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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안에서 찾는 것들.
“우와아, 우와아~ 달님이 형. 저기 나무 좀 봐.”
“어디, 어디. 어? 우와아아아~ 정말 크다. 어떻게 나무가 저렇게 크지?”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 들어서자 선샤인과 달님이가 크게 놀라워했다.
쇼쇼니 반도의 땅이 살아 난지 얼마 안 됐다.
배달에서 가장 큰 나무라고 해봐야 10m 크기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대전에 도착하여 세계수가 자라는 초록마을이 가까워지자 20m 이상의 아름드리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몇 년 사이에 자란 나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헤헤헤~ 일라이 아줌마가 그러는데? 마법으로 저렇게 크게 자랐대. 엘프들의 마법.”
“엘프? 우와~ 엘프들은 정말 대단하다.”
“신기하니? 세계수는 여기의 나무들보다 훠~얼씬 크단다.”
“우와~ 정말이에요? 그런데 영주아저씨. 세계수는 얼마나 커요?”
“후후후~ 글쎄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가 한 100m 정도로 자랐던가? 하도 오래간만이라 지금은 얼마나 크게 자랐는지 궁금하군.’
“달님아. 세계수가 얼마나 크게 자랐을까?”
“움~ 한 50m 정도요? 아니 70m요. 마, 맞나요?”
“에이 형. 그건 좀 아니다. 그렇게 큰 나무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그래도 세계수잖아.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
“70m 높이면 여기에서 보여야 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큰 나무가 안 보여. 아빠가 언덕에 심었다고 했는데.”
선샤인의 말대로 세계수는 나름 고지(高地)에 심었고 70m 크기라면 이곳에서 보여야 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세계수는 엘프 종족의 근원이다. 비록 나무였지만 신적인 존재였다.
자체적인 은신기능이 있어 일정거리(대략 10Km) 밖에서는 사람과 몬스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성장 중이라서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세계수 특유의 생명의 기운을 발산한다.
엘프와 인간의 신체에 유익하지만 몬스터에게는 더욱 좋아 강한 몬스터가 세계수 근처로 몰려든다.
최근 대전이 몬스터 사냥지로 성장하는 이유. 여기에 엘프들이 만든 결계와 인식을 저해하는 숲의 미로가 더해져 초록마을은 인간과 몬스터가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다만, 팰리스와 축복이 엘프들의 친구이자 보호자로 신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거목들이 시찰단에게 길을 열어줬다.
길이 열리자 신이 난 실버 라이칸이 시찰단과 열어준 미로 사이를 지랄발광하며 뛰어다녔다.
‘컹! 컹, 컹! 컹컹컹~’
‘두다다다다~ 두다다다~’
“허허~ 녀석들도 참··· 어제도 그러더니만 오늘도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군.”
“거 봐요, 여보. 그동안 저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대부분 마고성에만 지내고··· 가끔은 저렇게 뛰어놀게 해야 해요.”
“어, 어? 그, 그래··· 아~ 미로가 이제 막 열렸다. 이럇~”
괜히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팰리스. 거목들이 (일정구간의)미로를 열어주자 재빨리 말을 몰았다.
‘떠걱, 떠걱~’
1시간을 느릿느릿 이동하자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초록마을은 미로의 숲과 (엘프들의)강력한 결계로 보호된다.
결계의 통로에도 배달의 레인저 (살아 있는 나무로 된)초소가 설치되어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오늘은 결계의 입구가 활짝 열렸고 그곳에 엘프마을의 수뇌부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참, 이쯤이면 웅장한 세계수가 충분히 보일 거리였다. 그러나 하늘을 덮은 나뭇가지로 인해 세계수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일정에 맞춰 우릴 마중 나왔나보군.’
“워워~ 정지!”
“정지, 정지하라!”
‘이히히히힝~’
팰리스 일행이 멈추자 마중 나온 엘프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엘프들이 인간에 보이는 최상의 예로 수호자 일라이가 대표로 팰리스를 환영했다.
“배달의 정당한 통치자이자 엘프들의 친구이며 보호자이신 팰리스 파이온 배달 자작각하. 초록마을이 영주님과 그 일행들을 환영합니다.”
“고맙소, 여러분. 이제 그만 일어서시오.”
“감사합니다, 영주님.”
‘스윽~’
“영주님. 말을 이곳에 매어두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고맙소. 일라이. 일동··· 하마!”
말과 마차에서 내릴 팰리스 일행이 결제를 통과하여 초록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일라이. 전체회의에서 보고 꽤 오래간만이오.”
“호호호~ 그러네요. 영주님이 너무 바빠서··· 자주 좀 찾아오시면 좋았을 텐데요.”
“맞습니다. 그동안 너무 격조했습니다.”
“미안 하외다, 카이라 장로. 아참~ 혹시 마을에 필요한 것이나 무슨 개선할 점이 있소이까? 있으면 알려주시오. 일라이가 회의석상에서 좀처럼 말하지 않아서요.”
“필요한 것이라··· 험험~”
카이라 장로가 헛기침으로 자신의 뜻을 알렸다.
팰리스는 말라죽어갈 엘프들에게 살아갈 터전을 제공했다.
세계수의 싹을 틔워 엘프들의 미래를 보장해 줬다.
이런 처지에 필요한 점을 말하랬다고 얼씨구나 말한다면 너무도 염치가 없을 것이다.
“하하하~ 괜찮소.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장로, 그리 어려워하지 마시오. 솔직히 당신들이 존재하는 그 자체부터가 우리에게 대단한 도움이오. 쇼쇼니 반도의 땅이 당신들로 인해 살아났으니.’
“험험~ 그렇다면··· 죄송합니다만 영주님. 저희 엘프들도 마땅한 사업이나 일거리가 필요합니다.”
“사업, 일거리?”
‘갸우뚱~’
팰리스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몇몇 엘프가 배달군의 저격수로 고용되어 배달에 기여하고 있었고 곡물과 채소, 약초 재배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배달은 그 대가로 레인저와 조언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했는데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 활동하는 엘프는 전체의 20% 미만이었다.
그런데 엘프사회는 개인의 재산이 없는 원시 공동체 사회였다.
이런 특성을 인정한 팰리스는 엘프들의 편의를 위해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매달 상당한 금액을 지원해왔다.
“영주님. 당연하게도 시장에서 물건들을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아~ 지원금이 부족했나보구려. 알았소. 지원금을 두 배로 늘려서···”
카이라가 손사래를 치며 팰리스의 말을 중단시켰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지원금은 지금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왜···”
“영주님.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거금을 지원받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사실은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도 그렇지만 젊은 엘프들 때문에··· 최신판 망가를 사고 싶어 한다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잖습니까? 하아~ 요새 젊은 것들이··· 쯧쯧쯧.’
“부담 갖지 마시오. 카이라 장로, 당신들은 존재함으로써 배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소.”
“아무리 그래도··· 엘프 개개인의 일거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녀석들이 원하는 그것(?)들을 개인적으로 몰래 구입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마을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지요. 엘프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지면 상당히 골치 아프지요. 흐음~”
‘하긴~ 노동은 밥벌이 수단이 아니지.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엘프도 당당한 배달의 일원이다.’
참고로, 엘프는 배달에서도 보안사항으로 대부분 대전 이남지역에서만 활동한다.
그것도 마법 아이템으로 얼굴과 커다란 귀를 숨긴다.
“생각이 짧았던 것 같소. 알겠소, 카이라 장로. 내, 초록마을의 적당한 특산품을 고민해 보겠소.”
“감사합니다, 영주님.”
팰리스와 카이라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마을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팰리스가 주위를 둘러보니 초록마을은 이제 전형적인(?) 엘프들의 주거지로 변해 있었다.
3~4년 전에 이곳이 마르게 황량한 벌판이었다고 어느 누가 상상할까.
나무와 넝쿨이 기이하게 얽혀 환상 속의 마을 같았다.
팰리스를 호종한 가신과 병사들도 신기한지 넋을 놓고 신비로운 마을을····
‘꼴깍~’
“하아~ 저, 정말···”
‘후르릅~’
“데, 데이트라도 한번··· 소원이···”
···이 아니었다.
인간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여성 엘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도 나름 몰래 쳐다본다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는데 자칫하다가는 사팔뜨기가 될 것 같았다.
반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는데 선샤인이 갑자기 두 팔을 벌리고 뛰어가다가 어느 엘프에게 자신을 내던졌다.
‘도도도~’
“얘. 위험···”
“안아줘~”
‘휘익~’
‘덥석~’
“어, 어? 인···간?”
아닌 밤중에 날벼락 맞은 엘프 여성이 굳어졌다.
선샤인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 사이에서····
‘비비적비비적~’
“헤헤헤~ 좋다.”
“저, 저런 저···”
“부, 부럽···· 험험~”
가신과 병사들 그리고 팰리스의 솔직한 반응이었다.
“후웁~ 하아~ 누가 냄새 좋아. 우리 엄마 보다 좋아.”
“너··· 뭐니?”
팰리스 일행은 몰랐지만 이 모습은 상당히 특별했다.
엘프들은 순수의 종족이고 본질적으로 인간을 혐오한다.
인간의 탐욕의 존재였기 때문인데 아무리 때가 묻지 않은 아이라도 본능적으로 멀리한다.
그런데 엘프 여성이 지금 선샤인을 품에 안았다.
그것도 성추행(?)에 버금가는 매우 흐뭇한 행위에도 멀리 내동댕이치지 않았다.
“선샤인에요, 선샤인.”
“선샤인이라면··· 아~ 영주님 아들?”
“네. 헤헤헤~ 그런데 누나! 정말 예뻐요. 달님이 형. 그렇지?”
“웅. 누나들 정말 예뻐. 헤헤헤~”
“그, 그러니? 인간이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있구나?”
“누나 나도! 나도 안아줘요.”
“그럴래?”
엘프 여성이 선샤인을 내려주고 대신 달님이를 안아 올렸다.
“헤헤헤~ 좋다.”
“나, 나ㄷ···”
“기사님. 정신 차리십쇼.”
“어, 어? 험험~”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시찰단의 남자들이 죄다 엘프들에게 한눈을 팔았다.
헬레나까지 미소년 엘프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축복이 살짝 골났다.
“어머, 샤이야. 거기서 뭐하니?”
“아~ 샤먼. 초록마을의 어린 가지, 크라이네가 인사드려요. 반갑습니다.”
“나도 반가워요. 그런데 우리 샤이. 무슨 이야기 했어?”
“웅. 저 누나 아주 예쁘다고 이야기 했어.”
“그래? 그런데 우리 샤이. 저 누나가 예뻐, 아니면 내가 더 예뻐?”
“으, 응? 그게···”
‘우물우물~’
너무 곤란한 물음이었을까!
선샤인이 엄마와 크라이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표정이 무너졌다.
“거짓말··· 아프면 더욱··· 훌쩍~”
“응? 뭐라고?”
“거짓말하면 나쁘고 훌쩍~ 엄마 마음 아프면 더욱 나쁘다고. 으아앙~”
“샤이야 울지 마. 네가 울면 나도 슬퍼··· 으아앙~”
어느새 엘프의 품에서 내려온 달님이까지 가세했다.
크라이네는 정말 황당했다.
“샤, 샤먼!”
‘긁적긁적~’
“에이 씨···”
“당신. 애들은 왜 울리고 그래?”
아이들이 울자 카이라와 이야기하던 팰리스가 다가왔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데 왜 애들이 울어?”
“나는 그냥 장난으로···”
“하아~ 당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철이··· 쯧쯧쯧.”
“쳇~ 이 대목에서 갑자기 나이 타령은.”
“에고~ 잘 한다, 잘해. 어이~ 럭키!”
‘컹!’
“저기~ 알지?”
팰리스가 아이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똑똑한 실버 라이칸들이 몰려가 아이들의 얼굴을 핥고 비비댔다.
“으흑~ 으흐~ 가, 간지러. 히힛~러, 럭키··· 훌쩍~ 그만해. 간지··· 으헤헤헤~”
럭키와 그 일당들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다시 웃음을 찾았다.
비상사태 해제. 팰리스와 토머스를 제외한 시찰단은 엘프들이 제공한 살아있는 나무집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팰리스가 일행에서 떨어진 이유는 초록마을의 특산품을 고민하기 위해였다.
‘엘프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뭔가 좋은 수나 나오겠지. 솔직히 너무 막연해.’
지구의 지식을 기억하는 팰리스는 이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엘프들의 개성이 너무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는 몹시, 아주 몹시 자연친화적인 종족이었다.
고기를 먹지만 주식은 곡물과 과일이었다.
‘분명 조리된 고기를 주니깐 아주 환장했었어. 고기를 싫어하는 건 절대로 아냐. 아마도 나무를 태우는 것이 싫어 고기를 즐기지 않았을 거야.’
팰리스가 이리 생각할 정도로 엘프는 자연의 파괴를 싫어한다.
그래서 광산을 개발하고 건물을 짓느라 자연을 파괴하는 드워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유리공예나 화학? 그것도 싫어할 것 같고··· 엘프들에게 무얼 추천해준다? 솔직히 상품을 만들자면 대부분은 자연을 해쳐야 하는데.’
“끄응~ 대나무 공예 같은 건 돈이 안 될 테고··· 도무지 답이 안 보이는군.”
“영주님.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을 두고 생활하다보면 적당한 것이 떠오를 거예요.”
일라이의 말에 위로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급해졌다.
800년 이상을 살아가는 종족과 100년도 못 사는 종족 간은 시간관념 때문인데, 신체조건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엘프들이 가이아의 주요 종족이 되지 못한 건 이같이 그들의 삶이 너무 ‘널널’했기 때문이리라.
‘아이고야~ 널널하다고 탓하면 또 삐질 테고··· 어렵다, 어려워. 그냥 구경이나 하자.’
“일라이. 다른 곳으로 가봅시다.”
“네, 영주님. 이쪽으로 오세요.”
팰리스가 나무와 넝쿨로 만들어진 통로를 지나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다.
“응? 가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라니요?”
“일라이.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쇠를 두드리는 대장간처럼.”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자연을 사랑하는 종족이 무슨 대장간이겠어?’
“아~ 그거요? 저기 보이는 곳이 대장간이니깐 당연히 쇳소리가 나는 것이죠.”
“리, 리얼리?”
“네? 리얼···리?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정말이냐고.”
“네, 영주님. 저곳이 대장간이에요.”
그랬다. 팰리스의 선입견과 달리 엘프들도 대장간을 운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살촉과 검을 어떻게 보유했겠나. 안 그런가?
58. 안에서 찾는 것들- 2