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예선전(2)
최종 예선전(2)
해골전사-카쿰이 녹슨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절그럭절그럭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공허한 카쿰에게 존재하는 것은 타오를 듯이 눈부신 빛뿐이었다. 자신을 불태우는 따스한 빛. 오직 그 빛만이 유일했다.
카쿰은 그 빛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녹슨 검을 휘둘렀다.
서걱.
오래전에 녹슨 검은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도리어 단단하고 두꺼운 골렘의 팔을 잘라냈다.
“고오올!!”
비명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골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카쿰은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서걱.
간신히 재생된 골렘의 팔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 모습을 본 꼬마요정이 “이 못된 해골바가지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알록달록한 사탕을 마구 던져댔다.
시퍼런 도깨비불도 불을 토해내며 카쿰을 공격했다.
물론 카쿰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잠시 후, 카쿰이 골렘을 끝장냈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카쿰에게는 시시한 일이었다.
해골전사-카쿰은 텅 빈 눈으로 꼬마요정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꼬마요정의 존재는 무척이나 거슬렸다.
“히, 히이익···!!”
부들부들! 꼬마요정은 공허한 눈빛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황급히 고깔모자를 뒤집었다.
“도와줘, 친구들아!!”
그러자 고깔모자에서 세 명의 친구가 나타났다.
최종 예선전(1-1)에서 해골전사-카쿰(★★★★★★).
조커 카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1-1)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강의 챔피언이다. 그런 챔피언을 상대로 패배한들 뭐가 아쉽겠는가? 아무렇지도 않다.
패배해서 분하기보다는 이번에도 태생적인 운이 좋은 플레이어와 붙어서 성가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걸 이겼다고?”
그런데 이겨버렸다.
1골드·6성 해골전사를 상대로 승리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이겼음에도 어처구니가 없는 승리였다.
“와, 신기하네.”
나는 기묘한 승리에 실없이 웃으며 챔피언 상점에서 마녀와 드루이드를 구매했다.
[마녀(★)가 합류했습니다.]
[드루이드(★)가 합류했습니다.]
[59골드 남았습니다.]
정말이지 산뜻한 출발이다.
못 이길 거라고 판단했던 전투에서 승리하고 마녀는 물론이고 드루이드까지 나왔으니까 말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아무리 무덤덤한 사람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
베르트랑은 한쪽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미묘한 표정 변화였지만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진심으로 경악했을 것이다. 항상 귀찮아하는 그녀가 놀랐으니까!!
“이걸 졌다고?”
4성도, 5성도 아닌 6성이다. 심지어 1골드 최강의 챔피언이라고 평가받는 해골전사인데도 지다니.
베르트랑은 자신의 운이 졌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다.
“···뭐, 단순한 변덕이겠지만.”
패배의 요인은 분명하다. 행운의 여신의 변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베르트랑은 다시 관심을 끄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귀찮아~.”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의 기막힌 행운에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했다. 그 이유는 최종 예선전 다음이 선발전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인간들끼리 싸우는 선발전.
‘오늘따라 상당히 운이 좋은 것 같은데?’
‘으음.’
‘실력도 실력인데 운까지 좋으면···.’
‘···그렇다고 패배하라고 응원할 수도 없으니.’
그들의 표정은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뭐, 그래도 당장 급한 것은 최종 예선전이었기에 기뻐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그나저나 저건 또 무슨 조합이지?’
‘요정? 마법사?’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봐야겠지. 이상현은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으니까.’
그들은 이상현이 새로운 조합을 꺼내 들었다고 판단했다.
김원호와 김인식도 이상현이 특별한 조합을 발견했다고 여겼다.
“이번에도 새로운 거겠지?”
“아마도 그렇겠죠. 그게 아니라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챔피언들을 창고에 모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신하영은···.
‘정령 조합이야!’
이상현이 만들고자 하는 조합이 정령 조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최종 예선전(1-2)와 (1-3), (1-4)에서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초반에는 이기는 것보다 적당한 패배로 아이템을 챙기는 게 이득이라는 공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뭐, 그 덕분에 조금이지만 연승 골드를 받게 되었고, 가뿐히 100골드를 넘겼다.
현재 내가 소유한 골드는 119골드다.
사실 운디네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은 탓에 골드를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움은 몇 마리씩이나 나왔지만···. 노움부터 뽑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까워도 무시해야만 했다.
무난하게 1등을 한 덕분에 나는 짐승의 방이라는 난이도가 가장 낮은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
[운디네(★)┃엘프(★)┃엘프(★)┃드루이드(★)┃고블린 주술사(★)┃꼬마요정(★)]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운디네가 나타났다.
나는 엘프와 함께 운디네를 구입했다.
[운디네(★)가 합류했습니다.]
[엘프(★) 두 명이 합류했습니다.]
[110골드 남았습니다.]
[운디네(★)]
속성: 물, 정령
직업: 그림자, 요정
공격력: 70
방어력: 70
체력: 800
마나: 200/200
스킬: 물의 축복
평범한 능력치를 가진 챔피언이지만 운디네의 가치는 꼬마요정처럼 스킬에 있다.
[물의 축복]
↳물 속성이 아닌 아군 한 명에게 축복을 내린다. 물의 축복을 받은 아군의 체력이 50% 상승한다(단, 불 속성은 제외된다).
체력을 자그마치 50%나 상승시켜주는 스킬을 가치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물 속성과 불 속성 챔피언에게는 사용할 수 없지만, 정령(4)을 완성하면 그딴 것도 없다.
모든 속성에게 다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물의 축복을 피닉스에게 줄 수만 있으면···. 그때는 진짜 끝장난다.
“그나저나 히드라라. 아이템을 기대해도 괜찮겠는데?”
짐승의 방에서 나온 보스몬스터는 놀랍게도 1성 히드라였다.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6골드 챔피언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매우 좋은 징조다.
내 12년 경험이 보증한다.
「그워어어!!」
히드라는 그래도 6골드 챔피언답게 강력했다. 하지만 골렘의 체력 회복속도가 더 빨라서 두들겨 맞다가 끝났다.
나는 두근두근 기대했다.
과연, 저 히드라에게서 무엇이 나올까?
[보스몬스터 히드라(★)를 쓰러뜨렸습니다. 히드라의 몸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네 개의 보물이 나왔습니다. 세 개의 보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황금 주머니(1~100)]
[2. 피닉스의 심장]
[3. 드래곤 하트]
[4. 트롤의 피]
“···이렇게까지 잘 나왔다고?”
아이템이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잘 나와도 너무 잘 나왔다.
그 탓에 나는 도리어 불안해졌다. 그 이유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잘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나친 생각이면 좋겠지만 STFT 생리가 그렇다.
나만 잘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떻든 간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황금 주머니(1~100)를 선택했습니다.]
[1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피닉스의 심장을 획득했습니다.]
[드래곤 하트를 획득했습니다.]
그나저나 죽음의 방으로 들어간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수 없게 탈락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통과했다면···. 어떤 아이템을 획득했을까?
혹시 최고급 아이템을 획득한 건 아니겠지?
으음. 불안하다.
무모함과 과감함은 다르다.
무토는 과감하게 죽음의 방으로 들어갔다.
해골전사-카움(★★★★★★)을 가지고 있는 베르트랑이 죽음의 방으로 들어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온다! 무조건 온다!!’
만약 베르트랑이 무토의 예상대로 죽음의 방으로 들어온다면 죽음의 방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트랑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무토의 과감한 선택은 무모함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탈락이다.
최종 예선전(1-4)만에 탈락하는 것이다.
‘온다!!’
잠시 후, 무토의 과감한 선택이 빛을 보았다.
베르트랑! 그녀가 죽음의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내가 안 왔으면 죽었을 텐데. 정말 운이 좋으신 분이네. 내가 들어와서 살았으니까.”
베르트랑은 무토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인지 얄팍한 표정을 지으며 조롱했다.
무토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딴 것보다는 이상현을 이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그 무엇으로 감출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기다려라, 이상현!! 내 손으로 널 쓰러뜨려 주마!!’
베르트랑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아크였다.
아크는 베르트랑이 죽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왔다.
‘6성 해골전사와 함께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어!’
아크의 예상대로 6성 해골전사와 함께하니 죽음의 방을 공략할 수 있었다.
[보스몬스터 창병-쿠훌린(★★★★★★)과 방패전사(★★★★★)의 몸에서 황홀하게 반짝이는 아홉 개의 보물이 나왔습니다. 세 개의 보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해골전사-카쿰이 창병-쿠훌린부터 공격하지 않았다면, 쿠훌린부터 각개격파하지 못했다면, 패배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세 개!!”
아슬아슬한 승부의 보상은 아홉 개의 보물과 세 개의 선택권이었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죽음의 방에서 세 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얻다니?!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더 믿기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1. 황금 주머니(1~100)]
[2. 황금 주머니(1~100)]
[3. 황금······.]
······.
“뭐, 뭐야 이건?!!”
STFT 12년 역사를 통틀어 황금 주머니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온 적은 없을 것이다.
아홉 개! 무려 아홉 개의 황금 주머니가 나온 것이다.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었다. STFT 보물섬 전장 최고 기록이 여덟 개인데, 그것을 오늘 갱신한 것이다.
만약 이상현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오, 맙소사! 죽음의 신이시여!”라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무토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날이었다.
“왜 황금 주머니만 나와?! 보물섬 전장이라서? 보물섬 전장이라서 황금 주머니만 나왔다고?! 이, 이런 빌어먹으으으을!!!”
무토는 괴성을 질렀다.
“······.”
시종일관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크도 속으로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을 삼켜야만 했다.
‘뭔가 제대로 꼬인 느낌인데···. 아니야. 황금 주머니도 나쁘지 않아. 골드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뭐, 베르트랑은 그러려니 했다. 그 이유는 이번과 비슷한 일을 이미 겪어봤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무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이유는 황금 주머니 세 개에서 총 101골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상현이 하나를 까서 100골드를 얻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실패도 이런 실패가 없었다.
‘아, 시끄러.’
운디네는 굳이 3성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2성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마나통이 200이라서 스킬을 두 번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운디네(★★)가 탄생했습니다.]
나는 운디네를 2성으로 만들었다.
3성으로 만들고 드래곤 하트를 넣어서 스킬을 두 번 쓰게 만들 수도 있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나는 다음으로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러서 노움을 찾았다. 황금 주머니 덕분에 골드는 충분했다.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습니다.]
[새로운 챔피언들이 나타났습니다.]
[챔피언 변환······.]
몇 번 누르자 드디어 노움이 나타났다.
[노움(★)이 합류했습니다.]
2성으로도 충분한 운디네와 달리 노움은 반드시 3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엘프도.
[괴물 노움(★★★)이 탄생했습니다.]
[괴물 엘프(★★★)가 탄생했습니다.]
[마녀(★★)가 탄생했습니다.]
나는 겸사겸사 마녀도 2성으로 만들었으며, 더는 필요가 없는 챔피언들을 정리했다.
[악어(★★)를 판매했습니다.]
[슬라임(★★)을 판매했습니다.]
[드루이드(★)를 판매했습니다.]
[150골드 남았습니다.]
“정보 확인.”
나는 노움의 정보를 확인했다.
[괴물 노움(★★★)]
속성: 땅, 정령
직업: 요정, 수호자
공격력: 202
방어력: 202
체력: 2890
마나: -
스킬: 지진
3골드 챔피언치고는 능력치가 다소 허접하지만 운디네와 마찬가지로 스킬에 그 가치가 있다.
[지진]
↳성난 노움이 주먹으로 땅을 내리칠 때마다 주변 2칸에 기본공격×2배의 피해를 입힌다.
보다시피 거인의 발자국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그래서 노움을 중심으로 한 수호자 조합이 랭크 게임에 종종 등장했었다. 나도 몇 번이나 사용했었고.
나는 35골드를 써서 5레벨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전장에 골렘과 꼬마요정, 도깨비불, 노움, 운디네를 배치했다.
지금부터는 골드를 모으고 레벨 업을 하면서 꼭꼭 숨어버린 지니가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물, 불, 바람, 땅 속성을 다 갖춘 지니가 핵심이다.
지니가 없으면 정령(4)은 만들어봤자다.
붕어 없는 붕어빵에 지나지 않는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최종 예선전(1-5)]
[상대: 무토(90)]
[잔여 라이프(100)]
[전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