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같은 논리라면, 그도 돌아가신 스승님을 위해 어리석은 짓을 한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가 던전에서 <성검>을 찾아 나와서, 장례식장에는 십수 명의 정부 요원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성검> 문제와 별개로 스승님을 존경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수많은 사람이 스승님의 마지막이 훌륭했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차우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스승님은 늘 뭘 하든 살아 있는 게 낫다고 말하던 분이 아닌가?
스승님은 살고자 했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했다.
차우원은 언제나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삶에서 열정을 갖고 해내거나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이 이를 악물고 해내야 할 일들이,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간절함은 차우원에게 사전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였다. 그는 타인의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온도가 낮은 사람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원하지 않아도 그에게는 책무와 기대가 모였다. 그것을 열의를 갖고 해내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다. 무시하는 게 더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에, 차우원은 주어진 일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야 그것이 끝나는지, 가져 본 적 없던 의문이 문득 들었다.
차우원은 피로했다. 이것이 피곤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닫고 할 일을 했다.
상주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며칠 밤을 새우고, 운구를 위해 장례식장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승님의 두 번째 제자를 만났다.
“너 때문에 스승님이 돌아가셨어.”
이단우가 검을 빼 들고 차우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 하얗고 엉망인 얼굴을 보며 차우원이 처음 느낀 감정은 악의였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
그는 이단우를 상처입히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쾅!
이단우가 스승님에게 던전으로 들어가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이단우 때문에 스승님은 돌아가셨다.
아니, 이건 이성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어쨌든 스승님은 이단우를 차우원에게 부탁했다…….
거기에 생각이 미쳐서, 차우원은 마지막 순간 손에서 힘을 뺐다. 동시에 <육예>의 날이 둔해졌다. 이단우는 검이 아닌 둔기에 타격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의 몸은 허공에 떴다.
퍽!
그의 몸이 차체에 부딪혀 튕겨져 나왔다.
이단우의 움직임만으로도 차우원은 그의 상태를 알아챘다.
뼈가 부러졌다.
‘못 일어나겠지.’
이단우는 피죽도 못 얻어먹은 모습이었다. 며칠 밤을 새운 건지, 얼굴이 창백하고 눈 밑은 검었다. 쓰러진 채 혼절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차우원은 일이 귀찮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단우는 스승님이 아끼는 제자였다.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청연에 데려와 매스컴이 물어뜯게 두지도 않았다. 꽁꽁 싸맨 채 아끼며 가끔 차우원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줬을 뿐이다.
스승님이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며 상상한 게 이런 그림은 아니었을 텐데.
차우원은 이단우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는 이단우를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이단우가 고개를 들더니 발딱 일어났다. 그가 부러진 팔로 차우원에게 달려들었다.
쾅!
차우원은 반사적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단우가 다리를 질질 끌며 다시 달려드는 모습을 봤다.
‘이렇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스승님의 불쌍하고 귀여운 제자 이단우는 지독한 독종이었다. 차우원은 약간 질리는 한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이단우가 귀여운 얼굴이긴 했으나…….
스승님의 제자 사랑은 전부터 황당한 데가 있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자신이 문제였던지도 모른다.
스승님이 몹시 아끼던 두 번째 제자가 또다시 일어났다. 두 다리가 부러진 그는 기어서 차우원의 발목을 잡았다.
어린애처럼 우는 얼굴로.
차우원은 깨달았다. 이단우는 이곳에 죽으러 왔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단우의 손을 밟고, 그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 다음…….
차우원은 잠시 그를 내려다봤다.
그는 이토록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생존 본능이나 판단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다.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목적이 그의 전부라는 것처럼.
그 표적이 된 차우원은 어디서도 느껴 본 적 없는 강렬한 감정의 대상이 됐다. 그는 자신을 이토록 증오하는 사람도 본 적 없었다.
창백한 뺨이 붉어질 정도로 흥분해서 달려들던 이단우는, 이제 시체처럼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죽을 듯했다.
‘안 되지.’
차우원은 그의 위로 몸을 낮췄다. 이단우의 속눈썹은 흠뻑 젖어 있었다. 피가 터진 입술이 붉었다. 그 얼굴이 선뜩하게 예뻤다.
가장 눈을 뗄 수 없는 건 이단우의 눈이었다.
엉망이 된 이단우가 차우원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되고도 시선이 죽지 않아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죽어 버려.
“넌 내 팀에 들어오는 거야.”
차우원은 이단우를 스승님께 부탁받았다.
이단우는 그의 소관이었다.
문제는 이단우 자체였다.
차우원은 이만한 난제가 처음이었다.
‘말로 해서는 듣지를 않네…….’
곱게 대하고 싶어도 들어 먹지를 않아서, 이단우를 다루는 일은 곧잘 완력 싸움이 됐다.
그마저도 이단우에겐 탈출 수단이 됐다.
사지가 부러져서 의무실에 넣어 주면 다음 날에는 제 침대에 없다. 같은 일을 다섯 번쯤 겪은 뒤에 차우원은 이단우를 자신의 침실에 가뒀다.
침실이라고 해도 방이 몇 개는 달려 있다. 그중 하나를 내어 줬으니 개인 공간이 좁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이단우는 포기를 몰랐다. 차우원은 그가 정말로 최상위 헌터의 감각을 뚫고 하나뿐인 현관으로 탈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의문이었다.
‘스승님이 너무 귀여워만 하신 것 같은데.’
차우원은 그를 침대까지 끌고 가서 자는지를 감시해야 했다.
그러나 새벽까지 자는 척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차우원은 그냥 침대 위로 올라가서 이단우가 못 나가게 몸으로 가뒀다. 그러다 보면 또 말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이단우는 어디 하나가 부러져서야 눈을 감았고, 차우원은 밤을 다 새고 새벽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됐다.
배지슬에게 이단우 전담으로 힐을 해줄 수 있는지 부탁하자 그녀는 뺨을 붉히며 수락했다.
‘리더 일인데 당연히 도와야죠.’라면서.
“무거워! 답답하다고, 이제 안 도망친다고…….”
“그래. 단우가 그렇게 말하는데 물론 약속을 지키겠지.”
더 이상 회복을 위해 의무실에 갈 필요가 없게 된 이단우는, 차우원과 같은 침대 위에서도 잠들지 못했다.
이제 차우원은 이단우가 뛰쳐나가려는 이유를 알았다.
그가 잠깐 잠이라도 들라치면 항상 악몽을 꾸고 소스라치며 깨는 걸 안다.
잠들지 못할 때 그의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뛰는 걸 안다.
불안 증세와 불면, 죄책감이 이단우를 괴롭혔다.
‘죽어 버려.’
사실 이단우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해서다.
그렇다고 그가 차우원을 미워하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차우원은 이단우가 기절할 때까지 그를 굴렸다. 그를 도발해서 자신에게 덤벼들게 만들었다.
그가 잠들 수 있도록.
이단우는 차우원을 미워한다.
차우원은 그의 공격에서 살의를 느낀다.
이단우가 잔다.
기절한 이단우는 평온해 보인다.
이단우는 차우원을 미워한다.
누구도 그런 적 없는데, 차우원을 자신과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다. 분석하고, 눈을 맞추고, 목표로 삼아 어떻게든 공격하기 위해 노력한다.
차우원은 이단우를 괴롭히고 싶다가도 다정하게 대하고 싶어졌다.
“생각해.”
자신이 하는 말을, 이단우가 열심히 듣는 걸 안다.
이단우가 잔다.
가슴팍에 닿는 숨은 간지럽고, 이단우의 심장 소리는 평온하다.
생기를 찾은 이단우는 곧 팀에 섞여 들어갔다.
“그렇게 운동하면 관절 나가. 너 트레이닝 프로그램 안 들어 봤어?”
“그게 뭔데?”
“강울림 오지랖 봐. 넌 쟤 노려보는 꼴 보고도 챙겨 주고 싶어?”
“너한테 안 물어봤어.”
“쟤 말하는 거 봐!”
“여러분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안 돼요, 이단우 헌터는 일주일간 하드 트레이닝 금지예요! 어제 뼈 붙었잖아요.”
“그러게. 지슬이 말 듣자. 단우 몸이 근육 키운다고 강해질 몸도 아닌데 하드 트레이닝은 시간 낭비 같다.”
“내 몸 내가 알아서 한다는데 왜 네가 참견이야?”
“단우 몸이 단우 혼자만의 것은 아니지 않나. 아프다고 침대에서 훌쩍거리고 있으면 나도 잠들기 힘든데.”
“개새끼야! 내가 울려 줄까!”
이단우의 세상에 자신밖에 없던 시간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차우원은 무시했다.
그건 옳지 않다.
이단우는 회복됐고 팀은 완성됐다. 뜻밖에도 이단우는 훌륭한 팀원이었다. 팀에 활력과 집중력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약에 취한 이단우가 침대에 늘어져 있는 걸 보게 되었을 때…….
차우원은 더없이 분노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했다. 늘 만지고 싶던 이단우를 멋대로 할 명분이 생겨서.
그는 이때를 기점으로 주인 잃은 이단우의 침실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
“곧 괜찮아질 거야.”
“아…….”
“괜찮아지게 해 줄게.”
“으으응…….”
이단우가 진저리 치며 젖은 속눈썹과 뺨을 차우원에게 문댔다. 열을 내는 몸은 말라서 뼈대가 만져졌다. 부드러운 피부는 손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듯했다.
가슴부터 배 아래까지, 오싹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차우원은 깊은 충족감을 느꼈다.
그가 이단우를 감시하는 건 정당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이제 이단우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차우원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단우의 세상은 넓어졌다.
죽은 스승님이 한때 그의 전부였는데 그는 이제 이 팀에 속해 있었다.
‘그게 싫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차우원은 이단우를 평생 병자로 두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아닌가?
차우원은 이단우를 짓누르고 그의 동그란 머리에 입을 맞췄다. 이단우는 신음하고 훌쩍이느라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차우원은 쓰레기였다.
그리고 최후의 던전이 열렸다. 세상은 끔찍해졌다.
차우원은 <최후의 던전>을 닫아야 했다. 이단우를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는 없으니까.
차우원은 어머니를 이해했다.
영웅이라고 불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움직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단우를 두고 가고자 했다.
이단우를 위험한 곳에 데려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두고 싶지도 않았다.
이단우를 지키고 싶어서, ‘네 실력은 나한테 안 되지’라고 말해 왔으나.
사실 이단우는 차우원이 한 번도 갖지 못한 동급의 대전 상대였다. 그가 <최후의 던전>에서 도움이 되리라는 사실은 차우원은 알았다. 이단우가 활약할 수 없다면, 자신도 할 수 없다.
“단우야, 넌 빠질래?”
“헛소리 말고.”
“단우 실력으로는 힘들지 않나 싶은데. 들어가서 다치면 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
“넌 그냥 나 열받게 하고 싶은 거지?”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 건 미련 때문이었다.
이단우가 제 발로 안전한 곳에 있어 주면 가장 좋다. 그러나 <종말 방어전> 현장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차우원 눈 밖에서 이단우가 자기 몸을 사릴 것 같지도 않다.
차우원은 진심이었으나 이단우는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이제 이단우에겐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최후의 던전>으로 들어갔다.
‘나가면 고백할까.’
이단우는 이번에야말로 차우원을 찌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우원은 말하고 싶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이단우를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