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2)의 끝(2)
튜토리얼(2)의 끝(2)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STFT에 무적은 없다. 9마법사도 완벽한 무적은 아니다.
최강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무적까지는 아니다.
하이에나 왕의 하극상. 스킬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발동조건이 까다로워서 실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데, 이렇게 위험한 활약을 펼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두근두근.
죽음의 게임이지만.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 되는 생존경쟁이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승부욕이 들끓어서 참기 어려웠다.
내가 STFT를 하는 이유.
내가 STFT를 했던 이유.
내가 게임을 즐기는 이유.
그 이유가 방금 드러났다.
흥미진진한 승부와 아찔한 승리!!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서 지난 12년 동안 STFT를 했던 것이다.
무려 12년 동안 말이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하자.
이건, 유니버스 STFT는, 게임이 아니라 전쟁이다.
생존이 걸린 무자비한 전쟁.
끔찍한 악몽.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즐거운 일이 아니다.
정신 차리자.
[아슬아슬했군.]
바람의 신이 뒤에서 말했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대답했다.
“···제 잘못은 없습니다. 김아람의 운이 좋았을 뿐이죠. 전설의 하이에나 왕. 그거, 저와 싸우기 전에 나온 것 같은데, 맞습니까?”
나의 물음에 바람의 신이 대답해주었다.
[맞다. 불과 10초 전에 나왔지.]
그럼 그렇지.
역시, 조커 카드였다.
“싸우기 10초 전에, 그것도 타이탄을 죽일 수 있는 챔피언이 나온다면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죠.”
조커 카드에서, 전투까지 10초를 남겨두고, 때마침 괴물 타이탄을 쓰러뜨릴 수 있는 챔피언이 나올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최소 로또 2등과 비슷할 것이다.
그 정도의 확률(행운)인데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뭐, 어찌어찌 잘 이겼지만,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지는 게 당연한 판이었다.
5골드·5성의 챔피언이니까.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결과적으로 제가 이겼고, 다시 붙는다고 해도 배치만으로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전의 배치는 ‘가로’ 배치였다. 실피드의 스킬인 바람의 파도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고 그랬는데, 그 결과 타이탄의 앞쪽이 노출되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하이에나 왕이 타이탄의 목을 딴 것이다.
말하자면 ‘앞쪽’이 노출돼서 죽은 것인데, 타이탄을 오른쪽이나 왼쪽 구석에 배치시켜서 벽을 치듯이 챔피언들로 둘러싸면 문제가 해결된다.
뭐, 마법사들이 워낙 물몸이라서 방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겠지만, 방패가 부서지기 전에 전투가 끝날 거라서 큰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괴물 실피드(★★★)를 만들었다.
아무리 보조 계열이라지만 실피드도 최강의 6골드 챔피언이다.
게다가 요정의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김아람과 다시 붙게 된다면.
아까와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바람의 신은 납득했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영웅의 전쟁터로 시선을 돌렸다.
황혼에서 나타난 영웅들은 드래곤 하트를 두 개씩 장착한 영웅 사령술사들이었다.
“죽···음···을···퍼···트···려···라···.”
“아···아···아.”
STFT에서 가장 기묘한 조합을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무조건 언데드 조합이 뽑힐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조합들과 달리 ‘머릿수’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가령 전사의 경우 방패전사+창병+궁수와 같이 각기 다른 전사들로 구성해야지만 3전사가 되는데, 언데드는 그게 아니다. 해골전사+해골전사+해골전사만 있어도 3언데드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더 기묘한 점은 구울의 스킬인 ‘좀비감염’으로 인해 늘어난 언데드와 ‘아이템’으로 인해 늘어난 언데드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투 중에 늘어난 언데드도 ‘머릿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번 늘어난 ‘머릿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10언데드를 만들었으면, 남아있는 언데드의 수가 1마리든 2마리든 무조건 10언데드로 계산한다.
그래서 언데드 조합은 기묘하다.
“살···아···나···라···.”
그리고 언데드 조합의 기묘함을 더더욱 증가시키는 챔피언이 바로 사령술사다.
[시체 살리기]
↳시체를 살려서 좀비로 만든다. 되살아나는 좀비의 등급은 사령술사와 동일하며, 사령술사의 등급에 따라 좀비의 공격력과 방어력과 체력이 추가로 상승한다. 하나의 시체에서 좀비를 두 번 만들지는 못한다.
시체 살리기.
시체를 살려서 좀비(언데드)로 만드는 스킬.
여기서 말하는 시체란 전장에서 죽은 챔피언을 말하며, 아군 ‘언데드’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언데드 아군에게서 좀비를 뽑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령술사가 스킬을 사용할 수만 있으면 10언데드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사령술사에게 드래곤 하트를 두 개 장착시킬 수만 있으면, 5초마다 좀비를 뽑아낼 수가 있다.
“되···살···아···나···라.”
좀비라는 녀석은 언데드 최악의 챔피언인데다가 1골드 최악이지만 사령술사가 무한으로 만들어내는 10언데드 좀비는 최악이 아닌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그 이유는 좀비의 스킬인 맹독이 ‘독’의 피해를 두 배로 늘려주기 때문이다.
그래, 두 배다.
말하자면 좀비 따위가 400의 고정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것도 등급에 상관없이.
만약 죽은 자의 손톱 아이템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 500, 600도 가능하다.
그런데 사령술사가 좀비를 무한으로 만들어낸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세상을 멸망시키는 좀비군단을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사령술사의 등급이 높아야 되고, 드래곤 하트를 두 개나 구해야 돼서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처럼 무한 언데드도 가능하다.
좀비에서 좀비를 만들고, 그 만들어진 좀비에서 좀비를 만드는 무한 언데드가.
“죽···여···라···.”
“죽···여······.”
만약 타이탄이 시작부터 사령술사 넷을 없애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바스러져라.”
콰과과광!!!
영웅 사령술사 열 마리에다가 심지어 드래곤 하트가 두 개씩 박혀 있다니. 하마터면 “미친 거 아니야?”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
그 정도로 난이도가 터무니없어서.
나는 솔직히 황당했다.
혹시 죽음의 신이 손을 쓴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투자자에게 물어보았다.
“···누가 간섭한 거 아니죠?”
[설마, 그럴 리가.]
나의 물음에 바람의 신이 아니라고 대답해주었지만, 솔직히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믿어야겠지.
“사라져라.”
우르르르콰과과과광!!
괴물 타이탄의 우레가 전장에 내리치고, 마지막 남은 사령술사가 바스러졌다.
“······.”
뭐, 어쨌든 이겼으니.
찝찝하지만 괜찮은 승리라고 해야 될까?
으음.
왠지 모르게 더 찝찝해졌다.
[열 명의 영웅 사령술사(★★★★)를 쓰러뜨렸습니다.]
[영웅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영웅의 전당으로 이동합니다.]
역시, 찝찝한 느낌이 그대로 이어졌다.
만약 좋은 아이템이 두 개밖에 나오지 않고, 그마저도 앞에서 다 가져간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하다못해 황금 주머니라도 선택하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가져간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수수께끼 구슬.
그것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뭐, 쓰레기 같은 아이템이라도 차라리 그걸 선택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템은 아이템이라고 도움은 될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아깝다. 이 기회가 아깝다. 한 바퀴 돌아야지만 찾아오는 소중한 기회를 쓰레기 아이템 하나 얻자고 소모하는 건···. 진짜 못할 짓이다.
물론 수수께끼 구슬에서 쓰레기보다 더한 폐기물이 나올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100배는 더 높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도전하는 자만이.
아이템을 얻는 법이다.
[10초 안에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나는 수수께끼 구슬을 향해서 과감히 손을 뻗었다. 떨리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이걸 선택하겠다.”
수수께끼 구슬.
나는 이 구슬을 수천 번도 더 넘게 선택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언제나 쓴맛이었다.
쓰디쓴 민트초코의 맛.
대박이 뜬 경우는 아마 백 번이 채 안 될 것이다.
수수께끼 구슬에서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그 정도로 낮다.
통계적으로 1%라는데, 체감상으로는 그 이하다. 0.1%도 안 되는 것 같다.
뭐, 그만큼 떴을 때는 대박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기대하면 배신당하는 법이다.
내가 많이 배신당해봐서 잘 안다.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습니다.]
[수수께끼 구슬이 부르르! 요동칩니다! 구슬 안에 숨겨져 있던 대마법사의 지팡이를 획득했습니다!!]
[이미 대마법사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대마법사의 지팡이를 조합하시겠습니까?]
[단, 조합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
그런데 대박이 아닌 대박이 떴다.
오직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의 지팡이.
“조합한다!!”
만약 내가 마법사 조합이 아니었다면 “아, 망할.” 소리가 나올 만큼 쓰레기 아이템이지만, 마법사 조합이기에 감히 “대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개의 대마법사의 지팡이가 태초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거룩한 용암나무 지팡이가 당신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용암나무 지팡이]
↳마법사 전용 지팡이. 마법사가 장착하면 마법사의 등급이 한 단계 높아진다. 강력한 마법화살의 위력이 두 배 증가하며, 전투 시작과 동시에 발사한다. 또한 마나 회복 속도가 두 배 빨라지며, 적 챔피언을 처치할 때마다 추가로 +40의 마나를 회복한다.
마법사를 그야말로 대마법사로 만들어주는.
마법사 전용 아이템!!
「오오!! 위대한 마법의 힘이 샘솟아 오른다!!!」
[영웅 마법사(★★★★)에게 용암나무 지팡이를 장착시켰습니다. 영웅 마법사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전설의 마법사(★★★★★)가 신비로운 마법의 힘을 뽐냅니다.]
이제 마법사는 마법사가 아니다.
타이탄 그 이상의.
괴물이 되었다.
민정식은 튜토리얼(2-5)부터 이어진 3연패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내가···. 내가 3연패라고? 튜토리얼(1)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한 내가 3연패라고? 3연승도 아닌 3연패?
“그럴 리가 없어···.”
그 탓에 영웅의 전쟁터에서도 집중하지 못했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이건 말도 안 돼···.”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현실을 부정했다.
[두 번째 선택자]
[3번 플레이어 민정식]
“?!”
그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서.
아이템을 선택했다.
아니, 다급히 붙잡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민정식은 그 아이템이 어떤 아이템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았을 뿐이다.
[드래곤 하트를 선택했습니다.]
민정식이 선택한 아이템은 놀랍게도 드래곤 하트였다. 그리고 민정식에게는 드래곤 하트가 두 개 더 있었다.
[드래곤(★★)이 있습니다. 세 개의 드래곤 하트를 드래곤(★★)에게 장착하시겠습니까?]
[단, 장착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장착···한다.”
민정식은 장착이라는 단어의 뜻을 해석하지 못할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장착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고, 드래곤 하트들을 드래곤(★★)에게 장착시켰다.
[세 개의 드래곤 하트가 합쳐져 신비롭고 강력한 힘을 뿜어내는 여의주가 탄생했습니다!!]
[드래곤(★★)이 괴물 드래곤(★★★)으로 성장했습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드래곤이 있어야지만 만들 수 있는 여의주는, 드래곤을 최강의 챔피언으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이었다.
[여의주]
↳드래곤 전용 아이템. 오직 드래곤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으며, 드래곤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 전투시작보다 1초 빠르게 두 배의 피해를 입히는 용의 분노를 가장 강력한 적 챔피언에게 사용한다.
“하, 하하···.”
여의주를, 무시무시한 괴물 드래곤을 만들고 나서야 민정식은 정신을 차렸다.
“아하하하하!!!”
민정식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맹세했다.
감히, 자신의 위에 서 있는 이상현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튜토리얼(2-8)]
[잔여 라이프(34)]
[상대: 2번 플레이어(이상현)]
[전투 개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쳐있는 유니버스 STFT에서는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