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8화 (8/175)

8잔. 칵테일의 왕.

1.

“안녕하세요? 4시 면접 보기로 한 차정환입니다.”

잘 찾아왔다.

우선은 그런 생각에 정환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밖에서 볼 때는 몰랐다.

아르센이라는 바의 안쪽이 이렇게 잘 꾸며져 있을 줄은.

언제부터인가 앤티크니, 빈티지니 하며 과하게 꾸미는 인테리어가 유행하곤 했다.

언제적 물건인지도 모르는 장식품을 곳곳에 두며 중세풍을 물씬 내뿜는 그런 인테리어들.

하지만 늘 과함은 절제된 세련미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아르센은 그런 과함을 물리치기에 모자람이 없는 세련미를 가득 품은 공간이었다.

“반가워요. 아르센의 마스터, 이명진이라고 해요.”

하얀 재킷에 굵게 묶은 넥타이. 적당한 포마드로 깔끔하게 쓸어올린 머리가 잘 어울리는 중년인이 정환을 맞이했다.

김태현 교수가 말했던 긴자 출신의 그 바텐더로 보였다.

“편히 앉아요.”

“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질문을 몇 개 드릴 테니 편하게 답해줘요.”

이명진 바텐더는 인자한 표정으로 정환을 대했다.

노련하고 성숙한 바텐더.

명진을 처음 본 정환의 소감은 그러했다.

다만, 한가지 정환으로서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기대는 안 하는 눈치네···’

그의 눈빛에 정환을 향한 기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뭐, 이력서로 보이는 것에 매력을 느낄 부분은 없다. 그걸 알기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면접에 몰두하자는 생각만 떠올렸다.

정환은 명진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으며 내부의 풍경을 둘러봤다.

길게 뻗은 아크릴 바와 고급진 가죽으로 등받이까지 갖춘 의자. 그리고 프라이빗하게 준비된 몇 개의 테이블 좌석까지.

말 그대로 긴자의 바를 옮겨놨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긴자풍이 물씬 느껴지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와···. 긴자 출신 아니랄까 봐.’

정환이 자리에 앉자, 명진의 질문이 시작됐다.

“건성대에 재학 중이시네요. 자취 중이신가요?”

“네, 자취 중입니다. 거리가 가까워 도보로도 충분히 출퇴근이 가능합니다.”

“그런가요? 건성대까지 걸어서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요?”

“가능합니다. 아직 젊으니까요.”

실제로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다. 정환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일부러 이렇게 답해봤다.

밤늦은 시간에 문을 닫는 바의 특성상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한 직원을 더 선호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써 고개를 끄덕인 명진이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흠···. 학교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죠? 아무래도 학업과 병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텐데요.”

“이번 학기는 전부 다녀야 합니다. 이미 등록금을 냈거든요. 하지만 다음 학기는···. 우선 휴학을 생각 중입니다.”

“이번 학기라면?”

“6월 초까지요. 시간표는 이미 조정해두어서 이번 학기도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6월 이후로 스케줄을 조정하면 출근 일수를 늘릴 수 있겠군요.”

“네. 가능합니다.”

묻는 말에 시원스럽게 답하는 정환을 보며 명진이 표정을 점점 고쳐갔다.

하나를 물으니 그에 맞춰 다음 물음까지 이어지게 답을 들려준다. 채용된 다음을 대비해둔 듯한 모습까지 보이니. 명진의 표정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명진은 슬쩍 기대감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정문의 이력서를 내려놓았다. 별다른 볼 게 없는 이력서였기에 더는 물을 것도 없었고.

“매니저가 미리 공지했을 겁니다. 칵테일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고.”

“네, 들었습니다.”

“지금 바로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좋네요. 바 너머로 가서 마티니를 한 잔 만들어 보겠어요? 아르센의 바텐더로서 손님에게 낸다는 생각으로.”

과제가 떨어지자 정환은 속으로 크게 웃었다.

마티니를 만들라는 명진의 저 말뜻을.

정환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능구렁이다.

그저 인상 좋고 인자한 중년의 바텐더.

그렇게만 보였던 명진의 모습이.

정환에게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티니를 만들라는 그의 과제는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경력 1년 차에게 맛있는 마티니를 만들라 할 것도 아니고, 그저 완성품을 만들라는 뜻이 아닌가.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를 6대1의 비율로 스터하면 끝.

누구나 레시피를 외울 수 있고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이 마티니였다.

허나, 정환은 마티니에 집중하지 않았다.

명진이 던진 저 과제 속에서 진짜 중요한 건 마티니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으. 어렵긴 어려운 문제네.’

경력 1년 차라면 충분히 어려울 수 있는 문제다. 바텐더로서 필드에서 활동해보지 못한 자들이라면 더더욱.

정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천천히 준비해요.”

처음 와본 곳이고 낯선 풍경일 거다. 명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환에게 편안히 준비하란 말을 전했다.

어차피.

칵테일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네, 그럼.”

잠시 바툴(bartool)을 살피며 위치를 파악했다. 마티니에 필요한 건 간단했다.

술을 섞어 줄 믹싱 글라스와 얼음. 그리고 진과 베르무트면 끝.

잔이야 눈앞에 쭉 놓여 있고 마티니를 담는 잔은 마티니 글라스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게 아닌가.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시죠.”

명진은 정환의 눈이 마티니 재료들을 모두 훑는 걸 보고 시작을 알렸다. 차분히 손에 집중하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제일 먼저 손을 뻗어 믹싱 글라스를 준비했다. 얼음을 채워 잔을 식혀두고 믹싱 글라스에도 얼음을 넣는 정환.

손은 빠르게 움직였으나, 여기까지는 주목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다른 면접자들 역시 처음에는 이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시작하란 말이 들리면 빠르게 믹싱 글라스를 잡고 얼음을 채웠다. 또 바로 진을 찾아 이를 넣고 베르무트와 스터.

거침없이 손을 움직이던 앞선 면접자들의 모습도 지금의 정환과 다를 바는 없었다.

물론.

여기까지지만.

명진은 계속해서 정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딱 여기. 여기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한 명진의 모습.

정환은 그런 명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로 손을 멈췄다.

‘···?’

명진의 눈이 그런 정환의 손을 빠르게 쫓는다. 다른 면접자들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진을 찾아 손을 움직였을 타이밍에 손을 멈추다니.

기대라곤 보이지 않던 명진의 얼굴에 무언가 기대와 비슷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손님. 선호하는 진은 있으십니까?”

!

정환의 입이 열리자.

명진의 얼굴에 웃음이 아렸다.

2.

선호하는 진이 있냐라.

별거 아닌 질문이다.

적어도 전문 바텐더에게는 말이다.

바텐더란 손님과 교감하고, 또 그 교감 속에서 손님의 취향을 찾아 이에 맞는 술을 만들어 내는 사람.

명진이 생각하는 바텐더는 그러했다.

흔히들 바텐더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칵테일이란 단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뭐, 바텐더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상관이 없다.

다만, 바텐더라면 절대 그래선 안 되는 법.

바텐더라면.

자신의 직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눈앞에 앉은 손님이란 걸 아는 것이다.

명진은 그래서 매번 ‘바텐더’로서 ‘손님’에게 내어줄 마티니를 만들어 보란 말을 전했다.

신입이라면 모를 수도 있다.

다만, 적어도 경력 1년 이상이라면.

그 이상의 역량을 펼쳐야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조금 전과 같은 그런 답이 나와야 한다.

주문받은 칵테일의 주체가 바텐더가 아닌 손님이 되는 것. 손님의 취향을 최대한으로 살리며 그 속에서 자신을 펼쳐나가는 것.

그게 바텐더로서.

기본 마음가짐이니까.

“갔습니까?”

멍하니 백바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명진에게, 젊은 바텐더가 다가왔다.

아르센의 매니저인, 신정우 바텐더였다.

“이번에도 꽝인가요?”

신정우는 불안한 표정을 하며 마스터의 눈치를 살폈다. 매번 면접자마다 좋지 못한 모습만 보였기에, 우선은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그였다.

“글쎄요. 꽝이라···. 허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꽝이라. 그래, 어떻게 보면 꽝일지도 모른다.

조금 다른 의미로 꽝이지만.

“말씀 좀 해주세요. 저도 이제 이력서는 그만 보고 싶어요.”

“이제 더는 볼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럼···?”

“예. 정했어요. 방금 면접을 본···, 차정환 씨로 하죠.”

“다행이네요! 경력도 없다길래 기대가 없었는데···. 자격증이라도 보고 이력서를 뽑은 게 다행이었네요.”

“그러게요. 정우 씨. 고생하셨어요.”

망설임도 없었고 고민도 없었다. 응당 바텐더라면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태도로 말을 뱉었던 면접자였기에 명진은 더욱 만족스러운 찰나였다.

“그럼 방금 그 면접자로 정하시는 거죠?”

“그래요.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요. 일정을 잡아주세요.”

“기준이도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요. 이번 주 안으로 일정 잡아 놓겠습니다.”

“새로운 직원이니 잘들 부탁드려요. 너무 괴롭히셔도 안 되고.”

“당연한 말씀을요. 잘 가르쳐보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명진은 몸을 일으켜 백사이드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에 남은 정우는 명진의 앞에 놓인 차정환이라는 면접자가 만들어 놓은 마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맛을 한 번···?’

볼까. 면접도 잘 봤다고 하고 마스터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바에 채용하고 난 후면 계속해서 그의 옆에 있어야 하는 건 바로 자신이다.

정우는 그런 생각에 미리 실력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 흐으으음.

잔을 들어 코로 가져갔다. 드라이한 마티니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코로 파고들었다. 밸런스가 아주 잘 잡힌, 그런 마티니 향이었다.

‘실력이 생각보다 제법인데?’

정우는 마티니가 든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미 상온에 노출된 지 오래된 마티니라면 술의 비중에 따라 층이 나뉘게 된다.

그런 층을 가볍게 돌려 없애준 정우는 이를 입으로 가지고 가려 했다.

하지만.

“정우 씨.”

“옙? 예?”

백사이드로 향하던 마스터의 목소리에 정우는 손을 멈춰버렸다. 아쉽게도 아르센에서는 바텐더가 영업 전이나 영업 중 술을 마시는 걸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손님이 권하는 술 역시 애써 거부하는 곳이 아르센이기에, 이렇게 시음하는 것도 영업이 끝나고 나서야 허락되는 곳이 아르센이었다.

“설마···, 술 드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아니···, 그, 그게···, 가볍게 시음만? 일 가르치려면 실력도 알아야 하고···”

“내려놓으세요. 안 됩니다.”

“······.”

“매니저가 그러시면 안 되는 거죠.”

“옙···.”

“이제 밑에 직원도 늘었으니, 더욱 모범이 되어주세요.”

크게 꾸짖지는 않지만, 늘 이런 식이다.

마스터에게 한 소리를 들은 정우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잔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뭐, 다음에 맛보면 되는 거니까.’

신입이 들어오면 일을 가르치는 건 온전히 매니저의 몫. 앞으로 부대낄 일이 많은 정우이기에 미련 없이 술을 버리려 했다.

그렇게 정우가 마티니가 든 잔을 싱크대에 기울이려 할 때.

!

정우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게 들어온다. 살짝 기울였음에도 바로 쏟아지지 않는 마티니. 정량에 조금 모자란 듯 잔 아래로 선을 맞추는 마티니의 양이 정우의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이거 왜 양이···?’

칵테일 글라스는 그 용량이 딱 정해져 있다.

칵테일을 만들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완성된 칵테일이란. 이 잔에 딱 맞게 따라내는 칵테일을 말할 것이다.

정우는 다시금 잔을 높이 들어 수위를 확인했다. 확실히. 딱 10ml 정도. 시음하는 사람이 맛보기 좋은 한 모금 정도의 양이 모자라는 마티니.

정우는 잔을 낮춰 이번에는 입술이 닿는 잔의 림 부위를 확인했다.

‘이건···?’

선명한 입자국. 누군가 분명 입을 가져다 댄 흔적이 잔에 남아있었다.

누굴까. 그런 의문도 잠시, 답은 명확했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명진이 사라진 백사이드 쪽을 바라봤다. 왜? 라는 큰 의문과 함께.

마신 걸 의아해하는 건 아니다. 면접을 봤으니, 맛이 궁금도 하셨겠지.

정우가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은 맛을 봤으면서.

애써 들어갔던 백사이드에서 다시 나와 규정까지 들먹이며 정우가 맛보는 걸 막았다는 점.

정우의 의문은 거기에 있었다.

“······.”

정우는 말없이 마티니를 개수대에 부었다. 의문은 의문이지만, 마스터가 부러 이렇게 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정우의 시선이 백사이드를 향했다.

제법 오래 봤다고 여겼건만.

그는 아직 이명진 마스터의 속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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