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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전당(2) (2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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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의 전당(2)

    나는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다리를 두들겨 보았다.

    “혹시···. 어느 쪽 구슬이 좋을지 추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내가 멍석을 깔아주기만을 기다렸던 것일까? 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난 무조건 1번을 추천한다. 왜? 갈색이니까. 언제나 갈색은 옳다!』

    『그럼 난 2번. 보라색이니까. 아차! 이곳에서는 퍼플이지? 아무튼 퍼플을 추천해! 최고의 색이니까!』

    『주황색이 더 낫지 않나?』

    『자, 검은색을 선택해서 죽어라. 죽음이 너를 감싸 안을 것이다. 큭큭큭.』

    『이상현! 파란색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론 꽝일지도 모른다. 책임은 안 진다.』

    『난 바람의 윈드! 녹색을 추천해.』

    『파랑! 아니, 노랑!』

    말투와 목소리를 통해서 대략 어느어느 신인지 구분할 수가 있었다.

    나는 꽝인 보라색을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이게 좋겠습니까?”

    『행운의 신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고르기 전에는 꽝일 확률이 50%지만, 고르고 나면 0%일 확률과 100%일 확률이 공존하고 있어.』

    『어때? 구미가 당겨? 한 번 도전해 볼래?』

    “······.”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개소리 같다.

    그런데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건 왜 일까?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다음으로 갈색 구슬을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내가 추측하기로 갈색은 땅의 신이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몰라.』

    “······.”

    『꽝 아니면 당첨이겠지.』

    『골렘이었으면 말해줬을 텐데.』

    이걸 뭐라고 해야 될까.

    나 참.

    명색이 신이라는 놈이···.

    골렘을 팔았다고 더럽게 물고 늘어지네.

    뭐, 나도 골렘은 아깝게 생각한다. 전설의 골렘만큼 훌륭한 샌드백은 없으니까.

    그러나 샌드백은 샌드백일뿐.

    샌드백 따위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검은색을 가리켰다. 검은색은 처음부터 끝까지 까칠했던 죽음의 신이 확실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그러자 죽음의 신이 으스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꽝이다.』

    “···정말입니까?”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내 물음에 죽음의 신은 더더욱 까칠하게 굴었다.

    『믿은 안 믿든 네 자유다. 어차피 죽는 건 너니까. 그리고 난. 너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반드시 널 죽일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몸부림쳐라. 큭큭큭.』

    “으음···.”

    나는 생각에 잠긴 척을 했다.

    그러자 신들이 시간에 제한을 걸었다.

    『앞으로 30초 안에 결정해라.』

    『그 시간을 넘긴다면···.』

    『기회는 없다.』

    『또한.』

    『번복은 없다.』

    『한 번의 선택이 너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명색이 신이라는 놈들이···.

    진짜 나쁜 놈들이다.

    멋대로 끌고 와서 강요하더니.

    시간제한까지 두고.

    그 덕분에 아이템 세 개를 조합해야지만 만들 수 있는 하이에나의 왕을 얻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전, 이걸 선택하겠습니다.”

    정말 고마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개생퀴들 같으니라고.

    “조금 전에 번복은 없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이라는 작자들은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함부로 선택하지 말라는 뜻에서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라.』

    지랄하고 있네.

    “아, 그렇습니까?”

    진짜 욕이 나왔지만 참았다.

    상대는 신이니까.

    이런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신놈들은 계속 지껄였다.

    『이 선택이 너의 운명을 좌우할 것인데.』

    『어찌 그렇게 가벼이 선택하느냐?』

    『다시 선택해라.』

    『이번에는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다.』

    『두 번은 없다.』

    참 거룩하게 사기를 치는 놈들일세.

    난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그나저나 이 생퀴들.

    진짜 신이 맞나?

    아무래도 가짜 같은데.

    혹시 악마 아니야?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선택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그대의 선택을 존중하겠다.』

    나는 속마음을 꿀꺽 삼키며.

    혹시 저 개생퀴들이 바꿔치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구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바꿔치기는 하지 않았다.

    전부 그대로였다.

    그래서 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같은 걸 선택했다.

    “전 그대로 가겠습니다.”

    선택에 조금의 변화도 없자, 신이란 놈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왜?』

    “···왜라니요?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겁니까? 그냥 느낌이 와서 그런 건데.”

    『왜 새끼야?!』

    『왜 그걸 고르냐고?!』

    『왜 하필이면 그걸!!』

    『왜 골라!!』

    이제는 화를 낸다.

    이게 상사의 갈굼인가?

    사회의 쓴맛인가?

    와, 상대가 신이라서.

    대꾸도 할 수 없고.

    “···혹시 이게 정답입니까?”

    정답이냐는 물음에 신들이 버럭 화를 냈다.

    『그래, 이 운 좋은 자식아!!』

    『그게 정답이다, 왜!!』

    『꼽냐?!!』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대답했다가 역풍을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신이라는 작자들이.

    왜 이렇게 하는 짓이 치사하냐.

    하찮은 인간을 갈구기나 하고.

    참 더러워서.

    “···아무튼 그것으로 선택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용기를 쥐어짜내서 그렇게 말했다. 신이라는 작자들이 존나게 갈군다고 해서 꽝을 고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포자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빌어먹을.』

    『갖고 꺼져!!』

    그러자 신들이 나에게 하이에나의 왕을 집어던지며 그렇게 말했다.

    참.

    더러운 놈들이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주 만나겠지.

    빌어먹을.

    [운명의 선택에 대한 보상으로 하이에나의 왕을 획득했습니다.]

    [생존의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곧 튜토리얼(1-8)이 시작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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