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27화 (127/170)

127.

이 자리에는 이단우를 처음 보는 헌터들도 있었다. <차우원 팀>은 결성한 지 이제 겨우 일 년이 된 신생팀이었으니까. 귀가 있다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도 얼마 전부터다. 작전이라도 같이 뛰지 않은 이상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마주한 이단우는 앳되고 예민하다는 인상이었다. 눈은 붉었고 약간 피로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성검 도난 사건을 팀장인 차우원과 단둘이 해결한 뒤, 얼마 쉬지도 못한 채 이곳으로 끌려온 상태였으니까.

그렇다 해도 아예 돌아가는 사태에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수준급 헌터가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하물며 그는 성검의 주인이 아닌가? 공식적인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시선을 알아챈 척조차 하지 않아서 헌터들은 생각했다.

‘뭐지?’

옆자리에 앉은 차우원이 이단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단우야.”

그제야 이단우는 고개를 들었다.

“저게 무슨 조건으로 사람 가리는지 저도 모르는데요.”

“하지만 현재까지 이단우 헌터는 성검의 시험을 통과한 유일한 검사입니다. 성검을 직접 사용하셨고…… 저희에게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도 합니다. 무언가 성검의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하셨습니까?”

이림의 부길드장 고청이 물었다.

그는 이단우와 인연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누군가 이단우에게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면, 적임자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이단우가 답했다.

“네.”

“…….”

‘저렇다니까.’

청연 길드장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성물 도난 사건의 수습을 위해 모였다. 말이 수습이지, 길드에서 바라는 건 관리 책임자의 목을 날리고, 성물에 대해 정부가 숨긴 사실을 캐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동료를 잃지 않았는가?

성물 강탈자는 전대 영웅들을 습격했다. 그들은 5대 길드의 전대 길드장이기도 해서, 각 길드에서는 자신들의 옛 길드장을 위해 경호팀을 파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으로 나온 사망자 다수가 길드 소속 헌터였다.

그들이 정부에 책임을 묻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태가 대화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센터장이 말했다.

“성검의 이상이라니, 말씀을 조심해 주십시오. 성물은 인류의 희망입니다. 성검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경솔한 발언이 밖으로 흘러나가면, 어떤 시민이 저희를 믿고 지시를 온전히 따라 <종말 방어전>에 동참하겠습니까?”

“그 말씀은 성검에 이상이 있든 말든 언급을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 말씀이야말로 시민들에게 위협입니다.”

“올바른 <성물 쟁탈전> 절차를 통해 성검의 주인이 정해졌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천재지변 같은 재난으로 보아야 하지, 성물에 대한 의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시면 안 된다고 봅니다.”

다완 1공격대 팀장인 베테랑 검사가 눈썹을 올렸다.

“성물에 대한 의심이 아닙니다. 정부에 대한 의심이지요. 성물이 위험하지 않다고요?”

“…….”

“성물 강탈범은 짧은 헌터 생활 후 은퇴한 인물이던데, 우수한 헌터였다고는 하지만 현장을 떠난 지 오래더군요. 그런 자가 백 명의 헌터를 베었습니다. 그만한 헌터가 재앙이 될 수 있다면, <성검 쟁탈전>에 참가할 만한 검사들의 손에 들어갔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애초에 <성검 쟁탈전>의 방식으로 올바른 성검의 주인을 결정할 수는 있는 겁니까?”

성검의 보호부터 도난 직후 움직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 자리에 앉은 모든 길드 소속 헌터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센터장은 다시 말했다.

“다른 헌터들이 성검에 손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성물 회수팀도 성검을 옮기기 위해 별개의 이동 장치를 필요로 했습니다. 자격 없는 헌터는 성물에 손댈 수 없습니다. 성물은 스스로의 주인을 결정합니다. 이런 불신은 종말을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불운한 사고였습니다.”

그게 할 말인가?

다른 헌터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성물 강탈자가 그렇다면 자격 있는 헌터였다는 겁니까?”

“그자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게 문제 아닙니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성검 쟁탈전> 건물에 잠입해 성검을 훔칠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엉망이었다는 겁니까? 아니면 그게 성검이 만들어 낸 이상입니까?”

“역대 성물의 주인이 정신 이상을 일으킨 경우는 없었습니다. 성물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은 그만해 주십시오. 저희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끝났군.’

청연 길드장은 생각했다. 센터장이 말을 마친 순간 이 자리에 앉아 있던 헌터 절반의 마음이 뜬 게 느껴졌다.

정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했다.

길드에서 할 일은 사태 수습을 돕는 거지,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정부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정보 통제와 강압은 역사가 오래됐다.

정부가 ‘위험한 각성자들을 통제해 군인으로서 전선에 내보내던’ 1세대. 헌터 보호를 목적으로 길드가 설립되고 세력을 키워 가던 2세대. 그리고 차문경 사후 거대 길드 전성기인 현 3세대까지.

정부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가 길드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곳이 있다면 정보의 영역이었다. 긴 세월 연구를 통해 쌓아 올린 역량 자체가 다르다.

평시라면 모를 일이었으나, 앞으로 다가올 <종말 방어전>에서 정부와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길드가 원하는 것만큼 정부의 의도도 분명했던 것이다.

그들은 길드와 협력할 의사가 없다. 그들이 바라는 건 길드가 정부 통제에 따르는 것이다.

청연 길드장 류시환은 무심결에 이단우를 다시 돌아봤다. 그는 회의가 이대로 파투 나든 말든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기가 죽을 만한 자리인데도 동요가 없다.

‘참 내 마음에는 드는데 말이야, 리더 타입은 아니지 않나…….’

차우원이라면 모를까, 이단우는 ‘우리 그만 싸우고 함께 대화를 나눠 봅시다’라고 나설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물의 주인에게 필요한 능력은 바로 그것 아닌가?

사람들의 갈등을 중재하고 뜻을 하나로 모으는 통솔력.

차문경만 해도, <성창> 때문에 갈등을 빚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정부에 협조적인 인물이었다.

‘애초에 두 세력이 협력하지 않으면 <종말 방어전>을 치러 낼 수도 없고 말이야.’

서로 방해하지만 않으면 다행인 사이에 무슨 협력이 가능하겠는가?

청연 길드장이 정부와 관계를 유지한 건 그런 차문경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후에 길드와 정부가 대립하는 걸 바라지 않았을 텐데,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려서. 누군가는 협력의 끈을 잡고 있어야 할 테니까.

체질에 안 맞는 일이라 청연 길드장은 어깨가 찌뿌둥했다. 그러나 회의가 파투 나게 둘 수도 없지 않은가.

그가 입을 열려던 때였다.

‘음?’

이단우가 손을 들었다. 청연 길드장은 그가 설마 중재를 해 보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이단우가 말했다.

“지금 나오는 얘기가 ‘성검이 위험한 물건이냐 아니냐’라면 그건 위험한 물건 맞는데요. 성검 강탈자는 범죄자였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제가 아는 멀쩡한 애도 성검 잡자마자 눈 돌아가서 덤비는 거 봤습니다.”

“성검이 문제를 일으킨 적이 또 있었다고요?”

“그게 누굽니까?”

처음 듣는 정보에 헌터들이 반응했다.

“차치원이요.”

“……!?”

청연 길드장은 기겁했다.

“차치원?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얘 동생이고요, 청연 길드장님 두 번째 제자입니다. 인성 멀쩡한 애인 건 그걸로 증명될 것 같고요.”

이단우가 차우원을 가리켰다. 차우원은 놀란 듯이 이단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정보 밝혀도 돼?’라는 표정처럼 보였으나 아마 헌터들의 착각일 터였다. <차우원 팀>이 정부도 아니고 이런 중대 정보를 숨길 리가 있겠는가?

청연 길드장이 물었다.

“가만, 그날 치원이가 넋 나가서 돌아온 게 말로 털려서가 아니었어?”

“걔 많이 맞았는데요. 말씨름 좀 했다고 애가 그 꼴이 되지는 않죠.”

“아니 그럼 걔가 독립팀 사무실 가서 쳤다는 사고가…….”

“저 죽이려고 달려든 거 말한 것 같은데요.”

청연 길드장이 생각한 사고는 차치원이 이단우에게 ‘감히 스승님의 제안을 무시하시다니, 제가 당신을 이겨 스승님이 훌륭한 교육자시라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따위의 선전포고를 하는 정도였지, 이런 중대 사고가 아니었다!

“부상은? 아니, 기사는? 그때 아무 난리도 안 났잖아. ……그 녀석이 성검을 들고 덤볐는데 희생 없이 제압을 했어?”

“예. 옆에 차우원도 있어서요. 둘이 협력한 덕에 금방 잡았습니다.”

“……?”

차우원이 다시 이단우를 돌아봤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이단우가 테이블 밑에서 손을 움직인 것도 같았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이단우가 걱정 어린 투로 말했다.

“그때는 ‘자격 없는 사람은 성검을 다룰 수 없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 줄 몰라서, 그게 성검의 거부 반응이겠거니 했는데요. 지금 보니 이상하네요. 어쨌든 저 검이 사람 미치게 만들거나 웰던으로 굽거나 하는 모양인데, 후자라면 몰라도 전자의 일이 또 일어난다면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날지 벌써 겁나는데요. 정부의 보관 능력을 믿기도 어렵고요.”

‘아니…….’

청연 길드장은 할 말이 없었다. 중재는커녕 더 싸움을 붙이는 소리만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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