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잔.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3.
임재훈이라.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 사람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잡지.
그저 지나가던 한국 잡지에서 저 사람의 사진과 이름을 봤던 기억이 정환의 머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 한국의 정취를 담은 바, ‘바 숲’ 3호점 개점! 오너 바텐더를 넘어 사업가로! 임재훈 바텐더 단독 인터뷰!
아마 그런 기사였다고, 정환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2020년대에 가장 뜨거웠던 바텐더, 또 한국 바씬에서 영향력이 한 손가락 안에 꼽힐 바텐더.
그게 바로, 저 임재훈이라는 바텐더였다.
‘역시 강남 출신이었나···’
유명하고 실력 좋은 한국의 바텐더는 대부분 강남 출신이다. 물론 그 예외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이 젊었을 적에도 조금은 남아있다. 나중에야 수염을 기르고 머리도 조금 현대적으로 변하지만, 뜯어보니 분명 사진에서 봤던 중년 남성의 얼굴이 저 청년의 얼굴에도 묻어 있다.
‘이야, 완전 앳된 모습이네.’
앳되기야 정환의 모습이 더 앳되어 보일지도 모른다. 정환에 비해 임재훈이라는 바텐더는 적어도 1, 2년의 경력은 더 있는 바텐더니까.
그저 12년의 기억을 가진 정환이 보기에는, 임재훈이라는 바텐더의 미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달라 보여 더욱 어리게만 보일 뿐이다.
임재훈은 성공한 바텐더였고 실력이 좋은 바텐더였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력보다야 사업 수완이 더 좋은 바텐더였긴 했지만.
‘말이나 한번 걸어볼까?’
정환은 점점 그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정환의 목표는 이후 자신만의 바를 만드는 것.
그렇다면, 사업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그와 가까워지는 것도 그리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물론, 그가.
사업적인 감각만큼, 바텐더로서 자각도 있다면.
“자, 이제 직접 만들어볼까요? 카시스를 이용해 엘 디아블로, 키르, 키르로얄, 그리고 파리지앵을 만들어봅시다. 만들고 있으면 제가 돌아다니며 봐 드릴게요.”
어느덧 강의는 짧게 끝나고 실습에 들어가는 시간이 찾아왔다.
강무성 바텐더는 각 가게에서 함께 온 이들에게 카시스 술병과 바툴을 건네며 직접 해보라는 말을 남겼다.
정환과 기준에게도 주어지는 병과 툴.
“아르센이야, 뭐. 워낙에 잘하겠지만요.”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태며 굳이 미운 티를 내고 자리를 떴다.
“참아. 다음에 정우 형이 보면. 괜찮아 져.”
“정우 형은···”
참지 않나요. 정환은 그렇게 물으려다가 신정우 매니저의 성격을 떠올리니 그럴 것도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고 농담 잘해 성격 좋은 그였지만, 할 때는 할 말을 질러주는 성격임을 상기한 정환은 다음을 기약했다.
- 샤카샤카샤카!
- 슬극슬극슬극!
십 수명의 바텐더가 동시에 칵테일을 만드는 장관이 펼쳐졌다.
평소처럼 침묵과 함께 칵테일을 만드는 게 아닌, 조금은 가벼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들.
저마다 잡담과 조언, 그리고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카시스는 그래도 오렌지 주스 타서 먹는 게 최곤데.”
“그러니까. 아니면 소다수.”
“야야. 그럼 스파클링 와인은 부족해서 키르로얄로 만들어 먹냐? 그냥 주문이니까 하는 거지. 똑바로나 해.”
조금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오가는 공간.
정환과 기준은 파리지앵이라는 칵테일을 골라 실습에 들어갔다.
파리지앵은 마티니에 카시스를 더해 완성하는 칵테일로, 마티니의 독한 맛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마실 수 있는 달달한 칵테일이다.
“어때 보여? 괜찮아?”
먼저 정환에게 묻는 기준. 기준은 자신이 선배임에도, 정환에게 의견을 구한다.
“스터에 조금 더 힘을 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안 그러면 그냥 마티니 맛이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정환은 조심스레 조언을 전했다. 그의 말을 받는 기준이,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음, 확실히 그런 거 같네. 잠시만.”
기준은 다른 글라스를 들어 손에 힘을 조금 더 주고 스터애 힘을 줬다. 평소보다 몇 바퀴 더 돌린 후 이를 맛보는 기준.
고개를 끄덕이며 정환을 향해 웃는 그의 표정이, 정환의 말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어때요?”
그때 쑥! 하고 둘 사이로 들어오는 한 얼굴.
앞서 자신을 아티치의 바텐더라 소개한 이연희라는 여성 바텐더였다.
“파리지앵이네요? 저 파리지앵 진짜 좋아하는데. 맛봐도 돼요?”
“어···, 연습으로 만든 건데. 괜찮을까요?”
“에이, 맛만 보는 건데 뭐 어때요.”
연희는 망설임 없이 기준의 잔을 들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보랏빛 옅은 액체가 그녀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터지는.
“와! 맛있다!”
조금은 큰 그녀의 목소리.
바텐더가 만들었으니 맛있는 게 당연함에도, 그녀의 목청은 크게 울렸다.
맛이, 자신이 알던 것보다 더 좋은 탓이다.
“이거 제가 알던 파리지앵보다 훨씬 좋은데요?”
“어때서 그래?”
“뭐야, 파리지앵? 그거 맛있기 힘들지 않나?”
“누구야 만든 사람이?”
모여드는 다른 바텐더들. 그들은 저마다 기준의 잔을 돌려가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여러 손을 거치며 점점 줄어가는 파리지앵.
이를 맛본 모두의 표정에.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 걸렸다.
“이거···, 딱 연하고 적당히 술맛도 나는 게 최곤데?”
“기준 형 얼마 전에 프론트로 나왔다더니···.”
“이 정도는 해야 프론트에 서는 거야?”
“아르센이네. 역시 아르센이야.”
이후로 쏟아지는 모든 말들이, 전부 극찬이라 기준은 사뭇 뻘쭘해지는 순간이다.
기준의 옆에는 정환이 조언을 던지기 전에 만들었던 파리지앵이 초라하게 놓여 있다.
“이건 뭐예요?”
기준이 홀로 만든 파리지앵에도 손을 뻗는 연희. 연희는 이를 굳이 입에 넣어보고는 그저 그렇다는 표정만을 띄울 뿐이다.
아마 옆에 있는 정환이 만든 거라. 연희는 그렇게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환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그래도 파리지앵 특유의 맛은 있는걸요? 신입 때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그렇죠, 기준 씨? 앞에 잔 안 마셨으면 이것도 엄청 맛있다고 느꼈을 정도인 걸요.”
“······.”
기준은 차마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그게 내가 만든 파리지앵이라. 그게 내 원래 실력이라.
그런 말을 하기에는, 앞에 들었던 극찬이 너무나 과해 차마 나설 수 없는 기준이다.
“미안···.”
그저 정환에게 입 모양으로 속삭이는 말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괜찮아요. 형.”
정환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런 곳에서 실력을 과시하며 주목받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바텐더가 실력을 내보여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손님의 앞이니까.
정환은 같은 바텐더들 사이에서 퍼지는 소문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봤자지, 뭐.”
어디선가 불편한 소리가 들린다. 들으라 하는 소리는 아님에도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은, 이들과 일부러 저 멀리 떨어져 돌아다니는 재킷을 입은 바텐더의 입에서 나왔다.
노벰버의 시니어, 강무성이다.
“어디, 재훈 씨는 어려운 거 없어요?”
그는 정환과 기준의 아예 반대편으로 가 다른 이들을 살폈다.
기준에게 이목이 쏠려도 자신의 칵테일에 집중하는 이들이 그의 눈에는 더 귀엽게만 보였다.
그리고 정환과 기준의 반대편에서 홀로 칵테일에 몰두하는 한 사람.
정환이 시선을 주고 주목하던, 임재훈이다.
“아, 네. 파리지앵을 해보는 중인데 어렵네요.”
“여기도 파리지앵이네? 어려울 게 있나. 마티니에 카시스 더 하는 건데. 왜? 뭐가?”
재훈은 오직 자신의 앞에 놓인 술에만 집중하며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아르센에 시선을 주지 않는 모습이 기특해, 무성은 그에게 도움을 주려는 참이다.
뭐, 자신이 더 맛있는 걸 만들 수 있다는 증명도 할 수 있고.
“카시스를 조금 더 넣어보려 하는 데 어렵네요. 조금만 더 해져도 맛이 무너져 버리니.”
“음, 카시스가 너무 달아서 그런 면이 있죠. 그럴 때는 드라이 베르무트의 양을 늘려보는 건 어때요? 진으로 늘리는 거보다는 베르무트가 나을 거 같은데.”
강무성의 처방에도 재훈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미 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방법이다.
“잘 안되더라구요···.”
“흐음.”
강무성은 어떻게든 재훈을 도와 무언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아르센 쪽에 기울어진 시선을 뺏어오고 싶은, 그런 불순한 의도로.
그는 임재훈이 만들어 둔 파리지앵을 한입 마시고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맛과 밸런스, 그리고 조화를 고민하는 무성.
정환은 건너편에 앉아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무성을 지켜보는 건 아니다.
자신들에게 이런 관심이 쏠림에도 제 할 일에 몰두하는 임재훈이라는 바텐더.
그를 주목하다 보니, 우연히 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정환의 주변으로.
“기준 씨. 우리 아르센에 한 번 들르면 안 돼요?”
“네? 갑자기···?”
“아니, 프론트에 서고 나면 한 번씩 초대도 하잖아요? 기준 씨는 매번 아르센 바쁘다고 핑계던데···, 이제는 사람도 늘었잖아요.”
다른 바텐더들이 나누는 대화도 잔잔히 흘러든다.
기준은 명진의 몸이 좋지 않음과 일손이 부족함을 들어 늘 이들의 방문을 거절했다.
일반 손님만으로 벅찬 아르센에 이들이 온다면, 명진의 성격상 건강은 생각지도 않고 이것저것 챙겨줄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헌데, 지금은.
정환까지 데려온 후이니, 이를 거절할 명분이 없다.
“오시라고 해요, 형. 저랑 다른 분들 다 있을 때면 괜찮을 거 같은데요?”
정환은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 귀를 열어 이들의 말에 답했다.
한 번쯤은 이들을 초대해도 좋을 거라. 또, 이들을 초대하다 보면 자신이 바라보는 다른 인물도 함께 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담긴 은근한 속셈이다.
“괜찮을까?”
“제가 열심히 뛰면 되죠. 형들 뒤랑 마스터 뒤랑 열심히 뛸게요.”
“뭐, 그럼···.”
그래, 정환 정도 되는 이가 바백을 봐준다면 그리 무리도 아닐 거라.
정환이 바백을 설 때면 얼마나 여유로운지를 생각한 기준은 다른 주니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신 거죠? 한 번 갑니다? 약속 잡아요!”
“괜찮으시면 오실 수 있는 분 다아-. 모시고 와요. 알았죠?”
정환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연희를 향해 진득한 미소를 보여주고는 시선을 재훈과 무성에게 다시 던졌다.
마치,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이를 꼭 데려오라는, 그런 말로 보였다.
정환의 시선에 무성이 움직이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성은 재훈이 계량해 둔 진과 베르무트, 카시스를 합친 액체에 힘을 줘 스터를 더 하기 시작했다.
“음, 아무래도 용량은 그대로 두고 스터를 더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이렇게 해봐요.”
정환이 기준에게 했던 말처럼, 스터를 더 강하게 해보라 권하는 무성.
재훈은 아직 도전해보지 않은 일인 듯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게 스푼을 잡고 조금 더 과격한 스터를 시작하는 재훈.
재훈의 스터를 보는 정환은 눈썹을 교차하며 불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거···,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같은 조금 뻔한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