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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 (162/170)
  •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

    아크는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상현을 생각했다. 오직 이상현이라는 ‘적’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두려움부터 앞서는 이유는 이상현이라는 적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이상현은 명실상부한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리더’니까.

    이상현과 비교해 자신은···.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순위 쟁탈전이라는 악마의 장난에 놀아났다.

    그래서 아크는 두려웠다. 어쩌면 이 운명이 자신의 운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야. 이길 수 있어! 운명은···. 내가 그러길 바라고 있으니까. 난 할 수 있어. 난 운명의 선택을 받은 존재야.’

    아크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몇 번이고 자신의 운명을, 거룩한 사명을 그 심장에 되새겼다.

    두근두근.

    심장의 떨림은 과연 누구에게 웃어줄 것인가?

    아크는 눈을 떴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밝았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지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나와 우리를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옥이었던 튜토리얼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분명했다. 나와 우리는 그들의 시선에 숨을 삼켰다.

    “이게 대체···.”

    “저 사람들은···.”

    “아아···!”

    “수민아!”

    “어, 엄마?!”

    “로빈! 로빈! 나라고!”

    “제시카아아!!”

    우리는 대답이 필요했다. 그래서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GM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GM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후후! 저분들은 관객이에요.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관객.』

    뭐, 뭐라고?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우승했을 때 되살아날 수 있는 분들이죠. 물론 지금은 죽었지만요. 아니, 반만 죽여놨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GM의 웃음소리는 섬뜩했다.

    『물론 다른 소원을 빌어도 돼요. 가령 나도 신이 되고 싶다든가 하는 것들요. 물론 그만한 대가를 치르겠지만요.』

    목소리도 섬뜩하고 오싹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일까? 악마가 인형의 탈을 뒤집어쓴 듯했다.

    꿀꺽.

    『뭐, 그런 것을 떠나서 명색이 결승전인데 관람객이 없으면 서운하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죠.』

    『자, 지금부터 애써 외면해왔던 절박함을 느껴보세요. 저들의 운명이,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절박함을, 70억 명의 무게를.』

    『네. 일종의 무대장치인 셈이죠.』

    『키득키득.』

    잊고 있었던.

    애써 잊으려 했던.

    두려움이 꿈틀꿈틀 기어 나왔다.

    “······.”

    우리는 침을 삼켰다.

    새삼 죽음의 게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서로 죽고 죽이는, 죽이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죽음의 게임이라는 사실이······.

    동시에 3일간의 휴식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GM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아, 결승전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정말 기대되네요.』

    우리는 숨이 턱턱 막혔다. 물론 GM에게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잡설이 길었군요.』

    『그래요. 말은 필요 없는 법이죠. 이기세요. 이기면 됩니다. 오직 승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구와 넥타르의 운명을 건 마지막 게임을.』

    그리고 마지막 게임이 시작되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 1차전]

    [지구: 이상현(100)│0승, 0패]

    [신하영(100)│0승, 0패]

    [잭 로어(100)│0승, 0패]

    [쿠론(100)│0승, 0패]

    [넥타르: 아크(100)│0승, 0패]

    [오르타(100)│0승, 0패]

    [게온(100)│0승, 0패]

    [오시리스(100)│0승, 0패]

    [1. 용병의 구슬(6회)]

    [2. 트롤의 피]

    [3. 수호자의 투구]

    ······.

    [9. 수수께끼 구슬(??)]

    첫 번째 아이템 선택 장소에 나온 아이템의 개수는 9개. 나는 심리전을 걸기 위해서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다.

    그러자 아크가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다. 단호한 표정을 보니 변수를 차단할 생각인 듯했다.

    아크가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상현.”

    그나저나 예선전에서 아크와 여러 번 만났지만, 이렇게 대화(?)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널 이길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널 이겨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말 것이다.”

    으음. 좋은 기백과 자세다. 비록 적이지만 마음가짐만큼은 본받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STFT 12년차 고인물답게 심리전부터 걸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치기에는 아까우니까.

    “난 5야. 넌 몇이니?”

    “···4다.”

    “저런! 다른 아이템을 찾아봐야겠구나. 힘내.”

    나의 가벼운 말투에 아크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심리전이 제대로 통한 모양이다.

    후후후!

    물론 한 번으로 끝나면 섭섭한 법!

    나는 심리전을 한 번 더 걸었다.

    “첫 번째 죽음의 방에서 보자! 내 말 알겠지?”

    “······.”

    아크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아크의 등을 통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죽음의 방.

    만약 내가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아크는 100% 따라 들어올 것이다.

    왜냐하면 아크는.

    무토와 닮은꼴이니까.

    「안녕! 만나서 반가워!」

    시작 챔피언은 꼬마요정이었다.

    너프를 당해서 전략적인 가치가 많이 떨어진 챔피언으로, 나도 잘 사용하지 않는데···. 챔피언 상점에 6꼬마요정이 있었다.

    “시작부터 7꼬마요정이라···.”

    나는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꼬마요정들을 구매했다.

    [꼬마요정(★★) 두 명이 탄생했습니다.]

    [꼬마요정(★)이 합류했습니다.]

    [44골드 남았습니다.]

    사실 내가 생각한 조합은 무난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땅 짐승 조합이다.

    왜 땅 짐승이냐면 객관적으로 땅 짐승 조합의 승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초반은 물론이고 중반, 후반에까지 강하면서도 만들기까지 쉬운 조합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땅 짐승 조합을 생각했는데···. 요정이 잘 나온다면 요정으로 바꿀 수도 있다.

    어떤 조합이든 간에 잘 나오는 쪽을 선택하면 최소 4등은 하니까.

    물론 지구의 운명이 걸린, 70억 명의 운명이 걸린 게임이니만큼 4등 따위에 안주할 마음은 없다.

    무조건 1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1-1)]

    [상대: 1위 아크(100)]

    [잔여 라이프(100)]

    [전투가 시작됩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 1차전]

    [1위: 아크(100)│4승, 0패]

    [2위: 오르타(95)│3승, 1패]

    [3위: 이상현(94)│3승, 1패]

    [4위: 신하영(89)│2승, 2패]

    [5위: 잭 로어(85)│1승, 3패]

    [6위: 게온(84)│1승, 3패]

    [8위: 쿠론(83)│1승, 3패]

    [8위: 오시리스(83)│1승, 3패]

    심리전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건 이미 심리전에 걸려들었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할까, 아크?”

    “······.”

    오르타의 물음에 아크는 이상현이 들어간 죽음의 방을 노려보았다.

    100% 심리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죽음의 방에 들어간 플레이어는 이상현 혼자니까.

    그래. 서버13279의 플레이어 중에서 이상현만이 죽음의 방에 들어갔다. 다른 플레이어는 들어가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폭? 아니면 진짜? 그것도 아니라면 뭐지?

    아크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못해 완전히 뒤엉켰다. 이 상황에서 정답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들어간다.”

    이상현이 심리전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아크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바로 이상현이니까.

    “그냥 무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걸 노린다면?”

    “으음···.”

    반박은 했지만 오르타에게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무시하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시하자고 말한 것이었다.

    “나는 이상현이 두 번이나 자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네 생각이 다르다면···. 그 생각에 따르겠다.”

    아크는 남아 있는 시간을 힐끔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오르타가 “들어가자.”라고 대답했다.

    “이상현이 아무런 대책 없이 혼자 들어갔을 리는 없을 테니까.”

    “···고맙다.”

    아크는 지금의 상황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리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심리전에 발을 담가야 하니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이상현의 심리전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구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슬을 이상현에게 넘겨주었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크는 이를 악물고.

    복수를 다짐했다.

    ‘각오해라, 이상현.’

    “나 혼자서는 죽음의 방을 공략할 수 없다. 그러니 너희들이 힘을 좀 써줘야겠다.”

    “??”

    “??”

    나는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지시했다. 왜냐하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혼자서는 죽음의 방을 공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골드를 다 써라. 그리고 넌 가능하다면 방패전사만 뽑아라. 그래야 방어가 될 테니까.”

    나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아크에게도 말했다.

    “넌 언데드를 뽑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전사 쪽이니까 해골전사를 뽑는 게 어떨까? 좀비하고 함께.”

    “지, 지금 이게 대체···?!”

    “심리전이 성공한 결과물이지. 그러니 어서 빨리 움직여. 꾸물거리다간 다 같이 죽는다.”

    “?!!”

    내 말에 아크는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챔피언들을 뽑기 시작했다. 오르타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꼬마요정(★)이 합류했습니다.]

    [꼬마요정이······.]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4성 꼬마요정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STFT하면서 오늘처럼 꼬마요정이 잘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 그 역사가 새롭게 쓰였다.

    [영웅 꼬마요정(★★★★)이 탄생했습니다.]

    「고깔마녀 아니, 요정 탄생!!」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뭐, 여전히 골드가 많이 남아 있지만 그건 사용할 수 없는 골드다. 왜냐하면 골드 이자를 받아야 하니까.

    그러니 아쉬울 게 많은 아크와 오르타가 고생을 해줘야겠지. 지금까지 모은 골드를 다 써서.

    심지어 조합까지 바꿔가면서 말이다.

    “뭘 하고 있어? 난 벌써 4성을 만들었단 말이다. 그렇게 꾸물거리다가는 다 죽는다? 싫어? 싫으면 자폭하든가.”

    “이, 이 자식···!!”

    나의 도발에 오르타는 분노를, 아크는 더 큰 분노를 곱씹었다. 그러나 둘은 손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지시한 대로 방패전사와 해골전사를 뽑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폭하기 싫으면 얼른 방패전사와 해골전사를 만들라고. 너희들도 잘 알잖아? 두 챔피언이 아니면 공략할 수 없다는 걸. 아차차. 좀비도 까먹지 말라고.”

    싫으면 시작부터 탈락이니까.

    “이상혀어어어언···!!”

    “소리 좋고.”

    내가 자폭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신하영과 잭 로어와 쿠론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꼬였을 때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해야 할까? 세 사람은 죽음의 던전에서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나는 ‘승점 자판기’를 만들 속셈으로 오르타와 아크를 죽음의 방으로 끌어들였다. 두 사람을 승점 자판기로 만들어버리면 꼬였던 줄이 풀릴지도 모르니까.

    다만, 이 작전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만약 오르타와 아크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허무하게 탈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수께끼 구슬에서 획득한 현자의 돌과 오래된 마법서도 허무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현자의 돌]

    ↳마법사 전용 아이템. 장착한 마법사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발동한다.

    [오래된 마법서]

    ↳마법사 전용 아이템. 스킬 사용에 필요한 마나가 20% 감소한다. 마법사가 장착하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상승한다.

    룬의 마법서를 만들 수 있는 다섯 개의 아이템 중에서 모으기 가장 어려운 두 개의 아이템이 허무하게 사라지면 탈락하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일 것이다.

    뭐, 작전이 성공했으니 그런 가정 따위는 무의미하지만···. 여하튼 작전은 성공했고, 보스몬스터 공략에도 성공했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모든 골드를 다 쓴 게 분명한 오르타의 영웅 방패전사와 아크의 영웅 해골전사 덕분이었다.

    참고로 내 영웅 꼬마요정도 한몫했다.

    꼬마요정은 고깔모자에서 괴물 흡혈귀 두 마리를 소환해서 공략에 힘을 보탰다.

    쓰러진 보스몬스터의 몸에서 여섯 개의 보물이 나왔다.

    [1, 요정의 고깔모자]

    [2. 드래곤 하트]

    [3. 야수]

    [4. 보름달의 짐승]

    [5. 살생부]

    [6. 날카로운 비수]

    마법사&짐승&암살자.

    보물들은 그 쓰임새가 분명했다.

    이번 선택으로 조합이 정해질 가능성은 90%에 달했다. 저만한 아이템들을 얻었는데 다른 조합을 선택한다면 손해니까.

    게다가 보스몬스터를 공략하느라고 많은 골드를 소모했다. 또다시 조합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난 요정의 고깔모자와 드래곤 하트를 선택하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때? 다 같이 죽을래 아니면 서로 나눠 가질래?”

    그래서 나는 또다시 심리전을 걸었다.

    오르타와 아크가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아주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자, 너희들이 선택해.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나는 팔짱을 꼈다.

    그러자 오르타가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이, 자식···!!”

    아크도 나를 노려보며 분노를 곱씹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를 견제하지 못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견제했다가는···.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할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두고 보자.”

    그렇게 나는.

    요정 조합에 필요한 어쩌면 룬의 마법서를 완성할지도 모르는 아이템들을 획득했다.

    [요정의 고깔모자를 획득했습니다.]

    [드래곤 하트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도발을 잊지 않았다.

    “다음에도 잘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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