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26화 (126/175)

126잔. 지식.

1.

“사장님! 나왔어요! 나왔다구요!”

늦은 오후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아실에 한 젊은 바텐더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문 열리는 소리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큰 목소리와 함께 윤수가 아실 안으로 몸을 던졌다.

앞치마를 두르고 잠시 대로에 있는 편의점을 다녀온다던 윤수의 손에는 잡지가 한 권 들려 있었다.

주민경 에디터가 일하는 그 잡지사의 잡지로 보였다.

다다다다다.

윤수가 들어온 뒤로 다른 소리가 연달아 아실의 문가에 울린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뛰어오는 듯한 두 사람 정도의 발소리.

그런 발소리는 연이어.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저도 봅시다!”

“나왔다면서요!?”

두 사람의 바텐더를 더 아실로 초대했다.

윤수가 아실로 들어오며 소식을 전한 탓에 재훈과 주용이 버선발로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윤수의 손에 들린 잡지에서 떼어지지 않는다.

“마침 다들 오셨네요. 같이 보시죠.”

정환은 준비 중이던 재료를 살짝 치우고는 손을 닦으며 윤수에게 다가섰다.

바텐더들의 머리가 한곳에 모여 작은 잡지를 들여다볼 뿐이다.

“오오. 여기 있네요. 여기!”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윤수가 작은 지면을 하나 잡아낸다.

거기에는 어색한 모습의 세 사람이 어깨동무하고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야…. 이날 뵙지는 못했었는데, 다들 쫙 빼입으셨네요.”

“아, 아뇨. 윤수 씨…. 난 원래 이런 스타일로…”

“쓰리 피스를요?”

“…….”

“신 사장님은 얼굴에 화장하신 거 같은데요?”

“…….”

그날따라 힘을 줬던 이들의 의상이 유독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내, 내용을 봐야죠! 내용!”

“마, 맞습니다! 내용! 진정성이 담긴 인터뷰를 봐야지, 사진은 부수적인 겁니다!”

어색한 사진과 달리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전하고자 했던 말을 곡해 없이 민경은 잘 담아줬고 이들이 알리고자 했던 골목과 각 가게에 대한 소개 역시 적지 않게 들어가 있었다.

허나, 기사에서 가장 중심이 된 건.

또, 정환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쥬는 보석 같은 이들이 모인 종로와 딱 어울리는 잔이었다. 사진에서 전달되는 이상의 색의 조화가 종로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 그 자체로 느껴졌다. 만약, 이런 색을 가진, 또 이런 느낌을 가진. 그런 가게를 찾는다면 망설이지 말고 종로로. 여기 바의 골목으로 향하라! - 에디터 주민경.”

윤수는 대미를 장식하는 민경의 기사를 소리 내어 읽어본다. 정환이 만든 칵테일에 대한 설명을 인용해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이 유독 눈에 띄게 보였다.

“잘 실린 것 같네요. 그래도.”

“그러게요. 많이들 보고 찾아주면 좋을 텐데요.”

“여기서 더요? 감당할 수 있을까요?”

많이들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정환의 말에 윤수가 기겁하며 말을 물어 간다.

윤수는 정환의 말이 향하는 대상이 손님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손님도 와주시면 좋고, 다른 분들도요.”

“다른 분요?”

“윤수 씨. 여기서 사람이 늘어나면 우리 세 가게만으로는 힘들잖아요? 그럼, 더 필요한 게 있지 않을까요?”

윤수와는 달리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재훈. 재훈은 천천히 답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며 윤수에게서 답이 나오게 유도했다.

“더 필요한 거라면, 바텐더? 아! 바! 새로운 바를 열 바텐더 말씀이군요!”

“그렇죠. 저도 추측이지만, 정환 씨의 의도는 그럴 거 같은데요?”

“이제 발로 뛰는 건 그만인가요? 이야. 정환 씨 캐스팅의 마지막이 저라니. 이건, 영광인데요.”

“중심을 잡아줄 곳은 모두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 손을 떠난 영역이죠. 우리끼리, 우리 취향에 맞는 사람만 이곳에 받는다면 그건 길드도 크루도 아닌 카르텔입니다. 틀만 잡아두고, 나머지는 손님의 선택에 맡겨야죠.”

이건 정환이 가지고 있던 조금 오래된 생각 중 하나.

바의 골목이란 걸 스스로 나서 만들었지만, 그걸 온전히 자신만의 색으로 입힐 욕심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정환이 그런 골목을 만들고 싶었던 건 손님을 위한 것.

누구나 와서 누구나 취향에 맞는 가게를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골목의 최종 목적.

틀이 될 가게가 몇 개, 이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빈자리는 상권을 보고 들어온 다른 이들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인터뷰의 목적 역시 이것과 무관하진 않았다. 바의 골목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과 함께 다른 바텐더들에게 이곳에도 상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한 목적.

정환은 그를 위해, 이번 인터뷰를 준비한 것이다.

“맞습니다. 실력이 떨어지고 자격이 부족하고. 그런 곳은 손님 손에 알아서 도태되기 마련이죠.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여도 손님이 선택한다면 그건 좋은 곳일 겁니다.”

“보통은 손님들의 시선이 제일 정확한 법이죠. 걱정은 없습니다.”

함께 골목을 만들어 가는 재훈과 주용 역시 정환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모습이다.

결국 바라는 곳은 손님 없이는, 손님의 선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자자. 윤수 씨. 잡지는 여러 권 사왔죠?”

“네네. 여기 한 권씩 받아가세요.”

“가게에 가져가서 자랑 좀 해야겠네요. 허허. 나중에 몇 권 사서 주변에도 뿌리고.”

“전 고향에 보내드릴 겁니다. 액자랑 같이.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조심히들 가요.”

한바탕 왁자지껄한 소동이 끝나고 나서야 바텐더들이 저마다의 업장으로 돌아갔다.

늘어나는 바텐더와 가게의 수만큼, 점점 더 활기찬 기운이 늘어가는 종로였다.

2.

틱. 틱. 틱.

마우스 클릭 소리가 한참을 들려오는 아실.

아직은 영업이 시작되지 않은 이 공간에는 이상한 불빛이 바라는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구석에 자리한 작은 노트북. 정환이 개인적으로 쓰는 이 노트북의 앞에는 안경까지 쓴 정환이 무언가를 유심히 들여 보고 있다.

“이걸 클릭해서 정보만 입력하면…”

끝이다. 더는 할 게 없는 상태. 정환은 한 번 숨을 내쉬고는 모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채 마지막 버튼을 누른다.

이내 화면에는.

차정환 님의 2014 월드 클래스 코리아 바텐딩 챔피언쉽 참가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그 자태를 뽐냈다.

스르르륵.

“다 하셨어요?”

“아. 윤수 씨. 네. 방금 접수했어요. 이제, 진짜 대회에 나가는 기분이 드네요.”

오늘은 정환이 이전부터 이야기가 돌던 월드 클래스에 원수를 접수한 날.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정환은 마지막 날까지 기다린 후에야 접수를 완료했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앞에 붙는 큰 숫자도 달라진 지금. 올해에 있었던 일 중에는 여태껏 가장 큰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달 뒤부터 시작인가요, 그럼?”

“그렇죠. 1차는.”

“3차까지죠?”

“그렇죠. 3월에 시작해서 4월, 5월에야 끝나는 일정이니까요.”

“3월부터는 바빠지시겠는데요?”

“어휴. 무슨 말씀을요. 지금부터죠.”

정환은 대회가 시작된 후의 일정을 묻는 윤수에게 벌써 대회 준비는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손으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정환의 손에서 탕탕! 하는 소리가 울린다.

손과 마주친 물건은.

바 구석의 한쪽을 빼곡하게 채운 다양한 책들이었다.

“원서부터 일본어로 된 책까지….”

책이 쌓이고 쌓여 몇 개의 탑을 이루고 그 사이로 프린트로 된 자료까지 넘쳐난다.

윤수는 이걸 다 볼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거 대회 때까지 다 보실 수는 있는 거죠?”

“다 봐야 해요. 적어도 한 번은.”

“와아. 전 안 될 거 같아요. 전 대회는 포기!”

“포기를 포기하세요. 제가 다 보고 난 다음에 그대-로 물려드릴 테니까. 좋죠?”

“…아뇨.”

바텐더가 대회를 준비한다는 데 왜 책을 쌓아두고 있는 걸까. 대회에서 사용할 각종 지식을 정환이 책으로 익히려는 걸까.

물론 그런 의도 역시 없지는 않았다. 새롭게 뽑아둔 몇 개의 프린트에는 요즘 유행이라는 분자 칵테일에 대한 이론부터 새로운 기법에 대한 연구까지 없는 자료가 없었으니까.

허나, 그런 자료는 극히 일부의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정환이 쌓아둔 책의 대부분은, 조금 더 기본적이지만 깊고 이론적인 부분을 다루는 책들이다.

정환이 이런 책들을 쌓아두고 다시 보며 공부하는 이유는. 그저 월드 클래스 대회의 1차전 과목이 ‘필기시험’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바텐더의 역량을 보는 것에 필기시험이 필요하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허나, 이는 바텐더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나라별로 얼마나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일 터.

해외에서는 바텐더라는 직업을 하나의 전문직으로 본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료를 다루고 또 여러 작용을 벌일 수 있는 술을 다루는 만큼 지식이라는 영역 역시 바텐더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술에 대한 역사와 그 술의 작용, 그리고 화학적 반응과 접객을 위한 위생, 그리고 간단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까지.

필기시험은 1년 경력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대회에서 어정쩡한 이들을 거르는 하나의 거름망 역할도 하는 것이다.

70문항으로 이루어져 100점이 만점인 시험에서 평균 점수가 40점대를 웃돈다고 하니, 난이도는 제법 높은 축이다.

“열심히 공부해야죠. 필기에서 탈락하면 이도 저도 아니니까요.”

“40등 안에 들어야 2차로 가는 거죠?”

“네. 40등.”

“이번에는 몇 명이나 지원했데요?”

“100명이 조금 안 된다던데….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우와. 어마어마하네요.”

고작이라 부를 수 있는 숫자에 윤수의 입이 쩍하고 벌어진다. 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에 나오는 참가자의 숫자치고는 빈약한 숫자에도 놀란 반응을 보이는 그.

이는 아직 바씬이라는 곳이 얼마나 얇은 인재폭을 가진 곳인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참가하는 대회니, 한국의 숫자만 보면 초라한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번 2차는 인바저징(In Bar Judging)이죠?”

“아마도요. 3차는 몰라도 2차는 이번에 인바저징을 도입할 모양이더라구요. 오히려 다행이죠.”

그렇게 1차 필기를 통과한 이들 40인은 인바저징이라는 하나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는 각자가 일하고 있는 업장에서 심사를 보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곳에서 본연의 바텐더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평가하는 걸 말했다.

여기서는 최종 8인을 남기고는 전부 탈락하게 된다.

그렇게 남은 최종 8인이 결선을 벌이는 것이 3차이자 마지막 선발전.

이는 한곳에 모인 바텐더들이 짝을 이뤄 여러 과제를 수행하며 경쟁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남은 최종 2인이 벌이는 것이 파이널.

이렇게 두꺼운 장벽을 뚫고 나서야. 한 사람의 바텐더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챔피언이자,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간단히 칵테일만 몇 잔 만드는 대회에 비해 쉬운 대회가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스윽. 착.

정환은 감당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 흔드는 윤수의 앞에서 무심히 책장을 넘긴다.

영어 원서로 된 칵테일 북과 일본어로 된 음료 전공 서적까지 뒤져보며 공부하는 그.

윤수는 그런 정환의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사장님도 긴장하시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윤수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한다.

조용히 백 사이드로 물러서서는 잠시 후 시작할 영업 준비를 먼저 서두른다.

잠시라도 조금 더 공부할 시간을, 정환에게 벌어주고 싶은 그였다.

착.

이런 따뜻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환의 책장은 넘어가기 바쁘다.

따뜻함에는 조금 미안하지만, 정환은.

‘재밌네. 역시, 칵테일은 무궁무진해.’

오랜만에 펼친 여러 칵테일 책들이 재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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