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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31화 (31/177)

# 승리의 요건 #

“적당히 하려고 했건만! 네가 자초한 일이다!”

카이사르가 번을 향해 달려든다.

그러자 군중들이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오오오오오..!

-한 방에 끝나겠는데?

-번 황자님이 너무 불쌍해!

어떤 여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꼬옥 감아버릴 정도였다. 곰 앞의 사슴, 호랑이 앞의 토끼 같달까?

‘됐어.’

그러나 반대로 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카이사르는 맹수 같았지만, 맹수들은 절대 하지 않는 실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포식자라는 것들은 작은 사냥감을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한다는 것! 지금 카이사르에겐 그게 빠져있었다!

황비들의 정보수집 능력은 대단했다. 그렇기에 이미 번의 상태는 훤히 꿰고 있었다. 당연히 황자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번이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와 반대로 카이사르는 어려서부터 마나를 수련을 해왔다. 이 차이는 아주 컸는데, 문제는 이걸 너도 알고, 나도 알면 마음속에 벌레가 자란다는 것이었다.

-마나도 못 다루는 저능아.

-헛똑똑이.

-끝이 뻔히 보이는 녀석.

번에게 붙은 별명들.

하물며 지금처럼 이성까지 잃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틈이 생긴다. 자만이라는 이름의 그 마물은 상대를 업신여기게 되고,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일말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날 원망하지 마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카이사르가 주먹을 내질렀다. 오래도록 검술 훈련을 해온 카이사르. 이런 육박전엔 능숙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간 수많은 나날 동안 체력훈련을 해왔던 노력이 어디 가겠는가?

퍼억-!

아주 맵고 강렬한 주먹이 번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번은 두 팔을 모아 얼굴을 가리며 막았다.

“······?”

번의 몸이 둥실 떠서 뒤로 1미터 정도 밀려날 정도. 아무리 번의 키가 작고 체중이 가볍다 해도 카이사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격이었다. 하나 카이사르는 바로 연속공격을 하지 못했다.

“크윽..”

‘무슨 애새끼 팔뚝이? 옷 속에 뭔가를 넣은 건가?’

놈을 친 주먹이 마치 바위를 친 것처럼 아팠다. 손맛도 좋지 않았다. 부러져야 할 것은 저놈 팔뚝일 텐데, 왜 이쪽이 고통스럽단 말인가? 심지어,

“······!”

살짝 벌어진 가드 사이로 놈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이..!”

카이사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금니를 악물고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발이었다. 후우욱! 오른쪽에서부터 날아드는 각법공격. 번은 간신히 침을 넘기며 급히 뒤로 훌쩍 뛰었다.

‘할만하다. 놈이 아직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아.’

사실 번의 팔은 그 한번의 공격으로 퉁퉁 부었다. 그나마 방금 그 공격에 부러지지 않고 금만 간 것은, 그간 이것저것 광물을 주워 먹으며 뼈가 비상식적으로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상처가 재생됩니다.」

「혈액 속 활력이 세포를 보호합니다.」

그간 몸속에 녹아있던 모든 작용이 일제히 발동하기 시작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뱀처럼 흐물흐물하게 움직이거나, 긴 송곳니를 뽑아내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수단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도 위험하긴 하지만, 어쩌나? 이마저도 안 하면 아까 그 일격에 끝장이 났을 것을.

‘개새끼.’

번의 눈이 가늘어졌다.

카이사르 저놈은 아버지의 자식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교활하고, 속이 좁았다. 상식적으로 내가 저 위치였다면 강자의 대범함이나 고수가 하수를 상대하며 보여줄 수 있는 여러 행동을 하며 군중과 아버지에게 점수를 땄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려는 경연 아닌가?

그런데 저 멍청한 놈은 이쪽을 죽일 듯이 공격하고 있었다. 고작 9살짜리 동생에게 말이다.

‘네가 무덤을 판 거다.’

번은 입을 꾸욱 다물고, 카이사르의 다리가 바닥을 찍는 것을 보았다. 공격이 실패하자, 그 다리를 축으로 디디며 왼발이 날아올 폼이었다. 비록 번은 신체조건이 부족할지라도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청각과 동체 시력, 수없는 죽음을 경험했던 담력이 있었다.

“뒈져라! 쥐새끼 같은 놈!”

역시나 이어지는 공격. 카이사르의 왼발이 쭈욱 번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철판도 움푹 으그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실려있었다. 통상적으로 발은 주먹의 3배 이상의 힘이 난다. 아까 그 주먹 공격으로도 팔에 금이 갔으니, 저걸 가슴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갈비나 가슴뼈가 그대로 함몰되리라.

이때 번은,

기이이이이이잉-!

주변의 모든 것을 아주 느리고, 정교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중,

‘은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 공격으론 죽진 않을 거란 계산이 깔려있을 거다. 아까 첫 번째 일격을 막아낸 것으로 데이터를 뽑았을 수도 있고.

‘시간이 없어. 이걸 피하기보다는.’

카이사르의 표정이 보인다. 녀석의 볼에 난 솜털 하나하나가 살랑이는 것까지 눈에 들어왔다.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그러면서도 아주 표독한 얼굴.

‘놈이 긴장하기 전에 살을 주고..’

아까 놈은 말했다. 급소 공격을 해도 되느냐고. 누워있는 상대를 공격해도 되느냐고. 그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퍼억-!

번의 두 팔이 다시 카이사르의 밀어차기를 막아냈다.

-오오오오오오오..!

-맞았다!

군중들이 벌떡 일어날 정도로 번은 위태로웠다. 잘 막았지만, 우적..! 팔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번의 몸이 둥실 떠올라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크흐흐흐!”

카이사르는 좋다고 따라붙었다.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처럼 훌쩍 뛰어 번의 몸을 그대로 노렸다.

마나.

마법사와 검사가 마나를 쓰는 방식은 다르지만, 자연의 힘을 끌어 사용하는 것은 같다. 긴 세월 몸속에 축적해 그것을 외부로 돌릴 수 있게 되면 순간적으로 배출해 공격을 강하게 할 수도 있고, 몸을 호신할 수도 있었다. 카이사르 역시 그 경지에 있기에 번을 타격할 때마다 주먹이나 발에 마나를 실었다.

“끝이다!”

유쾌한 듯 웃으며 번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그. 뒤꿈치로 번의 허벅지를 찍어버릴 생각이다. 우선 도망 못 치게 다리부터 하나씩 끊어놓고, 사지를 잘근잘근 부숴버리리라. 이놈의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녀석을 본보기 삼아 처절하게 밟아둬야 다른 놈들도 기어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쌔애애애애액-!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독수리 다리처럼 발을 쭉 뻗어 번을 노리는 카이사르! 번은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개입해야 하나?’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싸움은 3분을 넘기기가 힘들다. 도시 골목에서 벌어지는 꼬마들의 개싸움이라면 서로 경험이 없고 실력이 미천하니 효과적인 공격을 하지 못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황자들은 늦어도 5살 이전부터 교육을 받아왔다. 일격 하나만 들어가도 치명적인 부위를 알고 있고,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방법 또한 깨우친다.

그런 내려찍기 공격이다. 그것도 체중을 모두 실어서.

‘여기 까진가.’

은사의 혀가 쯧 아쉬움을 찼다.

대련 시작할 때, 남다른 투지를 보이기에 뭔가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어쩔 수 없..’

막 움직이려던 은사.

‘음?’

멈췄다.

“······?”

힐끔.

시선 하나가 그를 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팔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꼬마. 녀석이 머리를 이쪽으로 조금 돌려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거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런 전율을 느껴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끼어들지 마.」

녀석의 눈은 그리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절대 착각이 아니다.

‘뭐 이런 놈이..?’

은사는 기막혀 움직일 타이밍을 빼앗겼고, 이 사실을 모르는 카이사르의 몸은 번에게 떨어졌다.

이때,

으득-!

번의 입안에서 뭔가가 타악! 깨지며 입안 모든 세포로 빠르게 흘러들기 시작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콰직-!

아주 불쾌할 정도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 순식간에 뒤엉키며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 지금 이 순간, 이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앞에 있던 은사뿐이었다.

‘어떻게..?’

꼬마는 아주 찰나에 움직였다.

카이사르의 발은 분명 녀석의 다리를 밟았다. 우둑! 소리가 들리고, 공격은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 정도 공격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그 충격으로 사지가 마비되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 할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저 꼬마는 허벅지를 밟힌 상태에서도 오뚝이처럼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그대로 카이사르의 낭심을 머리로 받아버린 거다!

“꺼어..!”

또한, 그게 다가 아니었다. 카이사르의 낭심에 머리를 처박은 꼬마는 마치 거머리처럼 그 상태 그대로 달라붙어 두 팔로 카이사르의 다리를 끌어안듯 움켜쥐더니, 뒤로 누워버렸다. 그 순간 카이사르의 육체는 오줌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통제기능을 상실했고, 고통으로 혼란스러워 하던 카이사르는 얼굴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괴사.

꼬마는 좀비나 구울처럼 카이사르의 허벅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피와 오줌이 범벅이 되는 그 불결함 속에서도 거침이 없이 말이다.

“······!!”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졌다. 꼬마의 한쪽 다리는 부러졌는지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 덜렁거리고 있었지만, 아픔 따위는 느끼지도 않는다는 듯 오직 카이사르를 공격하는데, 모든 정신을 쏟고 있었다.

“끄, 끄아아아아-!”

황자 카이사르. 그가 살면서 이 정도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었겠는가? 마나? 이 상황에서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극한의 일! 그것을 겪는다면 사람은 아주 순수한 감정만을 느끼게 될 뿐이다.

공포恐怖.

번은 악귀 같았다.

카이사르가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 공격은 좀 더 대담하고 과격하게 변했다.

퍽퍽! 퍽!

두껍고 단단해진 머리는 계속 카이사르의 하복부와 골반을 들이받고 있었고, 그러면서 틈만 나면 좀비처럼 물어뜯었다.

「돌머리.」

약 기운이 돌며 일종의 광전사 상태가 된 번. 능력를 개화시킨 것이다.

고작 불알이 터진 것이 아니다. 골반 자체가 뒤틀려버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카이사르를 덮친다. 게다가 번의 턱은 사람의 그것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고, 집요하게 보호구가 덮이지 않은 부분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옷과 살이 찢기며 그걸 뱉을 새도 없이 그냥 꿀꺽. 두 팔은 카이사르와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채고 있었으며, 멀쩡한 다리 하나는 땅을 디디며 중심을 잡았다.

“크흑..! 개새끼! 떨어져..!”

본능적으로 카이사르는 주먹에 마나를 가득 담고, 번의 머리를 후려쳤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살고자 내지른 공격이었다. 돌도 부술 수 있는 그건 당장 번의 머리를 깨버릴 것 같았으나,

쩌엉-!

이게 웬일인가!

우득! 부러진 것은 카이사르의 손목이었다.

“끄아아아!”

팔에 담긴 힘과 번의 돌머리 사이에 낀 손목뼈가 감당을 못한 거다. 물론 번의 두꺼운 머리도 우직! 금이 갔다. 아무리 두껍다고 해도 카이사르 정도의 사내가 마나가 실린 주먹으로 전력으로 때리는데 멀쩡할 순 없었다.

“······!”

은사 역시 진심으로 놀랐다.

무슨 애새끼 머리통이 저리도 단단하단 말인가! 번이 특수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은사는 어떻게 박치기 공격이 카이사르의 하반신을 작살 낼 수 있었는지, 마나 담긴 주먹을 버텨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카이사르의 하반신은 이제 너덜너덜하고, 손목마저 부러졌다. 뇌에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아드레날린 같은 물질이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었지만, 한참 부족했다. 이윽고 번은 드잡이를 벌이다 처음으로 카이사르의 몸 위에 올라타게 되었다.

힐끔.

“······?”

은사는 또다시 멈칫했다.

이 와중에 번이 자신을 본 거다.

'어떻게?'

저 상황이라면 흥분과 긴장, 극도의 혼란으로 제정신을 차릴 수 없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저 눈..! 어찌 저렇게 차갑고 또렷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안 끝났어.」

두 눈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허..”

은사가 기막힌 듯 헛바람을 삼켰다.

그 사이, 번의 머리가 아래로 추락한다.

퍼억-!

돌머리가 카이사르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손목이 부러져 팔로 막을 생각조차 못 하던 카이사르는 이제 눈도 뜨지 못했다. 눈물과 흙이 반죽이 되어 시야를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보호구 따윈 의미가 없다.

“쿨럭-!”

벌어진 입에서 침과 함께 피가 파학! 튀었다. 그러나 번은 팔을 휘둘러 카이사르의 귀 옆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를 다시 뒤로 들더니, 또 내리찍는다.

“끄으..”

퍽!

퍽-!

퍼억..!

으적, 으적

보호구 아래 가슴이 함몰되기 시작했다.

“······.”

“······.”

사방은 고요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번은 미쳐 날뛰는 것도 아니었다. 피와 광기에 파묻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장인이 쇠를 두드리듯, 가죽을 무두질하듯 그렇게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더 기이하고 오싹했다.

“..그만.”

어느새 다가온 은사.

그가 번을 내려보며 말했다.

후우우우웅-!

카이사르의 가슴에 떨어지던 번의 머리가 손가락 하나 정도의 높이에서 우뚝 멈췄다. 그 모습에 은사는 또 감탄했다.

“그만하면 됐다.”

“예.”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번이 카이사르의 몸 위에서 일어나 옆으로 섰다. 절뚝, 부러진 다리 하나가 거슬리는지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선다.

“하아, 하아, 하아..”

가쁜 숨도 차츰 가라앉는다.

흡사 가벼운 스포츠를 하다 멈춘 것 같은 모습. 이게 고작 아홉 살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으으으으으.. 으으으..”

카이사르는 지렁이처럼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아직 정신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12군데 이상 뼈가 부러졌고, 아홉 부위가 뜯겨진 상태였다. 처참해도 이렇게 처참할 수가 없었다. 모르고 본다면, 밤중에 좀비에게 습격당한 산골 청년 같달까? 앞으로 남자 구실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카이사르가 방심했다곤 하나..’

은사는 번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집정관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곤 급히 은사에게 묻는다.

“카이사르 황자님의 상태는?”

“목숨엔 지장 없을 거야. 사제들이 있으니, 상처도 금방 아물겠지.”

변방의 전쟁터라면 모를까, 여긴 대 에비뉴의 수도다. 신관과 마법사는 준비되어 있었다.

“휴.. 이거 난리 나겠군.”

집정관은 번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설마 이런 결과가 벌어지리라곤 그 역시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때,

"······!"

"······!"

담담하게 서 있던 번이 스르륵 허물어졌다.

정신력관 별개로 육체가 버티질 못한 거다. 그 역시 극도의 긴장 상태로 여러 능력을 유지했고, 허벅지 뼈는 완전히 부러졌으며 약 기운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뇌가 한계점에 도달했으니까.

핑-!

나가버린 의식은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쓰러지는 번을 은사가 스윽 이동해 부축했다. 모르겠다. 그냥 둘 수도 있었지만, 기특했달까? 그 집념과 투지도 마음에 들었고.

“독종이네.”

집정관이 다가오며 말했다.

은사는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10년 전이었던가? 그 전쟁터의 저분을 보는 것 같더군.”

은사가 한 곳을 향해 돌아섰다.

저 멀리 황제가 보였다. 집정관 역시 끄덕이며 의식을 잃은 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들어 올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첫 번째 대련! 번 리갈 드 요르간드 바야흐 황자님이 승리했음을 알립니다!”

본랜 이런 식으로 승패를 가릴 생각이 아니었다. 이 대련은 이기고 지는 것을 겨루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보아라. 저 군중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미, 미쳤다..!

수천의 사람들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아올라 숨죽이고 있다가, 이제야 그게 한 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번! 번! 번! 번-!

-최고다! 으와아아아아!

쿵! 쿵! 쿵! 쿵!

발을 구르며 번의 이름을 외치는 군중은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이나 신분을 떠나, 한 남자의 전투를 보았다고. 처절하고 용맹하며 무쇠도 녹일 수 있는 투지를 앞세운 이 투기장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진정한 전사戰士를 보았다고 말이다.

“······.”

그리고 이 남자. 황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서 말이다.

이것으로 부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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