님께선 어찌 될랑가?”

“나도 모르지. 성녀님까지 청했으니, 잘 풀리지 않겠는가?”

“하긴 번 황자님께서 그리 영민하시니 큰일이 있겠어?”

이들의 기억 속에 번은 카이사르를 물리치고, 경연에서 처절하게 승리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불가능한 일도 이겨냈으니, 이번 일도 잘 넘헤쳐가리라 믿고, 응원한다. 이렇듯 번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

‘묘해..’

끝까지 지켜본 마녀 융은 저 멀리 떠나가는 번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저 꼬마에게 눈이 떨어지지 않는진 모르겠다. 훨씬 더 대단한 황제가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저 꼬마가 뭐라고 눈에 밟히는가.  콩닥콩닥 가슴이 계속 뛰고, 기분이 나빴다.

‘실란에게 가봐야겠어.’

다행히 이곳엔 융을 도와줄 연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여자가.

.

.

.

“그놈, 깨워.”

대청臺廳으로 돌아온 황제.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스캇을 보며 은사에게 말했다.

"······."

잠깐 고민하던 은사. 호위 하나에게 끄덕였다. 어떤 연유로 정신을 잃었는지 모르기에 우선 마법사나 사제에게 보여 정밀진단을 받는 게 우선이겠지만, 군주의 표정을 보면 그런 여유 따윈 없을 것 같다.

번은 스캇 옆에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호위가 찬물이 가득 담긴 통을 가져오자 입맛을 다셨다.

촤악-!

은사가 스캇의 얼굴을 향해 거침없이 물벼락을 날렸다.

“히이이이이익!”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리 한 것은 약간의 질책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리라.

“······?”

스캇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바로 사태파악을 끝낸다. 과연 똑똑하고 두뇌 회전이 빠른 남자다. 그런 그가 일을 이따위로 벌려 놓았으니, 황제의 궁금증은 더 컸던 것이고.

“뭔데?”

황제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스캇에게 물었다.

“아, 음..”

스캇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는지 신음을 흘리다가 번을 보고 움찔했다.

“..뭐야? 이거?”

놀란 듯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였다. 그러더니 냉큼 번에게 기듯 다가가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악마의 문장을 뚫어지게 보았다.

“이게 왜..?”

번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제게 물으시면 어떡합니까.”

“······?”

번은 오리발을 내밀기로 결정한 듯하다.

“반탄력은 내가 다 받았는데?”

하급 어둠의 정령 따위가 소환되었다면 어렵지 않게 돌려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환에 응한 존재는 스캇의 예상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강력한 놈이었고, 갑자기 소환진이 깨지며 그 충격을 모조리 스캇이 감당해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잃었으니,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

“이...”

문득, 스캇은 소환진이 파괴되기 직전, 번에 빙의한 악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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