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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16강(2) (144/170)
  •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16강(2)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16강(2)

    이상현의 자폭은 모든 플레이어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오죽하면 그 베르트랑조차도 “와. 저건 생각도 못 했네”하고 감탄했을까? 그 정도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서버 07782의 플레이어 네메시스는 참기 어려운, 심장이 서늘해지는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이, 상, 현···!!”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네메시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존’이 보장된 상태에서다.

    그런데 이상현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상현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승리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움찔움찔!!

    그렇다.

    쓸모없는 녀석을 희생시켜서 만든 게 아니라.

    가장 뛰어난 자신을 희생해서 만든 것이다.

    그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얼마나 믿으면···. 아니, 얼마만큼의 믿음을 줬기에 저럴 수가 있는 거지?”

    서로가 죽이고 죽는 튜토리얼을 거쳤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튜토리얼에서 같은 종족을, 사람을, 친구를, 가족을 죽였다. 그런 상황에서 믿음을 논할 가치가 있을까? 없다. 단언컨대 없다.

    그런데 이상현은 동료를 믿고 희생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쓰레기 같은, 도움은커녕 도리어 발목을 붙잡는 녀석들만 가득한데···.

    “···도대체 어떻게?”

    네메시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에 숨을 쉬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찌릿찌릿한 전율은 네메시스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넌···. 다르다는 거냐. 나와는, 우리와는 달리 쓰레기들 모아서 팀으로 만든 거냐.”

    팀이지만 적인 것과.

    적이지만 팀인 것이 다르듯이.

    완벽한 팀인 것 또한 다르다.

    네메시스는 이상현이 ‘팀’을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자신은 불가능한, 혐오스러워서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일을 이상현은 해냈다고 말이다.

    “역시 네놈은···!!”

    네메시스는 주먹을 꽈아악! 움켜쥐었다. 치밀어오르는 욕구는 참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네메시스는 그것을 꾹 참아내며 결승전에서 이상현과 만나기를 갈망했다.

    “기다려라, 이상현!!”

    아크는 이상현의 과감한 선택에 경악하는 것을 넘어 전율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완벽하게 허를 찔린 전략이었다. 그래서 충격과 두려움이 아크를 집어삼켰다.

    ‘몰랐어. 전혀 몰랐어. 설마 자폭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이상현이···. 자폭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아크는 이상현에 대해서 충분히 파악했다고 여겼다. 여러 번 싸우기도 했고, 또 예선전 1위 보상으로 받은 티켓으로 이상현의 플레이를 수십 번이나 분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이상현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미지의 존재였다.

    새삼 이상현이 적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싹.

    아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두려움을 꿀꺽! 집어삼켰다. 아니,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상현이라는 존재가 악마로 돌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을 믿고, 다른 사람들에게 운명을 맡길 수 있을까?’

    아크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 말고는 다른 대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터놓는 상대가 없을뿐더러, 만들 시간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내가 짊어진 운명을 맡기긴 어려울 거야. 솔직히 믿을 수 없으니까.’

    아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상현과 자신의 차이가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크는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동료들과 마음을 맞춘다면···. 충분히 팀이 될 수 있어.’

    이제 겨우 16강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많다. 최강의 플레이어인 이상현과 만나기 위해서는 결승전까지 올라가야 하니까. 그래서 아크는 지금이라도 ‘팀’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아크는 할 수 있다고, 반드시 해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반드시···. 이긴다.’

    라프탈 측 플레이어들은 이상현과 크로노스와 엘렌이 한꺼번에 탈락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경악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그 세 명이 탈락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기에 충격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됐어!’

    ‘작전이 성공했어!’

    그들과는 다르게 지구 측 플레이어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든 게 이상현의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맡은 역할을 실행했다.

    ‘두 명을 줄여 줬는데···. 질 순 없지!’

    세 사람의 역할은 간단했다.

    잭 로어는 승리를.

    신하영과 엘리자베스는 견제를.

    ‘이 패턴은 하라톤으로 이어지는 땅 짐승이야!’

    ‘피닉스 조합이라. 이거 참, 놀라운데? 이상현의 예측이 정확히 맞았어.’

    지독한 견제에 라프탈의 플레이어들은 서서히 말라 죽었다.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조합을 바꿔도 소용없었다. 신하영과 엘리자베스가 악착같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이···!!”

    물론 그만큼 신하영과 엘리자베스의 라이프도 깎였다. 물고 늘어지는 만큼 승패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잭 로어의 라이프는 조금도 깎이지 않았다. 잭 로어는 그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11연승. 여기까지 왔으면···. 무조건 내가 이긴다.”

    승부가 완전히 기운 것은 두 번째 죽음의 던전이었다.

    라프탈 측 플레이어들은 또다시 자폭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죽음의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크으윽! 빌어먹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악마의 방에 들어가야 했고, 죽음의 방을 차지한 지구 측 플레이어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잭 로어는.

    승리로 이어진 아이템을 획득했다.

    [죽음의 왕관을 획득했습니다.]

    [파라오의 황금가면을 획득했습니다.]

    [발키리의 날개를 획득했습니다.]

    만약 보통의 경우였다면 주사위를 굴리거나 다수결의 원칙 등등 견제를 받았을 것이다. 특히, 죽음의 왕관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아이템이니까.

    그러나 하나의 팀이었기에 견제 따위는 없었다. 잭 로어는 저 모든 아이템을 혼자서 독식했다.

    “이겼다.”

    잭 로어는 승리를 확신했다.

    내가 두 명을 끌어안고 자폭하면, 신하영과 엘리자베스가 적들을 견제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잭 로어가 승리를 쟁취하는 발할라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적들은 당황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죽음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16강 1차선에서 승리했습니다.]

    [10분 후에 2차전이 시작됩니다.]

    잭 로어는 전승으로 1차전을 끝냈다.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고 압도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아주 멋졌어요!!”

    먼저 탈락한 나와, 신하영과 엘리자베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귀환한 잭 로어를 환영해주었다.

    잭 로어는 쑥스러운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보다는 우리 덕분이라고 말했다.

    “별 것 아니었습니다. 전부 다 여러분 덕분이죠.”

    겸손한 말에 분위기는 더더욱 달아올랐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2연승으로 게임을 완전히 끝내는 것.

    굳이 귀찮게 3차전까지 끌고 갈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거였다. 흐름을 이쪽으로 끌어왔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 있습니다. 게다가 저쪽과 달리 우리는 심리적인 부담이 덜하니까요. 충분히 이깁니다.”

    강무혁은 자신만 믿으라며 소리쳤다. 아예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발할라 작전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했으니 이대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니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왔다.』

    바로 조커 카드라는 대형사고가.

    “뭐냐 저건.”

    “저건 예상 못 했는데.”

    “와···.”

    “망했다···.”

    “시작부터 조커 카드를 뽑다니. 미친놈이네.”

    “저거 또라이 아니야?”

    “뽑았으니 아니야.”

    적들은.

    아니, 한 명의 적이 시작부터 조커 카드를 사용해서 소드마스터-룬(★★★★★★)을 뽑아버린 것이다.

    그 탓에 2차 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라프탈에서 카이손을 주목하는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가까스로 튜토리얼을 통과한 16위였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예선전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가장 높은 순위라고 해봐야 3등이 전부였다.

    남들이 하다못해 2등이라도 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카이손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제기랄···.’

    카이손은 그런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벽은 결코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특히 크로노스와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래서 크로노스가 패배했을 때, 그 누구보다 속으로 비웃었던 사람이 바로 카이손이었다.

    ‘하! 실컷 잘난 척하더니만.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탈락해? 아무리 나라도 그곳에서는 탈락하지 않아!’

    물론 죽음이 코앞까지 닥쳐서 병신처럼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실력이 형편없으니 뭘 하겠는가? 또 누가 기대할까? 그 누구도,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기대하지 않았다.

    ‘조커 카드나 뽑고 빨리 끝내자. 어차피 8등일 테니까.’

    카이손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어차피 질 것이라면 빠르게 지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조커 카드를 뽑았다.

    [조커 카드 속에서 끝없이 단련하고 있던 소드마스터-룬(★★★★★★)이 당신의 부름을 받고 나타났습니다.]

    『그대가 나의 군주인가?』

    소드마스터-룬의 목소리는 고결했으며, 그의 등에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황금빛 망토가 걸려 있었다.

    “어···.”

    카이손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템 덕분이었다.

    죽기 직전에, 그러니까 1라이프를 남기고 획득한 최후의 수호자라는 아이템이 없었다면 진작 탈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해보았던 조커 카드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꽝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조커 카드를 뽑아버린 것이다.

    5골드·6성이라는.

    패배할 수가 없는 카드를.

    “꿈인가···?”

    카이손은 자신의 꼬리를 콱!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따끔한 것이 무척이나 아팠다.

    아아! 그렇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시작과 동시에 조커 카드를 뽑아버린 것이다!

    그것도 소드마스터-룬을!!

    카이손은 그 사실에, 1위인 크로노스도 해내지 못한 승리를 움켜쥐었다는 사실에 포효했다.

    “이, 이겼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승리는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권리였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졌다면 이렇게까지 절망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갈망했던 대로 운명을 걸고 싸우기는커녕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이럴 수가······.”

    진짜 이보다 허무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싸웠다면, 싸우기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크로노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내가 바랐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런 게 아니었다고. 이런 게 아니었어···!!”

    크로노스는 강인한 전사답게 정신을 수습하고 3차전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2차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100번 싸우면 99번은 질 게 뻔한데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또 무엇을 준비하겠는가? 그래서 크로노스는 사라진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아라크시여···.”

    기도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부정당한 크로노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크로노스는 영혼을 바쳐서라도 기회를 얻고 싶었다. 이상현과 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바로 그때.

    이제는 사라진 신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백 번 중에 한 번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기적이 카이손에게 일어난 것이다.

    “6, 6성이야!!”

    “6성 소드마스터라고!!”

    “우와아아아!!”

    라프탈의 플레이어들은 진심으로 환호했다. 그 소리에 크로노스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 차릴 수가 있었다.

    “다시···. 다시 싸울 수 있어!! 이상현과 싸울 수 있다고!!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가릴 수 있다고!!”

    카이손의 활약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려온 한 줄기의 빛이자 구원이었다.

    크로노스는 이때만큼은 진심으로 카이손에게 고마워했다.

    카이손의 활약으로 승부는 3차전까지 이어졌다. 라프탈 측에서는 2차전에서 대활약한 카이손을 포함해 크로노스와 엘렌, 시타가 출전했다.

    “보통 때였다면 내가 빠졌어야 했겠지만···. 오늘은 달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고!!”

    카이손은 1차전에서 허망하게 패배한 크로노스를 대신해 1번으로 출전했다. 크로노스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허망하게 패배한 것도 사실이고, 또 카이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상현과 제대로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상현···!!’

    지구 측에서는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네 사람이 그대로 출전했다. 엘리자베스와 신하영 대신 알렉스 로드 윈이나 강무혁이 출전할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패배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판단하여 출전을 포기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느낌이 별로야. 내가 출전하면 안 될 것 같아.”

    쿠론과 김인식도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부담스러운 역할을 맡기 싫어했다.

    “나도 오늘은 운이 나쁜 것 같아. 지켜봐서 알겠지만 계속 꽝만 뽑았어. 완전 최악이더라.”

    “괜히 새롭게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1차전에서 호흡을 맞췄던 두 분과 함께 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리하여 8명의 플레이어가 정해졌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16강(A조)]

    [지구: 이상현(100)│0승, 0패]

    [잭 로어(100)│0승, 0패]

    [신하영(100)│0승, 0패]

    [엘리자베스(100)│0승, 0패]

    [라프탈: 카이손(100)│0승, 0패]

    [크로노스(100)│0승, 0패]

    [엘렌(100)│0승, 0패]

    [시타(100)│0승, 0패]

    그리고···.

    『자, 지금부터.』

    『서버 13279와 서버 08085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GM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지구와 라프탈의 마지막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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