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54화 (54/170)
  • 54.

    소서정을 대충 달래서 보낸 이단우는 시선을 느꼈다.

    “진짜 이유가 뭐야?”

    차우원이 물었다.

    그는 최근 대부분의 시간을 아지트에서 보냈는데, 그에 대한 이단우의 생각은 이랬다.

    ‘요즘 이 자식한테 감시당하는 기분인데.’

    시선을 돌리면 차우원과 눈이 마주친다.

    이단우가 즐거워서 신문을 읽고 있는 건 아니었다. 과거의 국제 정세를 새삼스레 다시 열심히 살피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아니었고, 차우원 때문에 눈 돌 곳이 애매해진 것뿐이었다.

    스무 살의 차우원은 말랑말랑했다. 이단우가 아는 차우원이 아니었는데도 단우는 그와 단둘이 아지트에 남을 때 잠들기 힘들었는데 최근에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신경이 곤두섰냐면 또 그렇지는 않았다…….

    차우원은 원래 항상 이단우를 감시하고 있던 놈이었기 때문이다.

    이단우가 무슨 수상한 짓을 하나 빤히 보는 건, 과거 차우원도 하루 종일 하던 행동이었다. 단우는 오히려 집에 돌아온 듯 익숙했다.

    ‘……다른 사람이 감시해 줘서 마음이 편하다니, 미친놈 아닌가?’

    단우는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으나 곧 답을 찾았다.

    ‘나 미친놈 맞지.’

    그는 신문에 시선을 두고 대꾸했다.

    “무슨 이유?”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려고 2차 공략을 도맡아 한다고?”

    “헌터가 그럼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야지 뭘 해.”

    “그래……. 맞는 말이지. 그게 단우가 할 만한 행동이지.”

    이 자식이 또 비웃고 있는 건가 싶어서 단우는 차우원을 노려봤다. 그러나 차우원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뭐 잘못 먹었나?’

    물론 단우는 그런 멋진 이유로 2차 공략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말하자.’

    단우는 결정했다. 그가 신문을 덮고 소파에 앉자, 차우원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 당연히 그것 때문은 아니고.”

    “아, 아니야?”

    “그 지역 대형 길드는 놀아? 무슨 수를 쓰든 던전은 지들이 깨야지. 왜 우리가 나서서 고생을 해. 근데 걔들이 멍청해서 1차 공략에 실패해 버렸잖아.”

    “음……. 그래…….”

    차우원은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놈들은 던전 브레이크를 방치할 생각이잖아? 위험 감수하느니 게이트 밖에서 진 치고 던전 터뜨린 다음,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막자고 생각하는 놈들이잖아. 그 꼴 나는 건 막아야지.”

    “……?”

    차우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우야. 말이 헛돌고 있는 것 같은데. 2차 공략을 하는 이유가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며.”

    “무슨 소리야. 그건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서가 맞고. 우리가 2차 공략을 도맡아 하게 되는 이유는 그 지역 길드들이 멍청해서라고.”

    차우원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음……. 그렇구나. 디테일에 차이가 있구나. 그 길드들이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단우가 고생할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

    단우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내가 고생을 왜 하냐.’

    “난 고생할 일이 없지. 고생은 강울림이랑 소서정이 하고 있고. 걔들은 고생 좀 해야 돼. 어차피 경험치 먹어야 해서.”

    “아, 길드들이 멍청한 건 싫지만 이 상황이 싫은 건 아니구나…….”

    차우원이 감탄했다. 단우는 저 자식이 왜 또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 싫은 게 아니라고 좋은 건 아니지.”

    “아무 말이나 동조하지 마.”

    “내가 동조하는 것도 싫어?”

    차우원이 웃으며 물었다. 기분이 상하려다가도 사람 누그러지게 만드는 얼굴이라 단우는 인상을 썼다.

    ‘애초에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것도 아니고.’

    “아무튼 던전 브레이크는 막아야 한다고.”

    “궁금한 점이 있는데.”

    “뭔데.”

    “나도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해. 그런데 2차 공략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자는 길드들의 생각이 단우의 평소 소신에는 맞지 않나 싶다.”

    “내 평소 소신이 뭔데?”

    단우는 어리둥절해졌다.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진 차우원이 웃었다.

    “내가 여러 번 강의 듣던 바에 따르면, 민간인 한 명 살리는 것보다 헌터 한 명 살리는 게 낫다든가, 뭐 그런 소신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던전 브레이크 일어나면 민간 피해야 크지만, 2차 공략으로 헌터들이 죽지는 않을 거 아냐.”

    ‘이게 차우원 입에서 나오는 소린가?’

    단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미간을 모았다. 물론 차우원은 단우가 했던 소리를 다시 읊고 있는 거긴 했다.

    더 중요한 게 뭔지, 가치를 따져서 행동하라고.

    너는 가진 자원이 없으니 더 냉정하게 버릴 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그건 스승님이 단우에게 해준 말이었다. 이후에는 차우원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줬고…….

    둘은 넘치도록 사람이 좋아서 자신들 스스로의 가치를 남보다 더 높게 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어쨌든 그 말은 ‘가치 평가론’이 두 사람의 평소 가치관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치가 남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만 세뇌시키면 된다.’

    단우는 차우원의 가치관에 하나의 정보만 추가해 줄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을 보니 대충 잘되어 가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왜 찜찜하지.’

    단우는 어딘가 기분이 이상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차우원이 저런 기분 나쁜 소리를 자기 입으로 하는 건, 어쨌든 이단우가 원하던 바가 아닌가?

    그리고 차우원에겐 평소 생각하던 또 다른 이론이 있었다.

    “어. 맞는 말인데, 던전 브레이크는 막아야 돼.”

    “왜?”

    “너 게이트가 뭐라고 생각해?”

    단우가 물었다. 스무 살의 차우원이 턱을 괸 채 말했다.

    “던전과 우리 세계를 잇는 통로 아닌가?”

    “어. 근데 그게 왜 생기냐고.”

    “글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네.”

    ‘말은 그렇게 하겠지.’

    단우는 차우원이 게이트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게이트나 던전에 대해 일 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과거의 이단우였고, 그런 이단우를 끌어안고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제 생각을 말하던 사람은 차우원이었다.

    -던전이 너무 구체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게이트를 넘어갈 때마다 만나는 환경과 종족이 다양한데, 던전이라는 것 자체가 그 몬스터만을 위한 공간이잖아. 그들의 둥지인 거야. 그게 왜 우리 세계와 연결되는 걸까……. 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왜 그들이 우리 세계로 뛰어드는 걸까……. 궁금한 적 없어?

    ‘그걸 알아서 뭐 하지.’

    단우는 의아했다.

    던전 브레이크는 막아야 하는 것이고 게이트는 닫아야 하는 것, 몬스터는 죽여야 하는 것으로 족했다. 이단우의 세계에서는.

    그러나 차우원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이단우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귀를 기울였다.

    과거의 이단우는 그랬다.

    “던전 환경이 너무 구체적이잖아. 그 몬스터에게 맞춰져 있는 전장이잖아. 너 전략 게임 해 봤어?”

    “아니.”

    스무 살의 차우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넌 해본 게 뭐야?”

    “하하!”

    “안 해 봤어도 상관없고. 전쟁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뭐겠어?”

    “적을 파악하는 것?”

    “그래. 정찰이잖아.”

    -왜 이십여 년을 주기로 종말이 돌아올까. 게이트가 정찰을 위해 열렸다면, 그 정찰은 뭘 위한 걸까?

    차우원은 그런 걸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종말> 자체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고 싶어 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차우원이 옳았다.’

    이단우는 그의 고민이 옳았다는 걸 후에 확인했다. 1차 공략이 실패하고, <이단우 팀>을 모아 재공략에 도전했을 때.

    ‘저런 생각을 누가 하지.’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 아니면 영웅이 될 인간밖에 하지 않을 거라고 이단우는 생각했다.

    지금의 차우원은 별생각 없다는 듯 턱을 괴고 이단우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단우는 스무 살의 차우원과 스물다섯 살의 차우원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둘은 근본적으로 같았다. 이단우는 그걸 몸으로 확인했다…….

    결국 스무 살의 차우원도 같은 의문을 품을 테고,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터였다.

    이단우가 그와 일치하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면 차우원이 이 팀에 남지 않겠는가?

    ‘나가지 마.’

    사실 이단우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정찰로 뭘 확인하겠어?”

    “글쎄…….”

    차우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가 생각에 잠겼다……. 그 목소리가 좋았다.

    이단우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가지 마.’

    “그 지역을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하겠지. 점령할 만한지.”

    “그걸 어떻게 알아보지?”

    차우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소수를 선발대로 보내 공격했는데, 그것도 못 막아 내는 수준이면 뻔하다고 생각하겠지.”

    “단우는 그들의 선발대가 던전이고, 못 막아 내는 게 던전 브레이크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응. 난 그래. 종말이 이십여 년 주기로 찾아온다고 하잖아. 하지만 지난 종말은 텀이 더 길었어……. 헌터들의 수준이 높았고, 무엇보다 <차문경 팀>이 수많은 2차 공략을 성공시켰지.”

    “일리가 있다.”

    차우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넌 2차 공략을 하는구나. 그래. 이해했어.”

    <종말> 자체를 막는다. <종말>을 미룬다.

    이건 차우원이 좋아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나가지 마.’

    이단우는 차우원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도 이 팀에 남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F급 마력 랭크로 A랭크 던전을 깰 수 있는 놈은 천재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하던 짓이 유능해서?

    아니면, 이단우가 울고 붙잡아서?

    불쌍한 놈이라서?

    ‘그건 안 돼.’

    차우원은 불쌍한 인간에게 한없이 다정해지는데, 이단우는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다.

    차우원은 탄식이 나왔다.

    ‘이 가설 읽은 적 있다.’

    어머니 차문경의 서재에서.

    차문경은 몸이 부서져라 던전을 깨고 다녔는데, 그녀의 서재에는 그 모든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건 차문경의 일기였으나 대부분의 내용이 던전과 몬스터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던전 연구 일지라고 불러도 무방할 터였다.

    ‘단우도 비슷한 걸 작성하고 있었지.’

    전에 아지트에 왔다가, 자는 이단우 앞에 수기로 작성한 던전 일지 같은 게 놓여 있는 걸 봤다.

    남의 물건이라 내용은 읽지 않았으나, 얼핏 보인 글자만으로도 내용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단우는 어머니와 비슷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빨리 죽는데.’

    어머니도 요절했고.

    본인은 죽어 버렸는데, 영웅 소리를 들어서 뭐 하지?

    차우원은 의문이었으나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불쌍한 아버지에겐 못 할 말이었고 동료를 잃은 헌터들에게도 할 말이 아니었다.

    차우원은 이곳에서도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팀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이단우는 <종말>을 막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차우원은 매일 그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단우의 모든 계획은 그곳에 맞춰져 있고, 차우원은 그 계획에 필요한 조각이었다.

    그게 이단우가 차우원에게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차우원은 가슴이 저렸다.

    둘이 동상이몽을 하며 서로를 보고 있는데 이단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

    “차우원 팀입니다.”

    이단우가 전화를 받았다.

    [센터에서 공식 요청드립니다. 메일로 의뢰서를 보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1센터로 와 주십시오.]

    상대가 말했다.

    ‘정부 의뢰다.’

    단우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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