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잔. SNS.
3.
타닥타닥탁.
네, 네. 맞습니다. 잠시만요!
아, 그건 말이죠, 담당자 바꿔드릴게요!
편집장님, 인터뷰 취소됐다는데요!?
장소 대관을 이미 확정했는데, 스케줄 조정은…
타닥타닥탓.
분주한 사무실의 모습이 펼쳐진다. 어느 회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산만한 모습.
특히나 아침이라는 특성에 맞물려 전날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한 번에 쏟아져 이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정신이 없다.
빠르게 타자 치는 모습, 그리고 여러 밀린 전화를 받는 모습까지.
그런 풍경 속에서 오로지 한 사람만이 머리를 쥐어짜며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주 주임. 왜 그래? 아침부터.”
“…안 나와요.”
“안 나와? 뭐가?”
“이번 호 특집 기사….”
“그거 마무리된 거 아니었어?”
“목록이랑 내용 채울 가게는 다 선정했는데, 메인으로 삼을 만한 곳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에이, 적당히 골라, 적당히. 다음 주면 마감인데, 아직 인터뷰도 못 땄으면 이미 꽝이지.”
“안 돼요…! 저 이번에도 못 터트리면…!”
승진은 물 건너간다. 잡지사에서 주임 에디터로 근무하는 주민경은 그런 생각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지난 호에는 글조차 실리지 못했고 또 지지난 호에는 실린 글의 반응이 별로였다.
연차까지 채울 대로 채운 민경의 입장에서는 이번 호의 특집이 마지막 동아줄이자 기회였다.
“…어쩌자고 이런 큰 걸 맡아서….”
“어쩔 수 있나요. 아쉬운 년이 우물 파는 거죠.”
“이번 기사는 SNS에도 메인으로 걸릴 거라며?”
“완성도는 봐야 한대요. 완성도만 좋으면 분명…”
메인에도 걸리고 승진도 할 수 있을 거다. 주민경은 그 말을 전부 뱉진 못했다.
자신도, 확신이 아직은 없었으니까.
“청년 창업 관련 특집 기사였지?”
“네. ‘30세 미만 젊은 자영업자들의 창업기!’라는 거창한 제목이었죠.”
“하긴. 인터넷에도 게재한 이후로는 젊은 층 타겟으로 한 내용이 잘 먹히긴 했지. 따봉! 도 많이 받고. 기획은 잘 받았네. 근데, 뭐가 문젠데?”
“없어요…. 뭔가 시선을 확! 끌어올 한 방이. 한 방을 빡! 하고 보여줄 그런 게 없다구요.”
민경은 선임 에디터와 이야기를 나누며 온갖 울상을 지어본다.
기획을 따올 때만 해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패를 뒤집어 보니 일이 쉽지는 않다.
창업기에서 청년만 더한 것 같은 그저 그런 내용에 천편일률적인 가게들.
참신성이나 화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글에 꼭 필요한 한 방이, 부족한 그녀였다.
에디터로 몇 년을 일한 민경은 알고 있다. 제아무리 좋은 글도 한 방에 눈에 들어올 무언가가 없다면, 결국 읽히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잃어지지 않은 글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즉, 자신의 성과가 되지 않는다는 말.
사활을 걸어야 할 지금의 상황에서 민경은 죽을 맛이다.
“진정하고, 일단 내용 다시 검토해 봐. 혹시 모르잖아? 인터뷰 내용 속에서 그걸 찾는 게 우리 일이지. 제발, 응? 주 주임 물 먹으면 다음 차례는 날 건대. 우리 같이 살자? 응?”
“좀 도와주세요, 그럼.”
“에헤이, 내가 내 글도 아닌데 어떻게 손을 대나? 주 주임, 뽜이팅 있잖아? 응? 일단 한 주 남았으니까 조금 더 알아보자고. 휴민트, 검색. 돌릴 수 있는 거 다 돌려보고!”
“하.”
이미 다 해봤는걸요. 민경은 표정으로 그런 말을 전해주며 책상에 다시금 턱을 박았다.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는 느낌.
민경은 그대로 의자에 기대 천정만을 바라봤다.
차분히 자신이 인터뷰한 내용을 떠올려 보는 그녀.
‘8년 동안 꾸준히 일해서 독립한 곱창집 사장님은 내용이 부실하고. 명문대 출신 바리스타는 이제 흔하고. 여자 정육점 사장님은 저번에 단독으로 썼고…’
복잡하다. 다들 그럴듯하지만 무언가 한 방이 없다. 무언가 신선하고, 또 화제도 모을 수 있는 그런 한 방이 말이다.
특히나 여성향 잡지의 특성상 여성 독자들이 주목할만한 내용이 지금의 그녀에게는 간절한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민경은 반쯤 포기하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건 아니다. 그저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이거라도 보는 게 나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천천히, 또 다들 하는 것처럼, SNS를 뒤적이며 스크롤을 내려본다.
그렇게 한참을 페북이라 부르는 SNS에 그녀가 몰두하고 있을 때.
땡.
하고 알림 모양의 아이콘이 울린다. 이건 누군가 자신을 태그했을 때 울리는 알림.
‘아침부터 누가?’
라는 생각에 서둘러 이를 눌러보는 그녀.
@주민경. 봐봐 ㅋㅋㅋ. 얼굴 완전 착함. 주말에 여기서 한 잔 ㄱ?
알림창에는 한 친구의 이름과 제법 매력적인 댓글이 달려있다.
민경은 서둘러 그 댓글을 눌러 게시글로 화면을 옮겼다. 착한 얼굴이란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그녀였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한 젊은 바텐더의 사진.
‘Bar Asile’ 이라 적힌 페이지에는 다른 칵테일 사진과 함께 한 잘생긴 바텐더의 사진이 대문에 걸려 있다.
민경은 빠르게 페이지 내 게시글을 읽어갔다. 그리고 점점 물러가는 얼굴의 그림자들.
그녀는 입꼬리마저 점점 올라가더니, 마지막 게시글을 읽을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방긋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미소를 얼굴에 걸고 있었다.
마침내.
‘이거다!’
그토록 찾던 한 방을 찾은 그녀였다.
4.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벌써 일어날 시간이었나.
정환은 울리는 휴대폰을 손으로 더듬으며 눈을 어렵게 떴다.
바텐더라는 직업이 그렇지 않나. 밤낮이 바뀌어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뜨는 직업.
그렇기에 신체 시계가 이들보다 정확한 이들도 없었다.
정환이 느끼기에, 아직은.
잠을 깨기에 조금 이른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은 알람을 울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화면에 뜨는 건 어젯밤까지 같이 시간을 보냈던 신정우.
위대하신 정우 형님.
언제 이름도 바꿔둔 걸까. 정환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정우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차정환이!
“네. 정우 형.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아침은 무슨! 12시 넘었어, 인마!
“그러니까요. 아침.”
됐고. 그것보다, 내 말 맞지? 응? 맞잖아!?
“네?”
정환은 갑작스레 걸려온 정우의 전화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우는 그런 정환에게.
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져요, 이 사람아!
라는 말과 함께.
페북 확인해 봐! 다음 주는 네가 술 사라! 일하러 간다! 뿅!
뚝.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방금까지 꿈에서 값비싼 위스키를 시음하던 정환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페북?’
아침 댓바람부터 SNS는 왜 확인하라는 걸까. 정환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과 반쯤 감긴 눈으로 파란 아이콘을 눌렀다.
그리고.
!!!!!!
벌떡!
바로 일어나지는 정환의 몸. 정환은 그대로 눈을 전부 뜨고는 연신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반쯤 감겼던 눈은 이미 완전히 커진 지금이다.
‘이, 이게 다…?’
잔뜩 커진 정환의 눈에 휴패폰 화면이 들어온다. 그의 화면에는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알림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오, 오백 개?’
정확히 말하자면 댓글 알림만 500개. 정환은 미처 옆에 뜬 4천 개가 넘는 ‘좋아요’의 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 물론. 이미 2천을 넘긴 자신의 팔로워도.
이걸 확인한 건 한참을 눈을 깜빡인 후였다. 500에 4천에 2천이면. 잠시 멍을 때리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이게 다 무엇인지를 얼른 파악해 보려는 정환. 정환은 알림창을 눌러 관심이 몰리는 자신의 게시물로 이동했다.
‘하.’
게시물을 확인하는 순간 헛웃음이 났다. 혹시나 가게 홍보 글이거나 칵테일 사진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모든 알림이 가리키고 있던 게시물은 다름 아닌, 어제 정우가 장난스레 찍어준 정환의 그 사진이었다.
‘이걸 안 지우고 잤구나.’
나중에 지워야지. 집에 가서 지워야지. 그렇게 미루다가 깜빡한 어제의 과업이 이렇게 돌아온다.
‘이게 된다고? 하.’
정우가 말한 방법이 정말로 통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정우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거고.
소 뒷걸음질에 쥐가 제법 크게 잡힌 모양이다.
댓글 알림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무슨 댓글이 달릴지 궁금해지는 정환.
정환은 손을 움직여 댓글을 확인했다.
@***. 대박. 사장님인가? 여기 가보실?
@***, @***. 간 씻어 둬라. ㅇㅋ?
와…. 진짜 잘 생겼다.
@***. @***. 나 칵테일 좋아했네.
@***. 종로에 있는 바래.
3센치여라. 제발.
@***, @***. 난 여기 가봄 ㅇㅇ. 맛집임.
하. 인생 XX. 담배 말리네….
@***. 풀메하고 나와. 오늘 달린다.
@***. @***. 내 남친. 인사해.
사장님 맛있고 칵테일 잘생겼을 듯!
@***. 종로 그 골목인 듯. 내일 ㄱㄱ.
이거 컨셉 사진이랍니다. 모델이라네요. 바텐더 아님.
@***. 너 좀 닮은 듯.
.
.
.
더 많은 댓글을 보려면 누르세요.
반응은 다양했다. 혹시나 악플 천지면 어쩌나 했던 걱정도 잠시. 정환은 대부분 유쾌한 댓글인 걸 보곤 안심할 수 있었다.
‘3…? 쓰읍. 아니라서 미안하네.’
저마다 친구를 태그하고 적절한 농담과 또 정환을 보러 가자는 말들.
유쾌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한 반응들이었다.
잘생겼다는 말이 많아 기분도 나쁘지 않았고.
‘재밌는 사람들 많네.’
한참 동안 댓글을 구경하던 정환이 휴대폰을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휴대폰 알림창은 페북을 넘어 친구들과 지인들의 카톡까지 가득했다.
일문오상호 : 이거 뭐임 ㅋㅋㅋㅋ?
일문강석훈 : 웃는 거 실화? 개 느끼함.
일문오상호 : 댓글 반응 좋은 거 뭐냐? 알바 얼마 줬음?
일문강석훈 : ㅇㅇ. 몇 개는 용돈 받고 내가 달았음 ㅋ.
시은이 : 오빠. 이런 건 말 좀 하고 올려요! 진짜! 아무 때나 웃지 좀 말구요!
아르센 한기준형 : 사진 굿.
“으으으읏차!”
정환은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침대를 탈출했다. 하루 만에 SNS 유명인이 된 모양새인데 놀라는 것도 잠시뿐.
자리에서 일어난 정환은 이상하게도 덤덤해 보였다.
‘해프닝이지. 해프닝. 다들 그냥 하는 말이고.’
다른 이들이라면 이런 기류에 설레할지도 모른다. 허나, 정환은 이미 SNS 홍보 및 인플루언서가 가득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
‘5프로? 아니지. 1프로나 오려나?’
그가 덤덤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팔로워’나 ‘좋아요’의 덧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SNS상으로 저렇게 말하는 건 돈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팔로우하고 또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마찬가지.
거기에, 댓글 내용 중 가게를 가보자는 말은 많아도 실질적으로 아실에 관한 이야기나 칵테일 이야기는 적지 않나.
정말 바에 끌렸고 정환이 만든 잔을 마시러 올 사람이라면 응당 이에 대한 언급도 있었을 터.
대부분은 잠시 지나가는 흥미로 댓글을 달았을 거라. 정환은 그렇게 홀로 예상했다.
1프로 정도는 온들 크게 변화가 있을 거 같지도 않았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지나가는 해프닝이라. 어쩌다 하루 알고리즘을 잘 탄 거라. 정환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출근을 준비했다.
바 밖에서는 조금은 둔감해 보이는 한 바텐더의 모습.
그저 재밌었던 SNS상의 해프닝은.
그렇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5.
“여기구나.”
오후 7시가 조금 안 된 이른 저녁.
종로의 한정식집이 가득한 골목에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유명 잡지사의 에디터, 주민경이다.
민경은 담벼락을 따라 걷던 중 보이는 한 동판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의 앞에는 ‘Bar Asile’이라 적힌 동판이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다.
민경은 그런 동판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한 SNS 어플을 켜본다.
동판에 적힌 글과 같은 이름의 계정.
거기에는 이름도 성도, 또 자세한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는 한 잘생긴 바텐더가 은은하게 웃음 짓고 있을 뿐이다.
정말 마음에 든다. 이름도 성도, 또 나이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그녀.
물론 사전 조사를 할 수 없었다는 단점은 있었다.
허나, 이를 반대로 해석해 보자면 화제성은 이미 확보한 상태에서 자세한 정보는 또 시중에 풀리지 않았다는 뜻.
만약, 인터뷰를 따낼 수만 있다면. 민경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리는 걸지도 모른다.
‘화제성도 있고 바텐더라는 소재도 참신해. 이제…’
실체만 확인하면 된다. 인터뷰 전 꼭 체크 해야 하는 3가지. 화제성과 참신성, 그리고 사실성을 민경은 다시금 상기했다.
화제성과 참신성이야 이미 충분하다. 진짜 그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성만 충족하면 끝.
실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어느 수준 이상만 된다면 편집을 통해 교묘한 서술로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나.
‘어려 보이던데, 실력이 좋기야 하겠어?’
기본만 해라. 칵테일을 만들 줄만 알아라. 그러면 나머지는 알아서 살을 붙여 줄 테니까.
민경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실이라 불리는 곳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막 문을 연, 아직은 한적한 바의 풍경이 그녀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