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머리 위에서 빛이 깜빡거렸다.
“이단우! 차우원!”
강울림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 뒤로 고청이 물었다.
“이단우 헌터? 차우원 헌터! 괜찮으십니까? 아래 상황이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내려오셔도 될 것 같아요. 독 조심하시고요.”
차우원은 대답했다. 뱀의 체액은 독성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몸으로 받은 탓에 주변에 크게 튀지 않았다.
그마저도 해독 포션과 저항 스탯의 작용으로 체내에서 빠르게 해독되고 있었다. 목까지 얼룩덜룩했던 피부가 제 색을 되찾고 있다. 어둠 속이라 단우는 못 본 듯했다.
‘다행이지.’
단우의 걱정을 받는 건 좋았으나 그에게 걱정 끼치긴 싫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해서 차우원은 스스로도 본인을 잘 알 수 없었다.
위에서 빛의 구가 꽃다발처럼 떨어졌다. 마법사의 공통 계열 스킬 <라이트 볼>이었다.
크고 작은 빛무리가 둥실 떨어져서 함정 바닥을 밝혔다.
누군가 헛숨을 들이켰다. 세월을 거치며 헌터의 생존율은 높아졌다. 1차 공략에 실패한다고 해도 공격대의 전멸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수의 시체를 보는 건 현장 헌터들에게도 익숙한 일이 아닐 터였다.
“이게 뭐야. 세상에…….”
“여기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헌터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추측하는데 차우원은 같은 곳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 역시.’
이단우의 눈이 붉었다. 그가 바닥 어딘가를 빤히 노려보고 있어서 차우원은 그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이단우는 소리 내서 우는 법이 없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하지도 않고 조용히 울어서, 멀리서 보면 멀쩡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함정을 내려온 고청이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1차 공략팀이 이곳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아니요.”
이단우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짧게 답했다.
‘그게 대답입니까?’라는 표정으로 고청이 그를 쳐다봤다. 단우가 말을 이었다.
“멋대로 함정 건드려서 죄송합니다.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네요. 그런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1차 공략팀을 우연히 찾았는데 저희 힘으로는 수습하기 힘들 것 같아서요.”
언제 들어도 사과 같지 않은 사과였다. 그러나 내용이 합당해서 고청은 떨떠름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물론입니다. 그건 2차 공략팀의 의무 아닙니까?”
“이곳에 모든 분들이 계신 것 같지 않아서요. 수색 작업도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시간이 얼마나 더 소요될지 모르겠어서요.”
‘이림은 바쁘지 않았냐. 너희가 그런 시간을 낼 수 있느냐’는 말에 고청은 얼굴을 붉혔다.
“1차 공략팀의 위치를 찾았는데 설마 저희 이림이 무시하고 던전 공략을 속행하리라 여기셨습니까?”
“그건 아닌데요.”
“그런데 어디를 보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고청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단우는 여전히 찡그린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닫고 눈을 깜빡이기 시작해서, 차우원은 겉에 입은 바람막이를 벗었다.
‘한계다.’
이단우가 경량 전투복 위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다니는 탓에 <차우원 팀>의 공식 전투복은 바람막이가 됐다. 일단 팀인 이상 복장을 좀 통일해야 하지 않냐는 소서정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이림처럼 길드 마크 박고 다니지는 않더라도, 오합지졸 꼴은 면하면 안 돼?!
-안 될 건 없지.
라고 단우는 답했고 다음 날 바람막이 세 개가 팀원들에게 지급됐다.
소서정이 원한 바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차우원은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단우에겐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으니까.
그러나 독에 젖은 옷을 입고 단우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우원은 전투복 차림으로 단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단우야, 이제 됐어. 그만해.”
“…….”
“내가 알아서 할게. 우리 이 던전에서 해야 할 건 다 한 거지.”
“응.”
“알았어. 이제 괜찮아. 쉬어.”
밀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단우는 고장 난 인형처럼 떠들고 있던 입을 닫고 눈만 열었을 뿐이다.
그 눈에서 넘쳐흐르는 것처럼 눈물이 떨어졌다. 단우가 잡은 옷자락에 주름이 지는 게 느껴졌다. 이단우는 차우원에게 매달려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을 놓으면 쓰러질 사람처럼 울어서 차우원은 괴로워졌다. 잡힌 곳부터 가슴이 저렸다.
‘저걸 다 대답하고 있네.’
고청과의 대화를 듣던 차우원의 감상은 그랬다.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 그가 멀쩡한 척 굴어서 결국 견디지 못한 쪽은 차우원이었다.
‘부모님이라고…….’
차우원도 이제 알았다. 마력 F랭크인 이단우가 헌터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를 공략하려 할 공격대는 없기 때문이다. <종말>이 아니었다면 이림이 비정기 게이트를 공략 목표로 정할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 이림조차도, 1차 공략팀의 흔적을 찾겠다는 목적 따위는 갖지 않았다. 어떤 공격대도 그런 비현실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이단우는 헌터가 되어야 했고 자기 팀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그 팀은 재공략에 익숙해야 한다.’
실제로 <차우원 팀>의 주요 업무는 2차 공략이었다.
왜 2차 공략 의뢰를 자주 받냐는 질문에, 이단우는 듣기 그럴듯한 잡다한 이유를 댔으나 실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이단우는 정말 중요한 건 공유하지 않는다.
다가오던 팀원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차우원을 쳐다봤다. ‘이단우 왜 그래?’ 그들이 눈으로 물어서 차우원은 고개를 저었다.
이단우를 만난 지 일 년이 되어가는데도 차우원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아는 건 아지트에서 졸고 있는 이단우의 나른한 얼굴이나 자주 창백해지는 뺨 같은 것들이었다. 그걸로 충분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는 더 많은 것이 알고 싶어졌다.
‘……?’
품 안의 이단우가 녹아내릴 듯 뜨겁게 느껴져서 차우원은 그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붉게 익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단우는 피부가 희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출이랄 걸 거의 하지 않으니까.
해를 못 봐서 파리한 피부는 그 자체로 건강하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피부 아래서 끓는 온도를 못 이기고 그 열기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처럼 붉어졌다.
‘정말로 한계인데.’
차우원은 내심 한숨을 쉬고 소서정을 봤다.
“서정아. <정화> 익히고 있어?”
“어? 그렇긴 한데…….”
보조계 기본 스킬인 <정화>를 물론 소서정은 외우고 있었다. 자신의 용량에 대해 들은 뒤로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스킬은 대부분 시험조로 익혀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소서정이 익힌 스킬만 백 개가 넘었다. 소서정은 언제고 이단우에게 자랑할 날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때가 지금은 아닌 듯했다.
그는 대답하며 이단우를 힐끗 쳐다봤다. 이단우가 차우원에게 붙어 있어서 그는 또 싸움이 났나 싶었다.
‘차우원 또 멱살 잡혔나?’
센터 동기들이 들으면 믿을 수 없을 사건이 이 놀라운 팀에서는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소서정은 이제 그런 일로 놀라지 않을 만큼 뇌가 유연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단우가 차우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경악한 소서정이 입을 벌리는데 차우원이 말했다.
“그럼 써 줄래? 따로 모셨으면 하는 분들이 계신데.”
따로 모셨으면 하는 분들이라니? 여기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투였다.
소서정은 차우원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봤다. 바로 누운 1차 공략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소서정은 그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스태프를 들어 <정화>를 사용했다.
‘설마.’
소서정이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이단우의 뒷머리를 받쳐 자신에게 온전히 기대게 한 차우원이 말했다.
“이제 됐어, 단우야. 나가자. 너희 부모님도 같이.”
“…….”
그 말에 이단우의 몸에서 맥이 풀렸다. 완전히 허물어져 기절한 그를, 차우원이 안아 들었다.
‘이단우 부모님이 맞았잖아.’
추측이 사실로 확인돼서 소서정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뭐, 뭐?” 하던 강울림도 상황을 이해했다.
이단우는 독재자였으나 비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함정을 탐색할 때 그는 조금 이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함정에 몸부터 던지더라니.’
이단우가 평소 가장 경멸하던 행동 아닌가?
그 이유를 이제 팀원들도 이해했다.
‘어?’
그것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의문이던 질문까지 설명이 돼서 소서정은 입을 막았다.
<차우원 팀>은 왜 2차 공략을 주로 하는가?
참사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희생자가 독립 헌터 혹은 중소 길드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이어서 소서정에게는 거리를 두고 인식되던 사건이었다. 희생자는 그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 비극은 그에게 그저 뉴스였다. 그가 <차우원 팀>에서 클리어한 2차 공략 던전들도 마찬가지였다.
1차 공략에 실패한 팀들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그는 알아보지 않았다. 공략 작전을 짜는 건 이단우였고 소서정이 할 일은 명령을 따르고 자기 수련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한번 실패한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더 잘나 보이잖아.
‘아니잖아…….’
소서정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단우는 1차 공략팀 중 사망자가 있었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수습해서 나왔다. 그리고 유가족에게 돌려줬다.
소서정은 이단우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왔다. 그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두 가지는 ‘자기 안전’과 ‘팀 명성’이었으니까.
그건 소서정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도 했다.
‘살아서, 유명해진다!’
그러나 이단우가 정말 그 두 가지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2차 공략 때 실패팀 수색 같은 귀찮은 작업을 병행할 필요가 없었다. 던전 안에서 그가 저지르곤 하는 미친 전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만 해도, 함정에 빠져 죽을 뻔한 건 이림이었지 않은가. <차우원 팀>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단우는 불을 질렀다.
‘잘됐으니 망정이지, 잘못됐다면 이림에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일이었잖아?’
소서정이 컨트롤에 실패해서, 이림 소속 헌터 두 명도 허공에 같이 띄웠다. 그들이 살아 나가 증언했다면 <차우원 팀>은 대단히 곤란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단우는 그냥 저질렀다.
‘일단 살리고 보자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맥락이 맞아 들어갔다.
이단우는 성격이 이상해서 자기가 괜찮은 사람처럼 들릴 것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단우는 자기가 겪은 비극을 다른 사람이 겪게 두지 않는 인간이었다.
소서정은 그런 사람을 세간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영웅이잖아.’
“수습 빠르게 마치고 올라가자. 던전 깨야지.”
“어…….”
<차우원 팀>의 리더를 안은 채 차우원이 상황을 정리했다.
* * *
이림과 독립팀은 를 일주일 하고 일곱 시간 만에 클리어했다.
그들은 막대한 클리어 보상을 얻었으나, 그중 가장 귀한 것은 1차 공략팀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는, 그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물건도 누군가의 인벤토리에 들려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