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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21화 (21/175)

21잔. 아는 사람이야?

2.

“어서와요, 기준 씨.”

조끼에 넥타이를 걸친 멋들어진 차림의 바텐더가 문을 열고 두 명의 손님을 맞았다.

20대 중반에서 후반. 딱 한기준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바텐더는 기준을 향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일행이 있으시네요?”

“이쪽은 우리 바에 신입···, 정환 씨.”

“안녕하세요, 차정환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기준과 정환.

오늘은 기준이 정환에게 칵테일 스터디 모임 사람들을 소개해 주는 날이다.

“아르센에 신입이 들어왔다더니···. 벌써 여기 올 정도인가요?”

기준과 정환을 맞이한 바텐더는 이제 석 달도 되지 않은 바텐더가 벌써 모임에 나오는 게 신기한 듯 정환의 면면을 훑었다.

바씬이라는 곳이 그렇다. 사람들이 밖에서 보는 멋들어진 모습과 실제 하는 일의 괴리감이 크다 보니 도망가는 이들도 많고 중간에 포기하는 이도 많은 업계.

일정 기간 이상을 일하지 않은 이들은 같은 동료들에게도 큰 신뢰를 얻지 못해, 이런 업계 모임에 초대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곳이 바씬이었다.

못해도 반년.

기준 역시 늦지 않은 시간에 초대받았던 모임이었지만, 정환은 그보다 반절이나 더 빨리, 이곳의 문을 두드렸다.

그를 데려온 한기준이라는 선배가, 정환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준은 데뷔전이라는 중요한 날을 지낸 후 정환을 계속해서 챙겨주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받은 챙김에 대한 보은이 맞는 말이겠지만, 한 번 있었던 일치고는 제법 과한 보상이 계속해서 정환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모임에 정환을 초대한 것이다.

바라는 곳은 대부분이 영세한 업장이다. 다른 회사나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과 다르게 이들에게는 없는 게 있었으니, 다름 아닌 동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때로는 서로 의지하고, 또 때로는 서로 뭉쳐 목소리를 내는 동기라는 존재가 이들에게는 없다.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이런 커뮤니티.

이제 막 프론트에 나선 바텐더들과 곧 나설 바텐더들로 구성된 이 칵테일 스터디는 강남 바씬의 미래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모임일 것이다.

여기 모인 이들이 나중에는, 각 바의 중견을 차지할 그런 인물들일 테니까.

“실력이 좋아서···. 잘 적응할 겁니다.”

“그래요? 저희야 사람이 늘어나면 좋죠. 들어오세요, 정환 씨. 전 서지웅이라고 합니다. 3년 차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기준이 정환을 데려온 곳은 아르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노벰버라는 바.

한때는 정환이 이력서를 넣어 볼까 고민하기도 했던 곳이 바로 노벰버였다.

정환은 자신이 일했을지도 모를 그 가게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

“다들 무난해. 편하게 인사들 해.”

“네, 형. 고마워요. 이런 데 다 데려와 주시고.”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에이, 또···”

기준은 계속해서 정환에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저 한 번 있었던 일이었을 뿐인데, 데뷔전이라는 큰 이름이 붙었던 만큼 기준에게는 정환의 도움이 크게 남은 모양이다.

“들어가자.”

기준은 정환을 데리고 노벰버의 라운지로 향했다. 바 테이블을 중심으로 가게를 꾸려가는 아르센과 달리, 노벰버는 라운지도 크게 운영하는 규모가 큰 가게였다.

굳이 따지자면 아르센에 세 배에서 네 배.

일하는 이들 역시 많다던데, 과연 이 정도 규모의 바를 운영하려면 몇 개의 쉬프트를 돌려야 할지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거의 호텔 바 수준이네···’

백바는 정통 바처럼 꾸며져 있지만 다른 벽면을 채운 와인 병이 이곳이 칵테일 바와 함께 와인도 다루고 있음을 나타냈다.

한국에서 바를 운영하려면 차라리 이렇게 운영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칵테일보다는, 와인이 조금 더 대중적이었으니까. 수익적으로 봤을 때는 이게 옳을 것이다.

“어, 기준 형이다. 형.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저번 달에 안 나오셨죠?”

안으로 들어선 기준과 정환을 다른 젊은 바텐더들이 맞아줬다.

문을 열어준 서지웅이라는 바텐더는 노벰버 소속으로 보였고 나머지 바텐더들은 평상복을 입은 게, 이곳이 아닌 다른 바의 소속으로 보였다.

“응. 저번 달에 좀 바빠서.”

“자주 좀 나와요. 얼굴 까먹겠어요.”

“그럴게.”

“옆에는 누구···?”

한 사람이 다가와 기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기준을 형이라고 부르는 거로 봐서는 정환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

그가 정환을 보며 말을 묻자, 함께 떠들던 다른 젊은 바텐더들의 시선이 동시에 정환에게 쏠렸다.

“우리 신입. 인사해, 정환 씨.”

“안녕하세요, 아르센의 신입 차정환입니다. 기준 선배의 소개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왔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왔어요. 아르센의 신입이면 이제 석 달 차 아닌가? 이야, 빠르네요. 난 아티치의 2년 차 이광식이에요.”

한국의 바씬이라는 곳이 얼마나 좁은 곳인지 다시금 알게 된다. 아르센이라는 곳에 신입이 들어온 게 석 달 전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나중에는 술잔 숫자도 알겠네···’

긴자의 바씬보다 훨씬 밀접한 이들의 관계에 정환은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정환을 반기는 인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믹스트’ 1년 차 고상명이에요.”

“‘위스키 바 J’에서 근무하는 1년 차 김주환입니다.”

“‘아티치’ 2년 차 이연희요.”

이제야 얼굴을 제대로 보고 인사를 나누는 같은 업계의 동료들.

일본에서 일을 시작해 이들과 많은 교류가 없었기에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 많다.

정환과 교류하고 또 일본까지 정환에게 무언가를 배우러 왔던 이들은, 여기 모인 바텐더들 보다는 한 세대 뒤의 더 어린 바텐더들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사람들의 고용주···’

15년 후면 이들은 경력이 10년 후반대에 들어가 다들 자신의 바를 가지게 된다.

10년, 15년이 지나서도 일선에서 활동하는 바텐더들은 극소수. 해서, 이중 정환과 면식이 있는 이는 없어 보였다.

뭐, 사라진 이들도 있을 수는 있다. 바씬이라는 곳이 언제든 사람이 들어오고 또 떠나는 곳이기도 하기에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현상이다.

이들 중 몇은 아마 15년 후 바 업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환은 기준과 라운지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 앉았다.

원래 취지야 공부하고 함께 연습하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인맥을 쌓는 게 더 큰 역할을 하게 된 지금이다.

“휴우. 사람 만나는 게 제일 힘드네요.”

“그래도 익혀들 둬.”

“도움이 될까요?”

“이직···. 해야 할 수도 있잖아?”

바 업계는 다른 곳에 비해 이직이 쉬운 곳이다. 한 바에서 일했던 이가 바로 옆에 있는 바로 적을 옮겨도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는 곳이 바로 바씬.

세상에 존재하는 바텐더의 수만큼 다양한 칵테일의 맛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각 바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게 달랐기에 서로 사람을 주고받는 게 얼굴 붉힐 일이 아닌 곳이, 바 업계였다.

“전 아르센이 좋은데요? 꼭 이직할 필요는···”

독립이면 몰라도.

“나도 그래. 그래도 모르잖아.”

“뭐, 그건 그렇죠.”

아르센이 좋다. 그 말에 서로 진심이 통한 건 지 기준과 정환은 옅게 웃고는 각자 준비한 노트와 필기구를 꺼냈다.

“스터디는 어떻게 해요?”

“시니어 바텐더가 한 명 나올 거야. 오늘은 노벰버. 강남 바에서 돌아가면서 서로 스터디를 봐주거든.”

“그럼 정우 형도요?”

“아르센은 안 해. 우린 워낙 작잖아.”

“아. 그렇긴 하죠.”

기준은 데뷔전과 명진의 건강 등의 이유로 스터디를 두 달이나 불참해야 했다.

바백이었던 기준이 이렇게 바쁠 정도인데 매니저인 신정우는 어떻겠나.

신입을 봐주는 게 강남 바의 전통이라고는 해도. 여유가 없는 아르센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기준과 정환이 대화를 나누던 중, 노벰버의 백사이드가 열리고 거기서 두 명의 바텐더가 몸을 빼냈다.

한 명은 조금 전 정환을 반겨줬던 서지웅 바텐더였고, 다른 한 명은 재킷을 걸친 시니어 바텐더로 보였다.

그를 보는 기준의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자. 다들 모이셨나요?”

시니어 바텐더는 홀로 바 안에 들어서더니 이내 모인 이들을 보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가 오늘, 스터디를 진행할 시니어 바텐더로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분들도 많네요. 기준 씨. 잘 지내셨죠?”

“네···. 오래만이네요.”

“얼마 전에 데뷔전이 있으셨다던데. 잘하셨나요?”

“네. 덕분에요.”

“요즘 같은 때에도 데뷔전이라니, 아르센은 참 고상한 맛이 있어요. 그죠?”

- 하하하하하.

- 데뷔전? 그게 뭔데?

말을 시작한 시니어 바텐더의 한마디에 모인 이들이 술렁이며 여러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익살스러운 표정 때문인지 몇몇은 크게 웃기도 했고, 또 요즘 바텐더들은 데뷔전이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이기도 했다.

‘뭔가···’

비꼬는 느낌이 강하다. 정환은 저 시니어 바텐더의 말에 그런 기분을 느꼈다.

부러 개인적인 대화를 크게 해서 주변에 전하는 이들의 의도는, 십중팔구 좋지 못한 곳에 있다.

“옆에는?”

“아르센의 신입, 차정환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 신입이 벌써 여길 와요? 이럴 때는 또 빠르네, 아르센.”

“네?”

“아니, 뭐. 신입이면 이제 석 달 차 아닌가? 중간에 도망가면 어쩌려고 벌써 신입을···”

“······.”

그래, 그런 생각. 바텐더라면 모두 업계에 대해 아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헌데, 그런 생각을.

당사자 앞에서 뱉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정환은 눈매를 고치고, 시니어 바텐더를 조금 매섭게 바라봤다.

“뭐, 긴자만의 고상한 방식이 있겠죠? 안 그래요?”

- 하하하하.

“그나저나, 우리도 석 달 전쯤에 공고를 냈었는데, 아쉽네요. 어쩌면 우리 식구가 될 수도 있었겠는걸? 아, 그러면 스터디는 조금 늦었겠지만. 우린 고상함이랑은 거리가 있으니까요. 하하하.”

- 하하하하하하.

시니어 바텐더는 무언가 노골적으로 아르센에 좋지 못한 감정이 있는 듯 굴었다.

계속해서 대중 앞에서 아르센에 대한 말을 꺼내는 그의 태도가, 정환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참아.”

“네?”

“저 사람. 떨어졌었거든. 아르센.”

한참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정환에게 기준이 슬쩍 귓속말을 들려준다.

들려온 말은, 나름 충격적이었다.

“정우 형 때였을 거야. 둘이 친구고.”

“그럼···?”

“응. 아르센 떨어진 후로 늘 저런 데. 오늘이 저 사람 차례인 줄은 나도 몰랐네. 정우 형이라도 있었으면···”

찍소리를 못할 텐데. 아쉬움을 가득 안은 기준의 얼굴이 절레 저어졌다.

“자자, 입은 여기까지만 풀고요. 이제 시작합시다. 우선,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7년 차 노벰버의 헤드 바텐더, 강무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짝짝짝!

노련한 경력의 바텐더답게. 강무성은 화려하게 인사하고 자신을 표현했다.

과장된 몸동작 하나하나가. 관심을 받는 것에 목말라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오늘은 카시스란 리큐르를 공부할 거예요. 카시스의 역사와 특징을 보고, 또 실습해봅시다.”

무성은 자신이 준비한 강의를 차분히 설명하며 말을 이어갔다.

다행히 이후로는 별다른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너무 노골적인 시비는 자신을 깎아 먹는 것임을 그도 모르진 않아 보였다.

오늘의 주제는 카시스라는 블랙커런트 베리로 만든 포도주와 비슷한 달콤한 맛의 리큐르였다.

정환은 그의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참석한 바텐더들의 면면을 훑을 뿐이었다.

강의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정환이 이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만나진 않을까 하는, 그런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흠···, 없어 보이네.’

딱히 친하게 지냈던 이들은 없다. 특히나 자신보다 윗세대에는.

허나, 유명한 사람이라면. 못해도 지나가다 이름이나 사진 정도는 스쳤을 수도 있다.

혹여나 기억 속 저편에 남은 이들은 없나, 정환은 열심히 눈을 돌렸다.

“자, 카시스는 흔히들 크렘 드 카시스라고 하죠. 여기서 말하는 ‘크렘’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 아시는 분 있나요?”

한참을 정환이 시선을 돌리는 와중에 강무성의 질문이 주니어 바텐더들을 향했다.

정환은 관심도 없기에, 귀담아듣지는 않았고.

조용해지는 주니어 바텐더들. 강무성이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시선을 몇 번 주자, 이내 정환과 반대편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바텐더가 손을 들어 올렸다.

차분하게 머리를 내린, 잘생겼지만 눈빛이 강한 그런 바텐더였다.

“‘크렘’은 리큐르 1L에 250g 이상의 당분이 포함되어 있어야 붙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네, 뭐. 정확해요.”

무성은 자신의 후배가 아닌 다른 이의 입에서 답이 나오자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확하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강의를 이어갔다.

이를 보고 있던 정환은.

‘어···?’

방금 손을 들어 올리고 답을 말한.

그 젊은 바텐더에게 시선을 뺏겨 버렸다.

누구지.

처음에 든 생각은 누구냐는 그런 생각이었다.

이건 그냥 저 사람에 대해 궁금해서 생기는 관심이 아니라, 오래전에 봤던 사람의 얼굴을 다시 봤을 때. 그때 떠오르는 그런 의문임이 분명했다.

직접 관계를 맺고 교류한 바텐더는 아닐 거다. 기억이 그렇게 선명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지나가다가, 또는 잡지 정도에서 봤을 법한 얼굴.

15년이라는 시기의 차이가 있어 정확히 얼굴을 아는 건 아니지만.

정환은 분명 저 바텐더를 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환은 한참이나 그 바텐더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는 사람이야?”

그때, 정환에게 슬쩍 말을 묻는 한기준.

“아뇨···, 어디서 본 거 같아서요. 그냥 드는 기분인가 봐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정환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형은 아는 사람이세요?”

“응.”

“누구에요?”

“한남동 마리너스 바의 임재훈 바텐더일걸?”

!!!

“아마 3년 차일 거고. 실력도 좋아. 아마 여기서 제일? 친하지는 않고. 쟤도 나도 붙임성은 없어서.”

정환은 기준의 입에서 이름을 듣자 몸을 굳히며 기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의 귀에 들린 이름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임재훈···?’

이제야 정환의 머릿속에서 희미한 이름 하나와 얼핏 본 얼굴이 선명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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