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예선전(3)
최종 예선전(3)
무토가 찾아낸 조합은 멧돼지, 악어, 아나콘다, 고블린 주술사, 하이에나 청소부, 오크주술사, 흡혈귀, 바실리스크, 도플갱어, 하라톤으로 이루어진.
10땅+6짐승+4암살자+2괴물+2언데드 조합이다.
조합의 강함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모의게임(Ⅰ)에서 여러 차례 검증했기 때문이다.
무토는 이 조합이라면 이상현을 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상현이 어떤 조합을 꺼내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상현! 바로 네놈을 위해서 준비한 조합이다!! 네놈이 아무리 날고뛰어봤자, 이 조합은 못 이길 거다!!”
게임의 시작은 상당히 괜찮았다. 황금 주머니에서 72골드가 나왔고, 원하던 챔피언들도 뽑았기 때문이다.
승패도 2승 2패로 괜찮았다. 라이프 감소도 10에 불과했다. 죽음의 방이라는 도박수도 통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뭐, 뭐야?!”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죽음의 방에서 나온 것이 고작해야 황금 주머니라니···.
황금 주머니만 아홉 개가 나오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도대체 어떻게?!
“으아아아아···!!!”
후반으로 가면 그 가치가 절대적으로 하락하는 황금 주머니를 획득할 생각이었다면 위험한 도박수를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토가 바랐던 것은 아이템이었다. 하찮은 골드 따위가 아니라 땅 조합에 필요한 아이템 말이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황금 주머니만 나왔고, 그마저도 101골드라는 초라한 금액이었다.
그래서 무토는 광분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크으윽!!!”
분노가 활활 타오를수록 그 이상으로 무토는 냉정해졌다. 대단히 모순적인 일이지만, 이상현에 대한 분노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종 예선전(1-5)에서 이상현을 만났다.
“이, 상, 현!!”
무토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은 이상현은 물론이고 무토 그 자신마저도 집어삼켰다.
나는 무토와 다시 만났다는 반가움에 도발을 걸었다.
“어? 아직 살아있네? 죽음의 던전에서 탈락한 줄 알았는데.”
가벼운 도발에 무토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따위 하찮은 도발이 나에게 먹힐 것 같은가?”
대답한 시점에서부터 말려든 거나 마찬가지다. 또 그걸 모른다는 게 치명적이고.
나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 표정을 보니 잘 먹힌 것 같은데?”
“웃기는 소리.”
살짝 격앙된 반응을 보니 즐겁다. 이래서 고수들이 뉴비(?)를 괴롭히는 걸까? 게임을 하는 맛이 있다.
물론 이 게임은 STFT가 아니지만···.
“나는 그따위···.”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나는 벼락과도 같은 타이밍에 끼어들어서 무토의 말을 가로챘다. 그러자 무토의 표정이 꿈틀! 흔들렸다.
“이···!!”
“아, 게임 시작한다. 그럼, 다음에 보자! 저번처럼 나랑 싸우기도 전에 탈락하지 말고. 알겠지? 힘내! 너라면 할 수 있어! 파이팅!!”
도발은 마지막까지 완벽해야 하는 법. 나의 도발은 겉으로 냉정해 보이는 무토에게서 분노를 끌어냈다.
“이상혀어어어언!!”
“야, 게임에 집중하자. 그렇지 않아도 성적도 나쁘면서. 쯧쯧쯧! 그러니까 성적이 나쁘지.”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무토의 챔피언들은 도플갱어를 뽑는 게 분명한 빌드였다. 언데드이자 짐승인 도플갱어를.
“도플갱어라. 짐승 조합인가? 하지만 멧돼지가 3성인 것을 보니···. 땅 속성이군.”
나는 무토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내가 한때 ‘도플갱어 마스터’였기 때문이다. 머리가 깨지든 말든 무조건 도플갱어만 했던 도플갱어 마스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라톤이라. 뭐, 좋은 챔피언이지. 나도 잘 써먹었으니.’
그 당시에 하라톤의 강함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라톤의 숨겨진 힘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도 아마 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령 조합이라는 거.’
무토가 만들고자 하는 땅+짐승 조합도 좋지만 그렇다고 정령 조합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STFT 시즌 6에서 정령 조합, 그러니까 피닉스는 사기다. 잘 풀린 마법사 조합이 아니면 99% 못 이긴다.
‘나를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안 됐네. 내가 회귀자라서 말이지.’
나는 무토를 동정하며, 가볍게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도발을 잊지 않았다.
“애송이!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
무토의 대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하하하!!”
나는 최종 예선전(1-5)의 승리에 힘입어 (1-6)과 (1-7)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아이템이군.”
플레이어들의 목적은 영웅의 전당의 아이템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힘없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뭐, 그 덕분에 영웅들과의 전쟁을 앞둔 내 골드는 196골드가 되었다. 레벨을 상승시키기에 좋은 골드다.
나는 버튼을 두 번 눌렀다.
[레벨 7이 되었습니다.]
[96골드 남았습니다.]
7레벨!
이제 곧 4골드 챔피언인 지니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물, 불, 바람, 땅, 그리고 요정이자 악마인 지니가! 그렇게 되면 정령 조합은 사실상 완성이다.
지니만 손에 넣으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살라만더도 실피드도 레벨만 올리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죽음의 신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순간이 오기만을.
[이···상···현.]
이제 곧.
이상현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예선전을 통과한 이상현과.
만날 것이다.
만나게 될 것이다.
아니, 만나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상···혀어어언!!]
그때까지.
살아남아라.
반드시 살아남아서.
그곳에서 만나자.
[큭···큭. 크···하하하!!]
섬뜩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최종 예선전까지 오면서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엇비슷해졌다. 차이가 나는 부분은 타고난 ‘행운’뿐이었다.
[최종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이상현(100)│7승, 0패]
[2위: 베르트랑(94)│6승, 1패]
[3위: 아크(88)│5승, 2패]
[4위: 무토(78)│3승, 4패]
[5위: 아프락스(74)│2승, 5패]
[6위: 제네시스(73)│2승, 5패]
[7위: 아비게일(72)│2승, 5패]
[8위: 다곤(64)│1승, 6패]
2승 5패로 두 명과 동률임에도 1라이프 차이로 7위를 차지한 아비게일은 영웅의 전당에서 ‘발키리의 날개’를 획득했다.
후반에 그 어떠한 아이템보다 좋은, 심지어 초반에도 좋은 발키리의 날개를 손에 넣은 것이다.
“역시! 초반에는 순위가 낮은 게 최고야!!”
아슬아슬한 패배의 보상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아비게일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한 끗 차이로 발키리의 날개를 놓친 제네시스는 ‘악마의 눈’을 선택했다.
‘배신의 깃발만 획득한다면···!’
악마의 눈을 선택한 게 좋은 선택인지는 쭉 지켜봐야 알겠지만, 배신의 깃발보다 더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이 바로 악마의 눈이었다.
무토가 선택한 것은 ‘짐승의 어금니’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사실상 짐승 조합인 무토에게 짐승의 어금니는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현재 3위인 아크가 선택한 아이템은 마법사 조합과 잘 어울리는 ‘요정의 고깔모자’였다.
‘제우스의 번개가 없는 게 아쉽지만···.’
아크는 아쉬움을 삼켰다. 그 이유는 시작부터 100골드를,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217골드를 획득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영양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아크는 입맛을 다셨다. 아쉬움은 상당히 컸다.
현재 2위인 베르트랑은 본인의 성격을 잘 보여주듯이,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다.
“꽝이려나?”
[수수께끼 구슬(??)에서 좀비-카크름(★★★★★★)이 나타났습니다!]
“오, 성공이네.”
미친 운빨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뽑기 실력이었다.
베르트랑과 같은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최종 예선전이 끝난 다음에 그녀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1위인 이상현은···.
‘역시. 이것의 쓰임새를 모르는군.’
정령 조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플레이어들에게 가여움마저 느끼며 아이템을 선택했다.
[악마의 기울어진 저울 선택했습니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지독한 불꽃을 쏟아냅니다.]
[악마의 기울어진 저울]
↳전장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소환한다. 불꽃은 999초 동안 타오르며 아군에게는 88의 불의 피해를, 적군에게는 44의 불을 피해를 입힌다.
단순히 아이템 능력만 놓고 보면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다. 착용하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이며, 그나마 체력회복이 가능한 골렘에게 착용시키면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라서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정령 조합을 선택한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령(4)을 완성하면 저울의 불꽃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의 피해도 받지 않으면서 모든 적에게는 1초마다 44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보다 사기적인 아이템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STFT에서는 저 아이템이 나오면 무조건 저것부터 처리했다.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으니까.
“?!”
이거 참.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일까?
[켄타우로스(★)┃지니(★)┃유니콘(★)┃케르베로스(★)┃마녀(★)┃운디네(★)]
챔피언 상점에는 지니가 있었다. 정령 조합을 선택한 플레이어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인 지니가.
7레벨을 만든 지 몇 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지니(★)가 합류했습니다.]
[유니콘(★)이 합류했습니다.]
[116골드 남았습니다.]
두근두근.
잘 풀리는 게임에서는 심장이 뛴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반대로 안 풀리면 기분이 매우 나빠져서 다른 의미로 얼굴이 달아오르지만, 여하튼 이번에는 잘 풀렸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잘 풀려서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다.
[최종 예선전(1-8)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93라이프가 남았습니다.]
···6성 두 마리는 반칙이지.
최종 예선전까지 올라온 플레이어 중에서 발키리의 날개에 대해 모르는 플레이어는 없다.
그리고 5초 안에 발키리의 날개를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도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곤은 발키리의 날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할 것이다.
왜냐하면 발키리의 날개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나왔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이걸 선택하겠다!!”
다곤은 그것을 보자마자 그것을 선택했다.
현재 만들고 있는 조합과는 무관한 아이템이었지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악마의 성배를 선택했습니다.]
드래곤을 뽑을 수 있는 악마의 성배였다.
악마의 성배! 6골드 최강의 챔피언 중 하나인 드래곤을 뽑을 수 있는 아이템!
“크흐으으!!”
다곤은 치밀어 오르는 전율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드래곤을 뽑기 위한 골드도 부족하지 않았다.
[괴물 드래곤(★★★)이 탄생했습니다.]
부족하기는커녕 114골드가 드는 3성 드래곤을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95골드가 남았다.
“다 부숴버려!!”
다곤은 3성 드래곤과 함께 지금까지의 연패를 끊고 최종 예선전(1-8)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상대는 괴물 드래곤을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1-9)에서 이상현을 만났다.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 이상현!!”
다곤에게도 이상현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하는 벽이었다. 현재 전승을 거둔 플레이어는 이상현이 유일하니까!
그래서 다곤은 지금의 승부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