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잔. 가지고 싶은.
4.
“제대로 꾸며 놓으셨네요….”
정확히는 공장의 2층에 자리한 사무실 그 아래. 딱 그 정도쯤에 자리한 1층의 작은 방.
연구실이라 적힌 명패가 걸린 공간은 방금 들려 온 윤수의 말처럼 제법 본격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백바의 아래에는 여러 칵테일 잔이 준비되어 있고 테이블 위에는 셰이커와 믹싱 글라스 등 칵테일 메이킹을 위한 여러 도구까지 놓여 있다.
조명 역시 은은하게 깔리는 것이 바와 비슷한 느낌을 줘 이곳에 앉은 손님들이 더욱 편안함을 느꼈다.
“여기서 칵테일을 만들곤 하시는 건가요?”
“요즘은 빈도가 조금 줄었지만, 원래는 그런 용도로 만들긴 했습니다. 여기서 메뉴도 연구하고 가끔은 손님도 초대하고. 그렇게 했었죠.”
“‘홈 바’가 되겠군요.”
“그런 느낌이죠. 반년이 넘도록 손님은 초대한 적이 없지만요.”
신주용이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정환과 윤수를 손님의 자리에 앉히고는 자연스레 바 안으로 들어섰다.
호스트와 게스트로는 적절한 자리의 배분.
손님의 자리에 앉은 정환은 찬찬히 백바를 둘러봤다.
백바는 전통주가 가득 들어차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바와는 그 구성이 조금 달랐다.
진도 있고 보드카도 있으며 여러 리큐르도 보인다.
다만, 라인업이 빈약해 보이는 게 딱 봐도 그저 칵테일 재료용.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술들이다.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제가 대접을 해야겠죠? 전통주로 몇 잔, 대접해 보겠습니다.”
주용은 오랜만에 이곳에 앉은 손님이 반가운지 들뜬 모습으로 이들에게 술을 권한다.
믹솔로지스트가 제아무리 손님보다는 술에 중점을 두는 이들이라도, 가끔은 이렇게 마셔주는 사람이 없다면 술은 외로운 법이다.
“아. 저는 차를 가져와서요. 사장님만 맛보시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윤수 씨, 미안해요.”
“전 괜찮습니다.”
“그럼, 정환 씨만. 자. 이건, 웰컴 드링크.”
타악.
주용은 제법 바텐더스러운 모습으로 정환의 앞에 잔을 건넨다. 기다란 샴페인 글라스에 담긴 분홍빛 술이 기포를 뽀글거리며 정환을 반긴다.
정환은 처음 보는 색과 라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오미자요?”
“네. 우리나라 최초의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인 이종기 명인이 세운 와이너리에서 가져온 술입니다. 바디감이 가볍고 산미가 적당해 웰컴 드링크로는 제격입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정환이 잔을 들어 올린다. 들은 말처럼 가벼운 바디감에 산뜻한 맛이 일품이라 입맛을 불러오기에는 딱 좋은 잔이었다.
“좋네요. 입안을 헹구기에도 좋구요.”
“그렇죠? 오미자는 동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열매입니다. 스토리도 있고, 어디 내놓기에 나쁜 퀄리티는 아닙니다.”
믹솔로지스트는 마치 한 가게의 푸드 코디네이터처럼 전체적인 술상을 디자인하고 이를 그려가는 사람이다.
그에 걸맞게 주용이 내놓은 웰컴 드링크부터 그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아까 봤던 문배술, 기억하시나요?”
“네. 수수로 만들었다는 소주였죠.”
“우선 시작은 그 술로 만든 칵테일로 해보죠.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주용은 정환이 앞에 놓인 웰컴 드링크를 비우자 얼른 다음 잔을 준비한다.
조금 전 마셨던 문배술. 그걸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말.
그는 지나가듯 읊었던 레시피대로 재료를 준비하더니, 이내 셰이커를 올려 들었다.
살각! 살각! 살각!
자세가 나쁘지 않다. 정환은 셰이커를 흔드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뻗어지는 스트로크도 나쁘지 않고, 적당히 들어가는 스냅도 과하지 않다.
음료를 연구하는 일에 더욱 중점을 두는 믹솔로지스트인 만큼, 술을 만드는 자세는 일품인 그였다.
촤아아아악.
술이 잔으로 떨어진다. 얼음을 길게 넣어둔 하이볼 잔에 담기는 술.
주용은 거기에 탄산수를 마저 더하며 잔을 완성했다.
“아까 말씀드렸던, 문배술로 만든 쿨러입니다(*서정현 바텐더作). 유자청을 더해서 탄산수로 풀업한 칵테일이죠. 가니쉬는 레몬 휠로 해봤습니다.”
“향이 진하네요. 군침이 돕니다.”
“드셔보시죠. 이걸, 누구에게 선보이는 건 처음입니다.”
“엄청난 영광인데요? 잘 마시겠습니다.”
정환은 가볍게 말을 남기고는 서둘러 잔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부터 움찔거리며 잔을 향해 나아가려던 그의 손.
궁금하다. 왜 궁금하지 않겠나. 이걸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연구했다는 사람의 작품인데.
과연 어떤 맛을 뿜을까. 그런 생각에 얼른 입으로 잔을 가져가 이를 꿀꺽 삼키는 정환.
호르르륵.
잔이 입술을 타고 혀에 닿자. 이내 상큼함이 퐝! 하고 터지며 그의 혀를 감싼다.
문배술에 돌던 은은한 상큼함이 유자청과 만나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느낌이다.
탄산수마저 청아한 느낌을 더해줘 더욱 청량한 맛이 정환의 입가를 맴돌았다.
“사장님, 어때요?”
“맛…있네요. 이건 진짜….”
맛있냐는 듯 군침을 삼키며 물어오는 윤수의 말에 정환은 자세한 분석도, 또 다른 미사여구도 잊고는 그저 맛있다는 말만 뱉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전통주로 만든 칵테일은 다른 맛을 따라 한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바텐더라면 서구식 술에 대해 배운 게 먼저이니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해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허나, 이 문배술로 만든 쿨러는 기존에 마시던 다른 쿨러 칵테일과는 다른 맛이 느껴져 그저 독자적인 한잔으로 보일 뿐이다.
정환은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칵테일이 이런 칵테일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괜찮죠? 아직 보여드릴 게 더 남았습니다. 벌써 취하시면 안 됩니다.”
“아직 보여줄 게 있다는 말씀은?”
“제가 2년 동안 여기서 술만 빚은 건 아닙니다. 오신 김에 제대로 평을 한 번 들려주시죠. 이제는 믹솔로지스트 쪽 일은 안 하지만, 그래도 업계에 계신 분의 평을 들어보고 싶군요.”
“…그럼, 염치 불고하고 감사히 마셔보겠습니다.”
권주를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정환은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얼른 승낙하며 잔을 받을 준비를 한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흥미가 진하게 맺혀 학구열까지 이글거리고 있다.
“이건 두견주라는 술을 이용한 칵테일입니다. 진달래꽃 아시죠? 그 꽃과 찹쌀로 빚은 술입니다. 꽃 향이 진해 첨향용으로 딱이죠. 이걸 리큐르처럼 다른 술에 더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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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홍로와 베네딕틴을 이용한 칵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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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구마 소주에 셰리, 그리고 비앙코 베르무트. 거기에 진과 비터스를 더한 여주식 칵테일(*서촌 바 참作)입니다.”
.
.
그렇게 몇 잔을 더 마셨을까. 정환의 얼굴에는 붉은색이 돌기 시작하며 어느덧 취기가 올라온다.
정환은 여기서 더 마셨다가는 취기가 훅! 오를 것만 같아 이제는 잔을 사양하려 했다.
“더 마시면, 아마 몸을 가누지 못할 거 같네요. 오늘은 여기까지가 어떨까요?”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공동체에서도 조금 맛을 보고 와서요. 성의를 보여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제가 흥분한 모양이군요. 이거, 강요한 건 아니었나, 송구스럽습니다.”
“감사했을 뿐입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답을 찾아내신 분을 만나는군요. 많이 배웠습니다.”
“시간을 들이니, 답은 나오더군요. 확실히 쉽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렇…겠죠.”
쉽지는 않을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주용을 보며 정환은 조금 색다른 눈빛을 보내본다.
정환의 앞에는 그가 만들어 준 마지막 술이 놓여 있다.
참 탐이 난다. 막상 이제 자리를 뜨려니 그의 머리를 채우는 건 약간의 탐욕.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이토록 성과를 거둔 걸 보니 어찌 그 성과를 가지고 싶지 않겠나.
완성된 퀄리티 역시 나쁘지 않아 정환은 더욱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가지고 싶다. 그런 생각이 정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해내실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언제든, 다시 찾아주시죠.”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뵙는 건 어떨까요? 오늘 너무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거, 이대로 가기에는 제가 너무 죄송해서…”
“아. 아닙니다! 이러지 마세요. 돈 받으려고 그런 건…”
그냥 가기 미안하다는 말에 주용은 얼른 손사래를 치며 돈을 사양한다.
딱히 지갑을 꺼내거나 돈을 건넨 건 아니었던 정환이지만, 그는 짐짓 이를 넘겨짚은 모양이다.
‘돈…을 드려야 했나?’
당연히 돈을 건넬 생각은 없었다. 다짜고짜 돈을 건네는 건 조금 무례하지 않나.
그저 정환은.
“제 명함입니다. 가게 주소가 적혀있을 겁니다. 다음 주. 그쯤에 한 번 들러주실 수 있을까요? 꼭, 보답하고 싶습니다.”
“굳이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그저 이렇게 잠시 두 분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제가 편하지 않습니다. 부디.”
“…….”
한번 아실에 들려달라. 이를 권할 뿐이다.
“그래야 제가 오늘 편히 갈 수 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저 미안해서. 보답을 위해서. 그런 순수한 의도로 이렇게 아실을 찾아달란 말을 남기는 건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탐욕이 조금 더 있어서. 그래서. 신주용이라는 믹솔로지스트를 아실에 한번 부르고 싶은 정환.
정환은 눈가에 잔뜩 의미심장함을 담고는 고집인 듯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며 그를 보채 갔다.
정환의 보챔이 계속되자, 이내 한풀 꺾이는 주용이다.
“그럼, 다음 주는…힘들 것 같고 이번 주에 한 번 들리겠습니다. 마침, 술 납품과 관련해서 서울에 가야 할 일이 있긴 합니다.”
“그러세요? 잘 되었네요. 이번 주면, 언제쯤?”
“어, 목요일 정도…?”
제법 자세하게 물어온다. 그저 하는 말이라 여기며 대충 넘어가려다 된통 걸린 듯한 주용.
그는 어느덧 자세한 스케줄까지 읊어가며 정환과 약속을 잡고 있다.
“그럼, 목요일에 예약을 잡아두겠습니다. 들려주시죠.”
“…예약까지요?”
“꼭! 와주셔야 합니다.”
“…네. 꼭….”
정환은 결국 확답을 받아내고 나서야 앞에 놓인 잔을 마저 처리하려 한다.
고구마 소주에 셰리와 베르무트, 진을 넣어 완성한 한 잔의 칵테일.
참으로 탐난다. 어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에 또 무언가 아리는 정환의 눈.
정환은 가볍게 잔을 들어 입에 털고는 그런 눈빛을 들어 자신이 그토록 탐내는 걸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주용의 얼굴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사람…’
종로에서는 어떨까.
정환은 그런 재미난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5.
“형. 감사히 잘 썼습니다. 차는 무사해요!”
하루 쉬는 월요일을 알차게 보내고 온 정환.
취기가 잔뜩 오른 몸으로 서울로 돌아온 그는 다음 날이 밝자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는 그대로 그레인 호텔로 향했다.
전날 윤수가 잘 끌어준 차를 누군가에게 반납하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부터 호텔 라운지 바를 지키는 정우는 심드렁하게 차 키를 건네받을 뿐이다.
“응. 나중에 검사한다? 이상 있으면, 알지?”
“보세요. 멀-쩡하니까요.”
“다음에 밥이나 사.”
“그럼요. 가게에 한 번 오세요. 기왕이면 목요일도 좋구요. 재밌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목요일? 그때는 안 될 거 같은데? 금요일에 한번 갈게.”
“어쩔 수 없죠. 편할 때 오세요.”
그레인 호텔은 일반 바처럼 꾸며진 곳과 1층에 있는 커다란 라운지 바를 돌면서 근무한다.
오늘은 정우가 넓은 라운지에서 근무하는 날.
정환은 그런 고급스러운 호텔 라운지를 한번 둘러보고는 정우와 작별을 고하려 했다.
“갈게요.”
“응. 들어가.”
그렇게 간단한 인사만 주고 정환이 뒤를 돌아가려 할 때.
“신정우 치프?”
누군가 옆에서 정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부에서 헤드들을 가리키는 말이 치프라는 말.
즉, 정우를 부른 이는 호텔의 관계자로 보였다.
정환은 슬쩍 돌아서 그를 한번 훑어본다. 정환과 눈을 마주친 풍채 좋은 사내는 정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다.
부른 건 정우였는데 바라보는 건 정환이다. 이상한 상황 속에서 정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맞으시죠?”
나오는 조금 수상한 말.
“네?”
“그, 강성원 대표님 방송에 나왔던 바텐더분! 맞으시죠?”
이번에도, 정환을 알아보는 말이다.
“아…네. 맞습니다. 바텐더 차정환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여긴 친한 형의 직장이 아닌가. 거기에 제법 높아 보이는 사내의 외관에 정환은 얼른 예를 갖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역시. 맞으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레인 호텔 기획팀에서 일하는 신승민이라고 합니다. 방송, 잘 봤습니다. 여기서 뵙네요. 여긴, 어쩐 일로? 혹시 투숙하고 계신 건가요?”
“아뇨. 여기 신정우 바텐더께서 제 선배셔서요. 빌린 물건도 있고 해서 잠시 뵈러 왔습니다.”
“아. 우리 치프께서? 이야, 대단하신데요? 이런 인연이 있을 줄이야!”
“크흡. 뭐. 제가 거의 업어서 키웠다고 봐야죠. 흡흡.”
정우는 서둘러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선에 잔뜩 어깨를 넓게 벌리고 너스레를 떤다.
그의 성격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정환은 그와 어색한 대화를 몇 분이나 주고받은 후에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언제고 아실에 들르겠다는 형식적인 말이 이어졌고 정환은 감사하다는 말로 화답했다.
어색함이 가득해,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면 제법 숨이 막혔을 대화였다.
“형. 저 진짜 가요. 늦어서요.”
“응. 연락하자. ‘우리’ 정환이.”
“어휴,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정환을 뒤에서 신승민이라는 사내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이내 그가 정우에게 무언가를 속닥거리자. 정우는 조금 당황하는 눈치다.
6.
“오실까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찾아온 목요일.
아실에서는 윤수와 정환이 영업을 준비하며 평범한 대화를 나눈다. 지금의 주제는, 오늘 오기로 약속한 믹솔로지스트, 신주용이다.
“오실 거예요.”
“그럴까요? 그냥 형식적으로 대답하시는 거 같던데.”
“아뇨. 오신대요. 제가 어제 통화했어요.”
“예? 통화까지요? 사장님…진심이셨네요.”
정환도 또 그 사람도. 둘 모두 형식적으로 하는 대화라 생각했던 윤수. 허나, 그 신주용이라는 사람은 몰라도, 정환만은 진지했던 모양이다.
“네. 아마…, 한 30분 뒤에는 도착하실 겁니다.”
정환은 시계를 한번 확인하고는 슬쩍 도착할 시간을 유추해본다. 정환을 따라 휴대폰 화면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는 윤수.
지금은 오후 6시가 조금 안 된 무렵이었다.
“영업…전에요?”
“네. 조금 일찍 불렀어요.”
“왜요?”
“그냥?”
“…….”
그럴 리가 없다. 또 무슨 속셈이 있겠지. 윤수는 그런 생각에 정환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뭐, 눈에 보이는 게 몇 개 있기는 하다.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사 온 적이 없던 수상한 전통주 몇 병. 분명 주용의 공장에서 맛봤던 술병들이 아실의 백바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게 분명 상관이 있을 거라. 윤수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직, 정확히 속을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뭐, 언제는 속을 알 수 있는 사람이었나. 어쨌든 또 무언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오늘.
윤수는 그저 콧노래 부르는 정환을 보며 조금은 무탈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