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28화 (128/175)

< 128잔. 찾아오다. >

3.

“이쪽으로 앉으시죠.”

수상하다는 수식어가 붙은 사내를 정환이 한쪽 구석으로 안내한다.

옆에 선 윤수는 혼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얼굴에는 은근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어 정환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손님을 아는 눈치였다.

손님은 자리에 앉아 비니를 벗고는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다.

짧은 머리에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지만, 스타일링은 젊은 축에 드는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이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정환에게 닿는다. 정환의 눈빛은 많은 걸 나타내고 있었다.

“절 아시는 모양이군요.”

“바씬은 좁으니까요.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동경 바텐더님.”

자신을 아냐는 질문에 바로 나오는 즉답. 답을 말한 이도, 또 들은 이도.

서로에 대해 놀라는 눈치는 없었다. 마치, 알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실이라는 것처럼.

“사, 사장님?”

이름이 나왔음에도 옆에 있는 윤수는 저 유동경이라는 사내를 모르는 눈치다.

정환은 윤수가 이전에 일했던 가게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바텐더라면, 저 유동경이라는 이를 모르는 이는 없을 거라.

정환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정환 역시 저 사람의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들려오던 명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저 유동경이라는 바텐더는. 한국 바씬에서 흔히들 ‘대부’라 칭하는 그런 이였다.

정확히 따져본다면 ‘강남 밖의 대부’.

철저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발전한 바씬에서 언제나 강남 외의 지역에 바를 열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이가 바로 저 유동경 바텐더였다.

정환이 바텐더를 시작하기 전부터 ‘대부’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바씬에 끼친 영향은 제법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는 사업적인 면에서도 크게 성공했고 언제나 후배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이로도 유명했다.

강남권이 일종의 기득권처럼 되어가는 바씬에서 비강남권 출신 바텐더를 이끄는 이가 바로 저 사람.

일본에서 세미나를 열 때면 한국 바텐더들이 찾아와 전했던 한국 바씬의 이야기 속에도 언제나 저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바씬을 대표하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와 해외 칼럼에도 얼굴을 비췄던 사람인 만큼 정환은 그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었다.

‘거의 안 늙은 편이었구나···.’

실력이 좋고 나쁘고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아직 그의 잔을 마셔본 적이 없으니까.

허나,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실력도 나쁘지 않고 그의 마인드 역시 남달랐다고.

정환은 그저 전해 들은 말이지만, 그렇게 그를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

이전 생에서 정환이 가게를 막 시작하려 할 때 저 사람을 만나 보라는 말 역시 주변에서 들려왔었다.

그때는 차차 바를 운영해가면 어떻게든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전부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마주하고 만다.

“알고 계셨군요. 반갑습니다. 유동경입니다. 여기.”

정체를 들킨 후라면 수순은 정해져 있다. 품에서 명함을 꺼내와 정환과 교환하는 손님.

바텐더들은 대부분 이렇게 서로의 업장에서 신분을 밝힌 후 시간을 보낸다.

“차정환 바텐더님을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도 잘 봤습니다.”

“저야말로 꼭 뵙고 싶었습니다. 대부님. 이라고 불리시죠?”

“아하하. 그런 칭호는···. 예. 아닙니다. 아직 결혼도 못 한 몸이라. 하하.”

“잘 오셨습니다. 숲과 봉황당도 보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장윤수 바텐더님이 그러시던가요?”

“엇. 저, 저도 아세요?”

“모를 수가 있나요. 아르센의 직계 차정환 바텐더의 하나뿐인 제자. 플레어 바 출신으로 실력도 준수한 신입 바텐더. 아닌가요?”

“어···? 어떻게···?”

“바씬은 좁으니까요.”

바씬은 좁다. 이 말이 오늘은 유독 많이 나오는 날이다. 정환은 아무렇지 않게 손님 앞으로 수건과 체이서를 가져온다.

종로에 대한 조사도, 또 아실에 대한 조사도 충분히 해둔 것처럼 보이는 그였다.

“종로야 요즘 가장 핫한 곳이 아닙니까? 임재훈 바텐더와 신주용 바텐더, 그리고 차정환 바텐더까지. 바씬에서 이제는 이 세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물론, 그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까지.”

“아닙니다. 과찬이세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얼마나 더 가시려는 겁니까? 하하.”

유동경 바텐더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최대한 친근하게 이들에게 다가온다.

정환은 앞서 윤수에게 들은 말과 유동경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던 정보, 그리고 그의 태도를 보며 그가 방문한 목적을 추측해 갔다.

바씬은 좁기에 정보라면 직접 오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직접 걸음해 이곳을 눈으로 담았고 또 수집한 정보가 맞는지 확인한 이유.

정환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 이런. 우선 주문부터 해야겠군요. 진토닉···”

“편하게 즐기셔도 됩니다. 굳이 진토닉이 아니어도요.”

“그런가요? 그럼, 조금 미안해도. 엘더 플라워 사워. 가능할까요?”

“엘더 플라워 사워. 주문 확인했습니다. 달걀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 씨익.

주문을 받고 또 거기에 이어지는 질문이 나오니 이내 손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손님은 정환의 답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입꼬리를 내리지 못한다.

“넣어주시죠.”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왜 이런 주문이 나온 건지 모르지 않는다. 정환은 그의 주문을 상기하며 백바에서 조금 특이하게 생긴 술병을 하나 집어 왔다.

- St-Germain.

생제르망. 딱 그런 발음으로 읽히 단어가 정환의 손에 잡혔다.

클래식이 인기가 많고 매일같이 새로운 메뉴가 쏟아지는 바씬이지만 엄연히 바씬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었다.

때로는 사워한 스타일이, 때로는 독하고 헤비한 스타일이. 정해진 주기는 없어도 매번 중심이 되는 술은 달라지곤 했다.

이 생제르망 역시 그런 유행을 한 번은 탔던 술로, 엘더 플라워라는 꽃을 이용해 만든 리큐르가 바로 이 생제르망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정환이 기억하기로는 딱 1년에서 2년 정도 후. 아시아까지 유행이 넘어오기는 조금 남은 시점에서, 유동경이란 바텐더는 이 술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주문했다.

아마, 먼저 유럽 쪽의 유행을 읽어가는 중일 거라. 그래서, 정환이 이런 유행의 중심에 있는 엘더 플라워 사워란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가.

그걸 보려 저 손님은 이 칵테일을 주문한 것처럼 보였다.

실력을 보겠다며 클래식한 칵테일을 주문하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다.

과연 새로운 바 문화를 선도하던 대부답다. 정환은 그렇게 판단하며 재료를 모두 챙겼다.

생제르망과 진, 레몬즙과 설탕, 그리고 달걀 하나가 정환의 앞에 놓였다.

정환은 평소 주로 쓰는 코블러 셰이커가 아닌 보스턴 셰이커를 준비한다.

달걀이나 크림, 우유 등이 들어가면 큰 거품이 일어나기에 공간이 큰 보스턴 셰이커가 더 어울릴 터.

두 개로 나뉜 셰이커 중 한 곳에 재료들이 차례대로 계량되어 담기고 있다.

설탕까지 모두 들어가자 남은 건 달걀 하나였다. 달걀은 하나를 전부 쓰는 게 아닌 흰자만이 들어가면 그만.

정환은 조심히 달걀을 두 동강 낸 후 노른자를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흰자만을 셰이커에 담았다.

- 탓. 탁!

보스턴 셰이커 특유의 닫히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정환의 셰이킹.

- 챠카착! 챠카착! 챠카착! 챠카착!

- 호르르륵.

손님은 물잔을 들어 미세하게 바뀔 표정을 미리 감추며 정환의 자세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모습이다.

‘과연···.’

소문은 언제나 이유 없이 퍼지지 않는다. 이는 명성 역시 마찬가지.

유동경은 편안한 자세로 속이 어떻게 섞여가는지를 소리로 들려주는 정환을 보며 그런 명불허전이란 말을 떠올렸다.

누구는 헛소문이라고 누구는 얻어걸린 성공이라며 저 젊은 바텐더를 모해 하는 의견도 있었다.

내심 그런 의견을 싹 무시하고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자신이 대견해진 그였다.

- 탁! 털털털털. 턱!

정환은 셰이킹이 끝나자 한방에 보스턴 셰이커를 분리하고 그 안에 담긴 음료를 잔으로 털어낸다.

거품이 많은 칵테일이고 보스턴 셰이커에는 따로 거름망이 없기에 새로운 스트레이너를 앞에 대고는 조심히 잔을 따르는 정환이었다.

노오란. 마치 개나리와 레몬의 중간 정도에 있는 색의 잔 위로 거품이 포근하게 올라왔다.

풍기는 엘더 플라워 특유의 향은 바텐더의 셰이킹이 얼마나 섬세했는지를 잘 증명해주고 있었다.

- 스윽.

“엘더 플라워 사워. 나왔습니다.”

정환은 하얀 거품 위로 말린 식용 꽃을 하나 올리고는 잔을 밀어냈다.

“감사합니다. 향이 아주 좋군요.”

“엘더 플라워 사워를 주문하시는 분들은 특유의 향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다른 재료의 질감이나 맛보다는 향을 조금 더 살려봤습니다.”

“흠. 딱 그렇네요. 잘 마시겠습니다.”

손님은 마치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사람처럼 간단히 인사만을 남기고 잔을 들어 올린다.

제일 처음 마주하는 건 하얗고 포근한 달걀흰자로 만든 거품.

거품은 과하지 않아, 있는 듯 없는 듯 딱히 맛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이 역시 바텐더의 의도일 터. 손님은 입술에 묻은 조금의 거품만을 겨우 밀어내며 잔을 입안에 털 수 있었다.

들어 올리는 와중에 느껴지는 향이야 뻔한 향이다. 좋고 달콤하며, 은은한 엘더 플라워 향.

사람이 느끼는 맛의 60%는 향에서 오는 착각이라던데. 이 정도 향이면 왜인지 입에서도 꽃 맛이 날 것만 같은 그였다.

- 호르르륵.

음료가 본격적으로 입안을 채우자 시큼한 레몬 특유의 맛이 얼른 찾아온다.

톡 쏘며 진한 엘더 플라워 향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뿜으려 애를 쓰는 느낌이다.

달콤함이 적당히 이와 어울려주니 그런 애씀이 싫지 않았다.

‘벌써 이 정도로···’

아직 유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칵테일인데. 이걸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상황에서 이 칵테일의 맛을 컨트롤 하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유동경 바텐더는 그런 생각에 들려왔던 소문과 풍문이 오히려 과소평가 되었던 거라고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정환이야.

이전 생에서 수도 없이 만들었던 칵테일이 이 엘더 플라워 사워기에 이미 손에 익은 것이지만 말이다.

이때의 유행은 제법 길게 갔던 거로 기억하고 있다. 못해도 2020년대까지는 계속해서 인기 있었던 칵테일이 엘더 플라워 사워.

사워라는 분야가 어렵지 않기도 했지만, 바에서 유독 잘 나갔던 메뉴인 만큼 정환은 특히나 이 칵테일에 자신이 있었다.

“입에는 맞으신가요?”

“최곱니다. 이 엘더 플라워 사워···. 싱가포르에서 처음 맛본 칵테일인데 아직 한국에서는 다루는 곳이 잘 없어서요. 허허. 이건, 싱가포르에서 맛본 것보다 훨씬 맛나군요.”

“오랜만에 드셔서 더 맛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흠···.”

더 필요한 게 없냐. 잔을 받은 후 의례적으로 나오는 바텐더의 말에 손님들은 대부분 괜찮다는 답을 한다.

방금 잔을 받은 처지에 무슨 더 필요한 게 있기야 하겠나.

허나, 지금 앞에 앉은 손님은.

“저어.”

무언가 더 필요한 게 있어 보였다.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시죠. 마침, 그렇게 손님이 많은 시간대도 아니네요. 자리를 비우기는 조금 그런데···, 여기서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잠시면 됩니다. 잠시.”

정환은 이제야 본론을 꺼내오는 그의 말에 어떤 반응을 할지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 역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앞에 앉은 사내는 얼굴에 잔뜩 힘을 주며 준비한 말을 꺼낼 준비를 한다.

- 후우!

하고 한번 숨을 내쉰 그는.

“종로에 가게를 열고 싶습니다!”

정환이 예상한 그대로의 말을 들려줬다.

***

1. 엘더플라워 사워(elderflower sour).

(엘더 플라워 리큐르 + 진 + 레몬주스 + 설탕 + 달걀흰자(유/무))

- 2010년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칵테일, 엘더 플라워 사워입니다.

- 여성분들을 중심으로 주량이 약하신 분, 쓴 맛을 싫어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주가 되는 생제르망의 도수가 20도기에 완성품 역시 낮은 도수를 자랑합니다.

- 달걀은 선택 사항입니다. 여느 사워 스타일과 같이 달걀을 넣지 않은 버전도 있습니다.

- 엘더플라워 리큐르인 생제르망은 리큐르이면서도 아주 비싼 가격을 자랑합니다. 2007년에야 발매된 역사가 깊지 않은 술인데도 말이죠. 1병당 7-8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 엘더플라워 리큐르인 생제르망은 사실 바텐더의 최종 병기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비슷한 별명을 들어보신 것 같죠? 갈리아노라는 술에도 이런 별명이 있었는데요.

- 갈리아노는 병모양이 무기처럼 보여 물리쪽 최종 병기라면, 이쪽은 맛에 있어서 최종 병기입니다.

- 애매한 칵테일에 생제르망 몇 방울 떨어트리면 금새 맛이 살아나곤 하거든요.

- 창작 칵테일에서 최근 이탈리쿠스라는 술에 지위를 조금 뺏긴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활발히 연구되는 술입니다.

- 바에서 생제르망으로 한잔 만들어 주세요! 라고 외쳐 보시죠 :)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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