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기희윤은 이 던전을 이미 겪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2차 공략 당시 처음 들어왔을 때는 눈앞의 일만 집중했을 뿐이다. 던전의 구조나 이단우의 공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곳이었네.’
물론 그때와 비슷한 감상이 있기는 했다.
‘이 던전은 소모전을 강요한다니까.’
관문 숫자부터가 그렇다. 헌터들이 던전 공략에 나서는 주기는 빨라야 일, 이 주에 한 번이다. 그것도 대단히 스스로를 혹사하는 헌터들이나 하는 짓이었는데, 이 안에서는 첫 관문부터 쉴 새 없이 공략을 해 나가야 하지 않던가?
보스전에 도달하기 전에 침입자를 말려 죽이거나, 간신히 도달하더라도 녹초가 되어 있을 침입자를 상대하겠다는 의도가 투명하게 보이는 던전이다.
뭐 그건 나쁘지 않았다.
1차 공략 때도 녹초가 된 건 나머지 팀원들 뿐이었으니까.
기희윤은 특수 능력자라 보스전에서나 능력을 썼다. 과로한 건 마지막 관문부터였다. 다시 말해 그 전까지의 과정은 요령만 익히면 할 만하다는 뜻이었다.
세 번째 관문에서 빼앗긴 기억을 되찾고, 기희윤은 빠르게 적응했다. 너무 능숙하게 능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 전처럼 적당히 팀원들의 기분을 건드리고 적당히 쓸 만한 의견을 냈다.
이미 풀어 본 수수께끼를 다시 되짚어가는 과정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으니까.
‘이래서 암살업이 망하는 거야. 업계에서는 목표물이 상급 헌터만 돼도 의뢰를 안 받는다잖아? 이렇게 죽이기 어려워서야, 누가 헌터한테 복수하는 걸 꿈꿀 수 있겠어? 불쌍한 사람들의 희망을 짓밟는 짓이라니까.’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단우는 강자였다. <성검>이 없을 때도 최상위 티어 딜러였는데, 하물며 지금은 대적할 상대가 없다.
1대 1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어느 관문을 떠올려 봐도 거기서 이단우가 죽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단우가 곤란해질 관문, 큰 부상을 입을 관문, 체력이 바닥날 관문을 차례로 머릿속에서 돌려 보다가…….
기희윤은 전부 접어 버렸다.
‘뭔가 부족한데.’
이단우를 죽이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기희윤은 자신보다 수준 낮은 상대에게 절대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각성자였다. 능력 자체가 접근만 하면 사람을 바보 만드는 스킬 아닌가? 육체 능력으로 대적할 수 없더라도, 상대가 기희윤의 스킬을 모르는 이상 우위는 그에게 있었다.
반대로 이단우 같은 최상위 티어의 딜러와의 싸움에서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차우원의 검이야 제대로 맞으면 신체 부위와 영원한 작별을 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이단우는 다른 의미로 위협적이었다. 그의 공격을 기희윤의 눈은 따라잡을 수 없다.
귀신 같은 반사신경과 빠르기. 신체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고, 검은 자신의 손이나 다름없이 움직인다.
달이 비추던 밤. 청연에서…….
춤추는 듯한 이단우의 검을 그는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예뻤지.’
그 몸을 묶어 놓아야 한다.
빠져나갈 수 없는 위기에, 예상치도 못한 순간 밀어 넣어야 했다.
‘보스룸 진입 이전에.’
거기까지 들어가면 기희윤의 생존도 보장하기 어렵다.
두 명의 탱커와 한 명의 힐러, 그리고 정신계 헌터가 포함된 변형 팀으로 <최후의 던전>을 깼던 이단우가, 지금의 팀을 가지고는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기희윤은 의심을 사지 않게 평소대로 행동했다. 공략에 동참하며 이단우의 전술을 예측했다.
그는 이단우를 알았다. 이단우의 강함과, 쓸데없이 무른 마음과, 팀원들에게 가진 애정을 알았다.
관문을 스무여 개 이상 통과하면서, 그는 자신과 이단우의 선택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수정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여기밖에 없네.’
“상태창.”
기희윤의 목소리에 소서정이 반응했다.
‘뭐 하는 짓이야?’
얼굴에 떠오른 의문은 그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팀원들을 띄우는 한편 필드 상황을 빙판으로 바꾸느라 입 열 여력도 없는 듯했다.
“단우는 정말 사람을 험하게 다룬다니까.”
기희윤은 동정 어린 말을 그에게 해 주고 금방 신경 껐다.
ㅡ 띠링!
〔 공간 전이 (S) 〕
당신의 마음이 닿은 곳이 당신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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